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74화 (74/110)

74화. 멱살도 잡지 마

라이징 밴드 3회 방송이 나간 직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RRR 밴드에 대해 왈가왈부 떠들기 시작했다.

-와 RRR 진짜 쩔었다.

-교회 오빠 애들은 실력 별로더라.

-겉만 번지르르 했지, 뭐.

사람들은 과거, 기보성의 편집으로 인해 홀리오라방돌이 밴드가 RRR 밴드를 향해 강한 도발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RRR 밴드의 단탈리온 데스맨 역시, 심각한 멘트를 던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근데 이 정도면 불교고 기독교고 걍 악마신교가 최강 아님?

-악마신교 괜찮다.

-줄여서 악신교도 괜찮을 듯ㅇㅇㅇ

-아니면 악교는 어때요?

-악교는 락교 같아서 별루.

그런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떠돎과 동시에.

라이징 밴드의 클립 영상들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올라왔고, 참가자들의 멋진 연주와 노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폭풍적인 인기.

비록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라이징 밴드는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위 아 더 베스트 데블스 오브 락앤롤.

-퍽앤롤이니라.

단탈리온 데스맨의 기행들만 모아 둔 클립 영상들.

쉽게 말해 짤방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짤방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이 연관 동영상으로 나오는 라이징 밴드의 RRR 밴드 공연을 클릭하였고.

-와……. 이런 메탈 밴드가 있었다고?

-은근 대중적인데

-이럴 수가 나도 메탈을 좋아했다니

-RRR 밴드 앞에 메탈이 비주류라는 말은 넣어 두거라!

-가아암히 마왕님의 안전을 두고!

사람들은 그렇게 RRR 밴드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으하, 하핳, 하하하!!!!”

한편 기보성PD의 어깨는 사무실 천장을 뚫다 못해 빌딩 옥상까지도 올라가 버릴 만큼 한껏 치솟아 있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얘네는 복덩이들이라니까!”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며.

컨셉에 진심인 밴드들만 잔뜩 모아 둔 게 도움이 되었다며.

기보성은 한껏 자신을 과시했다.

“내가 이상한 밴드들만 모집할 때 다들 날 무시하고 그랬는데, 어디 두고들 보라지. 뭐? 시청률?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시청률 따져? 다들 VOD나 너튜브 같은 걸로 보는 거 몰라? 불법 다운로드나 안 하면 다행이지!”

자신을 개무시하던 직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며 기보성이 키득키득 웃었다.

“아주 꼴 좋다 꼴 좋아. 지금쯤 내가 부러워서 잠도 못 자고 있을 거다!”

“그…… 건 아닌 거 같은데요, PD님.”

옆에서 기보성의 기행을 보고 있던 조연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3회 방송도 성공적으로 이어 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곧 3라운드 본방 촬영 날이에요.”

“그게 왜?”

“잊으셨어요? 4회 방송은 본선 3라운드랑 같이 편집해서 나가기로 했잖아요.”

조연출의 말에 기보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가 아니라요 PD님. 저희 지금 예고편은 어찌어찌 뽑았지만, 3라운드 방송 제대로 안 나오면 꽝이에요 꽝.”

“으음……. 맞는 말이야.”

사실 평소의 기보성이었다면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편집의 힘을 빌려서 연출을 만들어 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진행하는 라이징 밴드는 아니었다.

3회 방송까지는 어찌어찌 편집의 힘으로 연출을 만들어 냈다고는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이 밴드들 실력도 다 알고, 클립 영상도 따로 만들 정도로 밴드들 인기도 많아지고 있어서 어설프게 만들 수가 없지.”

이제는 자칫 잘못 영상을 만들어 냈다가는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음과 동시에, 프로그램의 인기도 뚝 떨어질 수 있었다.

왜, 있지 않은가.

잘 나가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특정 아이돌 연습생을 악마의 편집으로 인간 쓰레기를 만들어버려서 시청자들에게 욕이란 욕을 다 먹고, PD들은 구속이 되었던 일.

그런 일들이 최근 들어서 한 건씩 발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라이징 밴드도 지금 시점에서 딱 악마의 편집을 그만두어야 하는 지점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하면 괜찮을까?

기보성은 근본적인 질문을 조연출을 비롯한 스텝진들에게 던졌다.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이제 와서 멀쩡하게 편집한다고 말이야.”

스텝진들 모두가 긴장해서 침을 꼴딱 삼켰다.

“라이징 밴드, 인기가 지금처럼 있을까?”

거기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탑엔젤스와 RRR 밴드의 억지 러브 라인, 여기에 열반 밴드까지 포함된 삼각관계로 대중들의 관심을 확실하게 끌었고.

RRR 밴드와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악마 vs 기독교 구도를 만들어 또 한 번 시청률을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다행히 그 뒤로 올라오는 스틸러블리라던가 패자부활전으로 살아난 열반 밴드, 탑엔젤스 등, 다른 참가자들 실력도 뛰어났다.

그래서 지금 대중들은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이들의 실력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은 자극적인 내용이 나와야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는 법이야.”

기보성이 생각하기로는 지금의 라이징 밴드에서 ‘악마의 편집’을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끌고 나가는 게 과연 맞을까?

자칫 잘못해서 조작이라던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그때는 내 PD 인생이 끝이다……!’

그래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끌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

“나도 다들 무슨 고민하는지 알아. 안다고.”

기보성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4회 방송.

지금까지처럼 악마의 편집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기보성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일단, 3라운드 촬영 끝나고 생각해. 이번에도 연출을 섞을지, 아니면 진짜 모습들을 그대로 내보낼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자고.”

조연출을 비롯한 스텝진들 모두가 기보성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직은 3라운드 촬영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판단할 수 없다.

‘그래, 이렇게 하루 미루자.’

‘내가 책임지나? 기보성이 책임지겠지, 뭐.’

‘나도 이젠 모르겠다.’

스텝진들의 저마다의 생각을 담은 채로, JB 방송국의 라이징 밴드 사무실의 조명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흐음.”

이상하군.

“단탈리온 님,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옆에 있던 오로바스가 나에게 물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걸 보니 설거지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아니, 별거 아니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거라.”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오로바스가 고개를 꾸벅 숙여 나에게 예를 표했다. 나는 그런 오로바스를 향해 손을 한 번 휘익 저었다.

“이게 전부인가.”

귀에 오른손을 가져가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귓가 너머에서 마계 통신을 받고 있는 시틀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예, 단탈리온 님. 최근 일주일 간의 감시 눈동자 영상 내용을 모두 판독한 보고서입니다.]

지금 내 왼손에는 시틀라가 전송해 준 양피지 덩어리가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건 덩어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작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보고서의 내용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예…….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감시 중이니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

“아니, 그렇지 않다.”

감시 눈동자의 감시 반경은 360도.

인간들의 어설픈 감시카메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화질의 영상을 남길 수 있는 마력 도구였다.

그렇다면 여기에 별다른 게 없다는 건.

‘주도자는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그곳이 어디일까.

혹은, 촬영 당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걸까.

‘유예찬은 꽤 예전부터 탁기를 몸에 품고 있었다.’

그 힘이 폭주하기 시작한 건, 라이징 밴드 리허설 때부터였지만 말이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시틀라에게 말했다.

“받아 적거라.”

[예! 위대하신 단탈리……]

“감시 눈동자의 감시 레벨을 2단계 상승. 다소 마력을 사용해도 괜찮으니 원격 조종을 통해 중심지를 이동해도 좋다.”

아직 마력이 충분한 건 아니었다.

마계코인이 조금씩 올라가고는 있었지만, 그게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빚이 999조에서 조금씩 미묘하게 사라지고 있는 정도.

오늘 잔금: -999,691,152,344,995

그래도 많이 갚기는 했구나.

이대로 999조가 다 갚아질 때까지 버티…… 는 건 힘들겠지.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불특정 요소를 제거하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더 큰 명성을 취하기는 어려울 터.”

이 요소를 제거하지 못하면, 라이징 밴드에서 RRR이 1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우리들, 특히 이 몸의 짤방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라이징 밴드의 이런 이점을 눈뜨고 빼앗길 수는 없도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러니 적거라. 이번에는 무대뿐이 아니라 대기실과 복도의 감시 눈동자도 하나씩 활성화한다.”

[존명!!]

“인원을 더 늘려서라도 알아내라.”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본선 3라운드.

팀이 바뀌었기에 내가 생각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전처럼 RRR 밴드 멤버들과 하는 경연이 아니었기에, 메탈 밴드의 미친 연출을 해내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당장 능선이나 허당, 탄불을 보라.

어디 그게 인간의 몸이더냐.

말라비틀어져서 연주하다가 기절이라도 안 하면 다행일 필멸자들이다.

악마 분장도 없고, 피가 터지는 퍼포먼스도 없다.

즉, 이번에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라운드.

때문에 불확실한 요소, 수상한 요소들은 최대한 제거하고 촬영에 들어가는 게 필요했다.

“인원을 더 늘리거라. 상품을 더 걸어도 좋다.”

[예!!]

“이 몸의 라이징 밴드, 본선 3라운드 통과를 막는 싸가지 없는 존재들을 모조리 박멸하거라.”

그래.

모든 것은.

“특히, 탁기를 뿜어내는 주도자를 찾아야만 71위 마계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인지하라!”

빚이 999조에 달하는, 이 몸이 지배하는 마계.

71위 마계를 살리기 위해서다.

* * *

“……지금 뭐라 하였느냐?”

며칠이 더 지난 후, 라이징 밴드 본선 3라운드 촬영을 위해 멤버들과 JB방송국을 찾은 단탈리온은.

덥썩.

“야야야, 데스맨! 그거 놓고 얘기해!!”

“지금! 악마의 편집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것이더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데스맨 씨! 야! 누가 좀 말려 봐!!”

본선 3라운드 촬영을 앞두고, 악마의 편집을 줄이겠다며 참가자들에게 사과를 한 기보성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 * *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감히 이 몸이 전수해준 악마스러움을 버리다니 통탄스럽도다.”

“…….”

“기보성 같은 개미 콧구멍의 털만치도 못한 심장을 가진 이에게 이 몸의 미래를 맡기는 게 아니었다.”

“…….”

“악마스러운 편집을 한다고 하는 점만은 높게 사고 있었더니, 뭐라? 악마를 포기하겠다고? 내 언젠가 반드시 그놈을 악마로 타락시키는 영광을 만들어…….”

“……데스맨.”

앤디의 말에 단탈리온이 말을 멈추었다.

“……조용히 좀 있자.”

“왜들 그러는가.”

“야, 너 진짜……! 어휴, 아니다. 오늘은 너랑 말싸움할 기운도 없다.”

앤디가 한숨을 푹푹 쉬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애꿎은 기타만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진짜 몰라서 물어?”

“알면 묻겠는가.”

“아, 그래 그래! 내가 알려 줄게! 미쳤다고 PD의 멱살을 잡았어?! 우리 여기서 폭행죄로 쫓겨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앙!!”

앤디가 버럭 화를 내며 단탈리온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내가 리더잖아 리더! 그럼 내 말을 좀 들으라고! 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야!”

“흐음. 그런 부분이었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외적으로는 앤디가 리더로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쪽을 줬으니 불만이 나올 수도 있었다.

“내 앞으로는 그런 부분을 주의하겠다. 되었느냐.”

“그래. 그래 줘, 제발…… 이 아니라! 제발 사고 치지 마. 사고 좀!!”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양쪽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앤디였다.

“맞아 마왕님. 아무리 그래도 PD 멱살은 심했어.”

“……그러하냐.”

“마왕님이라 인간계 관습을 잘 모르기는 하겠지만, 막무가내로 해서는 안 돼. 흑마법으로 조종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그치?”

앤디와 달리 제인은 차분하게 단탈리온을 타일렀다.

단탈리온도 그 말에는 이견이 없었다.

실제로 흑마법으로 스텝진들을 조종하지 않는 이유는, 흑마법의 후유증 때문이었으니까.

“흑마법에 취해서 사람들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프로그램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그러하다.”

“그럼 네가 잘못 행동해서 우리가 망가진 걸로 인식되면 우리도 프로그램에서 사라질 수 있잖아. 그치?”

그 말에 단탈리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로구나. 내 이해를 했도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제인이 앤디의 어깨를 토닥였다.

“기운 내. 오늘은 우리가 1번이잖아.”

“으으……. 고마워 제인. 나 청심환 좀 먹을게…….”

다른 사람들과의 경연은 처음이라 다소 긴장을 했는지 앤디가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흠. 버프를 걸어 줄 수도 없고. 참으로 어렵도다.”

“우리들 실력 알잖아? 버프 없어도 3라운드 정도는 통과해 볼게.”

제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앤디도 청심환을 다 먹고 와서는 히죽 웃었다.

“데스맨, 너도 떨어지지 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PD 멱살도 잡지 마.”

“……고려해 보마.”

“또, 또. 제대로 대답해야지?”

“……노력하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는 사이.

“후욱……. 후욱……!”

오로바스는 무대 위 드럼 앞에 서서 호흡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앞에 앉아서 그를 노려보고 있는.

“흥, 할 말이라도 있나 봐요?”

스틸러블리의 드러머, 김은영과 눈을 마주한 채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