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75화 (75/110)

75화. 좋다고?

‘실수했습니다……!’

오로바스는 자신의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김은영을 보며 생각했다.

얼마 전,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이 내린 특명을 완수하고자 이번에도 신촌의 고깃집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혼자서 고기를 먹던 오로바스의 앞에 김은영이 자신의 밴드 멤버들, 스틸러블리 멤버들을 데리고 왔다.

-어라? 진태 씨?

-안녕하십니까, 은영 씨.

-여기서 또 뵙네요. 혹시 저 보러 오셨어요?

-네, 그렇지 않으면 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에 스틸러블리 멤버들이 단체로 충격을 받았다.

드러머, 김은영을 보기 위해 굳이 이 고깃집까지 찾아왔다?

-어, 어? 아, 진짜요?

-네. 왜 그러십니까?

생각 이상으로 동요하기 시작하는 김은영을 보며 오로바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보고 있는 스틸러블리의 멤버들 모두가 서로 수군댔다.

-뭐야, 뭐야, 뭐야~~!

-대박 대박. 우리 은영이 라이징 밴드에서 남친 생기는 거 아냐?

-……이제 드럼 말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네.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도 농담에 섞여 한마디를 던질 정도로.

지금 상황은 꽤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노래는 매우 강렬하고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장르, 메탈을 추구하는 스틸러블리 밴드였지만.

그들도 공연을 하지 않을 때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틸러블리 멤버들이 모두 김은영과 박진태, 오로바스를 묘한 시선으로 번갈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김은영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밴드 멤버들에게 그런 게 중요하겠는가.

그저 놀릴 거리, 잘 되면 즐거운 추억 거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열심히 장난을 칠 뿐이었다.

-야, 야, 우리 빠져 줄 테니까 둘이서 놀아~

-어, 응? 아니 왜! 야 먼저 가지 마!

-우리 간다~ 진태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우리 은영이 잘 부탁해요!

-……드럼만큼이나 멋있어지셔야 할걸요.

그렇게 스틸러블리 멤버들은 키득거리면서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오로바스는 김은영과 단둘이서 고깃집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아, 저기……. 저를 만나고 싶으셨다고…….

-네. 저는 은영 씨와 만나야만 했습니다.

-……!?!?

김은영이 한층 더 당황해하면서 굉장히 죄송스럽다는 듯 말했다.

-진태 씨, 죄송한데 저는 밴드를 하고 있을 때는 연애를 할 생각은 없…….

그렇게 김은영이 혼자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오로바스가 김은영의 말을 끊었다.

-라이징 밴드 3라운드. 드럼이 둘인데, 지금 선곡한 노래는 드럼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합니다. 편곡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 네?

-제가 드럼이 들어갈 파트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본선 3라운드, 반드시 통과해야지요.

그 말에 김은영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는 오로바스를 바라봤다.

-그럼 저를 보고 싶어 하셨던 이유가…….

-네. 라이징 밴드 이야기 말고는 없습니다.

그때 김은영의 얼굴이 얼마나 심하게 구겨지며 일그러졌는지는.

그 자리에 있었던 오로바스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마나 심했냐면, 주변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모두 김은영이 테이블을 엎어 버릴지도 모른다며 긴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쾅!!!

-자알 먹었습니다. 전 이만 가 보겠어요.

-네? 은영 씨, 편곡은…….

-알아서 하세요!!!!!

그럴 거면 왜 굳이 나를 찾아왔담!

다른 멤버도 둘이나 더 있는데 굳이! 굳이!!

김은영이 씩씩대며 사라진 자리에는,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뒤집어진 그릇들 아래로 된장찌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아깝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오로바스는 자신이 편곡까지 해서 김은영과 다른 멤버들에게 들려주기도 했었지만.

-괜찮은데요? 진태 씨 편곡 능력도 굿!

-저도 찬성이에요. 이 정도면 보컬 소리가 죽지도 않을 거고, 솔로도 적절하고요.

-…….

김은영만큼은 단톡방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저 속절없이 숫자 하나만 삭 지워졌을 뿐.

그래서 오로바스는 김은영이 자신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고 생각했었다.

연습을 할 때도, 냉랭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력을 사용해서 분위기를 바꿔 보려 시도를 해 봤지만, 그것마저도 실패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결국, 오로바스는 김은영과의 관계를 더 깔끔하게 만들지 못한 채로 3라운드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급했다.

‘이대로는 3라운드에서 탈락할지도 몰라!’

멤버들과의 화합, 협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밴드 음악.

그런데 다른 파트도 아니고, 같은 파트라 분위기를 나누어야 하는 다른 드러머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

잘못하면 연주 도중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화합이 부족해서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는 상황.

-은영 씨! 잠시만요!

그래서 오로바스는 적극적으로 김은영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틀라님조차도 모르셨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틀라 역시, 오로바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 주지 못했다.

그저 7군단장, 만티코어가 해 준 조언이 그나마 기억에 남았다.

-멍청한 오로바스! 먹을 거라도 쥐어 들고 사과해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이러면 되는 거야!

그래서 오로바스는 앤디를 통해 정유나와 접촉을 시도했다. 다행히 정유나와 접선한 오로바스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김은영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물었다.

-……은영이가 좋아하는 음식……?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흐음.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려는 거예요?

역시나 거기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오로바스였지만, 어쨌든 여기서 의문을 품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가는 김은영과의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 알려 주십시오!

-……은영이는 달달한 간식 좋아해요.

간식이라!

그렇다면 사탕 종류이거나 마카롱, 또는 케이크 종류일 수도 있다!

오로바스는 무언가 깨우침을 얻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정유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유나 씨!

-……우리 은영이한테 잘해 주세요. 걔, 한 번 삐치면 답도 없어.

-물론입니다!

그래야만 본선 3라운드,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유나와 이야기를 마친 오로바스는 신촌 근처의 디저트 맛집들을 열심히 서치했고.

그 결과, 지금 그의 손에는 휘낭시에와 마카롱이 종류별로 잔뜩 담긴 디저트 박스가 들려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은영 씨! 잠깐만요!

후다다닥.

김은영은 오로바스와 대화도 하기 싫어한다는 것.

평소에는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드러머지만, 실상은 한 번 삐치면 단단히 삐쳐서 그걸 풀어 주는 데 꽤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였다.

같은 밴드 멤버인 정유나조차도 그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결국, 열심히 도망 다니는 김은영과 오로바스는.

“후욱…… 후욱…….”

달리고 또 달려서, 공식 리허설 시간이 되어 무대에 올라오고서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흥. 할 말이라도 있나 봐요?”

하지만, 여전히 김은영의 태도는 냉랭을 넘어서서 한기가 몰아닥쳤다.

악마인 오로바스조차 잠깐 흠칫하며 겁을 먹었을 정도.

마치, 마계 중에서도 극한의 한파가 몰아닥치는 마계의 한마구에 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 봤지만.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단탈리온 님을 뵐 면목이 없다!’

오직 단탈리온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한 전략임을 생각하며 오로바스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저, 은영 씨.”

오로바스가 디저트 박스를 앞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으응!? 뭐야!?”

“지, 진태 씨 왜 그래요!?”

다른 멤버인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가 갑작스러운 오로바스의 외침에 고개를 홱 돌렸다.

오로바스는 이마를 땅에 쿵! 찍으며 김은영을 향해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네에에!?!?”

아무리 삐침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기분을 풀어 주기 어렵다는 김은영이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상대가 고개를 숙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당황한 나머지 비명을 살짝 질렀으나.

‘흥! 겨우 이 정도로?’

김은영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크흠, 뭘 잘못했는데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디저트를 드시고 기분을 풀어 주십시오!”

하찮은 필멸자 따위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오로바스 일생일대 최대 치욕이다!

‘모든 것은 위대한 단탈리온 님을 위해서!’

단탈리온 님을 위해서는 분골쇄신하기로 서약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오로바스는, 지금의 치욕 정도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촌의 맛집을 모조리 뒤지고 하나씩 다 먹어 보고 고른 간식들입니다.”

“헐……. 진태 씨, 진짜로?”

“두 분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 게 설마…….”

지금 오로바스와 김은영의 대화는 누가 봐도 커플이 한바탕 싸우고, 잔뜩 삐친 여자를 남자가 달래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걸 드시고 노여움을 푸십시오!”

“…… 흥.”

김은영은 여전히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지만.

사실 속으로는 어느 정도 기분이 풀어진 상태였다.

‘…… 진짜 다 돌아봤나 본데?’

디저트 박스 안에 있는 빵들은 제각기 다른 브랜드의 휘낭시에와 마카롱들이었다.

디저트 매니아였기에, 그리고 그 가게가 다 어디에 있는 곳들인지도 파악하고 있는 김은영이었기에.

지금 오로바스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럼……!”

“생각만 하는 거예요. 아직 화 안 풀렸어요.”

김은영이 디저트 박스를 집어 들었다.

“리허설 끝나면 다 같이 먹어요.”

“네! 좋습니다!”

“……좋다고?”

김은영의 눈빛이 매섭게 쏘아졌다.

“틀렸네요.”

“……네?”

“저를 위해서 사 오신 거 아닌가요?”

“아차…….”

그렇게, 오로바스는 또 다시 김은영에게 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이전보다는 덜 냉랭한 모습이었기에.

오로바스는 조금은 상황이 나아졌다는 점에서 7군단장, 만티코어에게 무한한 감사의 저주를 올렸다.

‘만티코어 님……! 감사합니다!’

* * *

어쩐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는 무대 뒤쪽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지?”

앤디가 대기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무대 방향을 바라봤다. 스텝진들은 물론이고 다른 참가자들도 지금 무대 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더냐.”

“아, 데스맨. 저기 꽤나 시끌벅적해서.”

앤디가 손가락으로 무대 뒤편을 가리켰다.

“저곳은 지금 진태의 팀이 리허설을 하는 곳이 아니더냐.”

“맞아.”

“수상하구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는 알지 못하던 비밀 미션 같은 게 새로 생긴 걸까?

그런 여러 가지 추측들을 하며 단탈리온과 앤디가 천천히 무대 뒤로 걸어갔다.

“그러니 이걸 드시고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건, 고개를 바닥에 딱 붙이고는 김은영을 향해 사과를 하고 있는 오로바스였다.

“헐…….”

“흠…….”

앤디가 충격을 숨기지 못한 채로 물었다.

“야야, 진태 씨 뭐 잘못했어?”

“글쎄다…….”

단탈리온도 지금 상황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따로 시틀라에게 보고 받은 바가 없었기 때문.

오로바스에게는 그저 밴드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야만 한다는 조언을 해 주었을 뿐이다.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오로바스가 지금 드러머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이더냐.’

그 말에 시틀라가 무슨 일인지 알겠다며 말했다.

[아마 만티코어가 이야기했던 걸 실천하고 있는 걸 겁니다.]

‘만티코어가?’

[예. 같은 팀 드러머와 사이가 안 좋아진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만티코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거 사 들고 무조건 빌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알아냈어?”

고개를 끄덕거리는 단탈리온을 보며 앤디가 물었다.

“사과를 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건 나도 알아 이 자식아. 지금 나 놀려?”

“음? 사실을 이야기한 것뿐이다.”

결국 한숨을 쉬는 앤디였다.

“으휴, 이 바보들아. 지금 딱 봐도 모르겠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제인이 말했다.

“저건 연인들끼리 싸웠을 때 하는 ‘여친 마음 달래 주기’잖아.”

“그런 마법이 있었단 말인가?”

“마법이 아니라,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고. 둘이 엄청 친해져서 썸이라도 타다가 다투고, 진태 씨가 풀어 주는 거 아냐?”

“흐음…….”

제인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단탈리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서번트도 인간이랑 연애를 하나?”

“…….”

“…….”

이어지는 앤디의 근본적인 질문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찍었냐?”

“예, 찍었습니다!”

그리고 김은영과 오로바스의 모습을 무대 가장 꼭대기에서 지켜보던 기보성은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4회차 방송도 살렸다!!!!!!!!”

역시!!!!

RRR 밴드라면 하나 해 줄 거라 생각했어!!!!

멀쩡하게 생긴 박진태!!!! 설마 스틸러블리의 드러머와 연애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가만 냅 둬도 알아서 해 주다니!!!! RRR!!! 그들은 신이야!!!!”

잔뜩 신이 난 기보성PD의 포효가 리허설 무대 한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호오…….”

“왜 그래?”

단탈리온이 리허설 무대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감히 이 몸을 신이라 부른단 말이더냐.”

“신?”

크큭, 크크크큭.

“내 반드시 이 몸을 신이라 부른 이를 잡아다가 족칠 것이니라.”

“……제발 오디션 현장에서만 하지 마라.”

앤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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