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목탁 메탈릭 ver. (1)
단탈리온의 예상대로 A팀, 도미니온과 앤디, 제인, 정유나의 공연은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와……. 이게 이런 식으로도 편곡이 가능했군요.”
드러머가 없는 A팀.
그래서 A팀에서는 스틸러블리의 노래, ‘강철의 애교쟁이’를 드럼이 없는 버전으로 편곡했다.
드럼이 없어도 활기찬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제인의 베이스가 저음을 튕겨 주면서.
정유나가 리드 기타, 앤디가 리듬 기타를 맡으면서 증명해 냈다.
거기에 도미니온의 목소리도 한껏 청량하고 밝은 음색을 보였기에.
“이거……. 생각 이상으로 좋은 팀이 되었는데요?”
심사 위원들의 귀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것뿐이랴.
‘후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도미니온이 상시 백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러니 A팀의 연주와 노래가 심사 위원들은 물론이고 스텝진들의 귀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것.
“정말 놀랍습니다! 메탈 밴드가 두 팀이나 있어서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던 팀이었는데요!”
한석주가 정말 놀랐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의 이 정도면 우승 후보 아닐까요? A팀으로서의 경연이 이번 3라운드로 끝이라는 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입니다!”
그 말에 하현주도 맞는 말이라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도 이 정도로 퀄리티가 높을 줄은 몰랐어요. 특히 도미니온 씨, 목소리가 저번보다 더 맑아졌는데요?”
‘당연하지, 백마법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으니까!’
도미니온이 진실을 감추려 애쓰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네,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다음 경연 때도 이런 목소리로 나올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라이징 밴드에서 우승할 생각은 없지만.
도미니온은 무대 뒤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단탈리온을 떠올리며 말했다.
“……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저는 베이스, 제인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윤상하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베이스를 연주한 제인을 지목했다.
“드럼이 없기에 박자를 담당할 악기인 베이스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을 겁니다.”
그런 점이 A팀의 어려운 지점이었을 거라며, 윤상하가 신이 나서 말했다.
“한계가 분명히 있을 거고, 일렉 기타가 두 대여서 소리가 죽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 이펙터를 활용해서 베이스의 소리를 묵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점. 정말 신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인이 힘차게 대답했다.
실제로 여러 이펙터들 중에서 일렉 기타와 소리가 겹치지 않으면서, 베이스의 음색을 보여 줄 수 있는 걸 골랐다.
그걸 알아준 심사 위원, 특히 베이시스트 대선배인 윤상하의 칭찬이었기에 제인은 그에게 특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네, 기대하겠습니다!”
윤상하의 심사평도 마무리가 되면서 장도민이 마이크를 잡았다.
“유나 씨와 앤디 씨가 메인 기타를 누가 하느냐로 조금 다투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이미 두 사람의 기타 연주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렇기에 누가 메인인 리드 기타 자리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따라서 장도민은 물론이고 다른 심사 위원들도 참 궁금한 지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앤디가 마이크를 드는 순간, 심사 위원들이 그의 대답을 기대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정작 먼저 입을 연 건.
“…… 리드 기타는.”
항상 과묵함을 유지하고 있는 정유나였다.
“레드 홀스를 사랑하는 저에게 앤디 씨가 양보해 주었어요.”
“……네?”
“양보를!?”
뛰어난 연주자라면 더더욱 연주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경연 자리를 놓칠 수 없을 터.
그럼에도 RRR 밴드의 기타리스트, 앤디는 정유나에게 리드 기타 역할을 아무렇지도 않게 맡겼단 말인가.
“정말 대인배셨군요, 앤디 씨.”
“네……?”
“리드 기타 역할을 그렇게 쉽게 양보할 수 있다니. 저라면 참 힘들 거 같거든요.”
“맞아 맞아. 연주자들끼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견제하는 게 있을 텐데 말이죠.”
윤상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앤디에게 물었다.
“어떤 점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까?”
“그야…….”
앤디가 정유나와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갈기가 그려진 기타, 레드 홀스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기타를 사랑하는 분의 연주를 바로 옆에서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크, 대인배 맞네. 대인배 맞아.”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A팀의 공연이 모두 마무리되었고.
“A팀! 본선 3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기대됩니다!”
심사 위원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평을 남긴 A팀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다.”
다음 순서인 D팀.
단탈리온이 무대 뒤로 들어오는 앤디와 제인을 향해 말했다.
“야, 들었냐? 나 대인배라고 하셨다.”
“쯧쯧. 그런 일에 일희일비하니 자네가 소인배인 것이다.”
“이게 진짜!”
“무대를 마친 회포는 추후에 풀도록 하지.”
단탈리온이 등에 두른 망토를 펄럭 휘날리며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이제 우리의 무대니라.”
그리고 그 뒤로 열반 밴드 멤버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니 이제는 잘 지켜보고 있거라.”
무대로 들어가는 단탈리온이 도미니온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도미니온은.
“……네, 지켜볼게요.”
단탈리온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고 무대 뒤에서 자리를 잡고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 세우고는 기도를 하듯 손을 모았다.
‘부디……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별개로 그걸 바라보고 있던 조연출은.
‘……미쳤다.’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의 대화, 그 행동들을 보면서 기보성에게 곧장 보고를 올렸다.
<속보! 박진태, 김은영에 이어서 단탈리온 데스맨, 도미니온도 썸 타는 중인 듯!>
* * *
“오늘 역시 가장 기대되는 팀은 이 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석주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나, 그리고 열반 밴드 멤버들을 환영하며 외쳤다.
“악마와 스님들의 만남! 이보다 뜨거운 조합이 있을까요!”
“누가 저 하찮은 인간의 입을 좀 막을 수 없느냐.”
나는 쯧, 혀를 차며 걸어왔다.
그러고는 바엘이 만들어 준 마이크 스탠드가 아닌.
앞에 놓여 있는 방송국 마이크 스탠드를 세팅했다.
감히 악마와 스님의 만남을 대단한 것인 마냥 떠들다니.
입에 담기도 추악한 조합이지 않더냐.
‘신성력에 몸을 담은 이들과 악마가 함께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음, 예전에는 한 번 그런 적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 나무아미타불.”
“세팅은 마무리되었다.”
마이크 스탠드를 똑바로 잡고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이제는 우리가 준비한 노래를 발표할 차례.
“시작한다. ‘삼겹살에 추모 한 잔’. 목탁 메탈릭 버전이다.”
* * *
목탁 메탈릭 버전!?
아니 그것보다.
“지금 삼겹살이라고 했어요……?”
한석주가 노래 제목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눈을 마구 비볐다.
혹시나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었지만.
“제목 제대로 읽었는데…….”
놀라기는 심사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스님들이랑 같이 부르는 노래인데 괜찮나?”
“이거 이러다가 종교 싸움이니 어쩌니 이러는 거 아니려나 모르겠는데…….”
그런 우려를 담고 있는 심사 위원들이었다.
물론, 지금 이 모습을 아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크으, 역시 데스맨 씨!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바로 기보성 PD.
그는 이번 3라운드 촬영도 RRR 밴드 덕분에 분량 제대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며 양손을 불끈 쥐었다.
“가라!!! RRR!!!!”
“……RRR아니고 D팀이에요 피디님.”
메인 작가의 지적에도 기보성의 흥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담고서 D팀의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순간.
쟈아앙-!
탁, 톡, 탁, 톡, 탁.
기타리스트 허당의 일렉 기타 사운드와 함께 능선의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 제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기타 리프.
그리고 목탁.
마치 자연 속을 넘나드는 듯한 소리로 시작하는 ‘삼겹살에 추모 한 잔(목탁 메탈릭ver.)’은.
‘……이겨 내겠습니다.’
톡, 탁, 톡, 탁.
아직은 멤버들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하는 능선의 굳은 다짐을 담은 채.
[이곳은 피투성이 낙원.]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 * *
[무엇을 원했는지는 이미 잊은 지 오래]
[우리의 세계를 위해 피를 부었지]
[I don’t know, I don’t know]
[길을 잃은 걸까, 나는 멍하니 연회장에 들어서네.]
시작은 기존 노래와 같은 가사였다.
그래서 심사 위원들은 약간 사운드가 달라졌을 뿐, 가사에서는 크게 변화가 없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가사보다는 리듬 편곡에 집중했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기타 사운드나 드럼 사운드는 원곡에 비해 부드럽게 바뀌었고, 다소 잔잔한 느낌을 주기도 했으니까.
“생각보다는 평이할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초반이니까 계속 들어 보자고.”
하현주와 윤상하가 속닥거리며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순간이었다.
[이 연회는 누굴 위한 축배던가]
능선이 마이크를 잡고 단탈리온의 노래를 이어 받았다.
[축배를 더는 들 수 없네]
[피투성이 낙원이 있었네]
[그 낙원에서 도망친 나는]
[연회장에 가득한 삼겹살을]
[나는 씹어 들을 수 없네]
가사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방금 전까지는 잔잔하고 가사도 그대로라고 생각해서 다소 밋밋한 편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심사 위원들의 두 눈을 크게 떴다.
[Bite the meat. Bite the meat.]
[나는 들을 수 없네]
[어찌하면 좋겠는가 나의 친구여]
[나의 길이 잘못된 건 아닌가]
원곡의 가사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떠나간 자들을 위해 추모하는 곡이었다면.
지금 편곡된 이 노래는 외로이 자신의 죄를 되새기고 있는 화자가 주인공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주인공인 단탈리온이 가사를 이었다.
[Bite the meat. Bite the meat.]
[삼겹살을 씹으며 노래하자.]
[우리의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어둠이 드리운 세계에서]
[지나간 이들을 위한 연회를]
[지나가다 잠시라도 들러 보게나]
마치 친한 친구끼리 서로를 위로해 주는 듯한 가사로 편곡되어 있었기에.
오히려 편곡이라기보다는 리메이크의 느낌을 많이 주는 노래로 변모해 있었다.
[들어라 술잔을]
[들지 못하네 술잔을]
[씹어라 삼겹살을]
[씹을 수 없네 삼겹살을]
[물어라 삼겹살을]
[물 수 없네 삼겹살을]
고기와 술을 권하는 친구와 그걸 모두 거절하는 친구.
[씹어 보게나 삼겹살을]
그리고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목소리는.
상대의 정신적 치유를 진심으로 바라는 듯이.
세상의 그 누군가를 위해 절규하는 듯이 소리쳤다.
[한 입! 베어 물어 봐아아아아아아아아!!!!!!!]
두두둥.
쟈아앙
톡, 탁.
[한 잔! 들이켜 봐아아아아아아아아!!!!!]
둥, 두둥, 챵챵!
쟈앙 쟈앙 지지지잉.
토톡, 타탁.
[이제부터! 거절은! 거절하겠어예아아아!!!]
단탈리온의 샤우팅과 함께 능선의 목탁이 소리를 키워 나갔다.
토톡, 타타탁, 톡, 탁, 톡, 탁.
[나는 네게 고기를 권하지]
[나는 여전히 거절하지]
[너는 내게 음식을 거절하지]
[아냐 나는 고기만 거절하지]
[그럼 술은 마실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도 거절하겠지]
[그래! 자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마치 서로 꽁트를 하는 듯이 대화를 주고받은 단탈리온과 능선.
그리고 그 대화의 끝에서 단탈리온이 능선을 향해 마이크 스탠드를 치켜들었다.
[오직!!! meat!!!!!예에예에야아아아아!!!!]
그렇게 단탈리온의 샤우팅이 무대 위로 퍼져나갔다.
그 강렬한 샤우팅에 능선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심사 위원들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설마……!”
친구의 외침이 닿았단 말인가!
그런 연출까지 노래 한 곡에 담다니!
“어째선지 의기소침해져 있는 친구를 위한 노래군요!”
“2절이 어떻게 돌아갈지 기대됩니다!”
그런데 심사 위원들 모두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귀를 활짝 열어둔 채 D팀의 연주와 노래에 집중하는 순간.
털썩!
“아니!?”
능선이 어깨를 덜덜덜 떨고는 바닥에 주저 앉더니.
촤락
타탁.
좌선을 하고 앉아 목탁을 쳤다.
톡.
톡.
탁.
톡.
천천히. 강한 스냅으로.
그러나 일정하게.
목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깨우침을 얻고…….”
“불가에 귀의한 스님의 이야기……?”
그 연출을 가사의 내용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심사 위원들과 달리.
‘……스님!?’
‘능선 스님!!’
허당과 탄불은 갑작스레 좌선을 한 능선을 바라보며 불안한 얼굴을 했다.
그럴 만했다.
이 연출은 사전에 전혀 약속되지 않았던 연출이었으니까.
멤버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있었다.
“으, 오오오오오오!!!!”
능선이 갑작스레 포효를 하더니 목탁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타타탁 톡탁톡탁톡탁탁탁!!
마치 제어를 하지 못해 폭주하는 기관차를 보는 듯한 모습.
그 연출과 연주에 심사 위원들이 침을 꼴딱 삼키는 순간.
찰싹!!!!
[깔아라.]
[……깔아라?]
[밑에 깔아라]
찰싹!!!!
단탈리온의 손바닥이
찰싹!!!!
“!!!!!!!”
[위에도 깔아라]
머리카락 하나 없이 매끈함을 이루고 있는.
능선의 민머리 위로.
찰싹!! 찰싹!!
자비 없는 단탈리온의 손찌검이 작렬했다.
“!?!?!?!?!?”
“제, 제가 지금 뭐, 뭘 본 거죠!?!?”
“미친!! 역시 RRR은 신이야!!!!”
스님의 대머리도 악기로!?
악마의 사정없는 손찌검에 심사 위원 전원 경악!!
본선 3라운드 홍보 기사에 어울리는 헤드라인 문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