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목탁 메탈릭 ver. (2)
“수고하셨습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 앤디, 제인, 정유나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도미니온 씨는?”
“D팀 공연 보고 싶으시다고 잠깐 남으셨어.”
“우리도 보러 갈까? 마왕님 있잖아.”
“그것도 그렇네. 그럼 나 후딱 목만 축이고 갈게.”
“오케.”
앤디가 후다닥 대기실로 달려가는 사이.
정유나는 자신의 기타, 레드 홀스를 껴안은 채 대기실로 달려가는 앤디를 바라봤다.
“유나 씨?”
“…….”
“저기…….”
정유나의 얼굴을 스윽 바라보던 제인은 정유나의 얼굴을 보고는 기겁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유나 씨……!?”
“졌어.”
정유나는 나지막이 독백을 한 번 내뱉고는 레드 홀스를 끌어안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고생했어요, 제인 씨.”
“네에……. 괜찮으세요?”
“그럼요. 괜찮아요.”
그러고는 살짝 혀를 한 번 차고는 몸을 돌렸다.
“가 볼게요.”
그렇게 홀로 대기실을 향해 걸어가던 정유나는 남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메인 기타리스트로서 승부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가 리듬 기타를 신경 쓰느라 본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정유나였고.
“뭐야.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뭘.”
그런 정유나를 바라보며, 제인이 묘한 웃음을 날렸다.
“평소에는 버퍼링이 길던 사람이 아주 청산유수네.”
그렇게나 놀랄 정도로 우리 밴드, RRR의 기타리스트인 앤디의 실력이 뛰어났다는 뜻이겠지.
리드 기타를 본인이 맡았음에도, 리듬 기타에게 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말이야.
앞으로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면서.
제인도 무대 뒤쪽에서 도미니온의 옆에 살짝 다가갔다.
“예쁜 언니, 뭐해요?”
“또 어떤 미친 놈이 헌팅을…… 꺅!”
“아하하하! 도미니온 씨, 역시 헌팅 자주 당하죠!”
“제인 씨!”
그렇게 농담을 던지면서 도미니온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는 제인이었다.
물론, 도미니온은.
‘…… 이분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건가!?’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당연히 내가 지켜 줘야 하나?
아냐, 단탈리온 데스맨 씨가 지켜 주시려나?
그럴 리가 있나! 공연 중에 여기까지 신경 쓰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온갖 생각을 하면서 D팀의 무대를 불안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공연이 시작되었고.
“미안, 잠깐 인터뷰도 하느라 늦었네. 어때? 잘하고 있어?”
“응 가사도 재밌는데?”
단탈리온과 열반 밴드가 모인 D팀의 공연을 보고 있던 앤디와 제인은.
찰싹!! 찰싹!!
[깔아라]
“…….”
“…….”
이어지는 단탈리온과 능선의 연출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저래도 되나요?”
심지어는 망을 보고 있던 도미니온마저도 입을 쩍 벌렸다.
“……될 리가 없죠.”
“저 미친놈이 또!!!!!!!!”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는 제인과 절규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 앤디였다.
* * *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 나는 열반 밴드 멤버들 모두에게 미리 경고를 해 두었다.
-공연 중, 이상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거라.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그저 감일 뿐이다.
감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아직까지도 무대 주변에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벌써 도망갔을 리는 없을 테고.’
녀석이 다시 나타난다면, 분명 D팀에게서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 몸의 공연 차례이지 않은가.
지난번, 홀리오라방돌이 유예찬의 탁기를 막은 존재인 이 몸이 있기에.
호승심을 가진 녀석이라면 분명 D팀의 공연에서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어떻게 호승심이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굳이 또 드러머인 김은영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는가.’
이전에도 드러머를 노렸지만 실패했고.
이번에도 드러머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마치, ‘어디 막을 테면 막아 봐라!’라며 도발하는 듯한 느낌.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이번에 녀석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톡탁탁탁톡탁탂탁 타타타타타타타타!!!
최선을 다해 목탁 솔로를 하고 있는 능선.
그가 가장 유력했다.
가장 신성력이 강했고(그래 봤자 이 몸에게는 허접스러운 수준에 불과하지만), 연주자에게 접근하다 실패했으니 보컬에게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능선의 몸 안으로 묘한 기운이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데스맨 씨! 제가 가서 치유를……!
도미니온의 다급한 속삭임이 귓전을 강타했다.
나는 일부러 망토를 촤락 펼치며 오른손을 들고 도미니온에게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째서……!
그렇다.
도미니온의 말처럼, 여기서 공연을 중단하고 탁기를 뽑아낼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 되면 D팀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에도 공연을 중단하면 탈락이겠지.’
아무리 부득이한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가스 사고라고 꾸며낸 사건이 한 번 있었던 라이징 밴드였다.
그런데 참가자의 컨디션에서 또 문제가 생겨서 공연을 중단한다?
당연히 프로그램을 향한 시선 또한 부정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저 탁기를 내가 컨트롤 해야 한다.
나는 마이크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뽑아내고는.
휘익-!
채챙, 챙그랑!!!
“뭐, 뭐야!!??”
“스탠드를 집어 던졌어……!?”
기존에 사용하던 마이크 스탠드를 던져 버리고.
스릉.
마치 검을 꺼내듯이 주머니에서 바엘으로부터 선물 받은 검정색 마이크 스탠드.
‘청아한 음색의 마(魔)이크 스탠드’를 손에 들었다.
쿠웅!!!!
[깔아라.]
지금 능선의 몸에서 피어나는 탁기를 몰아내려면.
어설프게 외부에서 간섭하는 걸로는 깔끔하게 뽑아낼 수 없다.
필요한 건, 능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선이 샤우팅을 외치거나, 고음 발사로 고주파를 형성하던가 해야 하는데.
‘그건 힘들겠군.’
지금도 저렇게나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이것뿐이었다.
찰싹!!!!
탁기가 피어오르는 몸.
그 몸 안쪽으로 기운을 불어넣어.
탁기의 오염을 억제하고, 최종적으로 탁기를 몰아낸다.
찰싹!! 찰싹!!
그러기 위해서는 능선의 정신력을 지배하는 기관.
바로 뇌와 가장 직접적으로 닿을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나는.
찰싹!! 찰싹!!
능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밑에 깔아라]
찰싹!!!!
[위에도 깔아라]
찰싹!!!!
[때가 되었다]
찰싹!!!!
[당장 깔아라]
찰싹!!!!
그렇게 뇌에 전달함과 동시에, 머리를 때림으로 인해 생기는 청아한 소리가 하나의 악기처럼.
우웅-!
기타와 드럼 소리, 그리고 목탁 소리와 함께 공명하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찰싹 우웅! 찰싹 쟈아앙 두둔 찰싹 탁탁탁
묘하게 어울리는 민머리와 손바닥이 휘감기는 소리에 심사 위원들이 입을 쩍 벌리고는 움직이지를 못했고.
[으오오오오오오오!!!!!]
톡탁톡탁탁탁탁탁
능선의 외마디 외침이 울려 퍼지면서 탁기가 조금씩 능선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능선!’
‘예! 데스맨 씨!’
능선에게 전음을 보내자마자 나는 마이크를 들고 능선의 머리를 한 대 더 때렸다.
찰싹!!
[고기 깔아]
[위에 깔아]
[밑에 깔아]
[중간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고기 깔아]
찰싹!! 찰싹!!
점차 메탈 밴드의 소리가 형성이 되어 가면서 목탁 소리와 합쳐지더니.
우우웅!! 우우우웅!!!!!
마력이 담긴 손바닥 소리까지 하나로 만들어지면서.
[지금이 바로!!!!]
“!!!!!”
[네 안에 미트를 깔아 둘 때!!!!]
깨달음을 얻은 능선이 열심히 목탁을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는.
[무소유…… 무소유…… 무소유……?]
목탁을 바닥에 팽개치고는 양손을 모은 채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시발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스님의 입에서 거침없는 욕설이 튀어나왔고.
[무소유? 아니! 인생은 풀소유!!!!!]
불가의 멘트 따위 뒤집어 버리는 경악스러운 가사가 탄생했다.
기존에는 없었던 가사였지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탁기를 제어하기 위한 것들.
그 외침 덕분에 능선의 표정이 한결 더 나아졌다.
그걸 확인한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이어질 가사를 능선에게 내뱉었다. 능선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와 노래를 번갈아 가며 불렀다.
[밑에 깔아 위에 깔아]
[중간 깔아 전부 깔아]
[고기 먹어 고기 씹어]
[바잇 미트!! 바잇 미트!!]
[모조리 씹어 먹어 몽땅 씹어 삼켜]
[이제 전부 씹어 삼켜, 적수 따위 없지]
찰싹!! 찰싹!!!
[사실은 너도!!!!]
[솔직히 나도!!!!]
찰싹!! 찰싹!!
[고기가 먹고 싶어!!!!!!!]
나는 능선과 동시에 초고음 샤우팅을 날렸고.
찰싹! 찰싹! 찰싹!!!!
마지막 스퍼트로 능선의 민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탁기를 제어하도록 마력을 부여 넣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었다.
슈슉…….
능선의 머리가 시뻘개지다 못해 불타오를 듯이 붉어진 시점이 되었을 때.
푸슈욱…….
그 붉어진 민머리 위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공기 중에서 사라졌다.
그뿐이랴.
마지막 가사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즉흥적인 연출에 목탁 연주, 거기에 가사까지 모두 끝마칠 수 있었다.
즉, 이번 D팀의 공연은.
“훌륭히 해냈도다.”
마이크 너머로 한쪽 입꼬리를 사악 끌어올린 채로 능선을 향해 말했다.
“허억…… 허억……!”
능선이 숨을 몰아쉬며 싱긋 웃었다.
“예. 데스맨 씨 덕분입니다.”
“훗. 마음껏 감사해하거라.”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심사 위원들 모두가 충격적인 퍼포먼스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충격과 경악 그 자체!
스님들과 함께하면서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것도 모자라 스님의 대머리를 타악기처럼 연주한 데다가.
마지막에는 뭐?
무소유 따위 내던지고 풀소유?
이게 대체 무슨 노래란 말인가!
“처음의 내 감동 돌려줘!”
분명 초반부에는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또 다른 친구. 그 둘의 이야기처럼 진행되었는데.
마지막에는 고기가 먹고 싶어!!! 라니.
“우…… 와…….”
“이게 대체 무슨…….”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공연을 마치고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열반 밴드, 그리고 여전히 매끈한 얼굴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와……. 진짜 멋진 무대였습니다! 멋지기도 했지만, 저로서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연출과 가사였습니다!”
심사 위원들이 다들 놀란 채로 눈만 꿈뻑거리고 있자, 한석주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래도 우리 심사 위원분들도 다들 충격에 빠진 모양인데요, 어떻습니까! 윤상하 프로듀서!”
“어, 음, 네? 커흠, 허어…….”
윤상하가 정말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건……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퍼포먼스…… 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윤상하는 감동했다.
노래의 가사도 가사지만.
그걸 전달하는 힘이 매우 뛰어났다.
대머리를 타악기처럼 사용하는 것도 신선했다.
“이런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역시 RRR의 단탈리온 데스맨 씨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윤상하는 그래서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스님들을 대상으로 고기를 먹자고 권하는 노래를 선곡한 것. 여기에 대머리 타악기…… 라고 해야 하나요 이걸?”
“선배, 그거 그대로 말씀하시면 편집될 거예요.”
“커흠! 그럼 그…… 뭐냐, 그…….”
“대머리 퍼포먼스?”
“한석주 씨도 편집이군요.”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머리 악기라고 할까요?”
한석주의 말에 윤상하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 신체 타악기를 활용하신 것도 대단했습니다. 은근히 목탁 소리와 잘 어울리더군요.”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로, 단탈리온이 연주한 능선의 머리 악기 연주는 꽤나 훌륭히 다른 연주와 어우러졌다.
특히 목탁.
“목탁 소리가 탁, 톡, 탁, 이러는데 그 소리와 찰싹 찰싹이 겹치니까 찰톡싹! 이런 식으로 어우러지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찰톡싹’이!”
하현주가 깔깔 웃으며 윤상하를 나무랐다.
윤상하도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그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며 말했다.
“아무튼! 그것도 파격적이면서도 잘 어울려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퍼포먼스를 아무 거리낌 없이 허용했던 스님들의 포용력!”
이건 스님들의 허락이 없었다면 절대 성사될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고.
윤상하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게다가 이걸 해내는 단탈리온 데스맨 씨의 담력!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가사에서는 고기를 미친 듯이 때려 박으라는 강렬한 가사를 넣어서 목탁메탈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그렇게 한참이나 이번 D팀의 공연을 칭찬하던 윤상하가 조금 걱정된다며 한석주를 바라봤다.
“근데 이 공연, 방송 나갈 수는 있나요?”
문득 수위 걱정이 되는 윤상하였다.
* * *
무대 안쪽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관객은 스텝진들과 심사 위원들뿐이었지만, 방금 전 공연은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터벅, 터벅.
그렇게 떠들썩한 무대를 뒤로 하고 복도를 걸어가는 남성이 있었다.
‘재미있네.’
그러나 그 남성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거기, 잠시만요.”
긴 머리에 금발로 물들어 있는 머리카락이 귀족과도 같이 흩날리고 있는 여성.
“아, 도미니온 씨?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 다음 차례에…….”
“너, 뭐야?”
도미니온의 질문을 받은 남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