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79화 (79/110)

79화. 걸렸어

좋았어.

성공이다.

이걸로 이 몸의 공연을 방해하는 요소를 적절히 제거했다.

남은 건, 그 기운의 발신지를 찾아 범인을 잡아다 족치는 것인데.

“진짜 대단했습니다, 데스맨 씨!!!!”

저 인간놈들의 심사가 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단 말이냐.

“스님들에게 파격적인 노래를 만든 것도 모자라 미친 연출까지! 솔직히 초반에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전 음악의 완성도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곡은 록 발라드 아니었나요? 이번에 목탁 메탈릭으로 바꾸면서 목탁 소리가 이렇게 메탈릭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거든요.”

“크흠, 저는 가사에 한 표 주고 싶군요. 사실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해 보면 놓칠 수도 있는 부분들을 정확히 짚어 냈어요. 그걸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나게. 또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다가가 준 점이 꽤나 큰 장점으로 보입니다.”

장도민, 하현주, 윤상하가 신이 나서는 D팀의 노래에 대해 평가를 했다. 마지막으로 유열희가 마이크를 잡고 입을 떼는 순간.

“……적당히 하거라.”

“저는 보컬의…… 네?”

“적당히 하라 하였다.”

나는 도저히 이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지금은 그런 노래 평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거늘.”

지금이라도 무대 뒤편으로 달려가야 한다.

저곳에서 미약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그러니 당장 달려가서 이 몸의 계획을 방해하는 썩을 년놈을 잡아다 고문을 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라.”

그렇다.

지금은 이놈들을 멘떼 크몽떼로 조종해 버리고라도 방해꾼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니 잠들 거라. 멘떼…….”

“데스맨 씨는 저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목탁을 만지고 있던 능선이 입을 열었다.

“네?”

“능선 스님을 위해……?”

당연히 심사 위원들도 얼빠진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마왕의 도리로서 그런 멍청한 얼굴을 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짐짓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게 능선에게 말했다.

“쯧.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아닙니다. 말할 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선이 목탁을 내려놓고 심사 위원들을 바라봤다.

“사실 이 노래는 저를 위해 편곡되었습니다.”

* * *

그리고 그때부터, 능선이 ‘삼겹살에 추모 한 잔(목탁 메탈릭 ver.)’의 창작 과정을 이야기했다.

“모든 일은 데스맨 씨의 사려 깊은 마음씨 덕분…….”

능선의 과거.

그가 출가한 이유.

그리고 그 후로 이어진 트라우마.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능선을 구해 주기 위한 단탈리온 데스맨의 활약.

“허어…….”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심사 위원들은 물론, 스텝진들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능선 스님께 그런 아픔이…….”

“훌쩍……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잠시만요. 그럼 방금 노래 가사에 나왔던 그건……!”

심사 위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능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합장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이럴 수가…….”

“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스님이 갖고 계신 가족들과의 추억. 그걸 밑에도 깔고, 중간에도 깔고, 위에도 깔아라…….”

“추억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니, 더는 아파하지 말고 가족들을 추억하며 고기를 먹으라는 뜻이군요……!”

“이런 깊은 뜻을 노래에 담다니…….”

사실 심사 위원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이 노래가 단순히 능선을 모욕하기 위해 대머리 연주를 하고, 고기를 권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단순히 놀리기 위한 용도였다면, 능선을 비롯한 열반 밴드 스님들이 반대할 게 뻔하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노래 가사를 원하고 있었다는 듯. 이런 연출과 연주를 바라고 있었다는 듯.

최선을 다해서, 땀을 흘리고 때로는 눈물을 삼키며 공연에 임했다.

그래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단순한 편곡이 아니었군요, 역시.”

윤상하의 말에 심사 위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D팀.”

“감사합니다.”

능선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머리 연주도 그럼 미리 계획이 되어 있으셨던 거군요?”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사실 그건, 즉흥적으로 자신의 몸에 들어온 불순한 기운을 제거하느라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능선은 그 기운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목탁 소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제가 제안했던 겁니다.”

“열려 있으시다…….”

“멋지네요, 스님!”

심사 위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능선의 희생정신이 빛을 발한 퍼포먼스였다는 칭찬을 포함한 박수였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윤상하가 마지막으로 궁금하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단탈리온 데스맨 씨가 이 모든 편곡을 주도했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능선의 대답을 들은 윤상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단탈리온 데스맨…… 씨?”

윤상하가 무대 주변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무대 좌측, 우측, 정면, 그리고 심사 위원들의 뒤쪽 관객석, 커튼 너머에도.

“……어디가셨어요?”

단탈리온 데스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한심하군.’

결국 능선이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손바닥에서 끌어올린 마력으로 무대 전체에 멘떼 크몽떼를 휘감아두고는 몰래 자리를 빠져나왔다.

마력 조절을 위해 그들의 정신을 조작하는 시간은 매우 찰나로 설정을 해 두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들에게는 약 10분여간, 내가 자리에 있었다는 착각이 들 것이고.

나는 그사이에 목표한 곳으로 이동하면 되는 일이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구나.”

복도 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썩은 냄새.

누가 맡아도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렇게 급박한 순간임에도 왜 뛰지 않느냐고?

뛰었다가 함정에라도 걸리면 어떡할 텐가.

신성력을 악마들 못지않게 사용하는 지저분한 천계의 사자라면.

‘중간중간 신성력 함정을 설치해 두었을 터.’

그걸 파악하기 전까지는 방심할 수 없는 법이다.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우웅-

쒜엑!!

살짝 열려 있던 대기실 문 쪽에서 날카로운 신성력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저 달려가고만 있었다면 화살이 내 어깨에 박혔겠지만.

“애들 장난 수준이로구나.”

이미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날아오는 화살을 몸을 살짝 꺾으며 회피했다.

“흠.”

그리고 화살이 튀어나온 대기실 문에 혓바닥을 가져다 댔다.

할짝-

“이런 맛이로군.”

그 마력이, 신성력이 어떤 맛인지를 확인하자마자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변에 또 다른 함정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감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자 방금 지나간 신성력 화살과 비슷한 기운이 복도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었다.

“화살일지, 그물일지. 혹은 가시덩굴일지는 모르겠다만.”

굳이 이렇게까지 힘을 쏟는다는 건.

마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함정 설치자의 의도이기도 하다.

“감히 이 몸의 앞을 이런 X만 한 장치로 방해하려 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기왕 할 거면 그래.

적어도 복도 전체를 신성력으로 뒤덮던가.

아니면 직접 달려 나올 수 있는 더미라도 쓰던가.

그런 적극성을 보이지도 않는 이런 허접한 함정 따위.

“이 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잔여 마력량도 상당히 많아진 나였다.

이 정도 함정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나는 복도에 설치된 함정들을 파악하고, 함정이 발동되기 전에 모조리 다 파괴했다.

술식을 파괴하기도 하고.

화살이 설치된 석궁을 부수기도 하고.

덩굴을 미리 불태워 버리기도 하면서.

“이 너머에 어떤 놈이 있을지, 참으로 기대가 되는구나.”

악마처럼, 아니 마계의 내 본체처럼 양쪽 입꼬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 * *

“너, 뭐야?”

도미니온은 앞에 서 있는 남성을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사람.

이 남자가 범인일까?

의심스러운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스텝진이라기에는 다소 어설픈 저 표정.

라이징 밴드의 스텝들은 모두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이 남자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 데다가 건강한 신체를 갖추고 있음을 뽐내고도 있었다.

그뿐인가.

다른 스텝진들과는 다른 색상의 모자를 쓰고 있었고, 모두가 참가자들 대기실을 돌면서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있거나.

무대 위의 D팀 공연을 감상하면서 다음 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초면인데 반말부터 하시네요?”

남성은 도미니온은 바라보며 살짝 비웃음을 날렸다.

“명색이 천사 밴드 멤버가 그래도 되나?”

“……상대에 따라서는 반말로 상대하기도 해.”

도미니온이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게다가 그게, 스텝진으로 위장해 있는 더러운 존재라면 더더욱 말이지.”

“더러운 존재……?”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지금 알 수 있겟지.”

그렇게 도미니온이 남성에게로 다가가려는 순간.

파앗!

남성의 몸이 한껏 부풀어 오르더니, 작은 빛과 함께 모습이 변모했다.

금색 머리카락이 목 아래까지 내려오는 남성. 모자 뒤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남성의 외모를 한결 더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키도 한층 더 커져서 훤칠한 미남형으로 변해, 빛나는 외모의 남성으로 변했다.

“후…….”

작게 한숨을 내쉰 남성이 목을 투둑, 꺾더니 도미니온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오래간만이에요, 도미니온 선배.”

“너……. 프린시펄리티?”

얼굴도 익숙하고.

무엇보다도 기운이 딱 그 녀석이었다.

하품천사 중 하나, 권품천사 프린시펄리티.

도미니온보다 조금 더 어리고 경험이 적었기에, 도미니온을 선배라 부르는 천사였다.

“여긴 어떻게……!? 잠깐만!”

도미니온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지금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도미니온이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죄송해요, 메타트론 님이 명령을 내리셔서…….”

“메타트론 님이?”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고서 프린시펄리티를 내려보냈다고?

“대체…… 왜?”

“글쎄요. 마기가 느껴지니까 악마를 잡으려고 그러시는 거겠죠?”

악마라.

탁기를 이끌어 내는 존재가 악마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 프린시펄리티를 향한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악마 중에서는 둔갑술에 유능한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혹시나 이 녀석이 프린시펄리티로 변모한 녀석이라면.

“아,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프린시펄리티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도미니온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하품천사의 권품천사. 프린시펄리티가 주천사 도미니온 님께 예를 올립니다.”

그것은, 천계에서만 행하고 있는 천계의 인사법.

악마들이 알고 있는 인사와는 다른.

선배 천사를 향한 권능을 존중하는 후배들의 경례였다.

그래서 도미니온은 한 줄기 남아 있던 의심의 끈을 내려놓은 채 말했다.

“그래, 고생이 많다 프린시펄리티.”

“감사합니다.”

“그래서, 메타트론 님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도미니온 님이 공연하고 계실 때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감시하고,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 거였나.

도미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느꼈겠다. 방금 전에 있었던 그 탁기…….”

“네. 저도 느꼈습니다.”

프린시펄리티가 심각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 일이 반복되면 도미니온 선배의 공연에도 차질이 생길 거고요.”

“응…….”

사실 떨어져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 정도로 단탈리온 데스맨과 친분을 유지한다면, 라이징 밴드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자기 위주의 생각.

평범한 인간이라면 몰라도, 주천사인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라이징 밴드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단탈리온 데스맨과 RRR 밴드 멤버들을 응원한다.

그게 지금 도미니온이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선배.”

프린시펄리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탈리온 데스맨, 어떤 것 같나요?”

“데스맨 씨?”

“네. 지금 메타트론 님은 데스맨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계십니다.”

그 말에 도미니온의 신성력이 순식간에 치솟더니 폭발하기 일보 직전까지 타올랐다.

“우왓! 선배, 제가 아니라 메타트론 님! 메타트론 님이 그러셨다고요!”

“당장 따지러 가겠어!”

“지금 가셔 봤자 소용없어요! 메타트론 님 강경하신 거 모르세요?”

“시끄러워! 내가 그 망할 상관 멱살을 잡아서……!”

금발의 여성과 금발의 남성이 옥신각신하며 방송국 복도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증거도 없이 어떡하시려고요! 지금은 그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적어도 증거를 잡고…….”

“증거는 개뿔! 옜다! 내 눈깔이 증거…….”

열을 올리던 도미니온의 숨이 잠시 멈칫한 건.

눈깔이 증거다! 라고 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괴 됐어.”

“네?”

립스틱을 붉게 칠한 도미니온의 입술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내가 설치한 함정이…… 파괴됐어.”

대체 누가?

아니, 설마.

“……악마?”

“악마?”

프린시펄리티의 질문에, 도미니온은 그저 오른손을 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신성력을 몸 바깥으로 발산했다.

“이건……!”

도미니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잡았다.”

“네?”

무슨 일인지 몰라 눈을 꿈뻑이는 프린시펄리티를 향해.

도미니온이 걸음을 옮겼다.

“방금 하나, 걸렸어……!”

수많은 함정 중에서 겨우 하나만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잡아내기는 했다……!

“가자.”

“아, 선배 같이 가요!”

범인을 잡아냈다는 확신에 도미니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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