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계획이 있다
‘부끄러워……!’
빠르게 발을 옮기면서, 나는 끝없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멍청해, 부끄러워, 한심해, 쓸모없어, 무식하고 바보 같아!’
왜, 왜 범인을 그저 악마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서부터 패착이었다.
-저곳에서 날뛰고 있는 타천사를 잡는 것이다.
방금 단탈리온 데스맨의 말을 들은 도미니온은 악마에게 뒤통수를 후드려 맞는 기분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인간들의 속담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래 놓고 주천사라고 할 수 있는 거냐 도미니온!!!!’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반성하면서, 나는 평소보다도 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화아악!!!
“뭐지?”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컨디션 좋은데?”
신성력이 담긴 마력을 받은 인간들이 버프 마법이라도 받은 것처럼 즐거워했지만.
나는 조금도 즐겁지 않은 얼굴로 라이징 밴드 무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선배! 같이 가요!”
뒤에서 프린시펄리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나에게 프린시펄리티를 기다려 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당연했다.
‘느껴진다……!’
저곳에서.
타락한 신성력이 느껴진다.
탁기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한 마력.
하지만, 코끝을 찌르고 들어오는 기운은.
“…… 큭!”
악취가 생기려다 만, 음식물 쓰레기 같은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코를 부여잡고 라이징 밴드 무대의 커튼을 촤락 펼쳤다.
하지만.
“……없어.”
방금 전까지 있었던 냄새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어라? 도미니온 씨… 맞죠?”
MC 한석주가 커튼을 젖히고는 물었다.
신성력을 방출하면서 모습이 다소 변했기에 한석주도 조금은 긴가민가 하는 모습이었다.
“네 저 맞아요.”
“뭔가 분위기가 바뀌신 듯한… 아무튼, 지금은 마지막 팀 공연 끝나고 심사 중이니까 대기하세요.”
“……혹시 이상한 거 못 보셨어요?”
혹시나 해서 그에게 이상한 점이 없는지 물었지만.
“이상한 거……?”
한석주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릴게요.”
“하하하! 네, 편하게 쉬고 계세요!”
편하게 쉴 수가 없습니다, 한석주 아나운서 님.
그야 지금, 저는.
‘중급 천사이면서 이걸 놓칠 수 있는 거냐, 도미니온!’
벌써 탁기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놓쳤으니까요!’
분한 마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복도의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앙-!
콰앙-!
“나는…… 쓸모없는 천사……!”
“선배, 선배……! 그만 하세요. 선배……!”
“이거…… 놔! 나 같은 천사는 나가 뒈져야……!”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
뚜벅.
“천사라면 더더욱 지금을 좌시해서는 아니 되느니.”
단탈리온 데스맨이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우아한 걸음걸이를 하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한 번 놓쳤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지어다.”
“한 번이 아닙니다……! 한 번이 아니란 말입니다…….”
“도미니온.”
“저는, 저는 천사이면서…… 벌써 두 번을……!”
쿠웅!
단탈리온이 마이크 스탠드를 세우고는 바닥에 세게 내리꽂았다.
그러자 마이크 스탠드가 바닥을 뚫고 들어가 꼿꼿하게 세워졌다.
그 기세에.
나는 물론이고.
프린시펄리티도 침을 꼴딱 삼켰다.
“도미니온.”
“……네.”
“그대는 천사다. 그렇지 않은가.”
역시.
이 남자는 내 정체를 알고 있었구나.
“허나, 그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미 천사라고 말해 놓고는 무슨 말일까.
“이 몸에게 중요한 건, 오직 그대가 라이징 밴드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
“……!!”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탈리온은 마이크 스탠드에 양손을 거만하게 올리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각종 근심과 걱정이 담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안심시켜 주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담고 있었다.
“앞으로도 라이징 밴드를 지키거라.”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단탈리온 데스맨은 마이크 스탠드를 뽑아내고는 몸을 홱 돌려 망토를 몸에 둘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라이징 밴드의 수호천사여.”
“!!!!!!!”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내 마음이.
“……저라도, 괜찮으신가요?”
“그에 대한 답은 굳이 이 몸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다시 기둥을 쌓아 올려갔고.
“제가…… 지켜 낼 수 있을까요?”
“그 역시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허나.”
듬직한 그의 등을 바라보면서.
그 기둥은 더 견고하게 다져졌다.
“지금보다는 정신을 차린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단탈리온 데스맨과 같이 밴드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다.
처음에는 원해서 참가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RRR 밴드는 물론이고, 저 앞을 걸어가는 단탈리온 데스맨과도.
생각지 못한 인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아니, 그런 나였기에.
“……고마워요, 단탈리온 데스맨 씨.”
“……훗.”
단탈리온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없으면 라이징 밴드를 지킬 수 없다.
그에게 나는, 용사가 동료를 모으는 것처럼.
이미 그의 소중하고 믿음직한 동료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 기대에 보답해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풀 죽어 있을 수만은 없죠.”
“선배……?”
프린시펄리티가 이상하다는 눈을 하고는 나를 바라봤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용사의 후계자가 지정한 동료. 백마법사로서 활약해야 하니까요.”
“……백마법사?”
그래.
이건 나의 새로운 모험.
그 모험은 라이징 밴드를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은, 단탈리온 데스맨과 라이징 밴드를 우승하기 위한 길.
그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이라고.
나는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당신과 결승까지 가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라이징 밴드를 위협하는 적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겠습니다.
슈우우-
흥분한 신성력을 갈무리했다.
작은 몸집에 적당한 길이의 머리카락. 각력 강화도 해제하고 평범한 여성을 연기하기 위한 카모플라쥬로 다시금 변모했다.
그리고 단탈리온 데스맨이 걸어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 주천사 도미니온,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바람이 이미 자신의 대기실로 걸어간 그에게 닿았기를 바라며.
나는 라이징 밴드 본선 3라운드, 최종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칠죄종의 접근.
거기에 가고일이 이야기한 천사의 존재.
금발의 남성이라는 조건에 프린시펄리티 역시 부합했지만.
나는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하느니.’
그것은, 마계에서 보내는 통신으로부터도 느낄 수 있었다.
[다, 단탈리온 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더냐.’
[지금 단탈리온 님 곁에 신성력의 크기가 상당한 존재가 있는데……!]
그렇다.
이 남자는.
내가 지금껏 봐 왔던 신성력 보유자인 도미니온과 비견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꽤나 커다란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존재였다.
‘천사인가?’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마계에 곧장 분석을 지시했다.
‘분석하거라.’
[예! 마계 코인을 지불하고 신성력을 분석합니다! 분석 단계 1. 신성력의 종류를 하품 천사로 판단. 단계 2. 농도는……. 이럴 수가…….]
시틀라가 깊게 탄식하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농도는……. 신성력 탐지기 기준치의 열다섯 배…….]
[여, 열다섯!?]
에키드나도 한껏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 놀라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열다섯 배?
현재 마계에 있는 신성력 탐지기의 기준치는 마성전쟁 때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시틀라가 하는 말은.
‘마성전쟁 때 기준으로 열다섯 배나 증가한 신성력 농도를 갖추고 있다는 건가.’
중급 천사도 아니다.
고작 하품 천사다.
그런데 열다섯 배라니.
‘스무 배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계와 천계의 마력은 스무 배가량 차이가 났었으니까.
그나마 그 차이를 좁힌 결과가 지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석 단계 3. 현재 현계 상태……. 역시나, 순수 천사의 모습 그대로의 강림입니다.]
역시.
천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강림할 수 있나 보군.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정면 충돌을 피해야겠구나.’
[예. 지금 상황에서 천사와 싸운다는 건, 마력 소모가 너무나 막대합니다.]
하품 천사 하나쯤.
지금의 마력이라면 상대를 못 할 것도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여파로 방송국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라이징 밴드에서 그 개고생을 했는데, 아무런 소득도 남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에키드나! 너도 아이디어 좀 내 봐!]
[나도 생각 중이야! 단탈리온 님! 조금만 더 버텨 주시면 저희가 좋은 전략을……!]
‘아니, 이 몸에게 다 생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마성전쟁 때도, 근육 바보들처럼 싸우기만 한 마왕이 아니었다.
모든 전쟁에는 지략이 기본일지니.
따라서 나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가끔 욱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냉정, 침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로바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대 뒤쪽으로 탁기공을 던지거라.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오로바스는 71위 마계에서 보낸 탁구공만 한 작은 탁기공을 전달받고, 그걸 그대로 라이징 밴드 무대 뒤쪽에 던졌다.
마계에 있는 탁기공은 그것보다는 더 컸지만 지금은 그중 일부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목적은 탁기공에서 방출되는 탁기.
그리고 그 안에 미약하게나마 담긴 신성력이었다.
신성력을 어떻게 담았느냐고?
‘위민 더러빙 멘뜨몽 디엔유.’
과거, 이 몸의 친우와 함께 만들어 낸 주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주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내 부하들도 궁금해하지만, 지금은 그걸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오로바스가 던진 탁기공이 폭발하면서 탁기와 신성력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고.
“악마와 손을 잡은 천사가 있다.”
타천사가 있다는 허세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여기서 타천사가 있다는 건 허세가 아니기는 하다.
가고일이 이 몸의 고기 방패가 되어 주기 전에 이야기했었으니까.
본인과 같이 일을 꾸민 천사가 있었다고.
그렇다면 그 천사는 악마와 붙은 천사가 될 거고.
그 녀석은 타천사가 되어 악마의 편으로 돌아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되면 동족으로서 대우를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쨌든, 타천사라는 미끼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도미니온과 프린시펄리티 둘 모두 그쪽을 향해 달려갔으니까.
그리고 그 둘이 사라진 직후.
[다, 단탈리온 님.]
“고하거라.”
[방금…… 막대한 신성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직 신성력 탐지기의 전원을 켜두었던 시틀라가 마른침을 꼴딱 삼키며 말했다.
[…… 분석 단계 1. 신성력의 종류, 중급 천사. 단계 2. 신성력 탐지기 기준치의 17배…….]
“17배라….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 그 자체인가.”
방금 전, 각력 강화 마법을 거는 순간, 신성력이 폭발하면서 탐지기에 걸렸다.
게다가 모습도 변화했다.
역시, 지금까지는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주천사의 본모습인가.’
예상대로.
녀석은 주천사의 제자라던가 힘을 받은 추종자라던가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도미니온이 강림한 상태라고 판명되었다.
71위 마계의 간부들이 모두 침묵했다.
겁을 먹고, 불안해할 법도 하다.
갑자기 나타난 두 천사.
그 둘이 각각 중급 천사와 하품 천사다.
이전까지는 모습을 변화시키기도 했고, 마력을 숨기고 있었기도 했기에 설마 천사가 강림한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시틀라도 침을 꼴딱 삼키며 긴장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단탈리온 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아니.”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행이라면, 지금 도미니온은 이 몸과 어느 정도 유대가 쌓여 있다는 점.
“이 몸에게 계획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한창 자기 비하를 일삼고 있을 도미니온에게 다가갔다.
타천사의 존재를 알아 차라지 못하고 헛방만 치고 있었던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며 세상 모든 비하는 다 하고 있을 그녀에게,
“라이징 밴드의 수호천사여.”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걸 들은 천사는 당연하게도.
“……저라도, 괜찮으신가요?”
자신을 위로해 주는 나를 의지하게 되겠지.
여기에서 쐐기 한 방만 박아 주면.
“지금보다는 정신을 차린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적어도 중급 천사는, 당분간 이 몸을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품 천사는 예의주시해야겠지만, 선배가 이 몸을 신뢰하고 있으니 쉽사리 접근하기는 어렵겠지.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직후.
대기실에서 열반 밴드와 함께 본선 3라운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데스맨 씨! 제가 간식 갖고 왔는데, 같이 먹어요!”
너무나 나와 친밀하게 지내려고 다가오는 도미니온 때문에 고역을 겪게 되었다.
그런 도미니온 때문에 스탭진들의 오해를 사게 되었기는 하지만.
“……라이징 밴드가 아니라 러브 라이징 아니에요?”
“이건 뭐, 천사와 악마 커플에 드러머와 드러머의 러브스토리에…….”
“참나, 정말 이게 뭔 일인지.”
그래도 일단 중급 천사를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