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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83화 (83/110)

83화. 밥값!

어두운 먹구름이 성벽을 가득 감싸고 있는 세계.

71위 마계의 마왕성에 모인 군단장들과 단탈리온의 시종, 시틀라는 심각한 얼굴로 원형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

“…….”

“…….”

그러나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기 바쁠 뿐.

잠깐 시틀라가 고개를 들어 눈빛을 보내자, 군단장들 모두가 천천히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만 했다.

콰앙!!!!!

“다들 왜 침묵하기만 하는 건가!!”

결국, 참다못한 시틀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네들도 모두 감지하지 않았나! 단탈리온 님께 붙어 있던 썩을 천사년놈들의 형태를 말이다!”

그렇다.

지금 71위 마계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라이징 밴드 본선 3라운드.

그곳에서 단탈리온이 마주한 두 천사.

도미니온과 프린시펄리티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 더러운 신성력을 정면으로 맞으시는 단탈리온 님이 얼마나 괴로워하실지, 상상이나 해 보았냔 말이다!”

시틀라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테이블을 바라보며 이빨을 뿌득 갈았다.

“주군이 그리도 힘들어하시거늘, 나는 겨우 이 안전한 마계에서 몸이나 숨기고 있다니……!”

시틀라의 침통한 목소리가 원형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메아리가 치듯 공간 안쪽을 휘감은 시틀라의 신음 소리가 군단장들의 귀에 들어가 못처럼 박히기를 잠시.

“……우리도 대비해야 해.”

11군단장 에키드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비?”

“어떤 대비를 한단 말인가.”

에키드나의 말에 다른 군단장들이 질문을 던졌다.

“뭐긴 뭐야? 천사들을 막을 대비를 해야지.”

“그게 그리 쉽지 않거늘…….”

만티코어가 침음했다. 그러자 다른 군단장들도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때 신성력 탐지기를 통해 분석한 프린시펄리티의 마력은.

적어도 인간계에서는, 열다섯 배나 높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프린시펄리티가 마계에 온다면, 그 정도 격차여도 싸울 수는 있다.

악마들의 마력에 변화가 없으니까.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인간계로 내려간다면?

열다섯 배의 격차는 악마의 마력도 갉아먹게 되고, 그로 인해 실상은 열다섯 배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쉽사리 군단장들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적은 프린시펄리티뿐이 아니었다.

“주천사 도미니온…….”

“그 녀석은 17배를 넘어가던데, 큰일이군.”

중급 천사였기에 하품 천사보다는 높은 격을 갖추고 있는 도미니온.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단탈리온과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단탈리온 님의 기지 덕분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어.”

단탈리온의 작전 덕분에.

도미니온은 단탈리온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프린시펄리티는 아니었다.

그 녀석은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녀석도 아니었고, 단탈리온과 접점이 있는 녀석도 아니었다.

사실상 갑자기 툭 튀어나온 녀석이었기에.

“가장 불안한 존재이기도 해.”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필요하지 않겠어?”

에키드나가 결심을 마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채찍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 가?”

“마법진을 연구하러 갈 거야.”

시틀라의 질문을 받은 에키드나가 우뚝 멈춰서서는 말했다.

“인간계에 강림할 수 있는 마법진.”

“뭣……!?”

“안 된다 에키드나! 아직은 코스트가 너무 많이 들어!”

다른 군단장들이 에키드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계 코인이 조금씩 갚아지고는 있었지만, 여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군단장 정도로 격이 높은 악마가 인간계에 내려가려면, 그만큼 마력도 많이 든다.

단탈리온이 ‘강림’이 아니라 ‘빙의’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에키드나는 ‘강림’을 위한 마법진을 연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코스트를 줄일 수 있는 마법진을 연구하겠다는 거야.”

“코스트를 줄일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만티코어가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에키드나에게 물었다.

“에키드나! 가능한 방법이냔 말이다!”

“나도 몰라! 해 봐야 알지!”

“그러다 마계 코인 낭비만 하면?”

“그래도 해 봐야지!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손가락 빨고만 있을 거야?”

그 말에 군단장들이 모두 침묵했다.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는 악마는.

시틀라를 제외하고는 에키드나가 유일했으니까.

“도와줄 거 아니면 다들 입 닥치고들 있어. 나중에 달라붙지나 말고.”

에키드나의 서늘한 눈빛에.

군단장들 모두가 피부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흥.”

그렇게 떠나가려는 에키드나였지만.

“잠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쿠웅-!

“나도 같이 가지.”

“……!”

에키드나의 앞에 몸을 똑바로 세우고.

성난 얼굴로 콧김을 푸흥, 쏟아 내며.

미네랄보다 단단한 두 뿔을 가진 악마.

“강림 마법진이라면 우리 마계에서 나보다 조예가 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에키드나?”

“……진작 나오지 그랬어, 아스테리오스.”

4군단장 아스테리오스가 두 팔을 뿌득 풀며 히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그때.

“자, 잠깐!!”

시틀라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에키드나와 아스테리오스를 붙잡았다.

“왜? 시틀라. 한시가 급하다고.”

“……단탈리온 님으로부터 통신이다.”

그 말에 모든 군단장이 어깨에 힘을 잔뜩 넣고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더러는 무기를 경례하듯이 바닥에 세우는 군단장도 있었다.

“예, 단탈리온 님. 예, 그런 방법을……? 아닙니다. 기한은 언제까지가 좋겠습니까. 네, 명을 받듭니다!”

시틀라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허공에 대고 예를 차렸다. 군단장들도 시틀라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위대하신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님의 명을 받들어 지금 이 자리에서 시틀라가 단탈리온 님의 대리로서 전달한다.”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11군단장 에키드나와 4군단장 아스테리오스는 지금부터 마법진 형성 연구에 들어간다!”

시틀라의 말에 에키드나가 깜짝 놀랐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예! 명을 받듭니다!”

‘역시 단탈리온 님도 알고 계셨어.’

‘천계의 위기에 대응하실 생각이셨군. 역시 주군이시다!’

“또한, 7군단장 만티코어는 시루베로스에게 명령을 내려, 열반 밴드를 찾아가라!”

단탈리온의 명을 받은 시틀라의 권력은 단탈리온과 동일.

그렇기에 지금 군단장들은 단탈리온으로부터 명을 인도받은 시틀라의 말에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예! 만티코어,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시루베로스의 인도에 따라 열반 밴드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 있다.”

시틀라가 단탈리온으로부터 전달 받은 작은 지도를 허공에 띄웠다.

초록 검색창에서 만든 지도 어플의 캡쳐본이었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군단장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곳이 표적인가.”

“목적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 주셨군!”

융단 폭격이 아니라 정밀 사격을 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지금 단탈리온 님은 정확한 목표 지점을 포착하여, 알려 주신 것.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것이다!”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단탈리온의 명령을 모두 전달한 시틀라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왕의 권능이 없음에도 기진맥진하다.

‘대체 단탈리온 님의 정신력은 어느 정도이실지…….’

가늠할 수 없는 마왕의 힘.

그리고 무게.

그걸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체감해 가고 있는 시틀라였다.

* * *

고요하게 먼지바람이 불고 있는 사무실 내부.

단탈리온을 비롯한 RRR멤버들이 포즈를 취하며 CK브라더밴드의 마케팅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위 아 더 베스트 데블스 오브 락앤롤.”

““쓰리! 알!!!!! 예아!!!!!””

멤버들이 구호를 외치며 CK브라더밴드의 직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스으윽.

“히익!”

그러나 지금의 분장은 말 그대로 마물 분장.

오로바스와 제인은 상급 마족이라고는 하나, 앤디는 하급 마물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저, 저리, 저리 가세요!”

“깜짝이야!”

CK브라더밴드 사람들이 기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준비성이 부족한 필멸자들이로다.”

“……그냥 우리가 너무 쳐들어온 거 아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앤디를 향해 단탈리온이 쯧, 혀를 찼다.

“언제 어느 때든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법.”

“아니 전쟁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앤디를 뒤로 하고 단탈리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총책임자는 누구인가.”

“초, 총책임자?”

팀장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본부장?

직원들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기도 잠시.

직원들의 눈동자가 한 사람에게로 몰리기 시작했다.

“뭐, 뭔데? 왜 나한테 그래!?”

유찬조가 말을 더듬으며 일부러 단탈리온의 눈길을 외면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단탈리온이 아니었다.

“그대인가.”

스으윽.

유령이 걸어오기라도 하듯.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걸어오는 단탈리온을 보며.

유찬조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허업!”

“오늘 이 자리가 장난이었다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한다면.”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대의 신상에도 그리 좋은 일은 없을…….”

“스토오오오옵!!!!!!”

그때 고블린 분장을 한 초록색 괴물, 앤디가 뛰어들어 단탈리온을 말렸다.

“야! 미쳤어!? 광고주님이잖아! 어쩌려고!”

“쯧. 앤디여, 언제는 광고보다 라이징 밴드가 더 중요하다 하지 않았는가.”

“그건 여기 오기 전에 다 정리했잖아! 아무튼 손바닥 내려! 뺨 때리는 줄 안다고!”

단탈리온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 몸의 충신 덕분에 뺨을 지켰구나.”

“……진짜 때리려 했어!?”

입을 떡 벌리는 앤디의 앞을 제인이 막아서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쓰리알의 베이시스트 제인입니다. 저희 밴드와 광고를 찍고 싶다고 제안 주셨었죠?”

“네? 아, 네 그, 그렇습니다.”

드디어 평범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나!

그렇게 기대하는 유찬조였다.

“촬영 컨셉은 정해졌을까요?”

“아, 그거 말인데, 일부는 정해졌습니다만 구체적인 건 아직입니다.”

“일부 정해진 거라도 알려 주시겠어요? 저희가 거기 맞춰 볼게요.”

“그럴까요?”

어느새 유찬조는 제인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해 주고 있었다.

“우선 저희 CK브라더밴드 통신사의 장점인 언제 어디서든 잘 터진다는 컨셉을 살리려고 하거든요.”

“네, 네. 저도 CK통신사인데 진짜 잘 터져서 좋아요.”

“그게 이번에 더 망이 확대되면서 속도도 빨라지고, 아무튼 훨씬 잘 터진다는 걸 보여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상 말미에는 폭발하는 CG를 넣으려고 하고요.”

“흐음……. 그럼 저희가 준비할 게 좀 있을 거 같아요. 그치, 데스맨?”

제인이 활짝 웃으며 단탈리온을 돌아봤다. 여전히 앤디와 입씨름을 하고 있던 단탈리온은 제인의 말에 한쪽 입꼬리를 스륵 밀어 올렸다.

“폭발이라면 이 몸에게 일가견이 있도다.”

“역시 마왕님. 믿을게.”

“아니 잠깐 잠깐. 설마 진짜 폭파하려는 건 아니지? CG처리하는 거 맞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굳이 대보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그리고 여기서 그 속담 안 어울리거든!!”

“……칫.”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찬조는.

‘틀렸어, 괜히 섭외했어!’

RRR 밴드를 섭외한 사실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참, 그리고 곧 올 것이다.”

“섭외를……. 네?”

“수하의 밴드가 있다면 부르라 하지 않았는가.”

단탈리온의 입이 양쪽으로 길게 찢어졌다.

“장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 * *

타타탓

단탈리온 일행이 CK브라더밴드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있을 때.

RRR의 마스코트, 시루베로스는 단탈리온의 명을 받아 서울 북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왓! 뭐야!?”

“고, 고양이?”

“들개인가?”

시루베로스는 기본적으로 마물. 그렇기에 마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평범한 동물의 움직임 이상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시루베로스의 모습을 본 사람들 모두가 깜짝깜짝 놀랐지만.

지금 시루베로스에게는 그들을 하나하나 상대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

“꺄앙! 꺙!”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시루베로스가 건물 입구에서 맹렬하게 짖어 댔다.

“캬앙! 꺙!!! 꺄아앙!!!캬꺙!!”

끼이익

“허허, 길을 잃었습니까, 작은 불자시여.”

“꺄앙! 꺙!!”

시루베로스를 발견한 능선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시루베로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견공.”

“꺙꺙! 꺙!!”

(해석: 닥치고 따라와!)

시루베로스는 능선의 질문에 강아지 언어로 답을 한 후, 길선사의 바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얼마 가지 않아 능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를 따라오라는 것입니까.”

“끼양! 캬앙!”

(해석: 안 따라오냐 X신아!)

“음? 그러고 보니 그대는 데스맨 씨의…….”

“캬컁! 꺙꺙!!!”

(해석: 드디어 알아보는군!)

시루베로스가 의기양양한 듯 흥, 콧방귀를 뀌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마치 자신을 과시하기로도 하는 듯한 모습에 능선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었다.

“스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서 왔답니까?”

탄불과 허당도 강아지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시루베로스는 허당과 탄불을 향해서도 맹렬하게 짖더니 몸을 돌려 당당하고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라는 것 같군요.”

“따라가요?”

“강아지를?”

허당과 탄불이 고개를 갸웃하자 능선이 합장을 했다.

“데스맨 씨의, 쓰리알 분들의 강아지입니다. 필시 무언가 뜻이 있으실 겁니다.”

“데스맨 씨의……!?”

“허어…… 아미타불…….”

지금껏 도움을 받아 온 존재.

단탈리온 데스맨, 쓰리알의 강아지라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으실 겁니다.”

이번에는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굳센 결의를 마친 능선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한 발, 한 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네? 광고를요? 저희에게요?”

도미니온도 CK브라더밴드로부터 제의를 받았고.

“……천사가 광고로 돈을 벌 수는 없는 법이죠.”

꼬르륵

“…….”

도미니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밥값! 밥값만 버는 거면 괜찮겠죠!”

그렇게 CK브라더밴드의 사무실로.

RRR, 열반 밴드, 탑엔젤스가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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