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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84화 (84/110)

84화. 섞여 있었다

CK브라더밴드 마케팅팀의 총책임자 유찬조.

그는 지금까지 CK브라더밴드라는 브랜드를 설립하고, 이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겪어 보기도 했고, 그걸 해결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큰 어려움 없이.

아니,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상태였다.

“장소도 협소하구나.”

그러나 지금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문제들이 산적하고 있었다.

“탑엔젤스 도미니온…… 어라? 데스맨 씨?”

“도미니온 씨!?”

“어떻게 된 거에요? 앤디 씨도, 제인 씨도, 진태 씨도 계시네요.”

“탑엔젤스도 광고 제의 받으셨나요?”

그렇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원래 광고 제의는 한 곳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보내서 견적을 논의하고 최종 확정을 한 뒤에 진행된다.

즉, 적절한 절차가 있고 과정이 있는 법인데.

‘왜 쳐들어오고 지X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던 건, 당연히 광고 논의가 끝나고 나면 최대한 빠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뜻이지.

지금 당장 촬영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은 신인이지 않은가.

싼값에 신인 연예인들을 부려 먹으려는 심보가 주된 목적이기는 했으나.

신인 주제에 이런 싹퉁바가지 없는 언행을 보인다고?

‘진정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만!’

이슈가 되고 있는 신인 밴드.

돈이 궁한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누구나 오케이를 내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단가를 조금씩 낮춰서.

-수락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금 C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그쪽은 제안 단가의 70%로 말씀을 하셔서…….

-아 방금 B씨랑 통화했어요. 그쪽은 60%로 하시겠다고…….

이러면서 예산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유찬조가 갖고 있는 능력이었다.

그걸 인정받았기에 사업부로부터도 항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렇게 촬영을 하게 된 신인 중에서는 지금은 나름 이름을 날린 연예인이 된 경우도 몇몇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유찬조, 자신만의 ‘절차’를 따라 어떤 팀과 광고를 찍을지 결정하려고 했었다.

그렇다.

분명, 그렇게 해야만 했다.

“참으로 볼품없는 장소로군. 이제야 컨셉을 정하고 있는 것도 초짜들이나 하는 짓이로구나.”

그런데 이 눈앞의 남성.

단탈리온 데스맨은 아주 뻔뻔스럽게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문고리를 다 부숴 가며 들어와서는.

대체 왜 저런 건방진 얼굴로 마치 하등한 존재를 내려다보듯이 시선을 내리깔고 있지?

게다가 우리는 왜 저 인간의 말을 따라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거절하고 내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왜……?

“총책임자 유찬조여.”

“네, 네!”

나까지도 군기라도 잡힌 것처럼 힘차게 답변하고 있으니.

유찬조가 속으로 한숨을 깊게 쉬었다.

“곧 마지막 인원이 올 것이다.”

“네에…….”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돌려보낼까?

안 그러면 이거 일이 커지는데?

“저기…….”

“안녕하세요!”

그때 또 한 명의 여성이 촬영 스튜디오로 달려들어 왔다.

“……누구세요?”

“RRR 밴드의 팬클럽 회장, 박은환입니다! 오늘 광고 촬영 현장 브이로그 찍으려고 왔어요! 사전에 협조요청문 보내 드렸는데, 허가해 주셔서 왔습니다!”

뭐라고!?

누가 내 허락도 없이 감히……!

“음, 방금 협조요청문에 결재를 하던 직원이 있었다.”

“……진짜로?”

“너무 걱정 마세요. 오늘 이거 찍으면 공유해 드릴 겁니다!”

박은환이 신이 나서는 카메라를 세팅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공짜 영상 하나 더 가지시게 되는 거예요~”

“아……. 네에…….”

당신네들의 브이로그 따위 필요 없다고!

결국 광고는 우리 회사에서 주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열을 올리던 유찬조였다.

“총책임자 유찬조여. 촬영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단탈리온의 말에 유찬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 촬영!

지금 촬영 컨셉도 덜 정해졌는데 어떻게 찍냐고!

“죄송하지만 여러분, 오늘은 촬영이 아니라…….”

“촬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이는군.”

단탈리온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유찬조가 살짝 단탈리온의 기세에 몸을 움츠렸다가 이내 다시 허리를 세웠다.

“그, 그쵸! 이렇게 오는게 어딨습니까? 게다가 오자마자 다짜고짜 촬영이라뇨!”

“흐음. 좋다. 그럼 당일치기 촬영으로 만들면 되겠구나.”

당일치기 촬영?

광고를 찍으려면 스튜디오도 더 큰 곳으로 잡고, 메이크업부터 시작해서 준비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당일치기 촬영이라니?

“이런 식으로 경우 없게 하는게 어디있습니까? 제대로 절차를 잡고 해야…….”

“허가를 주지 않았더냐.”

단탈리온의 말에 유찬조의 눈동자가 살짝 떨려 왔다.

사실 비스무리한 뉘앙스로 말을 하긴 했던 것.

그렇게 오해를 하게끔 만들어야 신인 연예인들이 옳다구나 하면서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쳐들어온 적은 없었으니.

“그, 그게, 그…… 뭐냐, 정도라는 그런 게 있…….”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단탈리온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는 유찬조를 내려다봤다.

마치 상층민이 하층민, 아니, 벌레를 바라보듯한 눈빛으로.

“그대는 이몸에게 장난질을 하려 하였단 말인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어…….”

이럴 때 평소의 유찬조라면 강하게 반박하면서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냈었다.

직원들은 그런 유찬조가 오늘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황당해했지만.

‘무…… 무겁다……!’

‘평소보다 몸이 무거워…….’

‘공기가…… 뜨겁다…….’

다른 이들도 컨디션이 평소와 다른 건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단탈리온의 존재.

마왕의 기운을 1%만 내뿜고 있음에도 이런 모습이었다.

씨익 웃어 보인 단탈리온이 유찬조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이몸도 장난이었느니라.”

그러고는 사악.

마왕의 기운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유찬조를 비롯한 CK브라더밴드 직원들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 어라?”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이 단탈리온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충분한 공포를 심어 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유찬조는 여전히 식은 땀을 흘리며 단탈리온 앞에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을 수밖에 없었다.

“장난이라. 이몸도 장난질은 아주 좋아한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 그렇죠! 장난이었습니다 장난!”

유찬조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상황을 모면하려던 순간.

“헌데 어째서냐.”

“무엇이…….”

“그대의 마음에 깃든 장난기는 탁한 수준을 넘어서서 오염되었구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악마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로다.”

“……무슨 말씀이신지…….”

“별거 아니다.”

손을 살짝 저은 단탈리온이 넌지시 물었다.

“그대는 악마의 장난이라고 들어봤느냐.”

“……네?”

“이건 그것의 일환이라 봐도 되느니라.”

그리고 말을 마친 단탈리온에게서.

화아아악-

검붉은 안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안개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안에서 오로바스와 도미니온뿐이었다.

앤디, 제인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고, CK브라더밴드 직원들 모두도 마찬가지였다.

“……허억!”

그리고 그 안개에 휩싸인 유찬조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떨구고.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장난이라면 이 몸도 일가견이 있도다.”

“그…… 그게 무슨…….”

“그대의 장난질이 우수한지, 이 몸의 장난질이 우수한지. 한번 판단해 보거라.”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한 번 휘젓자 유찬조의 입이 뻥긋뻥긋 움직였다.

“크, 으, 어…….”

“고하거라. 이번 영상의 목적은 무엇이더냐.”

단탈리온의 말에 유찬조가 버티기 힘겹다며 입을 열었다.

“시…… 신인…… 연예인……을 꼬셔서…… 싼값에…… 광고를…….”

“호오. 싼값이라면 어느 정도인가.”

“……배, 백만…… 원…….”

그 말을 들은 단탈리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앤디, 제인을 향해 물었다.

“광고비로 백만원이면 많은 편이 아닌 것인가?”

“……내가 그러니까 신중하게 움직이자 그랬잖아.”

앤디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많은 게 아니었단 말인가.”

“나도 많다고 생각했어. 자책하지 마, 마왕님.”

제인이 단탈리온을 위로해 주었다. 그 위로에 힘을 입은 단탈리온이 다시 유찬조를 보며 물었다.

“그만하면 충분하도다.”

“크…… 헉…….”

“그 외의 목적은 없었는가?”

이어지는 질문에 유찬조의 목울대가 울렁거리더니.

꽈악-!

마치 실에 감긴 것처럼 유찬조의 목을 조여들었다.

“끄…… 아…… 어……!”

“흠. 진실을 봉하는 실인가.”

말을 마친 단탈리온이 유찬조의 목을 꽉 붙잡더니.

“꺄아아아아악!!!”

“히이이이익!!!!”

주먹을 그대로 유찬조의 입 안으로 넣어 버렸다.

“미쳤어 인마!!!!!!”

앤디가 다급하게 달려왔으나.

오로바스가 앤디의 길을 막았다.

“기다려 주십시오 앤디 님.”

“왜, 왜요?”

“지금 데스맨 님을 주목해 주십시오.”

단탈리온의 주먹이 유찬조의 목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도미니온이 유찬조의 목에 백마법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단탈리온이 유찬조의 목 울대를 안쪽에서 붙잡고는.

툭.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난질이 도를 넘어서는구나.”

단탈리온이 혀를 차며 유찬조를 바라봤다.

“목은 어떠한가.”

“케흑, 커헉……! 이, 이게 무슨…….”

유찬조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에 대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우웩…… 웨엑…….”

“목에 달린 거친 실을 뜯어냈느니.”

단탈리온은 손가락에 돌돌 말려 있는 실을 바라보며 붉은 안광을 내비쳤다.

파앗-!

그러자 실에서 검고 하얀 기운이 태워지며 사라졌고, 이리저리 꼬인 실타래만 남은 채 바닥에 툭, 떨어졌다.

“……데스맨 씨.”

“확인하였는가.”

“네.”

도미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백마법으로 보호해 줬으니 다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유찬조 씨는 지금 기력이 빠져서 힘들어하시는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가. 수상한 기운은 또 없었는가.”

도미니온은 그건 모르겠다며 말했다.

“주변의 기감을 탐지했을 때 특별한 건…….”

“그러한가. 알겠다.”

이번에도 놓친 것인가.

참으로 신출귀몰한 놈이로다.

그렇지 않다면.

“라이징 밴드와 접점을 가지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장난질을 했을지도 모르겠군.”

“……네?”

“방금 전 그 실.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단탈리온의 질문에 도미니온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악마…… 인가요?”

“아니.”

눈을 지그시 감고 도미니온을 향해 고개를 돌린 단탈리온.

“천계의 힘이 섞여 있었다.”

“!?!?”

그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내비쳤다.

* * *

데엥- 데엥-

거대한 자명종이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회의가 가까워진 시간.

메타트론은 자신의 날개를 한껏 펼치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깃털을 바라봤다.

“…….”

그러고는 다시 날개를 안쪽으로 접었다.

이어서 천칭을 바라보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수심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

똑똑-

“누구냐.”

“하품 천사 프린시펄리티입니다.”

“들어오거라.”

메타트론은 천칭을 보이지 않도록 아공간에 집어 넣고는 프린시펄리티를 맞이했다.

“그래. 인간계에서의 탐색 활동은 어떠하더냐.”

“순조롭습니다. 이상한 기운이 있는지 탐색하고 있는데…….”

프린시펄리티가 심각한 사안이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메타트론 님 말씀처럼 단탈리온 데스맨. 그가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역시 그러한가.”

용사의 후계자일 가능성이 큰 단탈리온 데스맨.

그러나 그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분명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니.

‘인간들 중에서도 마법을 그리 능숙하게 다루는 이는 드물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걸 위에서는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메타트론은 프린시펄리티를 인간계로 파견했다.

도미니온을 보좌하고, 도미니온이 놓치고 있는 단탈리온 데스맨의 정보를 알아내도록.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어떤 점에서 의심스럽더냐.”

“우선 마력입니다. 인간 중에서 그 정도의 마력을 갖춘 이는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마성전쟁을 제대로 겪지 못했던 프린시펄리티였다.

그래서 메타트론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의심되는 지점은?”

“또 하나는 그가 사용하는 마법입니다만…….”

프린시펄리티가 조금 의아하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흑마법인지 백마법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뭐라……?”

“그…… 흑마법인지 백마법인지 구분이 잘…….”

“……그게 참말이더냐.”

메타트론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그런 것이었단 말이냐……. 그렇다면 도미니온이 그러는 것도 이해가 되는구나.”

“메타트론 님……?”

갑작스러운 메타트론의 반응에 프린시펄리티가 잠시 놀라는 사이.

메타트론이 기운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하품 천사 프린시펄리티는 듣거라.”

“……예!!!!”

“지속적으로 도미니온을 지원하고, 단탈리온 데스맨을 감시하거라.”

만약 그가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맞다면.

메타트론은 입을 꾸욱 다문 채.

차마 프린시펄리티의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려가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거라. 나도 내려갈 준비를 하겠다.”

그 말에 프린시펄리티의 어깨가 흠칫 떨려왔다.

그러나 메타트론은 수심에 잠겨 있었기에 그 어깨를 보지 못했고.

“메타트론 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래. 부탁한다.”

“예! 긍지 높은 천계에 영광 있으리!”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황급히 도망가는 프린시펄리티의 모습을 눈으로도 쫓지 못했다.

“정말 그대가 맞단 말인가…… 허어…….”

그가 맞다면.

나는 그를 만나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이더냐.

메타트론의 눈가에 촉촉한 물방울이 고여 왔고.

속절없는 종소리만이 원형 홀을 공허하게 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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