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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85화 (85/110)

85화. 마.왕.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유찬조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성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뭐? 실을 뜯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런데 알게 모르게 지금 목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하는 짓거리가 하급 악마보다도 못하구나.”

단탈리온 데스맨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때였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팀원들이 유찬조를 향해 달려와서는 안색을 살폈다.

“어, 어? 응, 뭐. 괜찮은데…….”

“방금 팀장님 기절할 것처럼 그랬다고요!”

그러고는 두 동강이 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실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실은 마치 작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몸이 두 동강이 난 것처럼 보이는.

실로 괴이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유찬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 웨에엑!!!”

급기야 헛구역질까지 해 버리는 상황.

그나마 도미니온의 백마법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단탈리온도 유찬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느냐.”

“우웨……엑……. 아, 아니 전혀 몰랐…….”

“어디서 반말질이더냐.”

“……몰랐습니다.”

단탈리온의 기세에 밀려 유찬조가 꼬리를 내렸다.

“흠. 자칫 잘못했으면 이 녀석을 뱃속에 넣은 채로 1년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이, 이게 제 안에 있었다고!?”

“어허.”

“……요?”

유찬조의 물음에 답한 건 단탈리온이 아니라 직원들이었다.

“네, 팀장님! 진짜라니까요!”

“입에서 갑자기 저게 튀어나오는데 처음에는 마술인가 싶었지만…….”

“흉측해!”

그들이 그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탈리온이 끊어 버린 실을 바닥에 내팽개칠 때, 그 실이 꿈틀거리며 죽기 일보 직전의 뱀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사실대로 말씀을 드릴게요.”

도미니온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저는 천계의 사자. 주천사 도미니온이라 합니다.”

“……천사?”

“이제는 얘네도 컨셉질을…….”

CK브라더밴드 사람들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도미니온이 말했다.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나.”

파아앗-!

도미니온이 자신의 천사 날개를 펼쳐 냈다.

백색의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는 인간 둘 정도는 가볍게 감싸 줄 정도로 거대했고, 한 번의 펄럭임으로 주변의 공기를 모두 따스하게 만들었다.

그 공기를 정면에서 맞이한 CK브라더밴드 직원들 또한 그 따스함에 안정감을 느끼면서.

“아아…….”

“정말…… 이야?”

갑자기 솟아난 날개.

날개에서 피어나는 신성력.

신성력을 받은 인간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단탈리온도 잘 알고 있었다.

“흥. 미개한 필멸자들답군.”

도미니온이 단탈리온을 향해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CK브라더밴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이야기를 해 주셔야 합니다.”

“저희……?”

누군가의 질문에 도미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한 사람은 없었는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있지는 않았는지.”

“수상……?”

“분위기……?”

“어떤 정보라도 좋습니다. 저희는 지금 인간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찾고 있거든요.”

그때까지는 도미니온의 말을 듣고 있던 직원들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이야 도미니온 씨, 연기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나중에 밴드 성공하면 연기자도 욕심내시겠는데?”

“얼굴도 예쁘고 말이야! 그쵸?”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 도미니온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그럴 게 아니라,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니까요! 여러분들의 협조가 없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증인은 여러분들뿐이에요!”

그러나 여전히 CK브라더밴드 직원들은 도미니온의 말을 장난스럽게 여겼다.

“제발, 제발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저는 주천사 도미니온!”

마음 같아서는 백마법으로 조종해 버리고 싶지만, 메타트론에게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경고를 받았기에.

도미니온도 최대한 인간들을 설득해서 정보를 얻어 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미니온 씨, 적당히 하고 이제 들어가세요. 저 뱀도 그쪽이 만들어 낸 거죠?”

유찬조도 도미니온을 향해 한쪽 입꼬리만 스륵 올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마치 이 공간에 혼자서만 비웃음거리가 된 듯한 기분.

도미니온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모든 진실을 꺼냈는데.

증거를 보여 주고자 날개까지 펼치고 신성력도 일부 발현했는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역시 천계는 어리석군.”

도미니온의 앞으로 단탈리온이 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유찬조의 이마에 대고 중얼거렸다.

“멘떼 크몽떼.”

* * *

저 멍청한 천사년놈은 저런 설득이 미천한 필멸자들에게 먹힐 거라 생각했단 말인가.

참으로 어리석다.

보다 못한 내가 앞으로 다가가서 손을 흔들었다.

“멘떼 크몽떼.”

화아아악-!!

검붉은 안개가 공간을 감싸며 서서히 공기가 무거워졌다.

“크윽!”

날개를 펼치고 있던 도미니온도 살짝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말 중급 천사 맞아?

아직 마력도 제대로 안 꺼냈는데.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앞에서 헤롱대고 있는 유찬조의 입을 억지로 열었다.

“지금부터 자네들은 이 몸이 목숨을 구해 준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알겠느냐.”

“네에…….”

“알겠…… 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자네들의 기억을 읽겠다.”

이들이 기억한다 해도, 무엇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직접 확인해보는 게 제일이다.

“리끄루도 리즌.”

칫, 칫, 챵!

손가락 끝에 올라온 마력이 CK브라더밴드 직원들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평소보다 더 많은 마력을 소진해야 하는 범위 마법이었기에 살짝 몸이 휘청거릴 뻔했지만.

‘아직은 버틸 만하다.’

나는 보이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는 직원들 모두의 기억을 빠르게 재생시켰다.

“흠……. 흐음…….”

그런 것이었나.

마법을 마무리한 뒤 직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당분간 절대 발설하지 말거라.”

발설할 거라면 지금이 아니다.

가장 적당한 때는…….

“라이징 밴드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에는 괜찮도다.”

그때쯤 밝혀진다면 아주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나는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내리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날개를 접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도미니온이 쭈뼛거리며 옆에 섰다.

“저……. 죄송합니다.”

“무엇이 말이더냐.”

“멋대로…… 제 정체를 드러내고…….”

“괘념치 말거라.”

정말 아무 상관 없었다.

천계가 본인들 정체를 알리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람?

중요한 건, 직원들의 기억 속에서 찾아낸 하나의 파편이었다.

“이 조각을 그대에게도 공유하마.”

마력을 살짝 운용하여 기억에서 찾은 조각을 영상의 형태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걸 재생하자.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남성이 모자를 뒤집어쓴 채 건물 바깥의 흡연 구역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남성의 얼굴은 모자에 가려지고 검은 그림자가 뒤덮고 있었기에 자세한 건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구신지……?

-CK브라더밴드 마케팅팀이시죠? 조만간 라이징 밴드 참가자들과 콜라보 광고를 기획하고 계시는.

-뭐야, 누가 유출했어? 너야?

-아뇨, 저는 아무 말도…….

-하……. 미치겠네. 이보쇼, 취재 안 합니다. 어디서 프리랜서 기자 같은 거 하시나 본데, 저희는…….

-아아, 괜찮습니다. 뭘 물어보려던 건 아니고 그냥…….

그때 남성의 손에서 흰색과 검은색 안개가 조화롭게 일렁이더니.

캬아아아악!!!!!

두 동강이 난 실.

뱀처럼 생겼었던 그 존재가 나타났고.

-이 녀석을 좀 맡기려고요.

-우우웁!!!!!

그렇게 유찬조의 입에 뱀이 들어갔다.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끄흐읍……!

-라이징 밴드 참가자들이 오면…….

피싯

영상이 끊어졌다.

“여기까지다.”

“…… 대체 누가.”

기억의 파편에서 찾아낸 이야기는 딱 이것뿐.

그 이상의 내용은 누군가가 삭제라도 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걸 잘 간수하거라.”

“아……. 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 건에 대해 상담하지 말거라.”

“그 말씀은…….”

“천계의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뜻이다.”

도미니온의 어깨가 떨려 왔다.

녀석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터.

게다가 괜히 천계에 가서 내가 뭘 어떻게 하고 만들었고 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괜히 나만 표적으로 몰릴 수도 있다.

차라리 입막음을 시키는 게 낫겠지.

거기에 약간의 선동은 필수다.

“천계의 대가리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느니.”

“언제나……?”

“마성전쟁 때부터 말이다.”

그 말에 도미니온의 눈동자가 흔들, 움직였다.

“아무튼, 남은 건 광고다.”

나는 유찬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한번 보거라. 그대가 볼 때 우리들은 어떠한가.”

“네……. 광고하기 딱 좋은 분들입니다.”

아직 멘떼 크몽떼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유찬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 * *

“핫!?”

정신을 차린 유찬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CK브라더밴드 직원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뭐, 뭐야……?”

분명  RRR 밴드랑 탑엔젤스가 같이 왔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지?

유찬조의 의문은 이어지는 남성의 목소리에 해소되었다.

“정신이 드는가.”

“누구…….”

유찬조는 눈앞에 서 있는 남성을 바라봤다.

어쩐지 광채가 느껴지기도 하는 모습.

세상에 이렇게나 멋진 인간이 있을까?

또렷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키, 잘 다듬어진 몸매에 근육질 팔뚝. 거기에 징이 박힌 바지가 붉은색 브릿지가 들어간 헤어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선가 봤었는데.

그래, 나는 분명 저 사람에게…….

“저,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구해 주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우리를 폭행하고 있었는데 도와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지금 유찬조에게 중요한 건, 단탈리온 데스맨이 생명의 은인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들도 덩달아 단탈리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단탈리온은 그저 코를 스윽 한 번 훑으며 미소를 지었다.

“알면 되었다.”

저 시건방진 말투도 너무나 멋지다!

유찬조는 단탈리온을 바라보며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저, 저기, 데스맨 씨, 저희가 보낸 메일은 받으셨죠?”

“그러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건으로 이 몸이 온 것이다.”

“저희와 광고를 부디 꼭 찍어 주십시오!”

“좋다. 멤버들은 밖에서 대기 중이니 부르도록 하겠다.”

“오오오……!!!”

유찬조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과 함께할 수 있는 광고 촬영이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

“다들 짐 챙겨! 현장으로 간다!”

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현장까지 직접 간다!

대표가 보면 놀랄 일이었지만, 유찬조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일어섰다.

“가시죠 데스맨 씨!”

* * *

아니 근데 말이다.

이럴 거면 애초에 흑마법으로 조종하는 게 빠르지 않나?

-들어가자마자 들쑤시고 다니면 품격 없는 소악마들의 행위나 다름이 없다.

단탈리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굳이 지금의 수고를 들여 CK브라더밴드 직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냈다.

그래서 흑마법을 사용할 명분을 만들었다나 뭐라나?

“참나, 마왕 주제에 신념은 가득해서는.”

“그러게 말이야. 게다가 도미니온 언니는 천사라며?”

거기에 오로바스는.

“단탈리온 님을 보좌하는 건…… 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도미니온에게 알게 모르게 경쟁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RRR 밴드 각자 바깥의 흡연 구역에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다들 준비되었는가.”

단탈리온이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CK브라더밴드 직원들을 몽땅 데리고서.

“뭐야, 진짜 다 데리고 나왔어?”

“이제부터 촬영 현장으로 향한다.”

그 말에 앤디가 눈을 크게 떴다.

“오오 진짜 찍는구나!”

“일당 벌러 가자!”

앤디와 제인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소리쳤다.

그리고.

“자, 여기서는 뒤에서 폭발하는 CG가 들어갈 겁니다! 그걸 상상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감탄에 젖은 얼굴을 하세요!”

“음? 왜 그런 짓을 하는가.”

“……네?”

“폭발이라면 일가견이 있다.”

촬영 현장에서 손가락을 튕긴 단탈리온에 의해.

콰아아아앙!!!!!!!

촬영 스튜디오의 절반이 날아가 버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어떠한가. 힘을 조절했기에 이 정도인데, 나름 실감 나는 영상이 나오지 않았는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 단탈리온과 달리, 앤디와 제인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화낼 기운도 없다.”

“그럼 내가 내야지. 마. 왕. 님.?”

“음? 무슨 일이냐 제인.”

“저거 우리가 다 물어 줘야 하면 어떡하려고 그랬을까아~?”

“……훗. 상정 내의 결과…….”

제인은 최대한 핑계를 대려는 단탈리온의 목덜미를 잡고 억지로 구석까지 끌고 가 삼십여 분 간 잔소리를 해 댔다.

“스…… 스튜디오가…….”

그리고 RRR의 광고비는 전부 스튜디오를 물어내는 데 사용하게 되었다.

“대…… 대박…… 이건 대박 조짐이야……!”

물론, 그 현장을 뒤에서 브이로그 형식으로 촬영하고 있던 박은환에게는 최고의 너튜브 소스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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