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88화 (88/110)

88화. 풀어 두라고

쟈쟈쟝쟈앙키이잉

[워우예아아아아아아아아!!!!]

청아한 고음 샤우팅을 시작으로 스틸러블리의 노래가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분노! 사랑!]

둥둥! 둥둥!

[불만! 열정!]

둥둥! 둥둥!

스틸러블리가 선택한 노래는 자신들의 자작곡인 <미네랄 소드와 용사> 였다.

[거친 평야를 넘어 드래곤을 잡아라]

[이 검을 들어 드래곤과 맞서라]

[기나긴 전투 끝에]

[드래곤의 피로 샤워를 해도]

[용사의 미네랄 소드는]

[찬란하게 빛날지니]

쟈쟝- 쟈쟈앙-

따라다다 다다당, 다다다!

전투를 하는 가사에 어울리는 강렬한 비트가 무대를 가득 메웠다.

[오직 성전을 위해 싸운 용사만이]

[성스러운 미네랄 검을 잡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쟈쟈쟈아앙 키이잉!!!

타다당 따당!!

그리고 그때까지도, 정유나는 이빨로 연주를 했다.

그녀의 전매특허 연주 기술.

키스 인 더 스트링.

이빨로 현을 물어뜯으며 연주를 할 때도 섬세함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이빨을 다칠 수도 있고, 현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유나는 그 강약 조절을 귀신같이 해내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최고의 메탈 사운드를 내고자 이펙터까지 계획적으로 밟고 있었다.

위잉- 캬이잉!

[영괄의 길을 달려라! 미네랄 소드의 용사여!!]

1절이 끝나감과 동시에 정유나가 기타를 한 바퀴 휘릭 돌렸다.

마치 적색 말이 정유나의 주위를 맴돌 듯이 돌아가는 모습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환호했다.

“우와!!!!”

“멋지다!!!!”

정유나의 퍼포먼스에 감탄한 심사 위원들.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 솔로.

다라다다단단단

따다다딴따다타타탄!

쟈쟝쟝자자앙다단!

“이…… 이게……!”

국내 최정상 메탈 밴드,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인가!

그녀의 신들린 연주에 모두가 숨을 죽였고.

정유나는 이빨로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 나가면서 최선의 사운드를 내고자 노력했다.

* * *

‘앤디, 보고 있어?’

무아지경의 경지에 오른 정유나의 연주.

그녀는 지금, 단 하나의 생각을 제외한 채 머리를 비우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오로지 앤디에게 자신의 연주를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

그것만이 지금 그녀를 키스 인 더 스트링으로 연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는 자신의 영혼의 단짝, 레드 홀스 기타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걸로는 이길 수 없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정유나는 앤디와 함께 본선 3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 여실히 깨달았다.

자신만큼이나 뛰어난 기타리스트가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리드 기타였던 자신을 뒤에서 든든히 받쳐 주던 리듬 기타 앤디.

‘그런 리듬 기타리스트는 본 적이 없어’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타리스트는 많다.

그들은 화려한 연주 실력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그 누구도 낼 수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자 피가 터지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그런 리듬 기타는 처음이었다.

‘너도 분명 앞으로 치고 나오고 싶었을 텐데.’

그 흥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로 리드 기타처럼 하겠다거나.

혹은 리드 기타의 사운드를 죽여 버려서 내가 더 연주를 잘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거나.

보통의 기타리스트라면.

아니, 밴드에서 메인 기타를 맡고 있는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그런 욕심과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앤디는 어땠던가.

‘그걸 억누르고 연주를 했었어.’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정유나로서는 전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모습.

그녀가 생각하는 기타리스트란 언제나 돋보여야 하고, 언제나 곡을 이끌어야 했으며, 그 어떤 연주자들보다도 침착해야 하고 파워가 넘쳐야만 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고민하고 있군요.’

그때,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당신을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거짓말. 사람 아니지?’

그 질문에, 상대가 키득거렸다.

‘히히히,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지.’

‘난 레드 홀스와 달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당장 내 머릿속에서 꺼져.’

‘그럼 더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데.’

상대의 말에 키스 인 더 스트링을 선보이고 있던 그녀의 이빨이 살짝 떨려 왔다.

‘……뭐라고?’

‘어때요. 그 입술과 이빨. 슬슬 한계죠?’

상대의 말대로였다.

이빨로 연주하는 건, 기껏해야 한두 번의 퍼포먼스용.

그 기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다는 건, 일부러 지옥을 경험해 보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실제로 이제 막 1절이 지나가는 시점이었음에도 그녀의 입술은 부르텄고, 이빨 사이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큭……!”

살짝 숨을 삼킨 정유나가 다시 레드 홀스를 입가에 가져갔다.

‘내 도움을 받으면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신체를 얻을 수 있어요.’

‘헛소리. 레드 홀스와 나만 있으면 충분해. 내 안에서 꺼져.’

‘흐음……. 그럼 이런 건……?’

정유나가 계속해서 상대의 의지에 저항하자, 상대가 키킥, 웃었고.

“!?”

갑자기 레드 홀스가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레드 홀스가 홀로 질주했다.

“뭣……!?”

정유나의 리듬을 파악하던 김은영이 정유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보다도 더 빠른 속도.

손으로 연주할 때보다도 더 빠른 그녀의 연주 속도에.

‘템포가 너무 빨라요, 유나 언니!!’

심사 위원들에게 보이지 않게끔 신경 쓰며 정유나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그녀는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에서 기타 연주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쟈쟈쟈쟈쟈쟈쟈쟈쟈쟈쟈ㅇ앙다다다다다다다단따다다타타단단다다당당쟈쟈쟝쟈자가자가쟝!!!

방금 전보다 속도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라간 상황.

심사 위원들은 정유나의 기타 연주가 신들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며 감탄했다.

“미친……. 이게 국내 기타리스트라고?”

“세계 3대 기타급 아닌가 이 정도면!?”

심사 위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지만.

정유나는 여전히 속주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다.

‘2절이 들어가기 전에 빨리 끊어야 해……!’

‘키키킥, 어때, 방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

의문의 목소리 때문에 제어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레드 홀스……!’

위기였다.

더 이어 가다가는 자신의 이빨이 부서질지도 모르고.

라이징 밴드 본선 4라운드에 진출한 스틸러블리의 공연이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이 녀석은 기타리스트가 아니야……!’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다……!

생각을 마친 정유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콰직!!

“피, 피 나는 거 아니에요!?”

정유나가 굳게 깨문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 입술로 레드 홀스의 현을 다시 깨물었다.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고는 방금 전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빨로 하는 연주라고 믿기지 않을 속도.

그럼에도 정확한 박자를 지키고, 단 한 번도 손가락 위치를 틀리지 않았다.

“이게……!!”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

심사 위원들은 물론이고, 참가자들도 감탄하면서 그녀의 연주를 감상했다.

딱 넷.

단탈리온, 앤디, 제인, 오로바스만이.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는 침묵하고 있었다.

‘레드 홀스…… 레드 홀스……!!!!!’

정유나의 입술 아래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 * *

‘언니……!’

-……여차하면 믿을 건 드럼뿐이니까.

지난 본선 4라운드 때,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

김은영은 정유나의 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지금, 언니에게도 그때 그 이상한 귀신 같은 게 다가온 걸 것이다.

그 이상한 기운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언니, 언니……!’

그래서 정유나는 지금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건 기타뿐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소보다도 더 기운을 끌어올려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은영은 그런 정유나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보컬 이자연, 베이스 윤아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지금 주어진 노래를 충실히 연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마치.

“꼭두각시 같군요.”

그래, 꼭두각시같이 말이다.

‘……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본 김은영은.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놀 수 있나 보겠습니다.”

긴 생머리에 금발을 한.

탑엔젤스의 보컬, 도미니온을 보며 숨을 삼켰다.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거의 다 되었습니다.”

도미니온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울부짖어라……. 레드…… 홀스……!!!!!!”

정유나의 힘찬 외침이 터져 나오면서.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의 앞니 한 개가 피를 튀기며 앞으로 튀어나왔고.

“허억…… 허억…….”

정유나의 신들린 연주가 끝났다.

이자연이 황급히 2절 노래로 들어갔고, 김은영과 윤아민도 다음 연주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 나갔다.

“……잡았습니다.”

그사이 도미니온은 무대 뒤쪽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신성력으로 감싼 두 주먹.

그 주먹을 미리 준비해 둔 천계의 봉인병을 향해 내리뻗었다.

번쩍-!!

“후…….”

그리고 잠시 후 도미니온은 병뚜껑을 굳게 닫았다.

“이제 도망갈 수 없겠죠.”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 도미니온이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며 털썩, 주저앉았다.

* * *

“어리석군.”

정유나. 인간의 정신력으로 저기까지 버틴 것도 대단하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탈리온이 혀를 찼다.

“빠르게 침식당해 쓰러졌다면 처리가 빨랐을 것이다.”

“그랬으면 유나 씨는 어떻게 되는 건데?”

“걱정 마라. 사지가 불구되는 것 이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게다.”

“응 그건 다행……. 아니 불구가 된다는 거잖아! 절대 안 돼 그런 방법은!!!”

앤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실 앤디도 당장 정유나를 부축하러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달려가 봤자야.’

오히려 공연만 망치고 RRR과 스틸러블리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도미니온에게 맡기지 않았더냐.”

단탈리온이 거만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고로 마왕이란 천계의 년놈들도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어야 하는 법.”

“……그냥 부하직원 부리듯 한다는 거 아냐?”

“그러하다. 마왕의 부하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더냐.”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아무튼, 이제 유나 씨는 괜찮은 거 맞아?”

제인의 질문에 단탈리온은 조금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묘하구나.”

“왜?”

“오로바스여. 알겠는가.”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오로바스였지만, 그는 곧장 답변했다.

“네, 단탈리온 데스맨 님! 이전, 김은영 씨에게서 느껴졌던 기운과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러하다. 바로 그 지점이다.”

단탈리온이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어째서 다른 기운인가…… 설마 패거리가 있었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발을 구르던 단탈리온의 눈이 붉은 안광으로 빛났다.

“……이건 위험하군.”

“응?”

“왜?”

“앤디, 제인은 도미니온을 찾거라.”

단탈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빙의를 준비 중인 것 같구나.”

“비, 빙의!?”

“지금 너처럼!?”

지금 도미니온의 손에 잡힌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

그 녀석은 지금 단순히 목소리만을 내보내고, 탁기를 만들어 내왔던 게 아니었다.

“녀석의 목적은 빙의. 빙의의 목적은 인간계의 혼란이겠군.”

단탈리온이 마이크 스탠드를 들고는 키득 웃었다.

“감히 이 몸이 있음에도 인간계에 혼란을 가져오려 한단 말이더냐.”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자고로 인간계에 혼란을 야기하는 건, 대대손손 악마의 역할이었다.”

“……뭔가 거창한 거 같은데 안 거창해.”

“그러게. 아무튼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거지?”

앤디와 제인의 말에 단탈리온은 그저 씨익 웃어 보이고는.

화아아악!!!!

한층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도미니온에게 전해라. 그 녀석을 지금 무대에 풀어 두라고 말이야.”

* * *

한편, 단탈리온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도미니온은.

“왜, 왜요!?”

“곧 저희 무대에서 아주 제대로 뭉개 버리겠다고…….”

“일단 데스맨을 믿고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앤디와 제인이 참 전달하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스틸러블리의 공연이 끝난 라이징 밴드 무대 뒤편에서 단탈리온은 망토를 펄럭이며 걸어갔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도다.”

라이징 밴드 본선 4라운드.

상처투성이로 격렬하게 싸운 스틸러블리의 정유나.

그리고 미지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모조리 씹어 먹기 위해, 이제부터 RRR이 달려야 한다.

“남은 건 앤디. 자네의 역량에 달렸군.”

이번 작전에서의 가장 큰 역할을 할 인물.

통칭 71위 마계의 마왕군 12군단장 앤디의 진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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