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89화 (89/110)

89화. 성검, 엑스칼리버의 최후 (1)

아니 대체 왜!?

기껏 기운을 잡아 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뭐?

‘풀어 주라고?’

도미니온은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앤디와 제인이 와서는 데스맨이 그렇게 말했다며 부탁하는 상황.

“자존심 싸움이라고요!?”

게다가 그 이유가 자존심 싸움 때문이란다.

그러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그러나 도미니온으로서도 이걸 거절하거나 완고하게 반대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지금 잡아 둔 이 기운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마력을 분석하기 위해 잡아 둔 것.

범인 그 자체를 색출해 낸 것은 아니었다.

‘범인 색출을 위한 트랩을 만들 시간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 조사는 메타트론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자칫 백마법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백마법 과대 사용으로 또 징계를 먹을 수도 있는 노릇.

그래서 이 기운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상대를 찾아내려 하였던 것인데.

“이걸 풀어 주면 상대는 다시 본래의 힘을 찾을 텐데요……?”

그렇다.

다른 것보다도 이게 문제였다.

어느 정도의 기운을 봉인해 둔 것만으로도 상대의 힘은 확연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의 기운이라도 봉인을 해 둔 상태가 전투를 치르기에는 더 적절할 터인데.

“그거, 그 뭐더라. 경적필패(輕敵必敗)라던가?”

“경적필패……?”

도미니온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는 사자성어인데, 데스맨이 만들려는 상황이 그거라고 했거든요.”

앤디의 설명에 도미니온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

무언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연신 끔뻑였다.

“경적필패…….”

“저기…… 도미니온 씨……? 괜찮으세요?”

제인이 살짝 손을 휙 휙 흔들어 봤지만, 도미니온은 바닥에 박힌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그래……. 방심……. 네, 알겠어요! 풀어 줘야겠어요!”

“네?”

“그러면 타이밍이 중요하겠네요. 최대한 내가 잘 못 하는 티를 내기 위해서……. 으으음……. 공연 시작하기 직전? 아니, 심사 위원들 평가 나올 때? 그것도 아닌데…….”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도미니온은 결국, RRR이 공연을 하러 들어가는 직후, 봉인병의 봉인을 해제했다.

* * *

“스틸러블리……. 정말 대단합니다.”

스틸러블리의 무대가 끝나고 윤상하가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특히 유나 씨의 기타는 와…….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전성기의 장도민 씨보다 더 나은데요?”

“아니 선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하하하하!

심사 위원들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은영 씨는 그거 드럼 스틱 아니에요?”

하현주의 질문에 김은영이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아, 이거, 아이들 마칭 드럼에서 쓰는 그거에 막대기를 붙여서…….”

“자작이었군요. 그런데 역시 장비의 문제일까요. 사운드가 조금은 아쉬웠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다.

스틱을 제외하고 드럼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그거에 대한 해답은 대부분 마칭 드럼 스틱 정도거나, 다른 막대기를 제작하는 정도가 될 테니까.

그래서 하현주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다음 무대, RRR 밴드의 무대 준비를 지켜봤다.

“……저게 뭐야?”

“왜요?”

“저기, 저거 보여요?”

하현주가 손가락으로 오로바스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보자기……?”

“뭘 저렇게…….”

심사 위원들의 시선이 오로바스에게 주목되어 있을 때였다.

촤라라락-!!!

마치 카드 마술을 펼치는 것처럼 오로바스가 보자기를 일자로 길게 늘어뜨렸다.

그러자 거기에 나타난 건…….

“……?”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죠?”

“……맞는 거 같은데…….”

오로바스가 펼쳐 놓은 보자기에서.

짐승의 뼈들이 나타났다.

* * *

-오로바스여, 드럼 무기를 꺼내 보거라.

방금 전,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에게서 저주를 받은 족발 뼈다귀들을 선물 받았다.

-서, 서서, 성은이 망그…… 윽……!

-되었다. 이 뼈를 모두 펼치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르거라. 그것이 바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첫 번째 카드가 될 것이다.

그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오로바스가 뼈다귀를 바라보며 한참을 입을 다물었다.

“……대체 뭐지?”

“뭐 하는 걸까요?”

심사 위원들은 고개를 앞으로 쑤욱 내밀고 오로바스에게 집중했다.

그때, 오로바스가 뼈를 하나 들었다.

그리고 심벌을 내리쳤다.

챠앙-!!!

“!?!?”

“미친!!??”

“스틱으로 쓴다고!?!?”

오로바스의 드럼 무기, 뼈다귀 스틱이 등장했다.

“……이건 아쉽군요.”

이번에는 다른 뼈다귀.

시틀라로부터 전달받은, 마계 짐승의 뼈다귀였다.

챠챠앙-!!!!

“……이것도 애매합니다.”

족히 십여 개는 펼쳐져 있는 뼈다귀들.

그중에서 오로바스는 자신의 손에 착 감기는 뼈다귀를 신중하게 골랐다.

여기에 더해서,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한 작전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뼈를 골라야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한 오로바스가 가장 두껍고 튼튼해 보이는 뼈를 골랐다.

족발 앞다리 뼈다귀였기에.

심사 위원들의 눈에도 잘 들어오는 뼈였다.

“저거 족발 아니에요?”

“미쳤다 진짜. 얘넨 제정신이 아니야.”

“뭐!!!! 족발 뼈다귀로 드럼을 친다고!?!?”

순식간에 심사 위원석까지 달려온 기보성이 흥분하며 조연출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직캠 찍어!!!!”

“아 찍고 있는데 왜 그래요!”

“저거 준비하는 거! 준비 과정도 찍으라고!!!”

그런 흥분한 기보성을 바라보며 조연출은 한숨을 쉬었다.

* * *

오로바스. 잘하고 있구나.

누가 드럼을 족발로 두드린다고 생각할까.

그건 바로 RRR이기에 가능한 방식.

악마 숭배 음악을 관철하는 메탈 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대는 방심할 것이다.

‘설마 남은 족발 뼈다귀로 연주할 거라고는 생각 못 할 테니까.’

기본적으로 족발에 남아 있는 뼈를 벅벅 씻겨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해도, 악기 연주 스틱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녀석은 족발을 들고 있는 오로바스를 보면서 역시 음악적 조예가 깊지 않다며 무시하겠지.

‘그게 방심의 시작이니라.’

속내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혹시나 그 녀석이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지금은 신중을 다해야 한다.

“앤디여, 준비는 되었는가.”

“어흠, 커흠. 당연하지. 코러스도 맡겨 주라고.”

“아니, 코러스는 오늘 제인이 담당한다.”

그 말에 앤디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자네는 연주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자작곡에서의 앤디의 연주.

그 연주가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키가 될 것이다.

“자네만 믿겠다.”

“……믿어 줘서 고맙기는 한데 뭔가 찜찜하다.”

나는 앤디의 의문을 뒤로하고는 제인에게 말했다.

“제인은 코러스에 집중해라.”

“하고 싶은 창법이 있는데, 그걸로 해도 돼?”

“무엇이든 좋다.”

상대를 방심시킬 수만 있다면.

그 말에 제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준비해야지!”

“훗. 기대하고 있겠다.”

* * *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RRR을 보면서.

아니, 사실은 족발 두 개를 손에 들고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오로바스를 보면서.

심사 위원들은 역시나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른 밴드도 아니고 RRR이지 않은가.

“스틸러블리가 라이벌로 RRR을 찍은 이유도 그거겠죠.”

“같은 메탈이니까. 게다가 실력도 상당해.”

이미 RRR 밴드는 대중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겨져 있었다.

다만, 대다수가 미친 연출, 퍼포먼스, 정신 나간 컨셉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이들만큼 실력파인 밴드가 없지.”

군더더기 없는 기타리스트의 속주 연주는 물론이고, 파워풀한 메탈 드러머, 악마 분장 떡칠을 해도 빛나는 미모의 메탈 베이시스트.

“거기에 마왕 컨셉의 보컬까지.”

이들만큼 완벽한 메탈 밴드가 어디 있을까.

“솔직히 컨셉만으로는 스틸러블리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수준 아닙니까?”

“그치. 그런데 오늘 정유나 씨의 연주는…….”

이빨이 하나 뽑힐 정도로 열정적인 연주였다.

그녀에게 임플란트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임팩트가 확실했던 연출.

“이 정도면 방송국에서 병원비라도 지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저 짠돌이 기보성 PD가요? 그럴 리가요.”

유열희의 말에 윤상하도 동의하고는 피식 웃었다.

“다들 준비는 되었는가.”

그리고 세팅이 끝난 듯, RRR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이 마이크를 잡았다.

“위 아 더 베스트 데블스 오브 락 앤 롤!!”

“쓰리!!!알!!!! 하이야아아!!!!”

이번 무대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타리스트에게는 두 대의 기타가 있었다.

그리고 베이시스트의 앞에는 마이크가 있었다.

“코러스가 들어가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 RRR 밴드가 코러스 들어간 노래를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심사 위원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RRR 밴드를 바라봤다.

이윽고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손에 들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진격이다. 성검, 엑스칼리버의 최후.”

둔둔.

탕! 탕!

둔둔.

탕! 탕!

제인의 베이스와 오로바스의 드럼으로 비트가 시작되었다.

제인의 손가락이 베이스 위에서 현란하게 춤을 췄다.

둔두두둔두두두둔둔둔

틴따탄티탄탄

핑거링과 슬랩이 절반씩 섞인 연주.

베이스 위에서 리듬을 만들어 나가는 제인의 연주가 무대 주변 사람들의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와…….”

“베이스가 이렇게 매력 있다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오로바스의 드럼 소리도 노래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둥둥두두둥 챠앙-!!!!

두두둥 탕탕타타탕!!!

평소보다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오로바스의 연주에,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은 유독 저음인데?’

혹시 기타리스트에게 피크가 없어져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윤상하의 앞으로.

단탈리온이 터벅, 걸음을 옮기더니.

척.

마이크를 들고는 제인을 바라봤다.

[박!!]

[아!!]

제인이 한 번.

오로바스가 한 번.

코로스가 나오자마자 단탈리온이 외쳤다.

[박아!!!!]

[때!!]

[려!!]

[때려!!!]

[넣!!]

[어!!]

[넣어!!]

[박아 넣어 찢어발겨 박아 넣어 찢어발겨 박아 넣어 찢어발겨 박어 넣어 찢어발겨]

처음부터 도발적인 가사에, 단탈리온의 샤우팅이 이어졌다.

[으오오오오오오우어아아아아!!!!!!!!!!]

[찢어! 헤이!]

[박아! 헤이!]

제인과 오로바스가 계속해서 코러스를 넣었다.

단탈리온은 둘의 코러스가 끝나자마자 심사 위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래했다.

[벌거벗은 너의 몸에]

[차갑게 식어 있는 성검]

[엑스칼리버를 꿈꾸던 너는]

[침잠하는 흑빛 속에]

[구부러진 칼을 노려보네]

지금 이 순간, 단탈리온은 성검 엑스칼리버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는 한 명의 이야기꾼이 되어 있었다.

[뽑아 드는가!! 성검을!]

[곧추세워 봐라! 엑스칼리버를!]

“고, 곧추?”

“발음 조심!”

심사 위원들이 서로를 향해 쉿! 하며 다시 노래에 집중했다.

[맨몸의 상대를 향해]

[성검을 휘두르며 달려가지]

[오, 애처로운 엑스칼리버]

[과거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달려드네]

[수줍게 너는 춤을 추며 흔들지]

[거울 속 너를 보며 미친 듯 춤추지]

[그래도 상대는 약점을 내주지 않아!!]

[약점 구멍으로 찔러 넣지도 못 하는!!!!]

[최후의 성검의 춤을 보고 있네!!]

잠시 고요해진 무대.

심사 위원들이 숨을 죽이고 RRR 밴드의 무대에 집중했다.

[부러진 성검을 들었는가]

[그럼에도 싸우겠는가]

[어리석은 성검의 주인은]

[어둠에 삼켜질 미래도 모른 채]

[오늘도 성검을 박아 넣을]

[후계자를 찾는다아아아아!!!!!]

“……진짜 그 뜻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아무리 메탈 밴드라지만 설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리석군]

마치 심사 위원들을 향해 말하는 듯한 단탈리온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구부러진 성검을 다시 똑바로 세울 자]

[그자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때.

뽀각

똑똑똑똑, 따라따다따라다다

휘이휘이휘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핀 조명의 구석에 앉아 조용히 통기타를 들고 있던 앤디가 등장했다.

다다단, 따라단, 탕탕

마치 성검의 주인을 위로하듯 연주하는 앤디의 통기타 연주.

그는 핑거링과 적당한 퍼커시브 주법을 이용해.

다다다다다단, 타타탕

일렉 기타로는 낼 수 없는 사운드를 내고 있었다.

동양적인 사운드가 노래의 중반부를 메워 가고 있었고, 메탈 사운드와 통기타의 포크송 사운드가 얽히면서 1절이 마무리되려는 찰나.

[고꾸라진 성검은!]

[더는 회생 불가야이야아아아!!!!!]

단탈리온의 샤우팅을 시작으로 앤디가 기타를 바꿔 멘 채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단탈리온이 오른손을 위로 펄럭,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메르, 마노, 파사티엠포.”

파팟, 팟!

검지와 중지를 곧게 세운 단탈리온의 오른손이 현란하게 움직였고.

우우우우웅-

앤디의 뒤로 검은빛이 후광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또 뭔…….”

“실화냐고…….”

그와 동시에 앤디의 눈이 검붉은 눈동자로 변했다.

그리고 거의 흰자가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물들어 갔을 때.

앤디가 두 손을 양옆으로 펼쳤다.

촤락!!!!

그리고 그 손이

파팟!

촤찻!!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 처, 천수관음……!?”

“미친 저거 진짜 손은 아니겠죠!?”

손이 여섯 개로 늘어난 앤디는 고개를 숙이고 후욱, 후욱,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쟈쟝!

미친 속주를 시작했다.

쟈쟈쟈쟈쟈쟈쟝따다따다다다따단쟈쟈쟈쟈쟈쟝쟈라쟈쟝키이이캬아오쟈쟈쟈쟈쟝!!!!

손가락 열 개, 아니 서른 개로 연주하는 앤디의 일렉 기타 속주 솔로.

심사 위원들의 입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