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조력자 (1)
메타트론의 말을 들은 단탈리온은 대꾸 없이 눈을 찌푸렸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
그걸 바라본 메타트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예를 갖췄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런 걸 여쭤볼 때가 아닌데 말이지요.”
“……메타트론.”
메타트론이 단탈리온의 말을 듣고는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
“예, 말씀하시지요.”
“자네의 노고를 알고 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단탈리온의 말.
대천사 메타트론도 지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당신은 리온 님의…….”
“그렇다해도 부하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거라.”
“네. 그렇기에 제가 직접…….”
“흥. 천계의 처벌 따위, 이몸도 다 알고 있도다.”
그걸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천계에서의 처벌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소멸의 처벌’을 가하지는 않는다.
이 프린시펄리티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생각한 단탈리온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프린시펄리티를 향해 마이크 스탠드를 집어 들었다.
“그렇기에 이 몸의 무대를 망친 죗값을 이곳에서 치르게끔 하겠다.”
“……죗값을?”
메타트론이 고개를 갸웃하기가 무섭게 단탈리온의 마이크 스탠드가 야구 방망이처럼 휘둘러졌다.
휘잉-
그야말로 풀스윙.
짧은 순간, 신체 강화술인 퀘르포 타쿤까지 곁들인 단탈리온의 마이크 스탠드 풀스윙이
퍼어어어억!!!!!
“끄아아악!!!!”
퍼어억!!!!!!
“아아악!!! 그, 그만!!!”
바닥에 엎드린 프린시펄리티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나 천사들은 가만히 있었다.
단탈리온의 매타작을 받는 프린시펄리티를 보면서도, 메타트론과 도미니온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알고 있기에.
그리고 이 매타작이 곧 끝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언제 끝나지?”
“저기 이제 그만…….”
“꾸어……. 꺼어으어…….”
퍼억!!! 퍽!! 퍽!!!! 빠각!!!!
프린시펄리티의 엉덩이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허벅지는 새빨간 피멍이 들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단탈리온의 매타작은.
약 십여 분이 지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RRR 밴드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중단되었다.
“이 미친……놈…….”
“……이것도 스킬이군요.”
“그래. 매강화술 같은 거겠구나.”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프린시펄리티의 몸에 매를 맞은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
* * *
“미쳤냐고!!!!!!!!!!”
앤디가 답답해 미치겠다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떤 참가자가 심사 도중에 자리를 이탈하냐, 자리를!!!!”
“심사평은 별문제 없지 않았더냐.”
단탈리온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앤디가 손가락으로 연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흑마법으로 도망친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게다가 말이야! 어? 그냥 간 거면 또 몰라! 가서 봤더니 천사를 쥐어 패고 있어!?!? 어쩌려고 그래 어쩌려고!!!”
“앤디여 진정하거라.”
“진정은 개뿔!!!! 기본적으로 밴드 리더에 대한 경외심이나 존경심이 전혀 없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안 되겠어, 내가 오늘 이 놈의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바로 고쳐…….”
“괘, 괜찮아요. 저는.”
그때 도미니온이 앤디의 앞을 막아섰다. 앤디는 씩씩대면서도 도미니온을 향해서는 화를 삭이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비켜 주세요, 도미니온 씨. 저희 밴드원들끼리 할 말이…….”
“사실 단탈리온 데스맨 씨가 아니었으면, 제가 위험했어요.”
단탈리온 덕분에 프린시펄리티의 악행을 잡아냈다. 그건 명백한 사실.
그러나 도미니온은 그렇게만 말하고 끝내지 않았다.
약간의 MSG를 섞어서 상대가 마음을 돌리도록 만들려는 화법이었다.
“덕분에 저도 그렇고, 천계도, 다른 참가자분들도 큰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었어요. 만약 데스맨 씨가 안 와 주셨으면…….”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정말로 단탈리온이 제때 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프린시펄리티를 놓쳤을 거야.’
보이지 않게 입술을 살짝 깨문 도미니온이 다시금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데스맨 씨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네?”
도미니온의 상큼한 미소를 마주한 앤디가 커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단탈리온을 노려봤다.
“데스맨.”
“왜 그러느냐.”
“다음부터는 말하고 가.”
앤디가 몸을 돌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너 없으면 밴드 망한다고.”
“훗. 당연한 사실이로다.”
“인터뷰 때는 네가 말 좀 해. 심사평 때 보컬 없다고 심사 위원들이 불평이었다고. 네가 주목받아야 하는 거 아니었어?”
투덜거리며 대기실로 돌아가는 앤디의 뒷모습을 보며 단탈리온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12군단장의 면모답다.”
“누가 군단장이야!!!!”
“들었느냐?”
그렇게 또, 결국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악마였지만 말이다.
* * *
모든 참가자가 RRR 밴드의 무대를 바라본 직후.
머-엉.
그 누구도 할 거 없이 모두가 무대 영상이 나오는 TV를 집중해서 보았음에도 아무런 리액션을 하지 못했다.
그 흔하다던 환호성도 없었다.
그저 경외.
바라보던 음악인 모두가 RRR의 연주에 귀 기울였고.
앤디의 기타 속주에 푹 빠져들었다.
“……지렸다.”
“저게 진짜 가능하다고……!?”
특히나 같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있어서 앤디가 보여 준 천수관음 주법은 충격 그 자체.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조차도 앤디의 연주를 바라본 직후 눈을 감은 채로 사색에 잠겨 있을 정도였다.
“유나 언니, 이빨 괜찮아요?”
사실 정유나의 연주도 다른 참가자들의 사기를 꺾는, 매우 뛰어난 연주였다.
키스 인 더 스트링.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필살 주법.
그러나 그 주법은.
‘……졌어.’
앤디의 천수관음 주법에 의해 무참히 깨져 버렸다.
다른 경연이었으면 이 정도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번 본선 4라운드는 라이벌 지목전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피크가 없는 앤디에게 순수하게 실력으로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그래서 정유나는 그저.
멤버들에게 미안한 감정뿐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각자 평소 기량 이상을 해 주었다.
김은영은 아이들 마칭 드럼 장난감 스틱을 가지고 왔지만, 그걸로도 파워풀한 메탈 드럼을 연주했다.
베이시스트 윤아민도 저음을 꽉 잡아 주는 정확한 베이스 연주로 노래에 무게감을 더했고.
보컬, 이자연도 평소보다 더 고음의 샤우팅을 내지르며 강렬한 노래를 선사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앤디를 무시하지 않고, 그를 쉽게 보지 않으려 했지만.
오히려 내적으로는 방심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연주를 잘했더라면.”
그리고 정유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심사평에 이은 심사 위원들의 점수는.
“첫 번째 대결의 승리자는 미친 천수관음 주법과 수위가 간당간당한 가사 속에 스토리텔링까지 가미한 RRR입니다!!!”
최고 점수 400점.
그 중 RRR이 받은 점수는 396점.
스틸러블리가 받은 점수는 388점.
근소한 차이라면 근소한 차이였지만.
“……너무 믿었을지도 몰라.”
레드 홀스와 함께 달려왔던 지난 시간을 지나치게 맹신했었기에 이런 결과를 낸 것이라고.
정유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아냐. 그쪽이 가사 전달력도 훨씬 좋았어. 설마 스토리를 그런 식으로 만들 줄은 몰랐지 뭐.”
미네랄 소드를 움켜쥔 용사의 이야기를 선사한 스틸러블리.
고꾸라진 성검, 몰락한 엑스칼리버 이야기를 하는 RRR.
“노래 선곡부터 잘못했을지도 몰라. 아니, 괜히 RRR을 라이벌로 지목했나? 아하하하!”
이자연이 밝게 웃으며 정유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마. 우리 유나는 언제나처럼 최고의 연주를 보여 줬으니까!”
이자연에 이어 윤아민도, 김은영도 서로를 격려해 주며 미소를 지었다.
패배의 쓴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메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유나도 멤버들의 의지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고마워.”
그리고 그렇게 다시금 파이팅을 외치는 그녀들을 저 멀리 문 너머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 * *
“이제 괜찮은 거야?”
“타락 천사도 잡았다며?”
앤디와 제인이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단탈리온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프린시펄리티를 붙잡은 것은 크나큰 성과로다.”
확실히, 악마와 결탁한 천사를 붙잡은 것은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고일과 프린시펄리티. 악마와 천사.
둘의 연합을 부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기에 라이징 밴드를 지속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 느껴져야 할 터.
“헌데…….”
어찌하여 이리도 가슴이 답답하단 말인가.
-혹, 그대는 리온 님의 후계자가 아니신지…….
메타트론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던졌던 질문.
‘리온이라.’
그 이름을 들어 본 지도 얼마 만인지.
메타트론은 일단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언젠가 천계에서 이 몸을 용사의 후계자니 어쩌니 하고 부른다고 도미니온이 말했었지.
아마 그렇기에 ‘그 이야기’를 꺼낸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가슴 속 답답함은 바로 메타트론 때문인가?
그렇지도 않다.
[단탈리온 님, 방금 대천사의 기운이 느껴졌…….]
“조만간 마왕 총회를 개최하겠다. 준비하거라.”
그렇다.
메타트론의 현세 강림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게 아니다.
‘천계에서도 지금 라이징 밴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천사가 직접 내려오는 일은 없다.
기껏해야 하급 내지 중급 천사 라인에서 정리하는 게 일반적.
그러나 이번에는 메타트론이 직접 내려왔다.
빙의도 아니고, 홀로그램 같은 잔상도 아니다.
‘진짜 본체…….’
그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기에.
이제는 마계에서도 더 많은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천사라 할지라도 이 몸의 돈벌이를 막을 수는 없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여기 계셨습니까.”
열반 밴드의 능선, 탄불, 허당이 앞으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더냐.”
“아미타불……. 강아지와 함께 현장을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나고서야, 겨우 분석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시루베로스에게 이들을 광고 촬영 현장으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해 두었었다.
“결론이 나왔는가.”
“예. 이걸 보시지요.”
능선이 끊어진 실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 실에서는 어두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예상대로군.”
가슴 속이 왜 이리 답답한가 했더니.
“프린시펄리티여. 동료가 있었는가.”
이미 소멸해 버린 가고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어디에서 이 마기를 만들어 왔단 말인가.
해답은 하나다.
“또 다른 악마와 손을 잡은 모양이군.”
“이게 뭔데?”
“아, 그때 그 실 아냐?”
앤디와 제인도 이게 무엇이냐며 얼굴을 들이밀며 궁금해했다.
이게 이리도 궁금하단 말인가.
“훗. 12군단장, 13군단장 답구나.”
“……그놈의 군단장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왜, 난 좋은데.”
“으이그. 너도 진짜 중증이다.”
앤디와 제인의 수다를 듣던 나는 조용히 실을 잡았다.
“어디…….”
실을 위로 치켜들고 고기를 입으로 밀어 넣듯이 실을 넣었다. 그리고 실의 맛을 탐닉했다.
“쩝, 쩝쩝.”
“……뭐하냐?”
“쩝쩝. 그러한가.”
이 맛인가.
“프린시펄리티 혼자가 아니군.”
역시나.
이 실의 주인은 프린시펄리티가 아닌 다른 이였다.
“적어도 상급 악마 이상인가.”
방심했었다면, 프린시펄리티를 붙잡은 것만으로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안심했을 터.
하지만, 이 몸, 마왕 단탈리온은 그렇지 않다.
언제나 신중하게 움직이고, 최선의 책략을 생각하는 존재.
“그렇기에 그대에게 감시를 맡기었다.”
콰앙!!!
“우왓! 또 뭐야!?”
“훗. 제때 움직였구나.”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그곳에서 우뚝 서 있는 남성을 바라보곤 히죽 미소를 지었다.
* * *
똑똑.
“네!”
“스틸러블리 멤버 분들, 모두 계십니까?”
스탭 카드를 매고 있는 남성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저희 다 있어요. 촬영 가나요?”
“아, 다들 계셨군요. 다행입니다.”
남성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죄송한데, 감시자 역할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김은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성이 손을 들고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금색과 흑색의 실이 튀어나오며 스틸러블리 멤버들의 입을 향해 날아갔다.
샤샥
쉬익-!
“아……!!”
날아오는 물건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김은영을 비롯한 스틸러블리 전원이 몸을 굳히는 순간.
파팟!
콰앙!!!
갑자기 나타난 남성에 의해 스탭진 남성의 손이 바닥으로 내리쳐졌다.
“또 방해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습니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 있던 김은영의 앞을 막아선 남성.
큰 키에 말상 얼굴을 한, 짐승과도 같은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남성.
“괜찮으십니까, 다들.”
“진태 씨……!”
오로바스, 박진태가 손끝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