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조력자 (2)
천계의 모든 사항을 관장하고 논의하는 원형 홀.
“크크…… 크흐학……!”
그 한 가운데에서 메타트론과 도미니온은 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프린시펄리티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하여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
메타트론이 손을 들어 위에서 보이지 않는 천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프린시펄리티가 목을 움켜쥐고는 괴로워했다.
“끄…… 으아아아!!!!”
“바른대로 고하라. 그래야만 그대의 처분이 약해진다.”
천사인데도 인간을 농락하고, 천계를 농락했다.
결정적으로 도미니온은 물론이고, 천계의 대천사 메타트론마저도 농락해 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천사의 날개를 모조리 박탈해 버리고 당장이라도 인간계로 추방해 버리고 싶었지만, 메타트론은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숨겨 왔느냐.”
무려 대천사의 눈을 피해 다녔다.
그 비밀을 알아야 한다.
프린시펄리티는 어디까지나 하품천사.
레벨로 따지자면 주천사 도미니온보다도 한 등급 아래의 천사다.
그런데도 선배인 도미니온은 물론이고, 대천사의 감시망조차도 우습게 여기며 돌아다니고 인간들을 농락했다.
그게 어째서 가능했던 걸까.
그걸 알아내지 못하면, 프린시펄리티를 쉽게 추방할 수 없다.
“대답하는 걸 허락하마. 말해 보거라.”
메타트론이 신성력을 거두어들였다. 프린시펄리티가 크큭, 웃으며 메타트론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말하란다고…… 쿨럭! 말할 것 같습니까……?”
“……이게 끝까지 반성을 하지 않는구나.”
“어차피 지금쯤이면……. 크크크…….”
그때, 프린시펄리티의 앞을 도미니온이 막아섰다.
“지금, 뭐라고 했어?”
“……뭐가요?”
“지금쯤이면, 이라고 했어?”
도미니온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일렁였다.
“뭘 꾸며 놓은 거야!!!”
“하하하……. 선배도 영락없는 천사군요.”
프린시펄리티는 그저 조롱만 할 뿐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연신 키득거리며 두 천사를 비웃을 뿐.
“곧 재미난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뭔가 있구나.”
도미니온이 눈을 부라리며 프린시펄리티를 노려봤다. 하지만, 프린시펄리티는 그깟 눈빛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며 코웃음을 날렸다.
“어차피 이제 와서 두 분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연약한 천사 따위,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천계의 천사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행하지 못한다.
그게 어떤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처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은 인간계로 추방하는 것.
하지만, 지금의 프린시펄리티에게 그 정도 처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프린시펄리티가 이빨을 보이며 메타트론에게 말했다.
“대천사님도 그렇죠? 아무리 제가 잘못을 저질러도, 당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네 놈.”
“어쩌실 겁니까. 단순한 협박 따위, 저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신성력으로 고통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그깟 인간계 추방도 저에게는…….”
“그래?”
이죽거리고 있는 프린시펄리티의 얼굴을 응시하던 도미니온이 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완벽한 사커킥이었다.
퍼어억!!!!
“크아아악!!!!”
프린시펄리티의 얼굴이 거의 직각으로 휘어지더니 뒤로 날아갔다.
도미니온의 돌발 행동에, 메타트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도저히 천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행동이었으니까.
“쿨럭! 자, 잠깐……!”
“잠깐은 개뿔.”
욕을 내뱉은 도미니온이 한 번 더, 프린시펄리티의 얼굴을 오른발로 가격했다.
이번에는 각력 강화를 걸어 두고서 휘두른 참이었다.
빠악!!!!
“커헉……!”
프린시펄리티의 입에서 이빨 하나가 부러지더니 튀어나왔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천사……!”
“지랄.”
생각지도 못한 도미니온의 말에, 프린시펄리티의 어깨가 흠칫 떨려 왔다.
“역시, 단탈리온 데스맨 씨처럼 해야 했네.”
이 녀석은 말로는 입을 열 놈이 아니다.
신성력으로 고통을 줘 봤자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천사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해야 한다.
천사의 체면? 위엄?
지금 인간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데스맨 씨,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그래 단탈리온 데스맨 씨라면 아마.
이렇게……!!
결심을 내린 도미니온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프린시펄리티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끄, 끄아아아아!! 그만!!! 그마안!!!!!”
그리고는 프린시펄리티의 한쪽 날개를 잡고, 등은 발로 뭉갠 채로 붙잡은 날개를 뜯어내기 위해 손에 꽈득 힘을 주었다.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도미니온! 멈추거라!”
보다 못한 메타트론이 도미니온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도미니온은 메타트론을 바라보지도 않고는 소리쳤다.
“분명 데스맨 씨라면!!! 천사의 날갯죽지를 찢어 버렸을 겁니다!!!!”
도미니온이 절규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데스맨 씨뿐 아니라……!”
그래, 그들이라면!
“앤디 씨도, 제인 씨도! 진태 씨도!! 모두 그 노래를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요!!!!”
‘천사인 척하지 마.’
그들은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프린시펄리티!!! 넌 천사인 척하고 다닐 자격이 없어!!”
자격이 없는 천사에게 이런 백색 날개 따위!
사치 중에서도 이런 사치가 없다!
“그러니 그 날개를 당장 내놔!!!!!”
“으아아아아악!!!! 차라리 신성력을 박탈해!!! 이게 천사가 할 짓이냐!!!!!!”
“천사고 나발이고 지랄!!!!! 넌 천사가 아니잖아!!!! 이제 와서 천사 찾지 말란 말이야!!!!”
“크으어, 끄아아아아악!!!!!”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프린시펄리티.
그런 프린시펄리티의 등을 오른발로 꾸욱 누른 채, 날개를 잡은 양손의 악력을 더욱 가하는 도미니온.
그리고 그걸 말려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막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대천사 메타트론.
“이런 미친……! 메탈 밴드랑 같이 다니더니 정체성을 잃은 거냐, 정신 나간 천사년아!!!!”
“오냐, 내가 너보다 정신이 나갔는지 아닌지 어디 한번 확인해 보자!!! 당장 날개 안 내놔!!!”
RRR과 함께 다니면서 메탈화 되어 가는 도미니온의 양손에 의해.
쫘아아아아악!!!!
프린시펄리티의 날개 한쪽이 사정없이 찢어졌다.
“아아……. 아아아아……!!”
지금까지 굳세게 달려 있던 날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없고 처량하게. 백색 깃털이 옆구리 터진 구스다운의 거위 털처럼 휘날렸다.
그리고 도미니온은.
“퉤!!”
그녀의 입가에 묻은 백색 깃털을 땅바닥으로 내뱉으며 남은 한쪽 날개를 뜯으러 프린시펄리티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나 더!!”
“사, 살려 줘!!!!”
* * *
[데스맨 씨!!!]
도미니온이로군.
“무슨 일인가.”
[배후가 있어요!]
도미니온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들어 보니 날개를 찢어 내는 고문 결과, 동료가 있다는 걸 알아낸 모양이었다.
허나, 역시나 느리다 주천사여.
“그러한가. 또 다른 정보는?”
[네! 아직 고문 중이니 더 정보를 얻겠습니다! 우선은 당장 경계 강화를……!]
“그럴 필요는 없느니.”
나는 손을 들어 스틸러블리의 대기실로 튀어 나간 남성을 가리켰다.
“동료라면 우리가 이미 포착했도다.”
[헉, 어떻게……?]
그러니 자네가 하수라는 거다 도미니온.
나는 그걸 밖으로 꺼내기보다는, 오히려 간단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동료의 존재를 의심하는 건 전장에서는 기본 덕목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오로바스를 지원한다.
나는 오른손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오로바스가 있는 방향으로 쏘아 내렸다.
‘퀘르포 타쿤.’
서번트의 움직임을 강화해 주는 버프 마법도 섞어서 말이다.
* * *
“…… 칫!”
오로바스에 의해 자신의 책략을 들킨 남성이 혀를 찼다.
상대는 박진태 한 명.
인간 하나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을 터.
그러나 어째서인지, 남성의 기운이 보다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숨겨 둔 기운을 방출하듯이 말이다.
고오오오오오오
이건, 불안하다.
아직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피하지 않고 저 남자를 때려눕힌다?
그건 더더욱 위험해 보였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큰일이다!’
그래서 남성은 최대한 기합을 내지르며 지금 상황을 타개하려 힘썼다.
“으오오오오오!!!!”
다리에 각력 강화를 걸어서 빠르게 발을 놀린 남성의 신형이 복도를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타닷!
‘이거라면 도망갈 수 있어……!’
최대한 빠르게 방송국을 이탈한다!
이미 임무는 실패한 시점!
그렇다면 지금의 정보라도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그러나 남성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따로 각력 강화를 하지 않아도 신속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악마가, 그 앞에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
“어딜!!!”
콰앙!!!
오로바스가 전신의 근육을 끌어올려 크게 발을 굴렀다. 그의 다리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더니 오로바스이 몸이 쏜살같이 정면을 향해 쏘아졌다.
“이제 괜찮…… 헉!!!”
“느립니다.”
순식간에 남성을 따라잡은 뒤, 그의 앞으로 치고 나온 오로바스가 경주마처럼 뒷발차기를 날렸다.
“히히히힝!!!”
쾅!!!
“커헉……!”
머리에 뒷발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남성의 얼굴이 크게 꺾이며 날아갔다.
그런 남성을 바라보며 오로바스가 콧바람을 후웅 내뱉었다.
뚜벅.
“훌륭하다 박진태여.”
그리고 바닥을 뒹구는 남성의 앞으로 단탈리온 데스맨이 고고하게, 귀족과도 같은 기품을 유지하며 천천히. 그러나 절도 있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군.”
“꾸어…….”
“정체를 말할 필요는 없느니.”
단탈리온이 몸을 숙여 남성을 한 손으로 들고는 거대한 고기 맛을 보듯 혀를 할짝 움직였다.
“흠……. 챱챱.”
얼굴이 반쯤 돌아간 남성의 얼굴을 핥아 보던 단탈리온이 인상을 팍 썼다.
“더러운 천계의 맛이로군.”
“……이익!”
남성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틀며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힘을 썼다.
“흥. 쓸데없는 발버둥이다.”
그러나 단탈리온이 건 속박의 저주를 받은 남성은 몸을 축 늘어뜨리며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사…… 살려…….”
“목숨을 구걸하는가.”
허나, 이미 늦었다.
“그대는 알고 있는가.”
“무엇을…….”
“필멸자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니라.”
지금 이 남성은 천계의 힘을 받은 남성.
허나, 그 힘이 제대로 각성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때문에 남성의 몸은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도 점차 변조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 마치, 소멸하는 악마의 모습이로구나.”
“아, 악…… 마……?”
남성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지더니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끄…… 아아아아아아!!!”
“역시, 제거의 술(術)을 걸어 놨군.”
이미 이 지경이면 막을 수 없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꺾듯이 올리고는 남성에게 물었다.
“누구에게서 받은 힘이더냐.”
“마…… 말할 것 같으…….”
“멘떼 크몽떼.”
화아아악!
단탈리온의 흑마법을 정면으로 받은 남성이 입을 뻐끔거렸다.
“지금부터 내 명령에 복종한다.”
“……네.”
“누구의 도움을 받았느냐.”
“……저도 정확히는……. 그저…… 천사와…… 악마의…….”
“역시 악마인가.”
남성의 몸이 한층 더 녹아내려 갔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단탈리온이 빠르게 말했다.
“조건은 무엇이었느냐.”
“영원한…… 생……. 하늘로의…… 귀천(歸天)…….”
“죽음을 대가로 받았는가.”
죽음을 조건으로 걸다니.
악마와 천사의 합작이기에 가능한 것인가.
“허나, 악마가 있었다고 하였느니. 그 악마는 누구지?”
“그…… 는…….”
그 순간, 사내의 몸이 급속도로 녹아내려 갔다.
“으어어어으아아…….”
비명을 지를 힘도 없다는 듯, 축 늘어지는 남성의 몸.
그걸 지켜보던 단탈리온은 마력이 모조리 빠져 버린 평범한 남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흥. 수작을 부렸군. 허나, 정보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언제까지 숨어 있을 것인가.
진짜 적이 어디에 있을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
하물며, 방금 악마가 함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틀라여, 칠죄종을 예의 주시하거라.”
[존명!!!!!]
71위 마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시틀라와 군단장들이 경례를 올렸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탈리온이 손을 휙 뻗었다. 그러자 한쪽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리던 오로바스가 벌떡 일어서서는 단탈리온을 호위하듯이 걸어갔다.
* * *
“뭐……. 뭐야……?”
김은영은 여전히 놀란 두 눈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서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놀라기는 정유나, 윤아민, 이자연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이상한 남자가 튀어나와서는 최면술 같은 걸 걸려고 했다.
그러다 박진태가 나타나서 남성을 내쫓았다.
심지어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몸싸움이라도 했을 것이다.
“괘, 괜찮을까 진태 씨?”
윤아민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김은영이 드럼 스틱을 움켜쥐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 진태 씨!!! 저도 도울……!”
그렇게 앞으로 달려 나가던 김은영은 보았다.
누구보다도 늠름하게 남성다운 매력을 뿜어내면서, 방금 전 그 스탭을 들쳐 매고 걸어오는 박진태의 모습을.
“다들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 모습에 김은영은.
“괘…… 괜찮…… 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오로바스의 안부를 묻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썩 풀려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오로바스가 주저앉은 김은영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안았다. 오로바스의 따스한 손길을 받은 김은영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스틸러블리 멤버들은 어머어머,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PD한테 알려야지.”
생각보다 추진력이 있는 정유나가 가장 먼저 기보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정유나보다 더 추진력이 있는 기보성이 각력 강화라도 받은 것처럼 순식간에 현장으로 튀어오더니 사진을 몇 장 후다닥 찍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연예계 기사와 라이징 밴드 SNS에는 박진태가 김은영을 공주님 안기로 안고 있는 사진이 합성으로 만들어져 커플 짤의 신규 주자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아!!!!”
김은영의 절규와 함께
“훗. 악마의 편집을 다시 시작했군.”
“아주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기보성이 다시 악마의 편집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단탈리온과 오로바스의 웃음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