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93화 (93/110)

93화. 부러운 자식들

터벅, 터벅.

“누구…… 끼야아아악!!!!”

“…… 데스맨 씨는?”

김은영과 오로바스가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사이.

프린시펄리티의 남은 날개도 찢어 버린 도미니온이 다시 인간계로 내려왔다.

“……하아.”

“서, 서서서, 선배님!?!!?”

피칠갑을 한 얼굴 위로 백색 깃털을 덕지덕지 묻힌 모습으로 탑엔젤스 대기실로 돌아온 도미니온을 본 후배 천사들이 기겁했다.

“괘괘괘, 괜찮으세요!?”

“……괜찮아. 내 피 아니야.”

“그, 그런 문제가 아니라…….”

“됐고, 데스맨 씨, 어디 계셔?”

방금 전부터 연락을 넣어도 답변이 없다.

이번 사태를 잠재우느라 힘을 모두 쏟아서 기절이라도 한 건 아닐까.

‘아냐, 그럴 리는 없어.’

정말로 그가 리온 님의 후계자라면.

겨우 이 정도의 마력 소진으로 쓰러질 리는 없으니까.

“논의할 사항이 있어. 빨리……!”

“주천사 도미니온이여.”

그때 도미니온의 앞으로 단탈리온이 다가왔다.

“아, 데스맨 씨……!”

방금 전까지 도미니온은 프린시펄리티를 협박처럼 고문한 결과.

-아아아악!!!! 알았어! 말할게! 말한다고요!!!!

-어때, 날개 찢어지니까 이제야 좀 정신이 들어? 제대로 말 안 하면 손가락뼈부터 척추까지 싹 다 분쇄기로 갈아 버릴…….

-마마마, 말합니다! 말해요! 한다고요!

천사 생전 처음 받아 보는 모진 고문을 참지 못한 프린시펄리티로부터 배후에 대한 정보를 얻어 냈다.

-……설마 그들이?

-지, 지, 진짜라니까요! 아니 왜 또 머리채를 붙잡……! 꺄야악!!! 주먹 쥐지 마!!!

-거짓은 없겠지?

-어어어, 없어요! 없어!!! 진짜 칠죄종 추종자들이 종교 만들었다고!!!

프린시펄리티로부터 칠죄종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칠죄종을 추종하는 이들이 천계와 인간계에 생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건, 마계와 천계만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었던 천계의 대실책이라 할 수도 있는 지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도미니온은 인간계에서 함께 칠죄종을 막을 수 있는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배후는…….”

“칠죄종이다.”

그러나 도미니온이 먼저 말을 하기 전에, 단탈리온이 정답을 말했다.

그 대답에 도미니온의 눈동자가 꿈뻑거렸다.

“……어, 어떻게……?”

“주천사 도미니온이여. 그대는 여전히 느리구나.”

단탈리온이 거만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말했다.

“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노라.”

정말, 이 사람은 어떻게 된 건지.

도미니온은 이런 이에게 자신이 호들갑 떨면서 정보를 전달하려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역시, 데스맨 씨는 믿을 수 있어!’

타락했을지도 모를 천사들보다는, 눈앞에 있는 데스맨, 그리고 그 동료인 RRR 밴드 멤버들을 믿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도미니온은 굳게 믿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빠르시네요, 하하하.”

언제나처럼 상큼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훗. 오늘 미소는 봐줄 만하도다.”

“……네?”

“앞으로도 그러고 다니거라.”

단탈리온이 몸을 훽 돌렸다.

도미니온은 거울을 바라봤다.

프린시펄리티로부터 뿜어져 나온 피들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얼굴은 피로 얼룩져 붉어진 채로, 백색 깃털이 덕지덕지 양쪽 뺨과 눈, 입가에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히이이이이아악!!!!”

그제야 본인의 얼굴을 확인한 도미니온이 비명을 질렀다.

* * *

‘저 녀석도 메탈에 물들었군.’

아주 옳은 일이다.

“앞으로도 그러고 다니거라.”

주천사를 메탈로 물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의 힘은 역시나 무궁무진하다.

‘이 몸에 빙의한 사실에 저주를 내려야겠군.’

나는 본래의 주인, 김도권의 몸을 바라봤다.

운동도 열심히 했던 덕분에 피지컬도 꽤나 좋아진 상태였다.

“허나 아직 부족하도다.”

중급 천사를 메탈의 세계에 빠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하급 천사는 아니었다.

“역시 과도한 노출이 중요하군.”

즉, 우리의 노래를 장시간 노출시키지 않는 이상, 그들을 대상으로 메탈의 매력을 알려 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이 몸이 마계를 위해 헌신하고 있거늘.”

대체 칠죄종 그놈들은 무엇을 꾸미고 있단 말인가.

“마왕 총회에서 대책을 논의해야겠구나.”

나는 그 즉시 시틀라를 호출했다.

마계의 마왕들을 소집하기 위해서.

* * *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거야?”

“무슨 마왕 총회를 일 년에 두 번이나 하고 앉았어? 십 년에 한 번도 할까 말까 하구만.”

마왕들을 보좌하는 부관들이 중얼거리며 귀찮다는 듯 투덜거렸다.

방금 전 호출은 71위 마계의 시틀라가 보낸 것이었다.

‘긴급 마왕 총회 개최! 주최자: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마왕 단탈리온 님’

“단탈리온 님이 지구로 내려가신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너무 호출이 잦으신 거 아닌가? 긴급을 뭐 이렇게 많이…… 우리 마왕님들도 바쁘…….”

그렇게 투덜대던 부관들을 보며 마왕들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모두 닥치거라.”

“바, 바바 바엘 님!?”

1위 마계의 지도자, 바엘이 대검을 등에 멘 채 투덜거리던 부관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오오오

바엘의 몸에서 투기가 마계의 하늘을 찢어 버릴 듯이 치솟았다. 그 투기를 정면으로 맞은 부관들이 목을 턱, 잡고는 괴로워했다.

“바, 밥, 엘, 르님…….”

“누가 자네의 혀를 허락하였는가.”

바엘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마왕의 기운을 받은 부관이 입에 거품을 물고는 풀썩 엎어졌다.

“흥. 요즘 부관들은 지나치게 유약하군. 마성전쟁 때가 좋았어.”

“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서 그런 거잖아. 네가 이해해.”

바엘의 옆에서 부관들을 바라보고 있던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거참, 부관들 괴롭히지 말라니까.”

“긴급 총회를 우습게 보는 부관들은 싹 다 부관참시해도 부족하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상황을 파악해 보자고.”

그렇다.

오늘 총회는 그들의 친우 단탈리온의 요청.

그렇다면 단순히 친우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부르는 건 아닐 터였다.

이 자리에 모인 마왕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우웅-

대회의실에는 마왕들의 기운이 공명하며 살벌한 안개를 내뿜고 있었다.

“바엘, 기운을 갈무리하지 그러나.”

“흥. 마계의 미래보다도 본인의 위세를 더 중요시하는 19위 마계 주제에 이 몸에게 명령질이냔 말이더냐.”

“…… 말 다 했나?”

고오오오오

그렇게 바엘과 19위 마계의 주인, 살레오스가 서로 눈에 스파크를 튀기고 있을 때였다.

-다들 모였는가.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시틀라가 들고 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단탈리온! 괜찮은 거지?”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바르바토스였다.

항상 단탈리온을 위해 저주를 내리고 있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왕이었다.

-괜찮다. 그것보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말하지.

단탈리온이 무게를 잡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칠죄종을 예의 주시해라.

그 말에 자리에 모여 있던 마왕들이 모두 입을 벌렸다.

“칠죄종……?”

“그자들이……!?”

콰앙!!!

“어째서 그들이 움직인다는 건가!”

바엘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칠죄종. 7개의 거악.

그들은 그 어느 마계에도 속하지 않고 본인들만의 고고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따라서 전면에 나서지도 않으며, 본인들의 만족을 위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그 이름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만 행할 수 있으면 되는 법.

마성전쟁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대체 왜 그들이 움직였지……?”

바르바토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물었다.

“그 선비질이나 하는 악마들이 왜? 이유도 파악했고?”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아직이다.

하지만.

단탈리온이 뒷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하느니.

칠죄종의 움직임이 이상해진 만큼, 마계도 준비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마계의 실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 * *

이 정도 겁을 주면 되겠지.

나는 통신을 마무리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거만하게 눈을 내리깐 모습이었다.

“오로바스여.”

“예! 단탈리온 님!!”

“칠죄종의 종교에 대해 알아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봐서 시틀라에게 연락을 취하거라.”

“예!”

“용건은 소환진이다.”

오로바스가 무릎을 꿇으며 경례를 올렸다.

“존명!!!!!!”

“좋다. 그리고 12군단장, 13군단장…….”

“그냥 앤디, 제인이라고 평범하게 부르면 안 되냐?”

앤디가 투덜거리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아직도 군단장이라는 직함이 부끄러운 모양이군.

그럴 수 있다. 에키드나도 처음에는 그러했으니.

“칠죄종이라는 악마가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그건 알아. 그래서?”

“조심하거라. 당분간은 항시 시루베로스를 호위로 데리고 다니거라.”

나와 오로바스가 모두 바쁜 와중이면,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시루베로스뿐이다.

아직은 성체가 아니지만, 어쨌든 녀석도 마계의 마물.

위험할 때 도망갈 시간은 벌어 줄 터.

“어쨌든 이 악마들에게 잘못 잡히게 되면, 그들의 노리개가 된다. 그렇게 되면 꼭두각시나 다름없지.”

그 순간, 라이징 밴드는 물론이고 RRR 밴드의 음악적 성공도 도모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앤디와 제인이 칠죄종이나 칠죄종의 종교의 타겟이 되는 건 피해야 한다.

“앤디, 제인은 팔찌를 풀지 말고 항상 둘이 함께 다니거라.”

“시루베로스도 데리고?”

“그러하다. 전우조라는 것이다.”

그 말에 앤디가 단박에 이해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전쟁 용어를 이해하는가.”

“이래 봬도 군필자거든?”

앤디가 괜히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칠죄종이라는 거, 뭐야?”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 평소에는 마계나 천계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본인들이 원할 때 나타나는, 아주 해괴망측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민폐 캐릭터들이네.”

“응? 잠깐만요.”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성.

우리의 연습 영상을 촬영하러 온 박은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이 있는가, 공식 팬 1호여.”

“아, 네. 혹시 그 칠죄종이 일곱 가지의 거대 악을 말하는 건가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하다며 묻는 박은환을 보며 나는 깜짝 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

“아, 뭐야. 그거야 진짜?”

앤디도 일곱 가지의 거대 악이라면 알고 있다며 핸드폰을 열어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일곱 가지 거대 악의 레전드 매치!>

<전설들이 모였다!>

<티켓팅을 서두르세요!>

화면을 확인한 나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엇이더냐!!”

“이거 사람들끼리 유명 가수들이랑 배우들로 컨셉 잡고 놀았는데, 그게 밈처럼 되어서 악동 이미지 연예인들끼리 예능 찍는 게 있거든.”

앤디의 말에 따르면.

“즉, 그저 놀이를 위해 칠죄종을 언급하고 있단 말이더냐……?”

“응. 이거 요즘 인기 많아.”

칠죄종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는

급부상한 본인들의 인기 때문이란 말이었다.

“……부러운 자식들.”

“응?”

누군 라이징 밴드 한 번 우승하려고 개고생을 하고 있거늘.

“아주 누워서 코 푼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거구나.”

“이건 또 뭔 소리래?”

“좋다.”

감히 칠죄종 따위가 마왕보다 앞서가려 하는가.

게다가 마왕 단탈리온이 있는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위해 이상한 종교까지 만들고!

“이 몸도 예능에 나가겠다.”

“진심으로?”

앤디의 두 눈동자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훗. 그대도 마계의 12군단장답게 기대에 가득 차 있구나.”

“큰일 났네.”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큰일이지. 암.

나는 앤디의 혼잣말을 들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편. 라이징 밴드 4라운드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JB방송국 현장에서는,

“바꿨어?”

“어. 바로 바꿨지!”

라이징 밴드의 참가자.

홍대 인디밴드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에로틱싸커킥’ 밴드가 오늘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RRR봤지?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우리 밴드의 저력을 보여 주자!”

“좋아. 에로틱싸커킥! 에로빔 발사다!!!”

“냅다 싸지르자!!! 예이야!!!!”

그렇게 기합을 잔뜩 넣고 무대에 오른 에로틱싸커킥 밴드는

[서XXX!!!!]

[남은 XX을 꿀꺽 XXXX!!!!]

[XXX해 XX해!!!!]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외설적인 가사로 만들어진 19금 노래를 들고 무대를 했고.

4라운드 광속 탈락은 물론이며 본방에서마저도 편집되는 불운을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악마에게 쓰이기라도 했나 봐요!!!!”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어요! 한 번만 자비를……!”

그런 절규가 무대 전체를 울렸지만.

그 절규를 들어준 이는 없었고.

[라이징 밴드 참가 밴드, 에로틱싸커킥이 악마에 쓰인 까닭은?]

이라는 제목의 칼럼만 만들어 냈다.

당연히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악마에게 꼬이는 경우가 어디 있냐’, ‘핑계 한번 거지 같다’ 등의 조롱만 올라왔고.

“뭐야, 이 기사.”

그 조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누군가는,

“아주 재미있네.”

“민웅 씨! 준비되셨나요?”

상대를 향해 청량한 미소를 선보이며 밝게 일어섰다.

“네~ 그럼요~”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혓바닥을 입 안쪽으로 열심히 숨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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