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뮤지션 비긴즈
“예능에 나가고 싶다고?”
PC방 사장, 이연주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아직 라이징 밴드 안 끝났잖아?”
“그러하다.”
“그럼 인지도가 아직 예능 나갈 정도는 아니지 않나?”
이연주의 염려대로,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덕분에 인지도가 확 올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이전에 비해 올라갔을 뿐.
“예능에는 인지도라는 게 중요한 것인가.”
단탈리온이 입술을 꽈득 깨물었다.
“칠죄종도 나가는 예능을 이 몸이 나가지 못하다니. 통탄스럽도다.”
“아니면 진짜 무명들이 나가는 음악 예능이 있기는 한데, 여기라도 나가 보는 건?”
“무명들과 같이 있으라는 건가.”
“그래도 이 프로그램 나름 인기 많아. 너네 최근에는 광고도 찍었고, 라이징 밴드에서도 미친 컨셉으로 나와서 나름 코어 팬들은 생긴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여기에 참가할 자격은 되지 않을까?”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한 이연주가 모니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뮤지션 비긴즈>
“이게 그 프로그램이더냐.”
“응. 음악 예능인데 저기서 어떤 음악인지 맞히는 퀴즈도 하고 근황도 물어봐. 공연도 노래 하나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주고.”
“호오.”
“물론 못하면 편집.”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도다.”
단탈리온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 예능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면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뜻이구나.”
“어……. 높아지기는 하겠지? 좋은 이미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에게 좋은 이미지 따위는 기대해서는 아니 되느니.”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연주였다.
“참, 맞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인지도 얘기는 좀 하려고 했어.”
“무엇이더냐.”
“축가 요청 의뢰가 많지 않아.”
이전에 이연주와 헬스장 사장, 서갑수가 콜라보 홍보를 기획했을 때, PC방 손님 중 추첨을 통해 RRR이 직접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었다.
그래서 축가 희망자들은 추첨함에 신청 용지를 넣게 했었고, 이벤트 기간이 끝나 그 중 랜덤으로 뽑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몇 명이나 신청했느냐.”
분명 종이가 더는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미어터지고 있겠지.
단탈리온이 히죽 미소를 지으며 이연주가 들고 오는 신청함을 바라보며 눈매를 반달로 그렸다.
그런 단탈리온의 기대를 무참히 깨 버리겠다는 듯, 이연주는 신청함을 들고 바닥을 향해 탈탈 털었다.
툭.
“한 명.”
“무어라!?!?”
감히 마왕님이 직접 노래를 불러 주시겠다는데!
“영광의 이응도 모르는 필멸자들 같으니! 내 당장 PC방 손님년놈들을 족치러…….”
“난 그게 인지도 때문 같거든? 사실 라이징 밴드 안 보는 사람도 많아.”
단탈리온의 분노를 막아서며 이연주가 말했다.
“라이징 밴드 시청률은 기껏해야 7% 정도니까.”
“어째서냐! 이 몸이 그렇게 개고생을 해 왔거늘……!”
“기본적으로 밴드에 관심이 없으면 안 보는 게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이니까.”
취향에 맞지 않으면 아예 프로그램 자체를 보지도 않고, 너튜브 알고리즘에도 뜨지 않는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너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까 더 신청을 안 하는 거 같아. 난 그렇게 판단했어.”
“흥. 이 PC방에 ‘안경돼지여드름씹덕후들’이나 오니까 결혼을 생각하는 이들이 없는 것 아닌가!”
“우리 가게, 커플 데이트 명소로 유명하거든? 너도 많이 봤잖아?”
“……쳇.”
“그리고 그런 용어는 어디서 배워 오는 거야?”
“인터넷이다.”
“앞으로는 가려 가며 배워야 할 거 같은데……. 아무튼 지금 상황은 이래. 이해했지?”
걱정하는 이연주를 뒤로하고, 단탈리온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리고 오늘도.
커플 데이트를 하러 온 이들이 많았다.
“그 커플들이 모두 깨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뭔 소리. 단골 중에는 우리 PC방에서 연애하다가 결혼하고서도 오는 부부도 있거든?”
“끄응…….”
그럼 정말 이건 인지도의 문제이지 않은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단탈리온이 말했다.
“그 음악 예능, 주선을 부탁하지.”
“오케이. 대신, 알바 하루 더 추가 부탁.”
“……악마로군 자네는.”
“에이 뭘. 서로 윈윈! 그치?”
사악한 미소를 짓는 이연주를 보며 단탈리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예능인가.’
기다려라, 칠죄종.
지금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데스맨이 진격하겠다.
* * *
“하…….”
앤디가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이거 봐 봐.”
무슨 일이냐며 묻는 제인에게 앤디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ㅋㅋㅋㅋㅋ야 데스맨 일하는 PC방 가 본 사람?
-ㅇㅇ존잘임
-인정.
-그거 말고 ㅋ 거기 이벤트도 봄? 쓰리알이 결혼식 축가 불러준다던데.
-앜ㅋㅋㅋㅋㅋ데스메탈 축가냐곸ㅋㅋㅋ
-가서 또 심장 찌르는 거 아닌갘ㅋㅋㅋㅋ
-신랑 신부의 가슴에 칼을 꽂아!!! 이런 거냐!! 이게 메탈이다!!!!
-어떤 미친놈이 축가를 신청해 메탈 밴드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앤디가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내가……. 내가 축가는 하지 말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 RRR이 축가를 불러주는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앤디는 격하게 반대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야. 난 절대 반대!
-무슨 소리인가, 앤디여. 마왕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선사하는 것이거늘.
-아, 그건 네 생각이고!!!! 여긴 인간계라고!!!!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앤디가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이거 봐!!! 또 조롱거리만 늘었잖아!!”
“으음……. 그러게, 메탈로 축가 부르면 안 되나.”
“안 되는 게 아니고, 안 어울리지 당연히!! 너도 데스맨에게 물들었냐고!!”
믿었던 인간, 제인마저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에 앤디는 눈물마저 찔끔 나올 정도로 억울해했다.
“우리 밴드가……. 어쩌다가…….”
“왜 울고 있는가, 앤디여.”
그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단탈리온이 합주실에 들어왔다.
“마침 잘 왔다! 야! 너 때문에 또 우리가 놀림당하고 있다고!”
“무어라?”
감히 마왕을 놀림거리로 삼아?
성을 내며 앤디의 핸드폰을 낚아채듯 빼앗은 단탈리온의 얼굴이 서서히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메탈 음악의 진가를 모르는구나!”
실제로 마계에서도 군단장들이 결혼할 때 축가를 불러주었던 단탈리온이었다.
“흥분할 거 없어.”
반면 제인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어째서냐.”
“사람들이 메탈을 하는 사람들은 축가 같은 발라드나 분위기 잡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러는 거야.”
“호오. 일리가 있도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락발라드도 잘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면 음악 스펙트럼이 넓다고 오히려 칭찬받을걸?”
“아주 옳은 판단이로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강렬한 음악들 뿐.
락발라드라고 하는 장르를 선보인 적은 없다.
그럼 이 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해야겠구나.
“그렇기에 더더욱 이연주에게 부탁한 음악 예능이 중요하다.”
“예능?”
“우리는 예능에 나간다.”
“무슨 예능인데?”
“음악 예능이라고 한다.”
“음악 예능에? 진짜로?”
“이연주 사장이 주선하기로 했다. 뮤지션 비긴즈라고 하는 곳이다.”
제목을 들은 앤디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내뱉었다.
“그거 싱어송라이터들이 나가는 프로잖아.”
“밴드는 없느냐?”
“없지. 밴드의 불모지라고 해야 하려나.”
이동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기에 악기가 많은 밴드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시즌 1에 한 팀이 있기는 했는데, 악기 사운드도 제대로 못 들려주고 그래서 중도 하차했었어. 방송사랑 그 밴드랑, 욕 엄청 먹었었거든.”
“우리도 그거 나가려면 준비 많이 해야겠네.”
“그치. 그런데, 거기서 뭐 하려고?”
“우리는 메탈발라드를 보여 준다.”
“메탈…… 뭐?”
앤디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시 물었다.
단탈리온이 눈살을 찌푸리며 앤디에게 말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해서야 천수관음주법을 선보일 수 있겠느냐.”
“그거 체력 소모 너무 큰데. 아니 이게 아니라, 메탈 발라드라고?”
“그러하다.”
“너 발라드 제대로 안 해 봤는데 괜찮겠어?”
“훗. 까짓거 별거 아니다.”
단탈리온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넓게 쫙 펼쳤다.
“이 몸에게 불가능은 없느니.”
“……저 자신감 때문에 더 불안해.”
앤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JB방송의 예능 국장, 김정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신청자 명단을 보고 있었다.
“으으음…….”
무언가 미묘하다.
곧 촬영이 시작될 예능, 뮤지션 비긴즈 3기의 멤버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진짜 이게 최선이야?”
김정윤이 종이를 팔락팔락 흔들며 말했다.
“이번에도 싱어송라이터만 출연시켜서 어쩌자는 거야.”
김정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정면을 응시했다.
“시즌1, 2 전부 싱어송라이터만 내보내서 시청자들이 욕한 거 알아, 몰라?”
“하지만 국장님…….”
앞에서 죄지은 사람인 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뮤지션 비긴즈의 PD, 서민유 PD가 중얼거렸다.
“싱어송라이터 아니면 내보낼 가수가 없는데요?”
“래퍼도 있고 아이돌도 있고, 발라더도 있고 댄스 가수도 있고 많잖아. 그런데 왜 다 싱어송라이터냐고.”
“예전에 밴드 한 팀 내보냈다가 욕만 먹었고, 싱어송라이터들 데리고 오니까 반응도 좋았는데…….”
“그때야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다들 질린다고들 하는데 또 이러면 어떡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서민유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본인도 싫어서 싱어송라이터만 부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게……. 우리가 예능 방송이라 퀴즈도 맞추고 예능감도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중간에 자작곡 노래도 만들어서 불러야 하잖아요.”
“그치.”
“그런데 솔직히 지금 예산으로 유명 아이돌 데리고 올 수는 없고, 래퍼들도 유명 래퍼 아니면 솔직히 안 데리고 오느니만 못하잖아요. 실력 없는 아이돌 데리고 나왔다가 자작곡 승부에서 망하면 우리한테 그런 거 시킨다고 욕할 게 뻔하고, 본인들 실력 없다는 인식 박힌다고 꺼리기만 하는걸요. 방송 구성 바꾸는 건 저번에도 반대하셨잖아요.”
“끄응…….”
속사포처럼 쏟아진 서민유의 말에 김정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김정윤이 오른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눈을 찌푸렸다.
“진짜 그럼 대안이 없어?”
“예산을 늘려 주시거나…….”
“어이구. 예산은 얼어 죽을.”
김정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도 시청률은커녕 코어팬 겨우 유지하는 프로그램인데, 시즌 3까지 허가해 줬으면 됐지 뭘 더 바래?”
“하지만 국장님, 그럼 이번에도 B급 싱어송라이터를 내보내야 해요.”
“기존 출연자 중에서 인기 좀 얻은 애들은 안 한대?”
“몸값이 너무 올라서…….”
“망할 새끼들.”
김정윤이 탄식하며 책상을 탕 내리쳤다.
“진짜 대안 없어, 그럼?”
“아무리 생각해도 예산 올려서 실력자들 좀 데리고 와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작사, 작곡 직접 하는 아이돌을 한 명이라도 데리고 올 수 있고…….”
“이게 진짜 정신 못 차렸네. 아니면 너도 기보성이처럼 한 건 해내던가! 그 뭐야 악마 밴드 같은 애들!”
“저도 그런 애들 있으면 당연히 땡큐죠! 그런 어그로 끌 수만 있으면 제발 좀 데리고 와 주세요!”
“네가 찾아야지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죄송해요.”
빠르게 꼬리를 내린 서민유를 보며 김정윤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효과적인 방법이 정말 없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우웅-
“어, 무슨 일? 응? 그치, 응. 아는 밴드가 있어? 응응…… 뭐……?”
불현듯 통화를 이어 가던 김정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 진짜야!?”
“국장님?”
“잠깐 조용히. 아냐, 아냐. 계속 말해. 진짜 걔네 맞아? PC방 알바를 하는 애라고? 정말? 아, 그때 그 전국 노래 자랑 발표회도 걔네야? 정말? 뻥 아니지? 야, 이거 거짓말이면 우리 선후배 관계 끝이야. 언니 성격 알지? 에이, 알았어 알았어! 대신 출연료는 많이 못 주는데…… 괜찮아? 오케이!!!! 내가 술 살게!! 아, 홍보 많이 해 주라고? 알지 알지! 밴드 제대로 홍…… 응? PC방을 홍보……? 야, 그건 좀 아니지! 암튼 추천 땡큐!”
전화를 끊은 김정윤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서 PD.”
“네?”
“해결했다.”
“해결…… 이요?”
“RRR!! 뮤지션 비긴즈에 출연시키자!!!”
“하지만 밴드는 어려움이…….”
“아, 한다고 하잖아 본인들이! 내보내 일단! 내보내고 생각해!”
이걸로 싱어송라이터만 나가는 방송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김정윤이 됐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운 좋아서 라이징 밴드처럼 이슈 좀 터트려 주면 좋고! 아, 사고 치면 안 되겠지만.”
“진짜 사고 치면 안 되는데…….”
“대신, 걔네 실력은 확실하니까 방송 컨셉에 잘만 맞춰 주면 분명 성공할 거야!”
지금처럼 싱어송라이터로만 점철되는 것보다는 몇 배는 낫다!
그렇게 판단한 김정윤이 서민유에게 말했다.
“출연진에 당장 추가하고, RRR매니저? 본인들? 아무튼 그쪽에 연락 넣어서 일정 확인해 봐! 리더가 보컬이니까 거기에 다이렉트로 꽂던가!”
“네, 네!!”
걱정과 기대를 안은 채.
RRR의 뮤지션 비긴즈 출연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