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차량 지원
이연주 덕분에 뮤지션 비긴즈 출연이 확정된 RRR 밴드.
그리고 며칠 뒤, 뮤지션 비긴즈 출연진을 추가한 예고편이 방송되었다.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미친. 메탈 밴드가 여기에!?
-형님이랑 누님이 왜 여기서 나와
-아니, 돌았냐고. JB는 메탈화 되어 가는 거냐!
-발라드만 불러야 하면 어떡함?
-이러다 멸망뮤지션 비긴즈 되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
RRR의 출연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메탈 밴드, RRR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단탈리온 일행에게도 알려졌다.
“와……. 우리가 진짜 나가네.”
앤디가 예고편 영상을 보면서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하하하……. 메탈 밴드가…… 싱어송라이터들의 판에서…… 망신이나 당하러…….”
“야! 정신 차려!”
제인이 앤디의 뒤통수를 퍽 때렸다.
“허헉! 내가 무슨 생각을!”
“하여간 넌 그 마인드가 문제야. 지금 그런 마인드로 뭘 할 수 있겠어?”
“제인의 말이 옳도다.”
뚜벅.
단탈리온이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한 손에는 시집을 든 채로 앤디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라면 상대의 목을 쳐내고 뼈를 갈아 버릴 각오를 해야 하는 법.”
“으응?”
“메탈발라드를 한다고 해서 진다는 생각은 버리거라.”
“지, 진다는 생각은 안 했어! 그냥 우리가 어울릴까, 했던 거지.”
앤디의 말에 제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어울리게 만들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앤디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단탈리온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마계 군단장이라는 인간들이 어찌 이리 유약하단 말인가.”
“굳이 따지자면 인간계 군단장 아냐?”
“어쨌든 군단장은 군단장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어울리게 한다? 그게 무슨 패배자 마인드인가.”
싱어송라이터가 잔뜩 나오는 뮤지션 비긴즈. 거기에는 방송에는 많이 나오지 않아도 음원 깡패라 불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메탈 밴드처럼 이름이 덜 알려진 경우 다소 애매할 수도 있는 게 사실.
그렇기에 단탈리온은 평소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는 거만한 목소리로 발을 한 번 굴렀다.
쿠웅!
“우리의 메탈 음악으로 그들을 물들여야 하느니라.”
단탈리온의 말에 앤디와 제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감히 하등한 인간놈들이 단탈리온 님을 이기려 들다니!”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오로바스도 크기 격분하며 말했다.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이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 맞춰 준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입니다! 어디 인간놈들이 건방지게……!”
“악마 숭배……?”
“예! 메탈 정신을 싱어송라이터들의 귓가에 때려 박아서 혼미하게 만들어야……!”
“진태여. 그 정도면 되었다.”
“핫!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흥분을……!”
오로바스가 한층 더 고개를 숙이며 경례를 올렸다. 단탈리온이 손을 한 번 휘젓고는 말했다.
“잘 들었느냐.”
“어……. 듣기는 들었지.”
“그치, 응.”
“우리는 우리의 색깔대로 간다.”
싱어송라이터가 어떻단 말이냐.
우리는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을 추구하는 밴드.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아간다.
“분장 도구와 여행용 악기들을 점검하거라.”
* * *
서울의 한 디저트 카페.
약 십여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고, 카페 안에는 섭외된 연예인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뮤지션 비긴즈에 참여하기로 한 음악인들이었다.
RRR은 뒤늦게 참가가 결정된 참이라 이번 미팅에서는 제외되어 있었지만.
“명단 보셨어요?”
“아, 밴드가 나온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메탈!”
RRR 밴드의 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출연진 중 가장 고참인 싱어송라이터 가수, 신태정이 말했다.
“민웅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이한 조합이어서 재밌을 거 같네요.”
“그렇다고 여기 나가실 건 아니죠?”
“에이, 저도 그 정도로 탐욕스럽지는 않아요.”
“하하하하!!”
조민웅의 농담에 미팅에 자리한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캐릭터 겹쳐서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하하!!”
사람들이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조민웅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조민웅은 일곱가지의 거대 악, 탐욕이라는 컨셉을 맡고 있었다. 팬들이 만들어 준 역할이었기에 탐욕스러운 악마처럼 컨셉을 잡고 활동해서 종종 악마처럼 연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RRR 밴드는 마왕군을 컨셉으로 잡고 있다.
그러니 캐릭터가 겹칠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을 다른 이들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이고, 저는 지난 시즌에 잘했으니까, 굳이 또 나갈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죠.”
“그래도 이렇게 오프닝 예고편에는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신태정이 조민웅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조민웅이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요. 아니면 뭐, 밥이라도 사 드려야 믿으시려나?”
“하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미팅 시간이 이어졌고.
모두가 만족해하면서 <뮤지션 비긴즈> 예고편 촬영 만남을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사를 하고 뒤를 돌은 조민웅의 입가가 미묘하게 살짝 올라간 사실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흐음.”
차에 올라탄 조민웅은 작게 중얼거렸다.
“마왕군 컨셉의 밴드라…….”
“민웅 형님, 무슨 일 있습니까?”
로드매니저의 질문에 조민웅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이제 들어갈까요?”
“네, 그럼 자택으로 모시겠습니다.”
등받이에 몸을 누인 조민웅은 RRR 밴드의 컨셉과 멤버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수상한 점은 많기는 한데…….’
하지만 확신은 없다.
그렇기에 우선은.
‘괜히 여기서 엮이면 피곤해질 거 같으니까.’
굳이 직접 나설 필요까지는 없겠지.
눈을 살짝 감은 조민웅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 * *
“호오, 바로 다음 주인가.”
촬영 일정을 전달받은 박은환이 멤버들에게 일정을 알려 주었다.
“우선 그전까지 악기들을 구해야 해요. 여행용 악기는 다들 찾으셨죠?”
“나야 뭐 베이스 들고 가고……. 앤디는 여행용 기타 있지 않아?”
“이거 일렉 들고 가야지. 여행용은 통기타잖아.”
“아냐, 그거도 들고 가자. 혹시 포크송 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그렇네.”
앤디와 제인이 분주하게 짐을 정리해 나갔다.
어떤 것들을 가져가면 좋을지 논의하면서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에서 하나씩 내용을 체크해 나갔다.
“그나저나 이거 다 들고 갈 수는 없는데?”
“으음…….”
악기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저 많은 걸 다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차가 있나?
“제인, 너 차 있냐?”
“있겠냐?”
“끄응……. 혹시 아저씨 차를 빌릴 수는…….”
“아빠가 칼 들고 쫒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면…….”
주위를 둘러본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저 악마들이 면허가 있을 리가 없지.”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가.”
단탈리온이 스윽 다가와서는 물었다.
다른 사람이면 무섭다며 호들갑을 떨 만한 상황이었지만, 앤디와 제인은 이제 그런 정도는 익숙해진 데다가 팔찌의 힘 덕분에 전혀 떨지 않았다.
“아니, 악기 때문에.”
“악기는 있지 않은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차가 없잖아. 저거 어떻게 들고 갈 건가 해서.”
앤디가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왜 걱정하는가.”
단탈리온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허공에서 튀어나오더니 이상한 구멍을 만들었다.
“……이게 뭐야?”
“<아공간 차원의 문>이니라. 여기에 모든 아이템을 넣어서 보관할 수 있다.”
“여기에 악기를 보관하자고?”
“그러하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려 줘! 이 나쁜 마왕!”
제인은 너무 좋은 방법이라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반면, 아공간 차원의 문을 바라본 박은환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마, 마술!?”
“야, 이 미친놈들아! 그거 당장 집어넣어!”
그 바람에 마왕, 아니 단탈리온이 악마라는 걸 들키기 전에 황급히 상황을 수습하는 앤디였다.
* * *
“안되는가.”
“안 되지! 너 마왕이라는 거 숨겨야 한다며!”
박은환에게 적당히 커피 심부름을 시켜 내보낸 앤디가 단탈리온을 앞에 앉히고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거기 넣었다가 방송 현장에서는 어떻게 꺼내려고! 생각을 해, 생각을!!!”
“감히 이 몸에게 생각을 하라고 하다니, 간이 부었…….”
“그럼 스탭진들 잔뜩 있는 자리에서 흑마법으로 아공간 게이튼지 뭔지 열고, 거기서 악기까지 꺼내면 잘도 너를 인간으로 보겠다. 그치?”
“……나쁜 새X.”
“너 지금 욕했지!?”
“아니다.”
“했잖아!”
“가는 귀가 먹었는가. 하지 않았다.”
“……쓰읍. 아무튼, 저 아공간 어쩌고는 안 돼! 너 개인적으로 쓰는 거면 몰라도, 우리 짐을 다 저기에 넣었다가는 큰일이라고!”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둘 중 하나구나.”
“응?”
“저 많은 짐을 들고 가거나, 혹은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을 구하거나.”
“그렇…… 지.”
“우선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은 어렵지 않은가.”
그 말에 앤디가 침울해졌다.
“그치……. 우리 돈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없느니.”
“눼에눼에. 아주 자알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자랑이다, 인마!”
“자네가 말해 놓고 나에게 왜 성질인가. 아무튼, 차량은 어렵지만 직접 들고 가는 건 어렵지 않도다.”
단탈리온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단탈리온의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로바스가 벌떡 일어섰다.
“하앗!!”
오로바스가 기합을 넣자 그의 근육이 울끈 불끈 튀어나왔다. 그는 합주실에 있는 각종 앰프들은 물론이고 기타, 베이스를 모조리 등에 짊어졌다.
“저희 오로바스족은 전쟁 시 짐꾼으로도 활약했었지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 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앤디가 잠시 당황해서 말을 멈추었다.
“훗. 획기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하등한 인간들은 생각하지 못할…….”
“아니, 근데 저러는 것도 악마라거나 그런 거 들키는 지름길 아냐?”
제인이 마치 쿵푸 영화에서 비정상적으로 탑을 쌓아 올린 이처럼 짐을 짊어지고 있는 오로바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질문에 단탈리온과 오로바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훗. 상정 내의…….”
“으휴 정말. 차라리 아빠한테 부탁해 볼까? 차 빌려 달라고.”
“그래도 괜찮은 것이냐.”
“욕먹기는 하겠지……. 가게 차량이니까 아빠 장사에도 써야 하고.”
끄으응.
그렇게 모든 멤버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였다.
“커피 사 왔습니다!”
박은환이 문을 쾅! 열며 합주실로 복귀했다.
단탈리온을 비롯한 멤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그녀로부터 음료를 받았다.
“고마워요, 은환 씨.”
“에이 언니,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
“땡큐. 은환!”
“앤디 오빠, 언제 말 놓으라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렇게 박은환, 앤디, 제인이 꽁트를 찍고 있는데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너희들 진짜 재밌게 지내는구나!”
“이, 이 목소리는!?”
단탈리온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악마 같은 PC방의 지배자, 내로남불의 마왕 이연주 누나의 목소리로구나!”
“아주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치, 우리 알바 데스맨?”
이연주가 눈을 흘기며 합주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더냐.”
“응? 은환 씨한테 못 들었어?”
“아, 맞다! 제가 연락드려서 요청 드린 게 있거든요!”
박은환이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크게 펼쳤다.
“연주 언니가 차량 지원해 주신대요!!!”
“뭐!?”
“진짜요!?”
앤디와 제인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조금 연식이 된 승합차인데, 마침 남는 게 있거든.”
“남는 차가 있다니……. 얼마나 여유로운 집안이란 말이더냐.”
이 정도면 귀족 수준인가.
단탈리온이 중얼거렸다. 이연주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오빠가 쓰던 건데, 요즘은 탈덕해서 안 탄다고 해서 말이야. 아, 정비는 싹 끝냈으니까 걱정 말고.”
이연주의 말에 제인과 오로바스, 단탈리온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훌륭하다, 이연주 누나여.”
“대단합니다. 이렇게나 부를 갖추신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언니 최고!”
“더 놀라도 된다고. 하하하! 참, 래핑 제거는 예약이 밀려 있는 상태라 며칠 걸린다 그래서 첫 촬영은 그냥 가야 해~”
이연주의 말을 들은 RRR멤버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기며 넘어갔다.
오직 앤디만이 손을 살짝 들면서,
“아니 저기, 탈덕했으니까 안 탄다는 게 무슨 소린지는 물어봐야 하지 않아?”
이연주의 멘트에 수상함을 느끼고 연신 환호만 하고 있는 다른 멤버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내 다른 이들의 박수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 * *
그리고 뮤지션 비긴즈 첫 촬영 날.
부우웅.
끼익.
촬영 현장으로 범상치 않은 승합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차량을 발견한 뮤지션 비긴즈 스탭진들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저, 저게 뭐야……?”
“참가자 차량 맞지……?”
작은 뿔을 머리에 달고 있는 귀여운 소녀가 기타를 맨 채 뛰고 있는 스티커로 래핑이 된 이타샤(애니메이션CG, 캐릭터 등을 붙인 자동차)에서 RRR멤버들이 두 발을 내디디며.
쿠웅!
“위 아 더 베스트 데블스 오브 락앤롤!!”
“쓰리! 알!!!”
“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앤디만 제외하고.
“……미쳤다.”
그리고 그걸 바라본 서민유 PD는.
“진짜 미쳤다. 벌써 한 컷 나왔어!!”
“예고편에 넣을까요?”
“당연하지! 저 차로 예고편 썸네일 만들어!”
그렇게 <오타쿠 차를 타고 촬영장에 오는 참가자가 있다!?> 라는 제목의 <뮤지션 비긴즈> 예고편 영상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