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심히 쉽구나
“호오. 래핑인가.”
처음 이연주가 차량을 보여 주었을 때, 멤버들은 경악했다.
특히 앤디는 거품을 물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래서는…… 메탈이…… 모에하게…….”
“‘모에’가 무엇이더냐.”
“알 거 없어! 이거부터 좀 어떻게 해 봐!”
“그래서 내가 준비를 해 둔 게 있지!”
이연주는 걱정하지 마라며 자신 있게 팔을 걷었다.
그리고 직접 운전을 해서 래핑을 맡기려 했지만.
“어떻게든 안 되는 거야?”
“누님, 우리도 예약 밀려 있어서 어려워요.”
“으음……. 근데 첫 사용이 당장 이틀 뒤인데. 좀 땡겨 봐. 돈 더 줄게.”
“돈 문제가 아니라, 진짜 시간이 없어요. 아무리 당겨도 4일 뒤부터나 가능해요.”
래핑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예약이 밀려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었다.
이연주가 고민된다며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으으으음……. 그러면 이걸 얘네가 가져가는 의미가 없는데…….”
“언니? 왜요?”
제인이 묻자 이연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아니, 들어 봐. 내가 원래 뭘 하려고 했냐면…….”
이연주의 계획은 래핑을 기존의 이타샤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래핑 내용은 새로운 이타샤는 아니었지만.
“이것은…….”
단탈리온이 이연주가 계획하고 있던 래핑 샘플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스타트PC방 로고가 아니더냐.”
이연주는 <뮤지션 비긴즈>에 참가하는 RRR이 스타트PC방의 후원을 받고 있음을 광고하기 위해 차량을 들고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첫 촬영부터 PC방을 알릴 수 있는 차량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
그러나 RRR의 촬영이 급하게 정해진만큼, 차량 래핑 준비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냥 첫 촬영은 택시 타고 가는 건 어때?”
“언니!?”
“사장님!?”
제인과 오로바스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반면 앤디는.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라. 저걸 그대로 끌고 갔다가는 악마 밴드라는 이미지가…….”
“진짜 택시 타고 가? 앰프랑 다 못 실을 걸?”
제인의 현실적인 말에 앤디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하하하! 앤디는 진짜 리더 답네. 고민이 많구나.”
이연주가 앤디의 등을 팡팡 때렸다.
“걱정마. 내가 진짜 차량을 준다 했다가 안 주겠어?”
“그, 그럼……!!”
“대신, 우리 스타트PC방 모자 정도는 쓰고 가서 인증 샷은 남겨 주기!”
이연주의 말에 단탈리온이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과연. 이것이 홍보인가.”
“그치 그치! 나중에는 래핑된 차량 타고 다니면서도 광고 좀 해 달라는 말씀!”
“허나 지금도 PC방 일손이 부족하지 않으냐. 손님이 늘어나도 괜찮겠느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후다닥 벌어서 2호점, 3호점 쭉쭉! 사람 충원하고!”
“호오. 그러면 이 몸에게도 인센티브가 들어오는가.”
“인센티브?”
“천 씨네 고깃집은 인센티브를 약속하였다.”
“진짜야, 제인?”
이연주가 깜짝 놀라며 묻자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빠가 허락해 주셨어요.”
“허어……. 그럼 나도 줘야 하나? 차량에다가 기름값 지원 정도면 어때?”
“쯧. 천 씨네에 비하면 매우 약하구나.”
“뭐야, 이 당당함은.”
의기양양한 단탈리온의 얼굴을 보며 이연주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진짜 대박 터져서 2호점, 3호점 쭉쭉 낼 수 있게 되면 인센티브 줄게!”
“20%. 약속하였다.”
“으응? 아니 그건 더 논의해 봐야지? 어디서 도적질하려고?”
“……쳇. 역시 만만치 않군.”
그렇게 정확한 인센티브 비율은 확정하지 못한 채,
RRR은 이타샤 차량을 끌고 뮤지션 비긴즈 첫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
붉은색 작은 뿔을 앙증맞게 달고 있는 귀여운 분홍 머리 캐릭터가 노란색 기타를 매고 깡총 뛰고 있는 래핑지를 달고서.
* * *
그리고 촬영장.
오로바스는 뻔뻔한 얼굴로 자신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왕 단탈리온 데스맨 님의 행차시다! 모두 길을 열어라!”
차량을 소지하게 되면서 한껏 분위기를 내려는 오로바스였다.
물론 그런 오로바스에게 제인과 앤디가 달려가서는 막아섰고.
“아하하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콘셉트이 중요하다 보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
“앤디 님! 제인 님! 아무리 두 분이라 하셔도 단탈리온 님께 예를 갖추어야……!”
“좀 조용히 하자. 좀!!!”
그렇게 시끌벅적한 채로 등장한 RRR을 보면서 참가자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반가워요! 전 싱어송라이터 유찬미라고 해요!”
“안녕하십니까! 싱어송라이터 민주석입니다!”
유찬미와 민주석.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종종 콜라보 앨범도 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넓혀 가고 있는 중인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들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쓰리알입니다!”
“하등한 필멸자들이여. 메탈의 숭고함을…….”
“넌 좀 조용!!”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일행의 앞으로 남성 한 명이 다가왔다.
“전 신태정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헉! 신태정 님을 뵙다니 영광입니다!”
앤디가 꾸벅 인사를 하며 입에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그야말로 싱어송라이터계의 전설! 저도 ‘나를 바라봐 줄래?’ 이거 진짜 좋아해요! 노래방 18번 곡입니다!”
“아, 정말요? 저도 쓰리알 좋아해요! 근데 음원이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아하하……. 하하…….”
“정신 공격을 제대로 먹이는군. 악마의 자질이 있구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단탈리온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신태정이 말했다.
“저 이거도 알아요! 보세요!”
신태정이 두 손을 옆으로 촤락 펼쳤다가 가슴께로 모으고는 엑스자로 교차시켰다.
“풕앤롤!!!! 이거 맞죠?”
“퍼, 퍼퍼, 풕…….”
“호오 우리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니. 그대는 메탈의 멋짐을 이해하고 있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가 퍽지창을 날리는 걸 보며 거품을 물기 직전이 되어 버린 앤디를 뒤로 밀친 단탈리온이 뚜벅, 걸어왔다.
“거기서 중지를 좀 더 세우거라. 엄지와 소지만으로는 퍽앤롤 정신을 세울 수 없느니.”
“아하하하! 역시 쓰리알입니다! 이번 뮤지션 비긴즈, 기대되는데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기는 한데……. 그건……. 내려 주세요…….”
앤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왜요? 전 이거 좋은데!”
“그러하다, 앤디여. 자네는 자신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천수관음 주법도 훌륭히 선보이지 않았는가.”
“처, 천수관음 주법!?!?”
신태정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지지, 진짜요!? 그 전설의 천수관음 주법!?”
“네? 네에 뭐…….”
“미쳤다 진짜!!! 다음에 꼭 보여 주세요!!! 저도 궁금해요!!”
아직 라이징 밴드 본선 4라운드 영상이 방송으로 나가지는 않았기에, 앤디의 주법이 대중들에겐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신태정은 빠르게 천수관음 주법에 대해 물어 봤고, 앤디는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방금 천수관음 주법이라 하지 않았어?”
“진짜? 그거 전설 아니었어?”
“하셨나 봐, 저분들이.”
신태정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싱어송라이터들도 기본적으로 기타와 피아노 연주는 할 수 있었고, 대부분 기타 실력에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떠도는 전설 주법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했다고?
“손이 얼마나 빠른 건지 궁금해요!”
“나중에 방송을 보거라. 그때의 12군단장 앤디는 참으로 훌륭했도다.”
“……칭찬 고맙다, 인마.”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쓰리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갔다.
다른 스탭진들은 지금 모습들을 빠르게 영상으로 남기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작가들은 그들에게 던질 멘트를 빠르게 정리하면서 회의에 들어갔다.
“콘셉트에 진심인 밴드라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서민유 PD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걸어왔다.
“저 차량도 본인들 차량인가요?
“음. 저건 지원을 받았다.”
“지원……?”
“그러하다. 저기 그려진 악마는 쓰리알 12군단장 앤디의 모에화 버전이다.”
“헉, 진짜요!?”
“뭔 소리야! 아니에요, PD님!”
앤디가 황급히 두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저건 이전 차주 분 취향! 저희랑은 관계없습니다!”
“아쉽다……. 관계 있으시면 바로 예고편 첫 장면 각이었는데…….”
“11군단장 에키드나의 연주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계에서는 꽤나 빼어난 외모의 악마이지.”
갑자기 단탈리온이 서민유에게 속사포처럼 설명을 덧붙였다. 그 말에 서민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럼 저 이미지가 RRR 밴드 멤버 중 한 분인가요!?”
“그러하다.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숨은 조력자이지.”
단탈리온이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며 히죽 웃었다.
“매우 용맹하고 지혜로운 악마니라.”
“오오……. 매니저나 스탭? 같은 분들이시려나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 차를 메인으로 삼을게요!”
“훗. 옳은 판단이로다. 그리고 추가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스윽 꺼낸 단탈리온이 서민유를 비롯한 참가자들의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스타트PC방>
“으잉?”
“이게 뭔가요?”
“저 차량을 지원해 준 PC방 사장의 요청이다. 다들 모이거라.”
그렇게 모두가 스타트PC방 모자를 쓴 채로 단체 셀카를 찍으면서, 뮤지션 비긴즈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오로바스! 들리느냐!”
시틀라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오로바스를 불렀다.
그러나 오로바스에게서 답신은 없었다.
“에이잇! 멍청한 녀석!!!”
결국 시틀라가 폭발하면서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마계 렌즈를 이럴 때 착용해야 할 거 아니냐고!!!”
시틀라가 건네주었던 마계 렌즈.
그 마계 렌즈는 인간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비상용 장비였다.
“지금이 딱 그때이지 않은가!”
7군단장 만티코어도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에키드나의 캐릭터화라니! 이건 궁금할 수밖에 없거늘!”
“옳소!”
“렌즈를 껴라, 오로바스!!”
군단장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반면, 그 주인공인 에키드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야……. 괜찮냐?”
시틀라가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그러자 에키드나가 털썩,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단탈리온 님!!!!!!!”
“헛 깜짝이야! 왜 그래!?”
“저를…… 저를 용맹하고 지혜롭다고 해 주시다니……. 이 에키드나, 물심양면! 분골이 쇄신할 때까지 단탈리온 님을 따르겠나이다!!!”
단탈리온이 에키드나를 칭찬했다.
그뿐이 아니라 자동차에 그려진 캐릭터를 에키드나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과연…….”
그런 것이었나.
자신이 따르는 마왕님이 제 능력을 인정해 주고, 서포트해 주는 동료로도 인정을 해 주셨다.
그렇기에.
에키드나는 지금 감격에 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단탈리온니이이이임!!!!”
에키드나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군단장들이 모인 대회의실을 가득 울렸다.
* * *
그렇게 시작된 <뮤지션 비긴즈> 첫 촬영.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스탭진들 모두가 RRR이라는 밴드가 참가한 사실에 다소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과연 어떤 음악을 보여 줄까?’
‘음악 지식은 많으려나.’
‘우리보다 잘하면 어쩌지?’
‘영상 제대로 뽑아 줘야 할 텐데.’
서로의 걱정과 기대를 안은 채, RRR이 각자 악기를 들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번 뮤지션 비긴즈 진행자를 맡은 신태정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다시 한번 인사를 하는 신태정을 향해 참가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그럼 갑작스럽지만 프로그램에 대해 짧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으로 음악 퀴즈를 하고, 이후에는 근황 토크, 그리고 공연으로 이어집니다! 다들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앤디가 힘차게 답했다.
참가자들을 쭉 둘러본 신태정이 싱긋 웃었다.
“그럼 우선은 퀴즈부터 들어갈까 싶은데요, 음악의 한 부분을 들려주고 정답을 맞추는 퀴즈입니다! 이름하여, 도입부 퀴즈!”
두둥!
“흥. 퀴즈 따위, 이 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느니.”
단탈리온이 쯧, 혀를 차며 말했다.
“야, 그래도 해 볼 수 있으면 해 봐. 음악 많이 듣는다며.”
“그러하다. 이 몸이라면 못 맞출 문제가 없도다.”
“그럼 맞춰 봐야지.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고?”
앤디의 질문에도 단탈리온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에휴, 너 알아서 해라. 네가 언제 우리 말 들었냐.”
“옳은 판단이로구나, 앤디여.”
단탈리온은 퀴즈 시간은 적당히 보내고, 라이브 공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때가 와야 제대로 RRR을 홍보할 수 있을 테니까.
“음악으로 우리를 알리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지니.”
“예이 예이.”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앤디와 단탈리온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신태정이 하나 깜빡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참, 퀴즈 1등에게는 저희가 준비한 한우 모둠 세트가 지급됩니다! 그럼 첫 번째 문제!”
따라단.
음악이 멈추었다.
“에이 이걸 어떻게 맞춰요!”
“맞아! 너무 했다!”
그렇게 불평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는 다른 참가자들과 앤디, 제인, 오로바스.
그리고.
스윽.
“루시드 드림, ‘굿밤하길’.”
“……정답.”
딩동댕동
고고하고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로 단탈리온이 귀족 같은 움직임으로 손을 들고는.
“심히 쉽구나.”
참으로 하찮은 질문에 답변을 한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한우 모둠은 이 몸의 것이다.”
“……안 한다며?”
“치사하게 딴 데서 지원받는 건 아니지?”
“……훗.”
황당하다는 표정의 앤디와 제인의 시선을 외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