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굿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신태정은 단탈리온의 말에 뒷걸음질하며 말했다.
“칠죄종이요? 하하하 글쎄요. 저는 그런 종교는…….”
“호오. 그러하더냐.”
단탈리온이 붉은 안광을 내비치며 신태정을 향해 검지를 들었다.
“헌데 어찌하여, 그대의 이마에 칠죄종의 표식이 있는가.”
신태정의 어깨가 흠칫 떨려 왔다.
“……대체 무슨.”
“걱정 말거라. 내 그대를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을 터.”
잡아먹는다고?
마물이라던가 그런 건가?
“한 가지, 이 몸을 위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도다.”
“……네?”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사악 올리며 말했다.
“그 종교, 이 몸도 관심이 있도다.”
* * *
칠죄종의 종교라.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
과거, 마성전쟁 때도 칠죄종들은 틈만 나면 인간계로 내려가서 인간들과 교류해 왔다.
그러다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종적을 감추고는 마성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그들의 행보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들의 이름을 딴 연예인들이 있고, 종교까지 있다?
“그곳으로 안내하거라.”
정말 칠죄종이 있다면 오래간만에 안부를 물으면 되는 일이고.
없다면 그저 그런 인간들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힐 수 있겠지.
물론, 정말 ‘인간들의 유희’로 끝날 리는 없을 터.
어딘가에는 칠죄종이 흔적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으음……. 그런데 정말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럼 다른 이는 알고 있다는 뜻인가.”
“그건…….”
신태정이 답변을 망설였다.
기운을 느껴 보건대 딱히 입막음을 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 신태정은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 표식은 무엇이더냐.”
“아, 이건 페이스페인팅입니다.”
“페이스……?”
그게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태정이 이마를 살짝 보여 주며 말했다.
“문신,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이걸. 스티커? 같은 건데, 아무튼 이건 칠죄종이라고 별명이 붙은 연예인 팬이라면 다들 스티커 형태로 하나씩은 갖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팬이라. 추종자들은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겨우 그런 표식을 지니고 다니다니.
그것이 추종자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모양이다.
“한심하도다.”
“그럼 이만…….”
“허나, 한 가지.”
단탈리온이 신태정의 이마를 잡고는 검지로 표식을 꾸욱 눌렀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잠자코 있거라.”
흥. 역시.
“아주 쓸모없는 표식이로구나.”
“자, 잠깐만요!?”
“형편없군. 고작 이 몸의 마력 한 번에 싹 다 지워지…….”
“뭐 하는 거야, 미친놈아!!!!!”
앤디가 황급히 달려와서는 단탈리온의 목덜미를 잡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보컬이 콘셉트에 미쳐 있어서 제정신이 좀!!!!”
“아, 아, 아뇨, 괜찮…….”
괜찮다고 말하려던 신태정은 거울로 이마를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내, 내내내, 내 페이스 페인팅이!?!?!?!?!?!”
“망했다…….”
앤디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제인이 단탈리온의 목덜미를 대신 잡고는 훈계를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마왕님!”
“무엇이 문제더냐. 저 표식에 깃든 마력을…….”
“저건 그냥 팬들이 만드는 굿즈잖아! 그걸 왜 지워 버려!!! 물어 줄 것도 아니면서!”
“굿즈……?”
단탈리온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졌다.
“분명 ‘굿즈’라고 하였느냐.”
“그래!”
“아아아아!!!! 이거 한정판으로 겨우 구한 건데!!!”
“태, 태정 씨, 지, 진정하세요!”
“이걸, 이걸 구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서 겨우 구했는데!!!! 이게 이렇게…… 공중분…… 끄억.”
충격을 이기지 못한 신태정이 결국 뒤로 넘어졌다.
“태, 태태태, 태정 씨!?”
“신태정 씨!?”
“괜찮으세요!?!?”
스탭진들이 우루루 달려와서는 신태정을 부축했다.
자신의 팬심이 가득 담긴 굿즈 하나가 누군가의 손가락 행위 한 번으로 형체가 절반이나 날아가 버린 시점.
연예인의 팬이라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굿즈가 아니다.”
저딴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신태정의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저, 저저 미친놈 당장 잘라요!!!!! 누가 데리고 왔어!!!!”
“죄송합니다 태정 씨, 쟤네 없으면 우리 또 싱어송라이터만 나와요,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서민유 PD가 전전긍긍하면서 신태정을 진정시켰다. 서민유가 어르고 달랜 덕에 신태정도 간신히 숨을 천천히 고르고는 단탈리온을 쏘아봤다.
“이봐, 당신.”
“이 몸을 말하는 것인가.”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연예계에서 매장시킬 줄 알아. 알아들어?”
서슬 퍼런 신태정의 눈빛에, 앤디와 제인이 살짝 쫄아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확답은 못 하겠군.”
단탈리온은 아무런 동요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굿즈라고 하였는가.”
“그래! 굿즈라고! 굿즈!!!!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
“혹시 그건, 그 연예인이 직접 건네주었는가.”
그 말에 신태정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맞아!!!!! 직접 만들어서 주신 거라고!!!!”
“직접 만든 굿즈라.”
단탈리온이 눈을 감고는 말했다.
“이해했도다. 그대는 이미 노예로구나.”
“…… 뭐?”
“그 표식은 남겨 두거라.”
표식에는 마기가 담겨 있었다.
단탈리온의 손가락 끝으로 느껴진 마기.
‘칠죄종, 레비아탄은 아니다.’
얼마 전에 나타났었던 가고일.
그 녀석은 프린시펄리티와 결탁하고는 라이징 밴드 촬영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려 했었다.
그때 가고일은 분명, 레비아탄의 추종자였다.
허나,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은.
“이제 꺼져. 더는 말하기 싫으니까.”
“흠. 건방진 말을 하는구나.”
“처음부터 예의 없이 나온 건 그쪽…….”
“멘떼 크몽떼.”
화아아악!!
“가급적이면 마력 소모 없이 가려 했거늘, 피곤하게 하는구나.”
단탈리온이 신태정의 얼굴 가까이 걸어갔다.
“칠죄종의 표식이다. 아는 게 있는가.”
“……저는 ……그냥 ……민웅 님의 팬…….”
“예상대로군. 이렇기에 마력을 쓰지 않으려 했거늘.”
결국 뽑아낼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었다.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단탈리온이 혀를 차며 신태정을 노려봤다.
“되었다. 오늘 촬영장에서만큼은 이 몸에게 충성하도록.”
어차피 멘떼 크몽떼로 길게 정신을 잡아둘 생각은 없었다. 단탈리온이 손을 거두자 신태정의 몸 안으로 들어갔던 검은 안개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음?”
“다시 촬영이다. 정신을 차리거라, 신태정이여.”
단탈리온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러자 신태정이 오른손을 경례하듯이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예!! 가시죠, 데스맨 씨!!”
“으응?”
갑자기 들려오는 외침에 서민유 PD를 비롯한 스탭진들, 그리고 출연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신태정 씨가…….”
“데스맨 씨를 거들어……?”
신태정이 단탈리온이 마실 음료라며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는 옆에서 미니 선풍기를 틀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시종과 같은 모습.
“훗. 마왕을 받드는 기분이 어떠한가.”
“영광입니다, 마왕 각하!”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신태정이 또 이상한 콘셉트의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앤디와 제인은.
“……저 망할 놈이 또 흑마법 썼나보다.”
“진짜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단탈리온의 행위를 보며 고개를 저었고, 오로바스는 감격에 겨운 눈동자로 단탈리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단탈리온 님! 저도 배워서 인간을 농락하다가 조종할 수 있는 악마가 되겠습니다!’
어쩐지 잘못된 목표를 세운 오로바스였다.
* * *
“민웅 씨라고?”
나는 이동한 촬영장에서 무대를 세팅하는 걸 준비하며 앤디에게 물었다.
“그러하다. 민웅이라는 연예인을 아는가.”
방금 신태정이 말한 인물.
민웅이라는 연예인은 누구인가.
적어도 나는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마계에 내용을 전송해서 물어볼까 싶었지만, 지금 녀석들에게 준 업무는 마법진 연구.
그걸 끝내기 전까지 다른 업무를 주어서 업무 과부하에 처하도록 둘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다소 한가해 보이는 앤디를 붙잡고서 물었다.
“연예인 민웅 씨면, 조민웅 씨 아냐?”
“조민웅?”
“응. 싱어송라이터인데, 뮤지션 비긴즈에 나와서 엄청 떴거든.”
뮤지션 비긴즈에 출연하면서 성공한 연예인이라.
그렇다면 그 인물을 신태정이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조민웅이라는 자를 좋아하는 게 맞으렷다.”
“예, 그렇습니다, 데스맨 님!”
“대답은 잘하는구나.”
“감개무량합니다!!”
신태정은 아직 내 흑마법 영향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내 말에 계속해서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훗. 역시 하등한 인간에게는 이 역할이 어울리는구나.”
“……너 분명, 태정 씨 깨면 천벌 받을 거다.”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조민웅 씨는 왜?”
“신태정이 그 녀석의 팬이라는구나.”
“그니까,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묻잖아.”
제인도 잘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단탈리온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냐며 말했다.
“조민웅. 그자가 칠죄종과 관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방금 신태정의 이마에 새겨져 있던 표식.
단탈리온은 그 안에 칠죄종의 마기가 느껴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칠죄종?”
“그러하다. 때문에 지금의 일을 좌시해서는 아니 될 일.”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단탈리온은 앤디와 제인을 향해 물었다.
“굿즈를 활용하여 자신의 마기를 던지고 있는 악마다. 쉽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자신의 마기를 담아 마법 도구를 만들어 인간들에게 배포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일을 과거에도 물론 해 왔었다.
정확히는 마성전쟁 이전.
그때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들을 조종하고, 인간계를 침략해 보기도 하고 했었지만.
“지속 시간이 짧고, 숙주의 수명이 짧아져 지나치게 귀찮아진다는 단점이 있었지.”
즉, 이런 형태로 인간들을 조종해 봤자, 그 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게다가 마기가 담긴 숙주가 금방 죽어 버리면?
그럼 또 다른 숙주를 찾아야 한다.
그야말로 귀찮을 수밖에 없는 작업.
따라서 이런 일들은, 오늘만 살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하급, 최하급 악마들이나 하는 치졸한 짓들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유희만으로 생각하고는 토끼려는 녀석일 수도 있지.”
그렇다.
바로.
마성전쟁에서 보여 주었던.
칠죄종 ‘탐욕’처럼.
“그러고 보니…… 칠죄종 콘셉트 연예인 중 한 명이 조민웅 씨이기는 해.”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단탈리온이 묘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혹시 그 조민웅이라는 작자의 별명은 탐욕인가.”
“어? 어떻게 알았어?”
단탈리온의 입가가 작게 호선을 그렸다.
“아주 익숙한 맛이 느껴지는구나”
* * *
“어라?”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는 신상 초코칩을 씹어 먹던 조민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이거 왜 이러는 거죠?”
“아 그건……. 아마 스티커가 벗겨지려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조민웅이 눈을 감고는 말했다.
“저런 어설픈 표식은 다 지워 버리세요.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지급하셔야 합니다.”
“네, 민웅 님.”
앞에서 조민웅의 명령을 받고 있는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나저나 저 표식……. 이상하군요.”
평범하게 그저 스티커가 벗겨지기만 하는 거라면, 저렇게 노이즈가 섞인 것처럼 지직거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저것만 저런 형태를……?
“아하……. 설마 그런 것입니까.”
조민웅이 입꼬리를 미묘하게 말아 올렸다.
“단탈리온. 자네로군요.”
그렇습니까. 벌써 여기까지 알아냈다는 말이군요.
조민웅이 히죽 웃으며 남성에게 말했다.
“언론 플레이는 들어갔나요?”
“네. 민웅 님의 노래가 또 한 번 인기 차트에 올라갔습니다.”
“훌륭합니다. 당신을 제 시종으로 새겨 두길 잘했네요.”
조민웅의 칭찬에 남성이 눈을 크게 뜨고는 무릎을 꿇었다.
“가, 감사합니다!!”
“에이, 아닙니다. 감사는 되었고요.”
조민웅의 시선이 정면의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는, 절반쯤 노이즈가 섞여 움직이는 스티커 표식을 가리켰다.
“이 표식. 지워 버리세요.”
“네?”
“못 들었습니까?”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민웅이 악마처럼 입술을 할짝, 핥았다.
“지워서 치워 버리라는 겁니다. 단탈리온에게 들키기 전에 말입니다.”
“하, 하면…….”
“네.”
조민웅이 여러 번 말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저 표식이 새겨진 사람, 죽여서 토막 내고 태워 버리세요.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
“눈에 망설임이 가득하군요.”
조민웅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 안에서 검은색 마력이 휘감아져 나타났다.
“끄, 끄아…….”
“멘떼 크몽떼.”
화아아악!
흑마법을 온몸으로 뒤집어쓴 남성의 몸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축 처졌다.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네, 민웅 님.”
흑마법으로 조종을 당한 남성이 몸을 흐느적거리며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민웅이 키득거렸다.
“물론, 그쪽도 멀쩡히 올 수 있다면 말이죠.”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홀로 남은 독방에서 조민웅의 간사한 웃음소리가 공간을 찢어 버리듯 날카롭게 휘몰아쳤다.
* * *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칠죄종 탐욕에 대해 알아보거라.”
단탈리온의 눈이 붉게 빛났다.
“조만간 조우할 것이다.”
표식을 지워 버렸으니 녀석이 나타나겠지.
“함정에는 함정이라는 뜻이니라.”
[존명!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