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라이징 밴드 결선 1라운드 (2)
라이징 밴드 결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라이징 밴드의 참가자들의 이야기로 들떠 있었다.
“야야 너도 봤냐?”
“나도 봤지.”
“탑엔젤스가 제일 아니냐? 솔직히 그 정도면 어지간한 배우 저리 가라다.”
“넌 그래서 음악적 소양이 부족한 거야 인마. 쓰리알 몰라? 쓰리알처럼 메탈 밴드가 여기에서 빵! 떠줘야지 밴드 음악이 다시 부활하지!”
“나도 쓰리알이 좋더라. 고딩 때 생각도 나고.”
“그치? 그리고 신태정이 인별그램에 올린 거 봤냐? 이번에는 뮤지션 비긴즈에서 사고 쳤을 거라고!!”
“으음……. 탑엔젤스는 왜 섭외가 안 들어올까.”
“들어왔는데 숨기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들로 한창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남성 한 명이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각하게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야, 무석아. 넌 누가 좋냐?”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김무석?”
JB방송국의 연예부 기자, 몽마황혼석을 맛본 후 RRR의 전속 기자가 되기로 다짐했었던 김무석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왜?”
“넌 라이징 밴드 어떻냐고. 저번에 쓰리알 취재했다고 하지 않았어?”
친구의 말에 김무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뭔데 폼 잡냐?”
“그때가 끝이었다. 그거 한 번으로.”
김무석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 이후로 연예계 일이 아니라 각종 잡무만 주니까 취재를 못 하잖아!”
실제로 김무석은 그때 단탈리온 데스맨 취재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원래 목적은 RRR의 심층 취재를 하면서 그들의 행보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게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그래서 김무석도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한 번은 건의를 해 보기도 했었다.
-제가 딱 찍은 밴드가 있는데 그 밴드를 집중 취재해서…….
-라이징 밴드 말고는 내세울 거 없는 초짜 밴드 취재해서 어따 쓰게? 잡지 제대로 팔 자신 있어?
-어…… 아뇨…….
-헛생각 말고 일이나 해. 쯧.
라는 구박을 들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취재 가는 건?”
“나도 그러고 싶다.”
“역시 쉽지 않구나.”
“왜?”
“탑엔젤스 보컬분 사인 좀 받아와 달라고.”
“됐네요.”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던 김무석의 눈이 방금 전과는 다르게 크게 떠졌다.
“잠깐. 탑엔젤스……?”
“왜?”
RRR이 아니가 라이징 밴드 전체를 파헤치겠다고 말하면 위에서도 허가를 해 주지 않을까?
게다가 지금 RRR은 라이징 밴드 결선까지 진출한 최종 팀!
당시에는 이제 막 들어간 밴드였으니까 까였다고 하면, 이제는 다시 생각해 줄 여지가 있을 거라고.
김무석은 확신에 가득 차서는 외쳤다.
“라이징 밴드 결선 진출자들을 모두 모아서 기획 기사를 내겠다고 하면 먹힐 거야!”
“응? 야, 어디가!”
“취재 준비!”
“술 더 안 마셔? 야!”
김무석은 친구들이 붙잡는 소리를 뒤로하고는 바깥으로 나와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밴드를 취재하고 그들을 알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들의 팬덤을 내가 이끌어 내고, 전설적인 연예계 전문 기자가 된다!
그렇게만 되면.
“락페까지 전부 다 회삿돈으로 다닌다!!!”
사회초년생 연예부 기자의 당찬 포부가 밝혀지는 밤이었다.
* * *
“악역?”
신청서를 받아 든 기보성이 두 눈을 의심하고는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악역이 뭡니까?”
“그 말 그대로다.”
단탈리온은 평소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는 거만한 눈동자로 기보성을 내려다봤다.
“이 몸의 의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하찮구나.”
“음…….”
기보성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조민웅 씨가 오신다는 건 저희만 알고 있으면 되는군요.”
“자, 잠깐!! 조, 조민웅 씨가 게스트로 오신다고요!?”
조연출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서도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로? 민웅 씨가 밴드 오디션에?”
“괜찮은 거 맞나……?”
“예산 없을…….”
“쓰읍!”
기보성이 한 번 눈치를 주자 주변에서 중얼대던 직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솔직히 예산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게스트로 나온다고는 해도, 거마비는 적절히 쥐어 주어야 하는 법.
그 대상이 조민웅 같은 대형 싱어송라이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걸 고민하고 있는 기보성의 앞에서 단탈리온이 말했다.
“예산은 걱정할 필요 없도다.”
“……네?”
“탐욕 조민웅은 마왕인 이 몸과 함께할 수 있어 크나큰 영광이라며 출연료를 일제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네!?”
“대인배…… 대인배……!”
스탭진이 조민웅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했다. 단탈리온은 히죽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응당 이 몸의 친우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법.”
그래.
바엘이나 아몬처럼 말이다.
무기도 주고 광물도 주는 그런 친우들.
“탐욕, 자네도 이 몸과 친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럴려면 이 정도 희생은 필수니라.
단탈리온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 * *
<싱어송라이터 조민웅! 라이징 밴드 게스트로 출연!?>
<출연료는 필요 없다. 친구를 위해 나오는 것!>
<탐욕 조민웅과 절친인 RRR은 누구?>
조민웅의 게스트 신청서를 제출하고 하루 뒤.
예능 채널에 이를 주제로 삼은 동영상과 기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오, 반응 좋은데?”
앤디가 마우스 휠을 내려보면서 웃었다.
“내용에 악플이 없어.”
“원래는 악플이 있었는가.”
“있었지. 콘셉트이나 제대로 잡으라던가 노래 별로라던가.”
“훗 우습군. 그 정도는 악플 축에도 못 끼느니라.”
“뭐, 악마 같지도 않다. 마왕 때려 쳐라.”
“무엇이!!!!”
고오오오
“감히 미천한 필멸자 따위가 이 몸을 능멸하는가!”
“다다 단탈리온 님! 기운을 거두십시오!!”
오로바스가 달려와서는 잔뜩 흥분하려는 단탈리온을 막아섰다. 앤디는 이런 악플은 일상이었다며 말했다.
“원래 비주류 밴드는 욕 많이 먹어.”
“맞아. 이 정도면 진짜 선플만 달린 거지.”
제인도 거들었다.
“그나저나 조민웅 씨를 어떻게 데리고 왔어? 같은 악마라 가능했던 건가?”
“나도 그게 궁금하더라. 어떻게 된 거야?”
멤버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자 단탈리온이 손가락을 하나 펼쳤다.
“당연하다. 이 몸이 친하지 않은 악마는 없느니라.”
“흐으음…….”
앤디가 수상하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지.”
“없다.”
“거짓말하지 마. 뭔가 있지.”
앤디에 이어서 제인도 눈을 흘기며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제대로 이야기해. 그래야 우리도 대비하지.”
“후……. 역시 군단장들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구나.”
단탈리온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번 라이징 밴드 결선에서 우리는 칠죄종과 함께 할 것이다.”
“그건 알아.”
“그러니 절대 팔찌를 풀지 말거라.”
드러머 유예찬에게서 튀어나왔던 탁기.
그때와 마찬가지로, 단탈리온은 절대 팔찌를 풀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그 경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꿀꺽.”
“씨바…….”
앤디가 침을 꼴딱 삼켰다. 제인은 또 사건 사고가 나냐며 진저리를 쳤다.
이전에 겪었던 유예찬의 사건이 생각났던 것이다.
“대체 왜! 악마들이 여기로 오는 건데! 왜!”
“그걸 이제부터 조사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그걸 조사하지 않는다면, 71위 마계의 존속을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몸은 칠죄종 탐욕과 함께 움직일 것이다. 알겠는가.”
“알았어. 그럼 팔찌 푸는 거 말고 또 조심해야 하는 건?”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단탈리온이 손가락을 들고는 검지를 먼저 펼쳤다.
“첫째로, 칠죄종은 응큼하다.”
“넌 아니고?”
“이 몸은 격식을 갖춘 품격 있는 존재이다.”
“으음…… 그래…….”
“그래서 이 몸도 응큼하게 접근했다.”
“격식 있는 거 맞아?”
앤디와 제인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둘째로, 칠죄종 중에서도 탐욕은 거짓말만 하는 녀석이다.”
“그치. 그래서 안 믿는다며.”
“그러하다. 따라서 녀석이 얌전히 이 게스트 활동을 할 리가 없다.”
애초에 이 게스트 활동은 레비아탄에게 탐욕의 실수를 모조리 이르겠다고 하고서 억지로 끌고 오는 것.
강제로 데리고 왔기 때문에 녀석의 성격이라면 순순히 RRR을 따를 리가 없었다.
“질투의 레비아탄에게 고자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어.”
“그거 안 좋은 거 아니냐.”
“단탈리온 님, 칠죄종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은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꺄꺙!!! 꺙!!!”
시루베로스가 옆에서 자신도 있다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오로바스가 시루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눈에는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시루베로스가 있다 하더라도 저와 시루베로스 둘이서 칠죄종을 상대한다는 건…….”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는가.”
“예?”
오로바스가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어찌 되든 상관은 없다.”
“그, 그러하심은…….”
그러하다.
지금 탐욕이 질투에게 고자질을 하고, 둘이 힘을 합친다?
그래도 상관없다.
“마력은 충분하다.”
지난번, 웜홀을 발현해서 사라졌을 때.
단탈리온은 그 장소에서 30m 떨어져 있는 공터로 이동했었다.
웜홀 정도면 꽤나 마력 소모가 높은 중급 마법.
하지만, 마력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 몸 혼자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아! 천사! 천사들이 있잖아!”
탑엔젤스의 천사들!
“그분들하고 같이하면 되겠네!”
“그렇다. 허나, 녀석이 천사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그 역시 쉽지 않겠지.”
“천사가…… 악마랑……?”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앤디와 제인을 향해 단탈리온이 눈빛을 바꿨다.
“주의하거라.”
탐욕을 일부러 도발한 이유.
그 녀석은 분명 이번 라이징 밴드의 게스트로 참가할 것이다.
그게 강제성을 지니고 있건 어쩌건 간에.
녀석은 한번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방향성이 매우 틀어져 있다는 게 문제겠지.
“탐욕의 계략은 매우 응큼하다.”
허나, 과연 그뿐일 것인가.
탐욕이라면 절대 그렇지 않다.
음흉하고 흉계가 많은 탐욕, 벨제부브.
무보수로 왜 움직여야 하냐며 화를 내다가도 게스트를 하겠다고 꼬리를 내린 척을 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그 음흉한 녀석의 죄를 어떻게 물을 것인가.
마왕의 활동에 제약을 걸려 했던 이 죄는 어찌 처벌해야 좋은가.
그래서 단탈리온은 떠올렸다.
“지금은 조민웅이라는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이거라.”
“그…… 그러면?”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이징 밴드 결선이다.
결선인 만큼 방송국에서도 각을 잡고 결선 무대 준비 과정을 촬영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주의할 점이 있다.
과하게 눈치를 챙기다가 탐욕의 감각에 걸리는 것.
“이 몸이 한 말은 신경 쓰지 말거라.”
“야, 그렇게까지 말해 놓고는 어떻게 이걸 신경 안 써!”
“화이팅, 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구나.”
단탈리온이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장 표정을 굳혔다.
그 모습에, 앤디와 제인이 한 번 더 긴장을 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진짜 또 뭔가 터질까?”
“그러하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이 있는 거지?”
“물론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다.
탐욕이 상대로 삼은 이는 바로.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마왕 단탈리온이다.
“이 몸이 있다.”
단탈리온이 믿음직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화가 잔뜩 난 조민웅, 탐욕이 RRR의 합주실 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콰앙-!!!!
“야 이 미친 단탈리온!!! 내가 언제 무보수로 한다 그랬……!”
그러나 탐욕은 말을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빛이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실내.
지하였기에 제대로 된 빛도 보이지 않는 장소.
그런 곳의 불이 모조리 꺼진 채로 RRR 멤버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너희들 또 무슨 장난질……!”
그때.
파파팍!
화르륵!
으흐흐흐흐흐흐흐.
RRR 밴드 멤버들이 두건을 뒤집어쓴 채 양손을 휘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무무무슨 짓이야……?”
파앙-!!
퍼엉-!!
그때, 폭죽 소리가 들리며 형광등이 탁! 켜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어두컴컴한 합주실이 밝아지면서 마치 유령처럼 두건을 뒤집어쓴 앤디, 제인, 오로바스가 밝고 희망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 어?”
“사랑하~는~ 민웅~님~”
“생일 추~욱~하합~니~다아~”
와아아아-
짝짝짝짝
멤버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를 받은 탐욕이 얼떨결에 다가가서는 케이크에 올려져 있는 촛불을 향해 바람을 후- 불었다.
“고, 고맙…….”
“곧 생일이시라면서요!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자신이 탐욕이라는 사실을 저들도 알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앤디가 준비한 선물이라며 커피 세트를 내밀었다.
“이거!”
“저는 이거요!”
조민웅에게 건네는 가습기 세트도 있었다.
예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조민웅은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도 챙길 건 전부 챙겼다.
“과연, 탐욕답구나.”
“단탈리온!”
고개를 훽 돌린 곳에는 단탈리온이 히죽 웃으며 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어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는가.”
“응?”
“우리의 결선 무대는 식후경부터라는 것이다.”
단탈리온이 건네는 케이크 조각을 받아 들은 탐욕이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먹었다.
“맛……. 괜찮은데?”
“훗. 당연하다.”
오로바스가 김은영에게 깨져 가면서 찾아낸 디저트 가게에서 사 온 것이니까.
단탈리온의 미소를 알아차리지 못한 탐욕은 계속해서 케이크를 탐닉했고.
그를 바라보던 단탈리온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잘도 먹는구나.”
탐욕을 잡기 위한 전략.
바로, 탐욕에게 탐욕을 선사하는 것.
그 첫 번째, 조민웅의 생일이 껴 있는 달임을 핑계로 대며 준비한 생일 축하 파티였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은.
“……쩔었다.”
“PD님, 이거 너튜브에 올려도 되나요?”
“안 됩니다!”
“치. 치사하게.”
라이징 밴드의 조연출과 박은환이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