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08화 (108/110)

108화. 라이징 밴드 결선 1라운드 (3)

칠죄종 탐욕, 벨제부브는 새하얀 피부에 상큼한 미소를 가진 아이돌처럼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케이크가 들어 있는 그릇을 들었다.

“음, 음. 아주 좋아. 여기 인간들은 칠죄종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군.”

“훗. 당연하지 않은가.”

단탈리온이 망토를 촤락 펼치며 말했다.

“이 몸의 밴드, RRR은 마왕군이니 악마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은 당연하다.”

“크크큭……. 그건 인정해 주도록 하지.”

벨제부브가 히죽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잖아. 난 생일이 오늘이 아닌데?”

“쯧쯧. 이래서 자네는 안 되는 것이다.”

“……뭐야?”

방금 전까지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어진 벨제부브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단탈리온은 그런 것도 모르느냐며 한심하다는 듯 벨제부브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지금 자네의 몸은 누구 것인가.”

“당연히 내 것이지!”

“아니, 그렇지 않다.”

단탈리온의 손가락이 벨제부브의 몸, 조민웅의 심장을 가리켰다.

“조민웅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것이지 않은가.”

“……아.”

“조민웅의 생일은 이번 달에 있다. 그렇지 않은가, 기보성의 시종이여.”

“저는 시종이 아닙니다!”

“시종 주제에 혀가 길구나.”

“끄응…….”

기보성의 후배인 라이징 밴드 조연출이 한숨을 푹 쉬었다.

“네, 민웅 씨 프로필상 생일은 이번 달에 있습니다.”

“들었느냐.”

단탈리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게 바로 이 몸과 자네의 격차니라.”

“이익……!”

“그러니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하지 그러냐.”

단탈리온의 말에 벨제부브가 표정을 싹 굳혔다.

“인간의 삶을 살면서 그들의 욕망을 집어삼키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니라.”

“흥 그딴 필멸자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벨제부브는 불만 섞인 말을 더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자신은 지나치게 조민웅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하다가는, 자신의 목적인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욕망을 흡수해 낼 만한 재목을 찾기 어려워진다.

만약 실수라도 해서, 자신의 행동이 천계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다른 천사들은 두렵지 않지만, 대천사 메타트론을 비롯해 최상위 천사들의 존재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칫. 알았어. 오늘부터라도 제대로 해야겠네.”

“옳은 생각이로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둔 통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자네 것이다.”

“……응?”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만약 벨제부브가 조민웅이라는 인간의 실력을 그대로 카피했다면, 그의 연주와 노래 실력도 카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만약 못 한다면 자격 미달이니라.”

실력이 검증되어야 라이징 밴드의 게스트로 참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단탈리온을 비롯한 RRR 밴드 멤버들은 벨제부브가 빙의한 조민웅의 실력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할 수 있겠는가.”

“흥! 내가 누군 줄 알고. 당연히 이까짓 것…….”

그렇게 벨제부브가 통기타를 손에 쥐었고.

그의 손이 천천히 현을 잡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조연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까지는 RRR 밴드가 조민웅의 합류를 축하하는 축하 파티였다.

생일 축하를 겸하고는 있었지만, 결국 게스트를 환영하기 위한 환영 인사 같은 거였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본방 영상은 일부 뽑아낼 수 있었다.

왜?

라이징 밴드 결선 무대는 준비 기간까지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사이의 공백을 참가자들의 무대 준비 과정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만약 게스트가 없다면 더더욱 이 시간을 채우기가 어려워지는 법.

그러나 RRR은 게스트 섭외력부터 차이가 났다.

‘조민웅이라니……!’

물론, 게스트 신청서에는 ‘악역’이라고 적혀 있어서 이게 뭔가 싶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조연출은 스탭진들을 데리고 RRR의 합주실을 찾아와서 공연 준비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트렌드를 몰고 다니는 싱어송라이터다.’

조민웅은 노래나 연주뿐이 아니라, 작곡과 작사 실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떠오르는 신예.

아니, 신예라고 하기에는 이제 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영향력은 정말 무시 못 할 인물이었다.

그렇게 어린 싱어송라이터와 RRR 밴드의 콜라보 무대라니.

가슴이 떨리는 게 당연했다.

“……한다.”

디링-

그리고 조민웅이 합주실 안에서 처음으로 기타의 현을 튕겼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연주를 들으면서.

조연출을 비롯한 스탭진들의 눈이 실망감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음……?”

당황하기는 RRR 밴드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특히, 단탈리온 데스맨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

“그만.”

“!!!”

“칠죄종 탐욕, 벨제부브여.”

단탈리온이 앞으로 걸어오며 조민웅의 기타를 가리켰다.

“이것이 그대의 최선인가.”

“!!??”

조민웅의 눈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참으로 한심하군.”

단탈리온은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조민웅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시선은 단탈리온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

스탭진들도, 조연출인 자신도.

다른 멤버들, 앤디와 제인, 박진태도.

모두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측은하게 조민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말을 하지 그랬느냐.”

“……아.”

“그럼 합주 일자를 다른 날로 잡았을 터인데.”

단탈리온은 실로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연주보다는 전체적인 작곡과 작사 방향성을 논의하는 정도로 하는 것이 어떠한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던 조민웅이 침착함을 되찾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오늘은 좀 손이 안 풀리네? 하하하.”

“훗.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니라.”

모두 이해한다며 단탈리온이 가볍게 말했다.

* * *

‘진짜 미쳤네.’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던 또 다른 인간.

RRR의 공식 팬 1호, 박은환은 카메라에 담기는 영상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예상보다 더 별로잖아?’

RRR멤버들로부터 사전에 언질을 받은 게 있었다.

-오늘 조민웅의 컨디션은 엉망일지도 모른다.

-네? 왜요?

-그 녀석은 라이브를 못 한다.

그럴 수도 있었다.

라이브 실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좋은 노래와 연주로 부족한 것들을 커버하고 있는 거라는 평가도 제법 많았으니까.

-하지만 결선은 라이브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검증을 할 거다.

그 검증이라는 게 바로 실시간으로 기타를 연주해 보라는 거였다니!

박은환은 단탈리온의 행동력에 감탄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조민웅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떻습니까?”

그녀의 옆으로 오로바스가 다가와서는 물었다. 박은환은 영상은 문제없다며 엄지를 척 올리고는 말했다.

“재밌는 영상은 나왔어요. 이건 너튜브에 올려도 되겠죠?”

조민웅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올리면, 그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한층 더 가증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RRR 밴드의 이 영상이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박은환을 향해 오로바스가 혀를 내둘렀다.

“공식 팬 1호답게 정말 악마처럼 되어 가고 계십니다.”

“헤헤, 저도 마왕군의 일원이잖아요.”

어쩐지 진짜 악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박은환이었다.

* * *

조민웅, 탐욕은 민망함을 감추면서 뒷머리를 슥슥 긁었다.

“크, 크흠. 오늘 컨디션이 별로 좋지는 않네요.”

헛기침을 날리는 조민웅을 보며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단탈리온, 앤디, 제인, 오로바스는 아니었다.

때문에 탐욕은 심기가 뒤틀리려는 걸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성을 냈다가는 그야말로 소인배라는 소리를 듣기에 딱이었으니까.

-자네는 조금만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는 게 문제라네.

오늘 이 합주실에 오기 전, 단탈리온에게서도 연락을 받았었다.

외부 미팅 때도 한 번 이야기를 했었던 사안.

너무 빠르게 흥분하기 때문에 될 일을 그르친다는 단점.

-그걸 줄이지 않으면 인간계를 씹어먹지 못하는 법.

그래서 탐욕은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참으려 했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화를 죽여야만 했다.

생일 축하라는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이건 분명 자신이 조민웅이라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 만들어 둔 함정이었다.

여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조민웅의 정체를 의심할 사람들이 생길 거고, 그걸 재미있는 구경거리마냥 단탈리온이 바라본다.

그런 굴욕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맞춰 줄 만큼 맞춰 줬거늘……!’

물론,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아무튼.

“민웅 씨, 오늘은 편곡이랑 작사 이야기로 할까요? 저도 컨디션 안 좋으면 속주 못합니다, 하하하.”

앤디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최대한 풀어 주려 애썼다.

단순히 보면, 앤디가 창피해하는 조민웅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상황을 분석 중이던 탐욕 벨제부브는 이 상황을 그리 곱게만 보지는 못했다.

그야, RRR 밴드 멤버들은 탐욕 벨제부브의 본체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단탈리온의 수하로 남아 있는 이상.

자신을 모욕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하하하……. 위로해 주시니 아주 가암사합니다.”

조민웅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앤디가 살짝 당황해하며 말했다.

“네? 아, 네. 아니면 아예 다른 날을 잡을까요?”

“무슨 소립니까.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닐 텐데요.”

쏘아붙이듯 말하는 조민웅을 보면서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나도 몰라. 일단 맞춰줘야지 어쩌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앤디와 제인을 향해 조민웅이 물었다.

“두 사람은 뭘 하는 겁니까?”

“네? 어떤 걸요?”

“……왜 아무렇지도 않지?”

탐욕으로서는 이것도 불만이었다.

그야, 방금 기타 연주를 할 때.

탐욕 벨제부브는 흑마법으로 자신의 실력을 강화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흑마법이 제대로 걸리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그 마법에 감화되어야 할 인간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다.

그나마 영향을 받았다면 스탭진들 몇 명 정도였다.

“대체, 어째서, 아무렇지 않은 거죠.”

그래서 조민웅은 황당했고, 궁금했다.

어떤 놈이 감히 자신의 계략을 방해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불타오르는 탐욕의 맛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어……. 우리 그냥 듣기만 하지 않았나.”

앤디의 말에 제인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단탈리온도 조용히 말했다.

“자네의 실력이 형편없었음을 대고 우리를 탓하려는가.”

“너……!”

이건 분명 단탈리온이 꾸민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단 말인가!

그 사실이 탐욕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화내지 말거라, 탐욕이여.”

“!!”

“그대가 화를 낸다 한들 변화하는 건 없도다.”

그 말대로.

단탈리온은 조용히 손을 들어 눈앞에 있는 스탭진들을 가리켰다.

“저들을 향한 감화도 벌써 풀리지 않았는가.”

“그게 무슨……!!”

“몰랐는가. 이것이 바로.”

가볍게 웃음을 지은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RRR 밴드, 마계의 소굴의 힘이니라.”

* * *

‘참으로 멍청하군.’

아무것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조민웅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잠재우고 있는 사이.

단탈리온은 조민웅이 만지다가 내동댕이를 쳐 둔 통기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앤디여.”

“응?”

“그대의 역할이 컸도다.”

“아 그래? 뭐가?”

“아무것도 아니니라.”

“? 싱겁긴.”

그리고 다시 작업에 착수한 앤디를 바라보며.

단탈리온이 기타를 들었다.

“탐욕, 조민웅이여. 그대는 알고 있는가.”

“뭘?”

“이건.”

후우우웅-

단탈리온의 손이 기타를 한 바퀴 돌며 감쌌다.

그러자 기타의 모양새가 살짝 바뀌었다.

섬세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

솔직히, 탐욕도 그걸 모를 뻔했다.

직접 만져 보고 살펴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어떠한가.”

“이, 이이이……!!!!”

처음부터 넥이 휜 기타를 쥐어 줬으니, 실력이 있어도 제대로 칠 리가 없다.

게다가 흑마법으로 가려 둔 건 어디까지나 외형.

직접 손을 잡아 봤을 때, 실력이 있다면 이질감을 느껴야만 하는 법이거늘.

“그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더구나.”

“너, 너너, 너……!!!”

“아둔한 탐욕, 조민웅이여.”

조민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그 모습을 재미 있는 구경거리를 바라보는 듯 단탈리온이 말했다.

“넥이 휘어 있는 기타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참으로 실망이 크도다.”

“이 나쁜 새끼야!!!”

“악마란 원체 나쁘지 않은가, 하하하하!”

단탈리온의 웃음소리가 합주실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리고 영상을 담고 있던 조연출은.

‘미쳤다……!’

무명이던 RRR 밴드가 초인기 싱어송라이터 조민웅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했다!!!!!

“찍고 있어, PD님이랑 통화하고 올게!!!”

“네!!!”

서로 눈길과 짧은 메시지만을 주고 받은 스탭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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