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라이징 밴드 결선 1라운드 (4)
이후로도 조민웅, 탐욕은.
둔두둔둥둔둥둔
“…… 여기서는 드럼 소리를 더 약하게 할까요?”
“그,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네! 드럼이 너무 크면…….”
“후…… 이거 베이스 소리예요, 민웅 씨.”
“……뭐?”
제인에 의해 음악 지식을 점검받았고.
쟈쟈쟝-키잉!
“기타 솔로 구간에서 제가 트레몰로암을 조작하려고 하는데.”
“으, 응.”
“트레몰로암 괜찮아요?”
“트, 트 뭐?”
“트.레.몰.로.암. 괜찮냐고요.”
앤디에 의해 기타 용어와 기술적인 부분을 확인받으면서.
“쯧쯧. 베이스 소리와 기타의 용어도 알지 못하는 이가 어찌 싱어송라이터를 한단 말인가.”
단탈리온으로부터 수도 없이 모멸 찬 웃음을 받았다.
속은 끓어올랐지만, 여기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는 일.
자칫 잘못하면 여태껏 자신이 쌓아 온 조민웅이라는 인간의 명성을 다 말아먹고, 빙의한 보람도 없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욕 벨제부브는 기조를 바꿔서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게 어때서! 트레몰로인지 뭔지를 내가 어떻게 알아!”
“허어…….”
하지만, 그건 오히려 패착이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용어를 실수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그 명칭이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헷갈리는 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말이다.
“민웅 씨…….”
“실력…… 생각보다 없는 거 아냐?”
그렇게 스탭진들이 중얼거리는 사이.
박은환은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런 걸 수도 있죠!”
“어떤 거요?”
조연출이 묻자 박은환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몇 년에 한 명 나온다는 천재!”
“천재라…….”
하긴, 천재라면 굳이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음악을 만들 수 있고, 감각만으로 모든 걸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었다.
“그럼 자막에 이렇게 넣자! 천재 조민웅도 몰카에는 장사 없다!”
“좋은데요!”
“보성 선배한테도 허락받았으니까 이대로…….”
“누가 몰카야 몰카는!!!!”
조민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연출이 나름 조민웅을 배려한다고 하는 말이 결국 탐욕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단탈리온은 상황이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큭큭 웃었다.
“어떠한가, 탐욕이여.”
“뭐가!”
“자네는 지금 음악적 지식도 없고 연주 실력도 없으며 감각은 부족한데다가 천재라고 필멸자들이 받들어 주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성을 내고 있다.”
단탈리온이 키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자네가, 어찌 이 몸과 함께 무대를 꾸민단 말인가.”
“너……. 이 새끼……!”
“안타깝게도.”
지금 탐욕은 무대를 준비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단탈리온은 그렇게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자네는 마왕 세이르와 동급, 아니 그 이하나 다름없구나.”
라이징 밴드 예선 때 자신과 격을 맞추겠다며 라이징 밴드에 도전한 마왕 세이르.
그 녀석 또한 음악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흑마법에만 의존하는 졸렬한 악마였다.
“나를…… 마왕과…… 동급이라고……?”
“그러하다. 내 말이 틀렸는가.”
단탈리온이 말을 잠시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민웅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물었다.
“탐욕 조민웅은 천재라 불리는 존재. 그게 맞는가.”
“아, 네……. 그렇기는 하지만…….”
“허나, 그 천재로 이 몸이 이끄는 밴드, RRR이라는 마왕군에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그 말에 조연출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거다……! 자막에 넣어!”
“훗. 옳은 판단이로다.”
몰래카메라를 하기는 했지만, 원래 인간인 조민웅이었다면 충분히 오류를 찾아내고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탐욕은 조민웅이라는 인간의 겉모습만을 탐했다.
그 결과, 조민웅이 갖고 있는 지식과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조민웅, 자네는 자격을 갖추고 오거라.”
“이…… 개자식…….”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모조리 사라진 조민웅이 고개를 바짝 쳐들고는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이 나쁜 새끼야! 너도 인간 중에서 실력자들 힘이나 빌리는 주제에!!!”
“음? 인간 실력자?”
단탈리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누구더냐.”
“앤디, 제인! 쟤들 같은 실력자들에게 기대고서 하는 거잖아!”
“호오.”
고오오오-
단탈리온이 몸에서 마력이 서서히 끌어올렸다.
“진정 그리 생각하는 것이더냐.”
“흥. 나도 음악 좀 하는 인간들로 팀 꾸리면 이깟 밴드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주 옳은 생각이로다.”
단탈리온이 눈매를 가늘게 만들었다.
“할 수 있다면 해 보거라.”
“하! 못할 줄 알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RRR멤버들은 오늘 연습은 이걸로 끝났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뭐만 하면 싸우기만 하네.”
“그러게. 근데 목적 달성 아냐?”
“그런가?”
앤디와 제인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탐욕은, 단탈리온을 향해 화를 내던지느라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라이징 밴드 결선 무대 연습 촬영이 끝난 합주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제인만이 홀로 남아 베이스를 매만지고 있었다.
“…….”
그녀는 베이스의 현을 살짝 튕겨 보았다.
두운-
“…….”
무료한 영화라도 보는 듯.
제인은 베이스를 붙잡고는 품에 안았다.
“후…….”
지금 이게 맞는 걸까.
RRR 밴드에서 베이시스트의 역할.
화려한 속주를 보여 주지는 못해도 리듬의 기본을 잡아 주는 악기.
하지만, 이대로 라이징 밴드 결선 무대를 행해도 괜찮은 걸까.
“……참나.”
이번에 만들어지는 노래의 작곡 과정에서도 그랬다.
제인은 조민웅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한다며 베이스 소리를 드럼 소리라 거짓말을 해 가며 보여 주었었다.
그 몰래카메라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탐욕이라는 칠죄종이 빙의한 조민웅.
그를 견제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거였다.
“베이스 소리가 너무 묻히잖아.”
이번 작곡의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베이스 소리가 드럼 소리에 가려지는 것.
게다가 기타는 화려한 솔로 구간을 만들어 두는데 비해, 베이스는 주목받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인은 손가락을 크게 펼친 후.
“후우…….”
마치 앤디가 천수관음 주법을 하듯이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다라다다다다다다당다다다두두두두나다다다다다다당!
베이스 현이 위아래로 튕겨지며 공간을 울렸고, 그 소리는 앰프를 통해 공기와 닿아 하나의 파장을 만들어 냈다.
그 위로 제인의 연주와 파워풀한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베이스 솔로 구간을 만들어 냈다.
분명 거울 속 자신은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었거늘.
연주가 다 끝난 뒤에 몰려오는 이 허무함을 무엇이란 말인가.
“……이 연주를 넣어 달라 할 수도 없고.”
“고민이 있는 모양이네.”
그때 합주실 현관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제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눈이 보이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남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가왔다.
“안 가셨어요?”
“잠깐 깜빡한 게 있어서 말이야.”
고오오오-
다시 RRR의 합주실을 찾은 탐욕, 벨제부브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양손으로 잔뜩 마력을 발산하면서 말이다.
“그대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저를요?”
“……응?”
멍청하게 되묻는 탐욕을 향해.
제인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물었다.
“저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셨냐고요.”
“어? 어……. 응? 그런데 어라? 이게 아닌데?”
탐욕이 당황스럽다는 눈빛을 하면서 두 눈을 끔뻑거렸다.
* * *
‘뭐, 뭐야 이 인간!?’
단탈리온이랑 같이 다녀서 겁을 상실했나?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름 칠죄종으로서 악마의 기운을 끌어올렸는데, 어째서?
‘왜 무릎을 꿇지 않는 거냐!’
원래 계획이라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인간을 향해 위엄있게 걸어가 자신의 수하로 삼는 것.
단탈리온과 지금까지의 명성을 올린 RRR 밴드 멤버라면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이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제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하찮은 존재를 바라보는 듯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마왕님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까 이런 부분은 감각이 약해진 거 같네요.”
제인의 팔목에서 단탈리온이 자신이 마왕임을 밝혔을 때 제공해 준 공포 저항 팔찌가 미세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애초에 경고를 받았었다.
-탐욕이 언제 자네들에게 접근할지 모르는 일.
단탈리온 데스맨은 사전에 탐욕, 조민웅이 다가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강조했었다.
-그 팔찌를 풀어서는 아니 되느니.
처음, 마왕임을 밝혔을 때 받았던 팔찌.
공포 저항 팔찌라 했던가.
이 팔찌가 있으면 어지간한 마기 앞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다고.
게다가 지금은 한층 더 강한 기운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시틀라와 군단장들이 힘썼도다.
그 덕분에 지금 제인은 팔찌의 힘을 받아 칠죄종, 탐욕 벨제부브의 앞에서도 의연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기운으로 인한 공포는 없지만.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게 바로 악마니까.
“마왕이랑 같이 다녀서 그렇다고……?”
“네. 아무래도 하도 기상천외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 거 같네요.”
짐짓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제인을 보며 조민웅이 크큭, 웃었다.
“그렇군. 그럴 수 있겠어.”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한 탐욕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거 같은데?”
“……네?”
“너, 부족하지?”
탐욕이 혓바닥을 낼름 움직이며 제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연주를 향한 탐욕.”
“……!!!”
제인의 어깨가 흠칫 떨려 왔다.
어떻게 알았지?
아니, 어쩌면 방금 전의 속주를 들었기에 알고 있는 건가?
근데 그것만으로 알 수 있나?
“궁금해?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뇨, 연주에 대한 생각은 탐욕이라던가 그런 게 아니에요.”
“히히히 거짓말하지 마.”
조민웅이 기괴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난 칠죄종 탐욕. 인간들은 물론이고 천사들에게서도 욕망을 캐치해 내는 악마.”
“…….”
“하찮은 필멸자의 욕망 정도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그 말에 제인은 생각했다.
정말 이 녀석은 탐욕이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했던 걸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흑마법이라도 쓴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나약해.”
오직 이런 나약한 마음을 가졌던 자신을 탓하게 되어야만 하는 걸까.
제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탐욕은 그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빙글 돌리며 눈을 반달로 만들었다.
“으응, 멋져. 아주 멋져. 그 탐욕스러운 얼굴. 아주 좋아.”
“……뭘 원하시는 거죠?”
“응? 어려운 건 아니고.”
탐욕이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나랑 약속 하나만 해 주면 말이지.”
“…….”
“천수관음 주법 따위는 전부 날려 버릴 수 있는 천상의 주법을 쓸 수 있게 해 줄게.”
“……무슨…….”
“못 믿겠어?”
눈앞에 있는 존재는 악마.
그냥 악마도 아니고 마왕보다도 더 사악하다는 칠죄종.
그중에서도 탐욕의 벨제부브.
이미 단탈리온 데스맨으로부터도 경고를 숱하게 받았음에도.
제인의 눈에 아주 미약하게.
그 주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탐욕 벨제부브는.
선글라스를 살짝 벗은 채로 제인의 눈동자에 자신의 미소를 담았다.
“딱 하나만 들어주면 된다고.”
제인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벨제부브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내비쳤다.
* * *
“음.”
단탈리온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식사를 차린 오로바스가 긴장한 채로 무릎을 꿇었다.
“다, 단탈리온 님! 혹 오늘 말죽은 입맛에 맞지 않으신지…….”
“아니, 그게 아니다.”
단탈리온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이야기들이 둥실, 떠다녔다.
“이, 이건!?”
“잠시 조용히 있거라.”
단탈리온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던 파편들이 하나로 맞춰졌다.
그리고 그 조각이 만들어 낸 사진을 확인한 단탈리온이 말했다.
“합주실의 감시 눈동자들이 파괴되었구나.”
“정말입니까!? 범인은 천계입니까! 아니지, 제가 직접 합주실을 찾아가서……!”
“아니, 괜찮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단탈리온은 다시금 숟가락을 들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하면…….”
“허나, 그 녀석의 처분은 이 몸이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단탈리온은 오늘까지 71위 마계의 일원들과 대비를 해 온 것이었다.
“어서 숟가락을 들거라. 먹고 나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평소보다 더 파이팅 넘치게 말죽을 비우는 오로바스를 보면서.
단탈리온이 중얼거렸다.
“마법진의 완성을 서둘러야겠군.”
그리고 단탈리온의 혼잣말은.
71위 마계의 임시 운영자, 시틀라가 직통으로 듣게 되었고.
“군단장들 전부 초비상!!!!!!!!!!!!!!!!!!”
“허억!?!?!?!??!”
마왕성 안, 시틀라의 군단장 모집을 위한 호통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