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10화 (110/110)

110화. 라이징 밴드 결선 1라운드 (5)

“이런 제길……!”

콰앙!

회의실의 원형 테이블로 두꺼운 주먹이 내리쳐졌다.

평소라면 테이블 부서지면 어떡할 거냐고 잔소리를 할 법한 시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깊게 침음성을 흘릴 뿐이었다.

“마법진 완성은 아직인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대체 어떻게……!”

이미 에키드나와 아스테리오스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칠죄종의 마법진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소환진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에키드나는 언제까지 가능하다 하였지?”

7군단장, 만티코어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시틀라는 자신도 아직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뭣!? 자네마저 모르면 어떡하나! 자네는 알아야지!”

“나라고 모르고 싶었겠냐?”

시틀라의 말에 만티코어가 뭐라 의견을 말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그렇군.”

“……나라고 ……모르고 싶었겠냐고.”

시틀라도 분한 건 사실이었다.

이미 마왕 단탈리온 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지 시간이 제법 지난 상태였다.

칠죄종의 접근에 대해 경고하고, 그에 따라 마법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이후 지금까지.

“……오로바스와 시루베로스는 지금 이 순간도 단탈리온 님 옆에서 칠죄종 탐욕을 감시하고 있다.”

그뿐이랴.

단탈리온 님은 마계가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사이 칠죄종을 대상으로 벌써 한 방, 아니 몇 방이고 유효타를 날리셨다.

“나는…… 쓸모없는 시종……!!”

“에헤이, 그만! 시틀라!”

불길함을 감지한 만티코어가 서둘러 시틀라를 말렸다. 그러나 시틀라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주군이…… 저, 저렇게…… 분투하시거늘……!!!”

이래놓고 마왕의 대리라 할 수 있겠는가.

겨우 이런 실력으로 마왕의 시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불충한 시종을 용서해 주십시오!!!!!!!”

콰앙!!!! 콰앙!!!!

“시틀라! 그만! 야, 다들 뭐 해! 말려!!!”

만티코어의 다급한 외침에 다른 군단장들도 쏜살같이 튀어나와 시틀라의 사지를 붙잡았다.

“놔!!! 이거 놓으라고!!!!”

“멍청한 시틀라 녀석! 지금 이런 모습을 단탈리온 님이 알게 되시면 뭐라 하시겠냐!”

“핫……!!”

그렇다.

지금 이렇게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 단탈리온 님이 알게 되신다면.

“지금 자네는 큰 실수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가!”

“……그래.”

흥분을 가라앉힌 시틀라가 눈물을 슥 닦았다.

“훌쩍, 좋아. 마법진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도 지원을…….”

-응? 시틀라 질질 짰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시틀라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누, 누구냐!”

-너 이제 내 목소리고 까먹었냐? 얼마나 못 봤다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틀라의 앞에서 육망성 두 개가 겹쳐진 십이망성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고, 목소리의 주인공의 발이 나타났다.

탁.

“에, 에, 에, 에키드나!?!?!?”

“그래! 나야! 응? 근데 다들 모여 있네?”

마왕성의 회의실.

그곳은 군단장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너, 너너너, 너, 바, 방금 그건…….”

“아, 그치 그치. 봤어? 방금 그거?”

이 회의실은, 에키드나와 아스테리오스의 마법진 연구가 진척이 있을 때, 소환 좌표로 삼은 장소이기도 했다.

“성공했구나!!!!!”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에키드나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폈다.

“그럼 지금 인간계에서 오는 거야?”

“인간계…… 까지는 아니고, 지구 근처 우주.”

그 부분이 조금은 아쉽다는 듯 에키드나가 한숨을 쉬었다.

“잘못하면 천계에서 마기를 눈치챌 수도 있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이론상으로는 완벽해.”

에키드나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그러니 남은 건 시간 싸움! 앞으로 넉넉잡고 두 달, 빠듯하게 당기면 한 달 정도면 된다고! 칠죄종의 마법진? 그 정도는 우리 군단장들도 충분히 카피할 수 있다, 이거야!”

“그 말이 맞다, 에키드나.”

어느새 도착했는지 아스테리오스도 회의실에 들어와 있었다.

“71위 마계에서 가장 마법진에 대한 소양이 높은 나와 에키드나의 합작이다. 실패할 리가 없지.”

“응응. 그럼 그럼.”

자신감에 넘치는 두 악마를 바라보며 시틀라가 눈을 감고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시틀라로부터 만족스러운 웃음을 발견한 두 악마는 신이 나서는 다른 군단장들에게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들어 봐. 우리가 처음 칠죄종 흔적 찾으러 갔을 때 말인데.”

“아몬 님 덕분에 시간을 벌었지. 나중에 아몬 님께 감사 인사를 꼭 드려야겠어.”

“솔직히 지난 주까지는 좀 불안했거든? 뭐가 성과가 없으니까!”

“다행히 며칠 전, 실마리를 찾아냈지. 이제 약 두 달 정도만 더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면 인간계로의 술식이 완성…….”

“2주일.”

그때 시틀라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맺혀 있었다.

무거운 목소리에 미소를 지은 얼굴이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라 에키드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틀라? 왜 그래?”

“시틀라 자네 피곤해 보이는군.”

“2주일이라고.”

시틀라가 검지를 위로 한껏 들어 올렸다.

“단탈리온 님의 라이징 밴드 결선 전까지 완성되어야 하는데. 그거, 2주 뒤라고.”

에키드나와 아스테리오스의 두 눈동자가 소리 없이 끔뻑였다.

* * *

라이징 밴드 결선 1라운드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불과 며칠.

RRR 밴드도 자작곡의 콘셉트을 정하고, 주제에 맞는 작사까지 완성해 둔 상태였다.

쟈쟈쟝-! 키잉-!

뚝.

“리프를 이렇게 더 들어가 주면 어떨까?”

일렉을 만지던 앤디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던졌다. 그러자 단탈리온과 오로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한 명.

“흠……. 여기서 기타 리프를 늘릴 필요가 있나?”

음악을 듣던 조민웅이 손을 들고는 반대 의견을 냈다.

“지금도 기타는 많아. 혼자 너무 욕심부리는 거 아냐?”

“네?”

“아니, 앤디 씨 들어 봐. 지금 기타 솔로도 들어가고, 리프도 들어가고. 기타가 너무 부각된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어…….”

생각해 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기세를 잃지 않고 조민웅, 탐욕이 말을 이었다.

“드럼이랑 베이스는 봐. 그냥 리듬만 깔아 주잖아. 보컬도 노래만 하고. 제일 돋보이는 게 기타야. 그렇지?”

“네……. 그것도 그렇…… 네요.”

“그러니까 난 반대야. 난 RRR 밴드를 도와주러 온 거지, 앤디라는 기타리스트를 도와주러 온 건 아니니까.”

교묘하게 드러머와 보컬의 이야기까지 섞으면서 기타의 문제를 지적한 조민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커피를 홀짝거렸다.

“아, 내가 뭐 악감정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고요. 어? 악마니까 악감정은 당연히 있는 건가? 하하하하!!”

“네,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되도않는 농담을 하는 조민웅을 보며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번에는 자신이 조금 과했을지도 모른다.

“제인, 미안.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알면 됐어.”

제인이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앤디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마치 무슨 일 있냐는 듯 묻는 앤디를 보며 단탈리온도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해? 합주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마저 연습해야지.”

제인의 말에 다른 멤버들 모두 다소 당황한 채로 각자 악기를 잡았다.

단탈리온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조민웅은 씰룩거리는 입술을 통제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오늘 마지막 합주 같은데?”

조민웅, 탐욕의 말에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기존대로 가고, 다시 연주하도록 하지.”

단탈리온의 말대로 같은 노래로 연습을 했다.

[뜨거운 너의 손에!]

[들려 줄 뜨거운 파이어볼!]

노래를 마친 단탈리온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구나.”

“그래?”

제인이 무언가 시원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제인의 표정은 신경 쓰지 않고 생각한 바를 던졌다.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동안 컨디션 정리에 힘을 쓰는 게 어떠한가.”

“그거도 괜찮아. 각자 따로 연습 잘해 오고, 평소 합주 시간대로 연습하자. 더 연장하거나, 오래 하거나 하지는 말고.”

단탈리온에 이어서 앤디의 의견까지 들은 오로바스와 제인이 알겠다며 합주를 마무리했다.

“먼저 간다.”

베이스를 챙긴 제인의 뒤를 조민웅이 따라갔다.

“단탈리온, 나도 갈 테니까 뭐 생기면 연락해라.”

“연주 실력은 어떠한가.”

“조민웅이라는 인간 기억 토대로 연습하고 있거든? 걱정 말라고.”

탐욕이 불만 섞인 눈동자를 하고는 몸을 훽 돌려 사라졌다.

“오로바스여.”

“예, 단탈리온 님.”

“먼저 가서 집안일을 해 놓거라.”

오로바스가 벌떡 일어나 드럼 스틱을 가방에 넣고는 경례를 올렸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모든 사람이 합주실 밖으로 나가자, 옆에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여성이 다가왔다.

“저기 데스맨 씨, 오늘은 뭔가 쌀쌀맞은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괜찮은 건가요?”

연습 영상을 촬영하던 박은환이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이거 잘못 올라가면 게스트를 괜히 불러와서 멤버 간 불화만 야기하게 되는 배드 이그젬플(bad example)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공식 팬 1호여.”

단탈리온이 박은환을 향해 말했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니 답사를 가고자 하는데.”

“답사 좋죠! 미리 무대 구성도 알아보고!”

“그 답사에 함께 하겠는가.”

단탈리온의 제안에 박은환의 두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 * *

“출입 불가이십니다.”

“…….”

“…….”

올림픽공원 체육대경기장에 도착한 단탈리온과 박은환은 그야말로 문전 박대를 당했다.

“티켓이 없어서 그런가요?”

“그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외부인을 출입시키다가는 끝도 없어요.”

담당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는 신태정 씨 공연 본다고 팬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와서는 난리를 피웠거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인상을 쓰는 담당자를 향해.

뚜벅.

단탈리온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갔다.

“방금 신태정이라 하였는가.”

“네? 네. 신태정 씨요. 싱어송라이터.”

“그러하군. 잠시 기다리거라.”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흑마법을 쓰고 들어가면 되었지만.

지금은 박은환이 함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두고 혼자 들어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늘 이 답사에 다른 멤버들이 아니라 박은환을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단탈리온은 핸드폰을 꺼내 신태정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우- 뚜우-

연결 대기음이 들리기를 십여 초.

올림픽공원 담당자는 이제 제발 저리 꺼지라는 듯 손을 휘젓고 있었다.

“나가서 하세요, 나가서.”

딸칵-

-데스맨 씨!!!!!!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시종 신태정이여.”

그 말에 담당자의 시선이 단탈리온에게로 향했다.

-네! 덕분에 요즘 콘서트도 잘하고 있습니다!

“올림픽공원의 체육대경기장이렸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데스맨 씨도 제게 관심을……!!!

“지금 그곳인데 담당자가 들여보내 주지를 않는구나.”

단탈리온이 담당자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삭 말아 올렸다.

“이 몸이 그대와의 콜라보를 제안하기 위한 사전답사이거늘.”

-코, 콜라보!!!!!!!!!!

핸드폰 너머에서 신태정이 흥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 데, 데스맨 씨!!!!! 방금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훗. 궁금하면 와 보거라. 금일 스케줄은 어떠한가.”

-오늘 마침 쉬는 날입니다!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허술하군. 당장 날아서 오거라.”

-하하하하!!!! 물론입니다, 데스맨 씨!!!!!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는 담당자는.

그렇게 약 삼십여 분 뒤에 도착한 신태정에게 상황 설명을 듣게 되었다.

“저랑 같이 내일 공연 무대 구상을 해주실 RRR 밴드의 데스맨 씨입니다! 요즘 라이징 밴드로 아주 핫한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리스트시죠!”

“아……. 네…….”

“그러니 사전 준비 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평소 라이징 밴드를 시청하지 않았기에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담당자였다.

하지만, 당장 내일 공연이 있는 신태정의 요청이었다.

더는 막을 만한 명분도 없었기에.

“드…… 들어가세요.”

올림픽공원 대경기장의 출입구를 열어 주게 되었다.

‘저 인간 뭐 하는 인간이야!?’

라이징 밴드를 봤다면 그나마 단탈리온 데스맨을 알아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담당자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혼나지는 않겠지.”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며 억지로 자리로 돌아가는 담당자.

그리고 그녀는 이후, 뮤지션 비긴즈를 보게 되었을 때, 왜 그때 사인을 받아 두지 않았을까 후회하게 되지만.

그건 앞으로도 시간이 제법 지난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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