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2022.03.20.
“아니라고는 말 못 하죠.”
해인의 푸념 어린 말에 지훈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종일 휴식을 취했지만, 해인은 여전히 몸이 무거웠다. 그 여파는 다음날까지 지속되었다. 걱정이 된 지훈이 해인의 이마에 손을 짚으며 물었다.
“혹시 감기 아닐까? 여름 감기가 독하다잖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럼 다행인데.”
“어차피 내일 정기검진 날이니까 병원 가야 해요. 좀 참고 내일 시간 되면 같이 가요.”
“그래. 그렇게 하자.”
지난 검진 때 예약 날짜를 들어서 이미 연차를 낸 상황이었다. 지훈은 다음날이 될 때까지 해인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초음파로 배를 살피던 의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지훈은 그제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굳게 다물렸던 의사의 입술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 * * 날이 흐렸었다. 여름이었지만 아침에도 선선했고 비라도 내릴 듯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기분이 우울한 것이라고 해인은 생각했었다. 선물처럼 찾아와 줬던 우리의 보물이 그렇게 쉽게 떠나 버릴 것이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사는 계류 유산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확한 것은 다음날 다시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훈은 해인을 꼭 안아 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밤새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쉽게 떠날 아이가 아니라고, 우리 보물이는 절대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자궁을 열기 위해 세 번에 걸쳐 약을 먹고 수면 마취를 통해 이루어진 수술. 우리의 보물이었던, 우리의 아이는 그렇게 떠나갔다. 어제와는 달리 지독히도 화창했으며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이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그리된 것 같은 죄책감에 해인은 제대로 울 수조차 없었다. 지훈의 위로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지키지 못해서. 보낼 수 없는, 차마 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를 보내야 하는 엄마 해인은 그렇게 무너졌다. * * * 아픈 해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손수 미역국을 끓였다. 그저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다. 저 또한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마음이 슬프고 괴로웠지만, 해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사실 해인이만 괜찮다면 이 슬픔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디 해인이 이 아픔을 잘 추스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미역국을 끓여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일어나 봐. 미역국 먹자. 출산한 것과 같다고 했으니까 잘 먹어야지.”
지훈이 해인을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해인은 제 앞에 놓인 밥과 미역국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를 잃었는데 무슨 장한 일을 했다고 이런 호사일까.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먹자.”
지훈이 옆으로 앉아 숟가락으로 밥을 떠 주었다. 기계처럼 입을 벌린 해인이 밥과 국을 받아넘겼다. 해인이 안 먹는다고 버틸까 봐 겁이 났던 지훈은 무사히 밥을 먹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먹을 것을 만들고 치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훈은 한시도 해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지훈의 품에 안긴 해인은 목놓아 울었다. 떠난 아이를 생각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며.
* * *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휴가를 더 쓰겠다는 지훈을 출근시키고 해인이 홀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오후 즈음 애란이 찾아왔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었지만 집안 식구들까지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내 침대에 누워 있던 해인은 나름 옷을 갖춰 입고 애란을 맞았다. 먼저 소파에 앉은 애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 몸은 좀 어떠니?”
“괜찮습니다.”
“네 시아버지가 한약을 지어 주셨어. 일단 이것 먹고 기운 좀 차리려무나.”
애란이 테이블 한쪽에 놓아 두었던 한약 상자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 버린 것 어쩌겠니. 얼른 잊어 버리렴.”
해인은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시아버지께서 얼마나 아이를 원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두 분께도 면목이 없었다. 애란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몇 마디의 위로를 더 건넨 후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 보마.”
“벌써 가시게요?”
“원래 약만 주고 가려다 얼굴이라도 보려고 올라온 거야. 아픈 애 붙잡고 오래 있으면 실례지. 나오지 마라. 알아서 갈 거니까. 몸조리 잘하고.”
애란은 순식간에 거실을 벗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해인이 재빨리 따라가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현관문을 닫고 나간 후였다. 인사라도 해야겠다 싶어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였다.
“몸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염려 마세요.”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해인이 그대로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애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했다.
“아니, 아이가 있다고 해서 한강도 포기했는데 이제 와서 저렇게 되면 어쩌라는 건지, 아무래도 저 아이는 우리 지훈이랑 인연이 아닌가 봐요.”
툭. 팽팽히 당기고 있던 줄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아야 하는데 오늘따라 몹시도 가슴이 아려왔다. 지훈은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왔다. 미역국도 데우고 본가 아주머니께 부탁한 늙은 호박죽도 데워서 식탁에 차렸다.
“내가 하려고 했는데…….”
해인이 미안한 듯 중얼거렸다. 내내 일하고 온 사람에게 이런 것까지 챙기게 하는 것이 내심 미안했다.
“무조건 쉬는 게 좋다고 했잖아.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
“어머니 다녀가셨어요.”
“알아. 가신다고 연락 왔었어. 오래 있지 말고 바로 가시라고 했는데.”
“네. 오시자마자 얼굴만 보고 갔어요.”
“그래. 별말은 없으셨지?”
“네.”
해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어 주었다. 굳이 그 말을 전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를 마치고 잠시 차를 마시며 쉴 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예기치 못한 손님의 얼굴이 보였다. 우영에게 소식을 들은 은하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모. 이모가 어떻게…….”
“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네 엄마가 알면 나한테 얼마나 서운해 하겠…… 으흑.”
목이 멘 은하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엄마도 없이 자란 것도 서러운데 배 속의 아이까지 잃은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는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해인의 손을 꼭 붙들며 눈물을 삼켰다.
“괜찮아요. 이모.”
“괜찮기는. 유산한 것도 출산한 거랑 똑같다고 했어. 몸조리해야 하니까 나, 따라가자. 얼른 준비해. 우영이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 지금 가자.”
“네?”
당황한 해인이 무슨 말이냐는 듯 은하를 보았다. 굳은 결심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인 은하가 이번엔 지훈을 바라보았다.
“실례 좀 할게요. 나, 해인이 친엄마도 아니고 피도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인이를 거의 내 딸이라 생각하며 산 사람이에요.”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해인이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훈이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근에 해인에게 그녀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유산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오신 것을 보니 그 마음이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인사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해인이 엄마와 생전 했던 약속 때문이에요.”
은하는 죽은 해인의 친엄마에게 해인이 출산하면 대신 몸조리를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해인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온전한 출산이 아니기에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지훈은 해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힘들수록 같이 있으면서 위로해 주고 아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가신 엄마와의 약속이라는 부분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보내기 싫었던 지훈은 일단 해인의 의사를 물었다.
“해인이는 어때?”
해인이 묵묵히 지훈을 바라보았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제 밥이나 챙기고 있는 것이 보기 안쓰러웠다. 그가 한동안은 저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돌아가신 엄마와의 약속이라며 찾아오신 은하를 그냥 돌아가게 할 수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해인이 순순히 대답했다.
“가고……, 싶어요.”
서운했지만 지훈은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이리라. 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유만 아니라면 절대 보내지 않을 터였다. . . . 간단한 짐을 챙겨 주는 지훈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해인은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요. 웃으면 안 돼요?”
“혼자 남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겠어.”
사실이 그랬다. 이 넓은 집에서 해인이 없이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몸조리하러 가는 그녀를 잡을 수도 없기에 괜한 한숨만 깊어졌다.
“후! 금방 올 건데 뭘 이렇게 많이 챙길까.”
캐리어에 쌓여가는 짐을 보던 지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짐이 많아지는 중이었다. 잠옷, 속옷, 그리고 보습제에 편안히 입을 수 있는 일상복까지, 넉넉히 챙기다 보니 어느새 많아져 버렸다.
“금방 다시 올 건데 슬퍼질 이유도 없어.”
다짐하듯 중얼거린 지훈이 부러 웃음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막상 보내려니 보내기가 싫었다. 지훈은 이제 닫기만 하면 되는 캐리어를 차마 닫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고 불안한 걸까. 금방 다시 만날 건데……. 안방을 나서면 해인이를 데려갈 아주 좋은 분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지훈은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캐리어를 닫았다. 지하주차장엔 검정색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시동이 켜졌다. 차에 오르기 직전 지훈은 해인을 꼭 끌어안았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래서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해인을 보내야 했다.
“잘 지내요.”
잠깐의 이별을 알리는 해인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해인은 차에 올랐다. 지훈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전화할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애틋한 시선이 마주 닿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해인이 먼저 지훈의 시선을 외면했다. 지훈은 해인이 떠난 주차장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추스르며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잘 도착했다는 해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는 길지 않았지만, 해인의 목소리는 밝았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핸드폰을 끊은 지훈은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품어 보지도 못한 아이였지만 아빠로서 제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해인은 얼마나 힘이 들까. 해인이 겪고 있을 슬픔과 고통이 모두 제 탓인 것처럼 느껴져 그는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되었다. * * * 어느덧 2주가 지나고 여름이 깊어갔다. 몸은 많이 좋아졌는데 해인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은하가 좀처럼 그녀를 보내 주려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손수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았지만, 도우미 아주머니들의 솜씨를 빌려 산모에게 좋다는 음식들을 매일 먹이며 해인을 딸처럼 돌봐 주었다. 그 누구도 해인을 불편해하거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영은 자신의 집임에도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있었고 위로를 한다며 불필요한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해인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일을 깊이 고민했다. 매일 걸려오는 지훈의 전화를 점점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