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 재회의 밤. (39/92)


43. 재회의 밤.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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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의 눈앞으로 애타게 찾았던 해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던 그 모습 그대로.

안도하는 것도 잠시, 지훈이 서둘러 다가가 두 팔로 그녀의 팔을 붙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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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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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다니요?”

해인이 되물었을 때 지훈은 비로소 자신이 과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뛰어댔던 심장은 여전히 그대로임에도 지훈은 빠르게 표정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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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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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는 사람을 만나서 꼭대기 층에 올라갔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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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층?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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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지오…….”

해인이 멋쩍게 말끝을 흐렸다.

지오라는 이름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지훈을 익히 알고 있기에.

아니나 다를까.

지훈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 * *

한 시간 전.

선글라스를 손에 들고 트렌디한 남색 버킷햇을 쓴 남자.

그는 다름 아닌 지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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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가 어떻게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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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었어요. 초대장도 받아서 겸사겸사 와 봤어요.”

지오는 깜짝 놀란 해인의 손을 잡고 그대로 파티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지오가 해인을 데리고 간 곳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대였다. 통유리 너머,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오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해인과 야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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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멋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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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네요.”

사실 지오 때문에 놀란 터라 야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이 넓은 땅에서 한국 사람을, 그것도 지오를 만난 해인은 여기가 별천지라도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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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깜짝 놀랐어요. 한국말이 들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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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놀랐어요. 누나가 거기 있어서. 나, 누나 보고 싶었는데…….”

지오가 모자를 벗고 해인과 마주 보았다.

작은 얼굴 안에 올망졸망 귀여운 이목구비가 조각상처럼 빛을 발했다. 친구에게 분명 한 살 많다고 들었는데 얼굴이 동안이라 그런지 어린 남동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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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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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아닌데.”

서운하다는 듯 투정을 부리는 목소리였다. 농담이 아니라 해도 딱히 진심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해인은 그저 웃음으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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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우리 옷 광고해 줘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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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여친 있으면 사 주고 싶었던 옷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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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마웠어요. 미국엔 언제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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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즈음 와서 계속 있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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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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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한국 가면 우리 따로 만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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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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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요. 보고 싶었다고.”

고백인 듯 아닌 듯 지오는 천진하게 웃었다.

진지하게 반응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어 해인은 별일 아닌 것처럼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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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워낙 알려진 얼굴이라 만나기 부담스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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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변장 잘하고 만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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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으로 가려질 얼굴이 아닐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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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고맙다고 했잖아요. 그럼 밥 한번 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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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유명해서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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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능하게 해 볼게요.”

지오가 고집스러운 소년처럼 덧붙였다. 해인은 그런 소년을 달래듯 바라보다 혹시나 매니저가 있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국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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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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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미국이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같이 다니면 귀찮기도 하고. 편하긴 한데 또 외롭기도 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같아요.”

해인은 어렴풋이 스타로서 그가 겪는 고충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잠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은 지오의 미국살이였고 얼른 한국으로 들어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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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했잖아요.”

휘릭. 해인이 사과했지만 지훈은 말없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미미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신경을 배가시켰다. 소파 옆으로 쪼그리고 앉아 나름 지훈을 달래보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돌아오는 내내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오와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것에 무척 화가 난 것 같았다.

눈은 매섭고 입가 근육이 딱딱히 굳은 사람처럼 좀처럼 입술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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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 말 좀 해 봐요.”

해인이 손을 내밀어 종이를 잡고 늘어졌다. 잡지 않을 때도 짐작했지만 어찌나 세게 잡고 있는지 잡아당기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지훈의 미간이 한 번 꿈틀거렸다.

맘 같아서는 종이가 아니라 저 매끈하고 수려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쭉쭉 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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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말도 없이 사라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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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난 괜찮으니까.”

미간에 잡힌 주름이나 펴고 말했으면.

아니, 그랬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기엔 말투도 퉁명스러웠다.

단순한 질투라기보다는 그 짧은 순간 아주 많은 걱정을 한 듯했다. 태평양을 건너와 안전에 대해 신신당부를 하던 것이 떠올라 해인은 쉽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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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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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괜찮을 수가 없지. 지금, 이 상황에서 괜찮으면 그건 남자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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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도 꼭 그렇게…….”

걱정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었는데 지훈이 먼저 질투에 포인트를 맞춰 버렸다.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건 원치 않는 일인데…….

사과도 할 만큼 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다 생각하던 그때였다.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지훈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성마른 말들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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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여기까지 와서 지오를 만났다는 사실이 몹시도 못마땅했지만 사실, 그런 질투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그보다는 네가 없어졌던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공포였는지 알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는 듯 지훈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초점이 흔들리는 그 눈을 들여다보던 해인은 어렵지 않게 지훈이 느꼈을 공포와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잠시 사라졌던 것 때문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제가 그를 떠나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황 자체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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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네가 보이자마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고,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 순간이 얼마나 아찔했는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후 다시 찾은 것 같았다고.”

그 공포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지훈은 목소리마저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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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다가가서 안아 줘? 위험하니까 내 옆에만 붙어 있으라고 해? 네가 싫어할 거잖아. 그런 상황에서도 이제는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왜 나는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나 싶어서 그게 또 화가 나고…….”

어쩌면 원망인 것 같기도 했다.

눈빛은 뜨거웠지만 슬픔이 깃든 그 눈동자마저도 서러움이 역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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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야. 난 지금도 여기 너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고마워. 너무 좋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안아도 돼? 키스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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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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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대놓고 유혹이라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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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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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잖아. 그래서 이렇게 종잇조각이나 보고 있는 거야. 이것도 안 하면 이대로 미칠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내버려 두고 들어가서 쉬어.”

체념처럼 내뱉은 지훈이 내려놓았던 서류들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해인의 가슴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덤비면 덤볐지, 이럴 남자가 아닌데…….

지하 창고에서의 대화 이후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진실임에도 역습이라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저돌적이며 성급했던 첫날밤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솔직한 밤이었을까.

상처받으리라는 것을 몰라서 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이런 식으로 약해질 것도 몰랐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은 너무나 짧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강한 남자이니 훌훌 떨쳐 버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혼자서 결정한 이별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지훈까지도 이렇게 상처 입었다는 사실이 해인은 너무나 괴로웠다.

이미 범람을 시작한 감정들이 온몸을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들며 눈가를 촉촉이 적셔왔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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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불이 나는 것 같아서 도저히 이대로는 못 있겠다.”

지훈이 몸을 일으켜 그대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슈트와 셔츠가 차례로 흔적을 남겼다.

이젠 끝이라고, 이미 버렸었다고 생각했던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끝이 아닌 채로 해인을 뒤흔들고 있다.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말만은 돌려주고 싶었다.

나도 그렇다고.

사실은 이렇게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이끌리듯 그를 따라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엔 안고 싶다는 말에 응답하고 싶었다.

한 걸음을 다가섰을 땐 키스하고 싶다는 말에도 답하고 싶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돌아본 지훈의 눈동자를 보았을 땐…….

처음 그날처럼 그의 품에 안겨 이 밤을 뜨겁게 타오르고 싶어졌다.

그 모든 것이 눈앞이 흐려져서 일어난 일이었을까.

건장한 상체를 드러낸 그와 마주하며 뭔가가 깨어나듯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주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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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서! 더 가까이 오면 그땐 나도 모른다.”

지훈이 엄포를 놓듯 말했다.

아! 이미 가까이 와 버렸구나.

이제 몸은 돌처럼 굳어서 물러설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데…….

어쩌자고 여길 따라 들어왔을까.

후회하기엔 늦었음을 그의 눈빛을 보고 알았다.

오롯이 저만을 담고 있는 눈동자가 불꽃이라도 되는 양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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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인. 대체 어쩌려고…….”

그 뜨거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해인은 문득 두려워졌다.

그 순간 지훈이 물속을 육지처럼 단숨에 걸어서 해인의 허리를 낚아챘다.

물결이 출렁이며 가슴 위쪽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자잘하게 튄 물방울들은 얼굴과 머리를 적당히 적시며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밀착이 이루어졌지만 지훈은 해인을 완벽히 안지는 못했다. 몸은 닿아 있었지만, 가슴과 가슴은 좁혀지지 않은 거리만큼 아직 멀리 있었다.

지훈은 서두르지 않고 간절한 진심을 담아 해인의 두 눈동자를 응시했다.

같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지훈에게 깊은 절망을 안겼었다.

나름 미친 척 유혹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유학이라는 한마디가 두려움으로 남아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무조건 밀어붙였다가 해인에게 진심으로 거절당하면 어떡하나 겁이 나기도 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가슴만 미친 듯이 불타오르는 것을 어찌할까.

더구나 오늘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열망이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한순간이라도 널 잃었다는 것이 너무 아찔했던 탓이다.

해인의 눈동자가 떨리긴 했으나 피하지는 않고 있었다.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입술을 향해 나아갔다.

해인은 처음 그날처럼 눈을 감아 버렸다.

순식간에 입술과 입술이 맞물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던 지훈의 키스는 격렬했다.

갈증을 토해내듯 희열에 들떠버린 숨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점점 격렬해진 키스에 물결도 심하게 출렁였다.

입술인 듯 손인 듯 더듬어 닿은 곳마다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너무 격렬한 탓에 숨이 가빠 온 해인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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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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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도 못 할 거면서 겁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 들어온 거야?”

해인은 대답 대신 그의 품에 머리를 묻어 버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부끄러움이 덜 할 것 같았다.

그의 질투를 마주했던 순간보다 그의 공포를 마주했던 순간이 더 아찔했다면 뭐라고 할까.

상황이 바뀌었다면 저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행복해지길 바랐지, 이렇게 처량해지길 바란 게 아니었다. 자신이 사라짐으로 인해 공포를 느낄 만큼 두려워하는 그를 더 이상은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어 좋으면서도 의심 가는 정황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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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일부러 벗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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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훈이 픽 웃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혹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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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타오르는데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럼 이제 예전의 해인이로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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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좋은 남자한테 약한가 봐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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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알았으면 진즉 벗을 걸 그랬어.”

퍽!

해인이 안긴 채로 지훈의 가슴팍을 때렸다.

머리 위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앞에 지훈의 가슴이 있었다.

물방울을 머금은 단단한 근육질의 가슴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지훈이 젖은 손으로 해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검고 깊은 눈동자에 이제야 서로가 담겨 있다.

지훈의 입술이 다시 해인의 입술을 향해 내려갔다.

뜨겁고 깊은 키스가 이어지며 몸의 움직임도 거칠어져 갔다.

둥둥 떠오르다 어느 순간 밀착되고 점령하듯 퍼부어지는 키스에 아찔해지기를 몇 번.

해인은 이미 자신이 수영장 끝까지 도달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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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으로 들어가야겠지? 우리 재회의 밤을 위해.”

전신을 훑어내리는 지훈의 눈빛이 맹렬히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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