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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앞서가는 남자. (46/92)


50. 앞서가는 남자.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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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거기까진 몰라요.”

당황한 한 차장은 끝내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뒤늦게 입술을 깨물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솔직히 그 남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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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게시판은 익명으로 운영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추적해도 되는 거예요?”

정해진 원칙을 어겼으니 이 또한 부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억울함을 토로하는 한 차장의 표정엔 양심의 가책 따윈 조금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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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이라 해서 불법까지 용인되는 건 아니니까.”

비웃음을 섞은 말투는 훨씬 더 신랄하게 한 차장의 마음을 찔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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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릅니까? 두 번째 파일에 등장하는 그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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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몰라요. 나는 그저 세나 양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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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가 대체 뭔데 세나가 시키는 대로 했을까. 모시는 주인이라도 되나? 참 우스운 일이네.”

자존심이 상한 한 차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경어와 반말을 교묘히 섞어가며 긁어대듯 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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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 치고, 정말 그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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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오너의 딸이라고 회사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름 공익을 위한 거였다고요.”

잠시 당황했던 한 차장이 어느새 평정을 되찾았다. 실제로 그 일을 지시하신 분은 세나의 모친이었지만 파일은 분명 세나에게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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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공익 같은 소리 하네. 그래서 사적인 파일까지 공개했습니까? 주해인 사원이 전남편을 쓰레기라고 칭한 파일까지 공개한 것은 누가 봐도 사생활 침해이자 공개 저격입니다. 심지어 부사장인 나까지 공격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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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부사장님도 알 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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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뭐, 이런…….”

지훈은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 분노의 끝이 어디까지 향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눈앞의 저 여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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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장 당신은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 설마 내가 알려줘서 고맙다고 넙죽 인사라도 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잘 들어! 당신이 이번 일로 타인의 음성권을 침해한 사실, 법적으로 대응해서 손해배상을 하게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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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이라뇨?”

한 차장의 입술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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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정도도 예상 못 하고 일을 저질렀나?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를 거란 예상은 했어야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어.”

지훈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쿵!

작은 소리였지만 한 차장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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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한테 아주 소중한 사람을,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 그러니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소송하는 동안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한 차장 당신의 이런저런 치부들을 드러낼 것이고 주위에 널리 알리는 건 덤이고. 두고 봐! 당신이 고개를 들고 다니기 힘들 만큼 괴로운 일들이 일어날 거니까.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해 주지.”

할 말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 지훈이 매섭게 한 차장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경고는 일을 도모한 모든 이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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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세나랑 그놈에게 전해! 윤지훈이 미쳐서 날뛰더라고. 전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 차장은 덜컥 두려워졌다.

쏟아지는 분노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 모멸감과 압박감을 감당하지 못해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아무래도 끼어들지 말아야 할 일에 끼어든 듯했다.

난영과 부사장, 그리고 주해인이라는 관계에 저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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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어오르는 분노는 한 차장이 나간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훈은 창문을 바라보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주 사장은 이 일을 알고 있을까. 실상 해인이 약점이 잡힐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주 사장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해인이 굳이 감출 이유가 없었다.

찾아가서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일단은 직접 조사해 보는 것을 택했다.

세나만 찾으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회의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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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오늘은 마케팅 부서와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승윤과 심 대리, 그리고 빨간 스포츠카와 그 뒤로 해인이 따라 들어왔다.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도 모르게 은근히 미소를 짓다가 이내 표정을 고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해인이 눈을 마주쳐주지 않으니 혼자 웃다가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회의 내내 해인은 눈을 내리깔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지훈은 한 번씩 해인의 얼굴을 보면서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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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팀에서 예산을 줄이라고, 예산만 축내는 분야라서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부사장님도 아시다시피 마케팅처럼 중요한 게 어딨습니까. 지금은 마케팅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승윤이 아군이라도 만난 듯 불평을 쏟아내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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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러잖아도 기획팀에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기획팀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예산 신경 쓰지 마시고 최대한 전략을 짜오세요. 브랜드 콘셉트에 맞는 최고의 모델을 선정해 주시고.”

지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 대리가 반색하며 웃었다.

그녀의 심중에 이미 지오라는 최고의 모델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모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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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델 건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온라인몰의 올해 전반기 매출 지표를 보니 유입은 좋은데 구매 전환율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팀장님. 지금 준비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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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욕구를 부추기는 퍼포먼스를 현재 진행 중입니다. 온라인몰을 업그레이드시켜서 구매 페이지를 좀 더 눈에 띄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는 대부분 지훈과 승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인은 간략히 할 말을 하긴 했으나 지훈과 눈을 맞추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회의였으니 철저히 공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지훈은 잠시라도 해인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제일 먼저 회의실을 나가는 해인의 뒷모습만 쓸쓸히 바라보아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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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집에 들어온 것인지 나간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밤 아홉 시.

소파에 앉아 1층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 애란이 투정하듯 말했다.

지훈이 집에 들어왔다며 제때 들어온 날은 딱 하루였다.

역시나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새벽에 들어와서 옷만 입고 나가는 것이 더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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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러 왔냐고 타박할 때는 언제고. 신경 꺼. 다 큰 아들 들어오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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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훈이랑 해인이가 같이 미국 다녀온 거 알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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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게 왜.”

윤 회장이 뜬금없다는 듯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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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뇨? 지금 왜, 라는 말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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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릴 만큼 말렸어. 근데 도무지 말을 안 들어. 그냥 지훈이 하는 대로 지켜봐. 제 일 제가 알아서 잘하는 놈이니까. 그리고 당신도 처음엔 해인이 똑똑하다고 좋아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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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이혼하기 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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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것도 우리 책임이 커. 그 아이가 우리 눈치 보느라 그런 거잖아. 가끔 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러니까 당신도 이젠 한강 그룹은 마음에서 접어. 이만큼 살면 됐지, 늙어서 더 욕심부리면 추해지는 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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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해지다뇨?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

못마땅하다는 듯 보고 있던 신문을 접은 윤 회장이 쯧쯧, 혀를 찼다.

아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뻔히 알면서 여전히 수빈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애란의 행동이 못내 거슬리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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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그러다 인연 끊기고 싶어? 지훈이 그놈 성정에 뭐라도 못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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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 그런 아들 아니에요.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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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설마 우리 지훈이가 그러려고. 그러니 당신도 마음 곱게 쓰라고. 낳지는 않았어도 생명이 왔다 갔어. 자식 잃은 아이들 불쌍하지도 않아? 놔둬. 저희들 좋을 대로 하게. 여기서 더 나가면 벌 받아.”

씁쓸하게 덧붙이는 윤 회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해인이 유산을 하고 다시 헤어짐을 결심했을 때 말리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사실 지훈이 다시 해인이를 찾지 않았어도 그 일은 죽는 날까지 가시처럼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훈이 해인이와 재결합을 한다고 했다.

이미 이혼했으니 그만 잊으라며 말려 보았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윤 회장은 결국 지훈이 하는 대로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애란은 여전히 한강 그룹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한강과 결혼 발표만 해도 주가는 오를 것이고 신온의 그룹 가치도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의 말을 흘려 넘길 수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수빈을 만나는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을 보며 남편의 마음이 변했음을 알았지만 설마 지훈의 재결합까지 용납할 줄은 몰랐다.

늙으면 마음도 약해지는 것인지…….

애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 들어올 땐 몰랐는데 막상 아들이 들어온다고 하니 은근 기쁘기도 했었다.

하지만 둘이 같이 미국을 다녀와서는 뭔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분명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두통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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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꾸 여기로 오려면 집에는 왜 들어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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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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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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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가자.”

현관 앞에서 지훈과 해인이 한참 실랑이 중이었다.

매번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으면서 오늘따라 초인종을 누를 게 뭐람.

이유를 물으니 완벽한 남자를 맞이해주는 아내의 환영을 느끼고 싶었단다.

완벽함과 환영이 무슨 상관이라고. 환영이고 뭐고 물이나 한 바가지 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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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씨 자꾸 이러면 내가 어머님, 아버님 뵐 낯이 더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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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내가 여기 온 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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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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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그리고 있잖아. 내가 지금 못 들어가서 여기서 서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알지?”

그 순간 센서 등이 점멸했다. 시간 차를 두고 빛이 다시 들어왔을 때 해인은 익히 알고 있던 남자의 수려한 외모에 다시 한번 반했다.

센서 등이 점멸했을 때도 어디선가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던 느낌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얼굴 때문이었다.

속절없이 가슴이 뛰었다. 들키지 않으려 돌아선 해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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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잠시만 있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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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그러려고 했어.”

지훈이 히죽 웃으며 해인을 뒤따라갔다.

마음은 늘 그랬다. 조금만 있다 가야지, 얼른 일어나야지, 얼른 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야지.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처럼 되나.

한번 해인을 안으면 자석처럼 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수가 없을 뿐이었다.

안아도 안아도 더 안고 싶고 더 같이 있고 싶고.

자신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지훈은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두 팔로 해인을 안았다.

실눈을 뜨고 지훈을 째려보면서도 해인은 곱게 그 품에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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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안 들어갔으면 눈치는 안 보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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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이었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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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은 좋은 거니까 앞으로는 똑바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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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혼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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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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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눈치 안 보고 우리 둘이 같이 있을 방법을 제대로 찾으라는 거잖아. 그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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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이 좀 자기중심적인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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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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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닙니다.”

이렇게 덥석덥석 안겨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여간 이 남자는 너무 앞서가서 탈이다. 그의 품에서 벗어난 해인이 이마 앞으로 흘러내린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잠깐 스쳐 간 터치로 인해 지훈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기다랗고 가는 손가락이 지금 어디를 더듬은 거지?

이마와 코 위쪽 거기 어디 같은데…….

아! 한 번만 더 해줬으면,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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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을 했으면 말을 잘 들어야죠. 이제 그만 곱게 집에 가는 게 어때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터치나 한 번 더 해 줘.

지훈은 해인이 애써 올려놓은 머리를 다시 헝클어버렸다.

속으로 한 번 더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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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말 잘 들을 것 같은 남자가 연락하기로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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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남자? 그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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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오빠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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