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 이번 생에 오빠는 없다. (77/92)


77. 이번 생에 오빠는 없다.
2022.08.25.


따듯했던 보이차가 식어가는 동안 어느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부친의 전화를 받고 사장실로 올라온 해인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난영을 보고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가 버릴까도 싶었지만 그렇더라도 부친은 난영과의 만남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부친은 난영이 사과를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지만 정작 사과를 한다는 사람은 말이 없었다.

결국, 또 침묵을 깬 것은 부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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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는구나. 그래서 내가 불렀다. 그러니 해인이 너도 그만 마음 풀었으면 싶다.”

부친의 시선이 난영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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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말해. 미안하다고.”

사과라기보다는 소지의 목적을 달성하라는 은근한 압력과도 같았다.

그때까지도 난영은 침울한 얼굴로 다 식어 버린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위압적인 남편의 말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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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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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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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어.”

난영의 사과를 들었음에도 해인에겐 어떤 동요도 없었다. 진심일 것이라 믿지도 않았고 진심이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한 차장의 자백으로 수사의 진행 속도가 빨라 이미 검찰로 이관된 상황이었다.

난영은 이미 몇 차례의 출석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정작 피의자이면서도 그녀는 참고인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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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미안하시면 조사는 제대로 받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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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곳엘 어떻게 나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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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정말 미안하기는 하세요?”

난영의 새된 외침에 해인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언성을 높여 싸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굳이 이 자리에서 난영과 부딪히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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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고소만 취하하면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난다.”

조심스레 관망하고 있던 부친이 재차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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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끝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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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기사 쓰는 거 봐라. 모녀간 전쟁이 났다고, 벌써 우리 매출이 뚝 떨어졌어. 이러다 회사 망해도 괜찮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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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떨지 마세요. 지난 몇 달간 오르던 것이 소폭 떨어졌을 뿐이잖아요. 그리고 지난번에도 내가 말씀드렸잖아요. 고소 취하할 일 없다고.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일로 절 부르지 마세요.”

차분히 말한 해인이 이미 다 식어 버린 보이차를 들어 올렸다.

느긋이 차를 한 모금 넘기는 해인의 몸짓은 이 소란과 달리 평화로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영은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남편은 제 딸이 심성이 바르고 마음이 약하니 미안하다고만 하면 취하해 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저게 지금 어딜 봐서 마음이 약한 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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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집안에 분란을 일으켜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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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분란을 일으키신 분이 누군데요. 유죄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벌금 몇 푼 나올 텐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세요? 남의 마음을, 남의 삶을 그렇게 시궁창으로 던진 대가치고는 너무 작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 조사 잘 받고 뉘우치신다면 저도 용서해 보도록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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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사회적 지위나 체면은 생각 안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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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위가 있으신 분이라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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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슨 그런 말을. 네가 이렇게 독할 줄은 누가 알았겠니.”

그럼 그렇지.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해인의 입가로 체념 섞인 미소가 흘렀다.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볼 때 독하다는 단어는 새엄마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었다.

가슴 어딘가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상처들도 이젠 제법 아문 것인지 저 독한 말에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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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어나 볼게요. 일이 좀 많아서.”

차분히 일어선 해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부친의 말대로 가족끼리 꼭 이래야 하나 회의적인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가 없는 법이다.

차후를 위해서라도 더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심 대리가 다가오더니 불쑥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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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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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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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요. 지오. 지오는 물 건너가고 결국 우리 모델은 기존 여배우 그대로 가기로 결정이 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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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가 다른 업체와 했던 광고가 10억에 플러스알파네요. 마케팅 비용치고는 너무 심하잖아. 난 총무팀에 다녀옵니다.”

손에 서류를 잔뜩 든 승윤이 정신 차리라는 듯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심 대리는 여전히 아쉽다는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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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지만 지오가 완판을 이어가 주면 그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거잖아요. 지오를 잡았어야 해요.”

심 대리가 체념 섞인 어조로 덧붙였다.

해인은 그녀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옷 광고해 준다더니 요즘은 조용하네. 잘살고 있기만 하면 다행인데…….

* * *

상진이 출퇴근 운전을 자청하고 나섰다.

혹시 모르니 당분간은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항상 보면 티격태격하는 것 같던데 이럴 때 보면 또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해인의 제안으로 세 사람은 집 근처 한우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훈은 목발이 없이도 잘 걸었다. 2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당장 풀어도 될 것 같단다.

하여튼 의사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고 상진이 푸념 아닌 푸념을 했더랬다.

집으로 돌아온 해인은 지훈이 잠깐 서재로 간 사이 홀로 욕실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지훈은 보이지 않는 해인을 찾아 욕실 문부터 잡아당겼다.

그러나 안에서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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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무슨 일 있어? 왜 갑자기 문을 잠그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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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니에요. 금방 나가요.”

지훈에게는 아주 긴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해인이 밖으로 나왔다.

눈에 띄게 우울해진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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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지훈을 지나친 해인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지훈은 문득 걱정이 되었다.

낮에 부사장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걸까.

가까이 다가간 지훈이 해인의 옆으로 나란히 앉아 어깨를 감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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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이야. 혹시 낮에 부사장실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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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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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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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해 봤는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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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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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지훈의 가슴이 쿵 하니 내려앉았다.

아쉽기보다는 미안함이 컸다. 해인이 그토록 원하는 일을 이뤄 주지 못하고 있으니 괜한 자책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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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내가 노력이 부족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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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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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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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혼할 때는 방해가 있었어도 한 방에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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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지훈이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신음했다. 분명 그랬었는데 지금은 왜 안 되는 걸까.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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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는 선물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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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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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지 못하게 오잖아요. 그래서 더 감격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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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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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 지훈의 가슴에 한껏 기대며 웃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가장 좋은 때에 다시 선물처럼 찾아와 줄 것이라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 보았다.

그나저나 오래전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수빈이 지훈을 향해 오빠, 오빠 할 때마다 이 남자는 대체 어떤 기분일까.

처음부터 오빠라고 불러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걸까. 저도 한번 불러보고 싶은데 뭔가 부끄럽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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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오빠, 라는 말 들으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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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거북해.”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수빈으로 인해 그 단어에 거부감이라도 생긴 건가.

그렇다고 뭘 그 정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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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요? 남자들은 좋아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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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듣기 싫어. 그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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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해 볼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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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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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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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가 하면 다르지. 오빠는 듣기 좋은 말로 다시 수정할게. 하고 싶으면 해 봐. 지훈 오빠,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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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안 할래.”

이번 생에 오빠라는 말은 그냥 안 하는 거로 해야겠다.

* * *

며칠 동안 한파에 가까운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연말 기획전을 하느라 모두들 무척이나 바쁘게 일을 했지만, 그에 비해 판매율은 저조했다.

해인이 침울하게 앉아 온라인 구매 전환율을 분석하고 있을 때였다.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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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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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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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누구…….”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설마 수빈인가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에게서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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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수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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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슨 일이죠?”

우리가 이렇게 전화할 사이인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기에 딱딱하게 되물었는데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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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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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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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하고 무례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다짜고짜 사과? 며칠 사이 대체 사과를 몇 번이나 받는 건지…….

새엄마야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했지만, 이 여자는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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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갑자기 이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좀 당황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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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이해해요. 그동안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그래도 사과하고 싶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 음성에 기만 같은 건 없는 듯했다. 혹시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죽을병 걸리면 인생을 되돌아 보기는 한다던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이렇게 사과를 하는데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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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나도 뭐, 잘한 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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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싶은데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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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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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해인 씨 얼굴 보고 정식으로 사과하고, 화해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 어머니께, 그러니까 고애란 사장님께 돌려드려야 할 물건도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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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드려야 할 것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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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장님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해인 씨가 전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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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전해 주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퀵 서비스로 보내도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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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이제 얼굴 보기도 민망해서요. 서비스로 보내면 너무 성의가 없을 것 같고요.

난감해진 해인은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님께 돌려드려야 할 물건이 뭘까. 두 사람이 워낙 가깝게 지냈으니 뭔가 오고 가긴 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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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만나기조차 싫어하는 걸 보니 내가 실수를 많이 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그래도 어머니께 돌려드릴 물건은 꼭 해인 씨 만나서 전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상대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니 난처해지는 것은 오히려 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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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머님께 드릴 것만 받을게요. 어디서 만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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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차로 갈게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해인은 착잡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연말이라 바쁜 탓에 지훈도 저녁에 미팅이 잡혀 있었다. 수빈을 만난다고 하면 싫어할 것이 틀림없기에 굳이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었고 해인은 회사 앞에 대기 중인 수빈의 차에 올랐다.

해인이 타자마자 수빈이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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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 드릴 것만 가져가고 싶은데, 어디 멀리 있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해인은 그 물건이 고가의 미술품이나 명품 가방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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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차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어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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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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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장소를 알거든요. 일단 같이 가요.”

수빈이 막무가내였기에 해인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차가 막혀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 주고받았던 대화 외에는 딱히 오간 말이 없어서 더 길게 느껴졌던 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수빈이 가려는 목적지가 좀 의외였다. 처음엔 어느 카페로 가나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주택가였다. 그것도 살짝 외진 곳에 있는.

얼마 후 큰 저택의 원목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차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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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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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면 알아요.”

차는 높은 돌계단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먼저 차에서 내린 수빈이 재빨리 해인의 팔짱을 끼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돌계단을 올랐다.

해인의 시야로 넓은 잔디 정원이 펼쳐졌다.

곳곳에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마치 숲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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