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누나. 진짜 무섭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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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누나. 진짜 무섭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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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누나. 진짜 무섭나 봐요?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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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등이 밝혀져 있는 그곳은 마치 재벌 집 정원과도 같았다.
태도를 보아하니 수빈의 집일 리는 없고.
해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불이 밝혀진 본채 건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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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식당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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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에요. 여기서 살진 않지만, 파티 같은 거 할 때 별장으로 가끔 쓰는 곳이에요. 해인 씨는 지금 손님으로 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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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씨네 별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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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사람 별장이에요. 가 보면 알아요.”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해인은 별수 없이 수빈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 현관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안에 있던 투명한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소파가 있는 넓은 응접실은 가구가 많지 않아 언뜻 보기엔 큰 홀처럼 느껴졌다.
오른쪽 구석에 커튼으로 가려진 주방이 보였고 왼쪽으로는 높은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2층에서도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가볍게 차 한잔하자고 데려온 곳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수빈은 의아해하는 해인을 데리고 곧장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녀가 거실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을 지나 서슴없이 정문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인의 시야로 창가 쪽 침대가 들어왔고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누구일까 의아해하며 쳐다보던 그때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수빈이 먼저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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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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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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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위험했어요. 지금은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한동안 의식이 없었어요.”
의식이 없었다니, 그게 무슨…….
충격을 머금은 해인의 눈빛이 실금처럼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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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가 해인 씨 만나고 싶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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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말도 없이 데려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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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이런 식이 아니라면 데려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오와 저번에 통화했다고 들었어요. 지훈 오빠랑 같이 만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고 했다고. 지오 씨는 그 말을 만나기 싫다는 말로 들었나 봐요. 그래서 부담 주기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해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일이 지오의 우울증을 더 심각하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잘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순간 말소리에 잠을 깬 건지 지오가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그가 희미한 눈동자를 들어 해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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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에 천진한 웃음이 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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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누나가 와 준 거예요?”
일어나려는 듯 몸을 세우던 지오가 머리를 짚으며 다시 누웠다.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니 머리가 아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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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누워 있어요.”
해인이 서둘러 그를 만류했다. 마음의 병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더 심각해질 줄이야.
우울증을 앓아 본 적이 없어 그 고통을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지오가 가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거짓말로 자신을 데려온 수빈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지훈에게 전화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은 것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금 이따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는데 수빈이 카드 하나를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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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고 사장님께 돌려 주세요. 선물로 주신 신온 백화점 전용 카드인데 사장님 계좌로 결제되는 거였거든요.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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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해인이 담담히 카드를 건네받았다. 마치 우리 이 정도의 관계였어요, 하고 으스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직접 돌려 주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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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1층에 내려가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두 분 이야기 좀 나눠요.”
수빈이 나간 후 지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번엔 괜찮은 듯 무리 없이 일어나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는 길게 호흡을 내쉰다. 네이비색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는데 드러난 팔도 얼굴만큼이나 창백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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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연락이 없어서 잘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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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아요. 별일 아니니까.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서 잠 좀 깊이 자고 싶어서 수면제 몇 알을 먹었는데……, 좀 과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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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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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통화하고 나서 그냥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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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런 말을 해요. 내가 다 뭐라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인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해인을 보는 지오의 얼굴엔 특유의 해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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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누나는 햇살 같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누나 만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거든요. 마음도 편하고, 나름 통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았고.”
태연히 말하는 지오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와는 반대로 해인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오와 그 정도의 관계를 쌓아온 기억이 해인에게는 없어서 더 부담스러웠다.
때마침 수빈이 주스 두 잔을 트레이에 올려왔다.
넓은 침실 한쪽엔 긴 소파와 유리로 된 투명 테이블이 있었다. 수빈이 가져온 주스를 그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해인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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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 않아요? 코트 벗어요. 걸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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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해요. 내가 추운 것을 싫어해서 난방을 심하게 틀었거든요. 겨울에도 긴 팔은 잘 안 입어서 집 안이 늘 이래요. 반소매만 입고 활보하려면 따듯한 게 좋거든요. 근데 손님들은 많이 더워해요.”
지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덧붙이고는 재빨리 리모컨으로 난방을 조정했다.
해인이 이마를 닦으며 괜찮다는 듯 웃었다. 솔직히 내부로 들어오는 그 순간 열기가 밀려왔었다.
1층은 매우 따듯하다고 생각했는데 2층 침실은 거의 여름과도 같은 열기였다. 몇 분 있지도 않았는데 땀이 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코트를 벗자마자 수빈이 시중드는 사람처럼 코트와 함께 가방까지 챙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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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할 일 있으면 1층으로 와요. 난 거기 있을 거니까.”
그녀는 마치 자리를 피해 주는 사람처럼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그사이 지오는 침대를 내려와 힘들게 걷더니 소파에 도착해서는 거의 쓰러지듯 무너졌다.
비틀거리는 그를 보며 해인은 착잡했다. 하지만 그녀를 돌아보는 지오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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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도 이리 와서 편하게 앉아요.”
어쩔 수 없이 잠깐은 같이 있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인이 지오가 앉은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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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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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하면서, 그렇게 지냈어요. 지오 씨는…….”
습관적으로 되묻던 해인이 말을 멈췄다.
뻔히 잘 지내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는데 잘 지냈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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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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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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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만 더 일찍 성공했더라면 아니, 내가 엄마를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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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 어머니도 지금의 지오 씨 이런 모습을 보시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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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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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 걸요. 젊은 나이에 성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익히 알고 있는 사정이었고 그 부분에서만큼은 연민이 있었다.
그래서 해인은 나름 지오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사람 심리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공감은 할 수 있으니까.
의외의 질문이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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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누나는 나한테 관심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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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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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혹시 내가 싫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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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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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요. 내가 정말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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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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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싫지는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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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굳이 내가 지오 씨를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딱히 좋아할 이유도 없지만, 해인은 굳이 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지오가 제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 순간만큼은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지오는 자연스럽게 주스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해인이 당황하는 사이 어느새 주스 잔을 내려놓은 그가 해인의 어깨로 머리를 기대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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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갑자기 어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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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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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이대로 있을게요. 죄송해요. 머리가 아파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해인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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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 아프면 가서 침대에 눕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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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기대고 있으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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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서 눕는 게 낫겠어요. 나는 잠깐 수빈 씨 좀 만나야겠어요. 전화도 해야 하고.”
다급히 말한 해인이 도망치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즉시 계단을 타고 내려왔지만 1층에 수빈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1층에 두겠다던 제 코트와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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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씨? 수빈 씨, 어디 있나요?”
목청을 높여 불러 보았지만, 수빈은 보이지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혹시 밖에 있는 건가.
곧장 문으로 향하려던 그 순간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지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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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무슨 일 있어요?”
한 손에 주스 잔을 든 그가 태연히 물었다.
흰색 극세사 가운을 걸쳐 입은 그의 걸음걸이는 아까와는 달리 아주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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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수빈 씨가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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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설마 말도 없이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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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이랑 옷도 보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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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씨가 가져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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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씨에게 전화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아니, 그냥 전화 좀 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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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해요. 여긴 전화가 없어요.”
태연한 지오의 말을 듣는 그 순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전신을 훑고 가는 소름에 이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오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주스 잔에 얼음이 담겨 있었다.
해인의 시선을 느낀 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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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걸 싫어해서요.”
아깐 추운 것이 싫다고 했으면서. 반소매만 입는다면서 지금은 극세사 가운도 걸치고 있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젠 어떡해야 하나. 해인은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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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럼 몸 관리 잘하시고, 난 이만 가 볼게요.”
해인이 현관의 자동문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버튼을 아무리 눌러 보아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해인이 뒤를 돌았다.
계단 아래의 벽에 의지해 기대어 있던 지오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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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 좀 열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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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지금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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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이 문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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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걱정하지 말아요. 나 지오예요. 우리나라 사람이 다 아는. 그런 내가 누나에게 무슨 짓을 하겠어요?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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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날 가둔 거잖아요. 속여서 데려왔고. 그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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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고장 난 거고 여기 데려온 건 수빈 씨죠.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단둘이 좀 더 오래, 편하게 있고 싶을 뿐이었어요.”
악의가 없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인으로선 지금의 말도 딱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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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렇다 치고, 이제 집에 가 봐야겠으니까 어서 문이나 열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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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시간만 더 있는 것도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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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지금 가야 해요. 당장 문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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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진짜 무섭나 봐요? 슬프다. 그렇게나 나를 믿지 못하다니. 난 누나 허락 없이는 누나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건데……. 아까 누나가 소파에서 일어설 때 내가 맘만 먹으면 누나 잡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안 그랬잖아요.”
허락도 없이 기댄 것부터가 이미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믿음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에 지오는 전혀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지금의 표정이나 눈빛도 물론 선했고, 누구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위태롭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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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씨. 이러지 말고 어서 문 열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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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슬픈 게 뭔지 알아요? 다른 여자들은 이렇게 하기도 전에 다 알아서 넘어오는데 누나만 안 넘어오는 거 있죠.”
해인이 망연한 눈으로 지오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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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내 우울증을 상담해 주는 의사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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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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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도 우울증인데, 지독한 나르시시즘도 있다고. 우울증도 못 고쳐 주는 돌팔이가 별소리를 다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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