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 주해인은 윤지훈의 포로. (88/92)


88. 주해인은 윤지훈의 포로.
20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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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심해. 듣는 귀가 많아.”

해인이 비소를 흘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 해인과 소연의 뒤에서 지켜보던 노랑머리의 여자가 움찔하며 나오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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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였냐? 우리 지오 오빠를 그런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것이?”

관망만 하고 있던 소연도 더 이상은 참지 못했다. 친구가 지오의 여자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지오의 몰락에 숨겨진 내막이 있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저 여자라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래 놓고 지오를 멍청하다고 표현하는 저 여자를 어떻게 해야 속이 시원할까.

아니, 이건 단순히 속이 시원할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심판이 내려져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누군가에 의해 찍혀지고 있는 동영상은 아주 바람직했다. 저 여자가 최대한 멍청한 말을 지껄이게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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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오빠? 웃기고 있네. 내가 등 떠민 게 아니라 지오 스스로 택한 시궁창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난 아무 죄도 없어. 그리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끼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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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내가 지오 오빠의 열성 팬이다. 이만하면 자격은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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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좋아하네. 그냥 빠순이 주제에.”

수빈이 한껏 비아냥거리며 들고 있던 핸드백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이만 가자는 듯 친구에게 고갯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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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오가 원하는 대로 도와준 것뿐이야. 널 데려다 달라 해서 데려다준 것뿐이니까 난 아무 죄도 없어. 그러니까 지오가 아무 말도 못 했지.”

걸음을 떼기 전, 수빈은 쐐기라도 박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켜보던 해인이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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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구제 불능이다. 지오는 적어도 제 잘못을 시인했어. 용서받을 자격은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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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감히 자격 운운해? 네까짓 게 뭔데. 꼴랑 옷 장사나 하는 집에서 태어나 거지처럼 남편 집안에 빌붙어 겨우 살아남은 주제에 감히 누굴 가르……으아악.”

수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해인의 뒤에 있던 노랑머리의 여자가 번개처럼 튀어나오더니 수빈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채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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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이게 말이면 단 줄 알아! 너, 나한테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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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너, 누구야!”

수빈은 자신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여자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일단 상대의 머리부터 움켜잡았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엉키고 난투극이 이어졌다.

아무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다들 그 상황을 지켜만 보았다. 노랑머리의 여자 얼굴을 살피던 해인이 얼굴을 확인하고는 기함한 표정을 지었다.

세나가 왜 저기에…….

그 와중에도 수빈의 발악은 계속되었다. 살이 부쩍 올라 힘이 좋아진 세나의 근력을 이기지 못해 한 손으로는 머리가 뜯기고 한 손으로는 얻어맞고 있는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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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야. 이 손 안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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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집 욕해? 우리가 왜 거지야! 형부가 우리 언니 좋아해서 우리 집으로 다시 온 거거든? 빌붙긴 누가 빌붙어. 이 미친X아.”

수빈은 세나의 신랄한 힐난을 듣고서야 그녀가 해인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갑자기 한편이라도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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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뭔데 나서……, 아얏앗.”

수빈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또다시 머리카락이 뜯겨나갔다. 머리가 찢어지는 통증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빈의 친구는 그제야 세나를 뜯어말려 보았지만, 이성을 잃은 세나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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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 임신 중이라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데 네가 뭔데 지X이야. 한강 딸이 대수야? 한강이 뭐 별거라고 우리보고 거지래. 뚫린 입이라고 말이면 단 줄 알아?”

머리카락을 쥐고 흔드는 세나의 분노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해인과 소연이 동시에 세나를 뜯어말리고서야 수빈은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만신창이가 된 제 몰골에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는 결국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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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다 왔다. 진정은 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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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꺼.”

세나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 듯 씩씩거렸다. 해인과 소연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오늘 수빈의 머리는 대머리가 되었을 것이다.

세나는 그 민머리를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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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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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싸우는 걸 보고만 있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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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리 집안을 거지 취급했잖아. 언니 너는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있냐?”

운전 중이던 지훈이 픽 웃었다.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기하던 지훈은 해인의 급한 연락을 받고 즉시 백화점 앞으로 차를 대기시켰다.

그와 동시에 처참한 몰골로 끌려 나오는 세나를 볼 수 있었다. 해인과 친구가 양팔을 잡고 강제로 데려오는데 그 와중에도 세나는 누군가를 가만 안 두겠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혹시나 언니와 싸웠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지훈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성북동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세나가 진정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란히 뒷좌석에 앉은 해인이 헝클어진 세나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머리는 언제 또 염색을 했는지 이전보다 더 짙은 노랑색이었다.

수빈보다 머리가 짧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세나도 제법 많이 뜯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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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 감옥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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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도 머리채 잡혔으니까 쌍방이야.”

해인은 왠지 자신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 같았다. 좀 민망한 감은 있었지만, 지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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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그럼 더 뜯어 놨어야 하는 건데. 언니, 네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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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네가 아니라, 그냥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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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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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똑바로 하라고. 언니 네가 아니라,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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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언……니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오수빈, 그거 충분히 대머리 만들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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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했어. 잘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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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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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그 일에 대해 세나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이 드러날 것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다. 잠깐 동안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겠지만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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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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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해인의 단순한 칭찬에 세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언니라고 제 편을 들어 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세나는 힐끗 곁눈질을 하며 운전석의 지훈을 바라보았다.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지훈은 뒤를 보지도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서운했지만 혼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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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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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걱정하시지 않도록 네가 잘 말씀드려. 나도 전화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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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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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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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 나 건물주 꼭 시켜 주고. 나도 양심상 많은 걸 바라지는 않을 거니까.”

문이 열리고 거친 찬바람이 들어옴과 동시에 다시 문이 닫혔다. 쾅 닫히는 문소리가 제법 요란했기에 해인의 실소는 묻히고 말았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건물주라니, 우리 세나는 왜 저렇게 양심이 없을까.

* * *

실시간으로 동영상이 퍼지고 있었다. 수빈과 세나의 얼굴이 꽤 선명하게 찍혔기에 사람들은 그녀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보았다.

지오와 연관된 것이었기에 동영상의 파장은 상당했다. 그런 탓인지 수빈은 대역죄인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세나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세나가 정의의 심판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오의 사랑이 해인이라는 것도 큰 이슈가 되었다.

지훈은 상진과 짧은 통화를 했다. 크게 불리할 것이 없으니 일단 이 사태를 지켜보자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상황을 살피던 지훈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졌다. 지오의 그녀가 해인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덕분에 제 이름도 함께 거론되었다.

이혼 전력과 함께 지금은 재결합해서 잘살고 있으며 임신까지 했다는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한강에서 손을 썼는지 동영상은 삭제되고 있었지만 이미 동영상을 본 이들이 퍼트리는 소문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잠정 폐쇄되었던 지오의 팬클럽은 즉각 반응했다. 지오의 몰락을 이끈 수빈을 연예계에서 퇴출하고 한강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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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봐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해인이 지훈의 핸드폰을 뺏었다. 분명 들어갈 때도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올 때도 저러고 있었다.

순순히 핸드폰을 넘긴 지훈이 해인을 제품으로 끌어당겼다. 코끝으로 번져가는 향기가 은은하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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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배는 잘 있어? 많이 놀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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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해인이 민망한 듯 큼큼거렸다.

그 소란을 듣고서도 지훈은 웃기만 할 뿐 크게 탓하지 않았다. 그저 다친 곳은 없냐며 제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는 그것으로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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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인이가 너무 유명해져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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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진짜 웬만해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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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했어. 근데 우리 보배 뭐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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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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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따듯하게 우유라도 한잔 데워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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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그냥 쉴래요.”

해인은 편안히 지훈의 몸에 기댔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편안히 잠이 들었다.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로 긴 단잠이었다.

해인과 달리 지훈은 주말 아침임에도 무척이나 분주했다.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주가 현황을 체크하며 상진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강에서는 오전 내내 지오의 일에 수빈은 아무 관련이 없다며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적극적인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조금씩 해인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오에 대한 동정 여론과는 별개로 지오의 여자가 된 해인에 대해서는 다분히 질투 어린 시선도 많았다.

-주해인이라는 여자가 먼저 꼬리 친 거 아니야?

-뭐야, 다 조작이었어?

-오수빈이 거짓말로 데려갔다잖아.

-오수빈이 뭐가 아쉬워서. 그 여자가 스타 만나러 간다고 좋다고 갔을 것 같은데?

-대문 열어 줬으면 제 발로 나가면 됐잖아.

댓글을 읽어 나가던 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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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것들을 그냥.”

상진과 연락을 하며 반박 보도 자료를 준비했다.

그 와중에 지훈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잠적했던 지오가 긴급 기자 회견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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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데우고 커피를 내리는 손길이 분주했다.

시간은 벌써 정오로 향하고 있었다. 잠깐 눈을 뜨기는 했지만 계속 잠이 온다며 해인은 여전히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보배, 뭐 좀 먹어야 하는데…….

우리 해인이가 먹어야 우리 보배도 먹는데…….

지훈은 오직 그 일념으로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꺼내 식탁에 올렸다. 이제 해인을 깨워야 했다.

정오의 겨울 햇빛은 그저 은은했다. 한낮인 것을 알려야 하는데 햇빛이 저렇게 미약해서야 되겠나 싶을 만큼.

지훈은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가 해인을 품에 안았다. 기척을 느낀 해인이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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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 우리 잠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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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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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가 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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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리 보배가 잠이 많은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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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야. 그래도 이제 일어나서 일단 먹자. 먹고 자자!”

세상은 지오와 지오의 여자로 인해 떠들썩했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지훈과 해인은 평화로웠다.

지오는 수빈과 자신이 모의를 해서 해인을 유인했다는 것을 자백하며 처음 그랬던 것처럼 해인은 피해자이며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여론은 뒤집혔고 모든 화살은 수빈과 한강에게로 향했다.

지훈은 해인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해인은 담담히 그 말을 들었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수치스러운 잘못을 다시 고백한 지오에게 대중은 관대했다. 마지막 순간 대문을 열어 준 것이 동정 여론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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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오의 이미지는 다시 회복되었으나, 수빈은 연예계에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해인의 말처럼 수빈의 라면 광고가 내려갔고 소속사에서도 계약을 해지했다.

한강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지오의 팬들이 불매운동까지 벌였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휘청일 한강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지훈은 착실히 생일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이벤트를 할 예정이니 기대하라며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다.

원래 이벤트라고 하면 대부분 은밀히 진행되기 마련인데 하여간 이 남자는 이벤트부터 남다르다고 해인은 생각했다.

마침내 생일날이 되었다.

지훈은 연차를 내고 집에서 이벤트를 할 예정이라고 사전 공지까지 해 줬다.

해인은 알았다며 출근을 했고 제시간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이벤트인데 이렇게나 은밀하지 못할까.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현관을 지나 중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차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훈이 군복까지 입고 총을 들고 저를 겨누고 있었다.

몇 달 전 자신이 그를 향해 그랬던 것처럼.

군복을 입은 지훈의 자태가 얼마나 멋진지 절로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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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인은 지금부터 나, 윤지훈의 포로다. 그러므로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알겠나?”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중후하고도 권위 있는 저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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