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아빠와 엄마와 아들.
(90/92)
90. 아빠와 엄마와 아들.
(90/92)
90. 아빠와 엄마와 아들.
2022.10.09.
뭐가 문제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도무지 모르겠다. 아기라는 존재는 그만큼 심오했다.
지훈은 갓 백일이 지난 아들을 품에 안고 어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응애, 응애.”
울음소리도 우렁찬 아들의 이름은 지호였다. 오늘따라 잠투정이 심한 아들은 좀처럼 깊은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이 든 것 같아 침대에 눕혀 주면 어떻게 알고 다시 일어나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고 나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해인이는 매일 이것을 어떻게 견뎠을까. 도우미가 와서 집안일을 대신 해 주기는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우리 아가가 아빠가 집에 있는 걸 아나 봐요. 평소엔 그렇지 않은데…….”
호박즙을 잔에 따라 온 해인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평소에 엄마를 괴롭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훈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응애, 응애.”
지훈이 아무리 달래도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지훈은 눈앞이 캄캄했다.
지켜보는 해인조차도 지훈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몸이 안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유난히 잠투정이 심했다. 엄마 젖 냄새를 맡으면 잠이 들려나 싶어 제가 안아 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빠가 자장가를 너무 크게 부르잖아요. 속삭이듯 불러 봐요.”
이번엔 해인이 시키는 대로 소리를 낮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으……애.”
울음소리는 이어졌지만, 다행히 크게 칭얼대지는 않았다. 지훈과 해인이 작전을 주고받듯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지훈은 아기를 안고 한동안 거실을 오갔다. 한 서른 바퀴쯤 돌았으려나 생각하는 순간 해인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기가 비로소 쌔근쌔근 숨소리를 높이며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도 없었다. 침대 위에 무사히 안착할 때까지는.
지훈은 안방으로 들어가 천천히 아기를 내려놓았다. 제발 깨지 마라, 를 속으로 간절히 부르짖으며.
온 신경을 집중해 아이를 내려놓고는 살금살금 까치발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깨지 않았고 비로소 지훈은 힘든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조심조심 거실로 나오니 해인이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지훈이 한숨을 돌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밖에서 일하는 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제 시작인데 뭘 그 정도로요.”
“해인이는 괜찮아? 차라리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지 않아?”
“아이만 보는데 힘들기는요. 그리고 아직은 아이가 너무 예뻐서 힘들어도 힘든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요. 몸이 아이를 향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고나 할까. 여튼, 우리 아가가 지훈 씨 쉬는 날에 유난히 더 칭얼대는 것 같기는 해요. 넓은 아빠 품이 안정적이라 내려오기가 싫은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좋은 아빠가 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겠네.”
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떠올린 지훈이 감회에 젖어갔다.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 곧장 병원으로 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해인은 걸어서 병원으로 들어갔고 여섯 시간의 진통 끝에 무사히 아들을 낳았다.
첫 아이치고는 그 정도면 순산이라고 했다. 3.8kg으로 태어난 아기는 건강했다.
잘 울었고, 아주 잘 먹었고 심지어 배변도 훌륭했다.
지훈에겐 그 모든 것이 경이로운 기적과도 같았다.
그 작은 존재가 태어나 제 품에 안겨 생애 첫울음을 터트리던 그 날의 감격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해인은 최고의 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도우미를 들여 다른 집안일을 전담하게 해 주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해인의 몫이었다.
퇴근한 저녁과 주말에는 지훈이 팔을 걷어붙이며 돕고는 있었다. 서툴렀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도왔고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를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이 잘 때 엄마도 자야 한다면서. 얼른 가서 잠 좀 자.”
“괜찮아요. 어차피 지훈 씨 있으니까.”
“그래. 그럼 나 기대고 푹 쉬어.”
지훈의 말대로 해인은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제대로 깊은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작은 기척에도 잠을 깼고 아이가 잠을 깨지 않아도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러다 보니 피곤이 누적되기는 했지만 매일 새로운 힘이 솟는 것도 사실이었다.
모유를 먹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흐르고 사랑이 샘솟고 알 수 없는 기쁨이 가슴 가득 흘렀다.
이런 게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인 것 같았다.
“지호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
“빨리 크면요?”
“같이 나가서 축구도 하고, 같이 목욕도 하고 같이 놀이동산에도 가고 같이 캠핑도 다니고 그래야지.”
“지금 그 마음 변치 말아요.”
“당연하지.”
굳은 결의를 다지는 지훈이 힘주어 말했다.
미소를 짓는 해인의 눈이 서서히 감기었다. 그렇게 지훈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듯했다.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땐 이미 소파에 누워 있었고 지훈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는 아직 자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가오는 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깼어?”
“얼마나 잤어요?”
“두 시간쯤?”
“그렇게 많이요? 지호는요?”
“우리 지호도 아직도 자고 있지. 혹시나 깼나 싶어 방금 문 살짝 열어보고 왔는데 잘 자고 있어. 우리 아가 자는 동안 밥 먹자.”
아이가 잘 자서 다행이었다. 지훈의 말대로 이 틈을 타서 얼른 밥을 먹어야 한다. 실행에 옮기는 지훈과 해인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잠들기 전까지 칭얼댄 것과는 달리 아이는 두 사람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고 잠을 자 주었다.
지훈은 아이가 아빠를 닮아서 효자라며 구구절절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칭찬에 귀가 따가워질 때 즈음 안방에서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에 맞춰 지훈이 달리는 것은 이제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
.
.
설 연휴가 지나고 아이는 몸을 뒤집으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해인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하자 지훈은 우리 아가가 천재라서 그런다며 한껏 뿌듯해했다.
일단 거실에 아가용 누빔 패드를 깔아주었다. 지훈은 그 역사적인 현장을 영상으로 남겨야 한다며 핸드폰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지훈이 하루 종일 아이의 곁을 지킬 수는 없었다. 지훈은 진지하게 휴직을 고민했다.
“이러다 동영상 못 찍으면 후회할 것 같아. 해인이도 혼자 우리 아가 키우기 힘드니까 나도 휴직할까?”
“제발 참아 줘요. 한 명이라도 일을 해야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때였다. 낑낑거리며 용을 쓰던 아이의 몸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몸이 뒤집혔다.
“우와!”
“우와!”
동시에 터진 함성 덕분에 아이도 깜짝 놀라 버렸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얼떨떨한 얼굴로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야. 우리 지호가 드디어 뒤집었다.”
곧바로 지훈의 찬사가 이어졌다. 영상 촬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한참을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고는 다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뒤집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머리가 무거워 계속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해인이 재빨리 달려가 아이를 안아 주었다.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잘했어. 잘했어. 우리 아가.”
영문을 모르는 지호가 방긋방긋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 모든 것을 지훈은 영상에 담으며 기록으로 남겼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온 지훈은 자신이 촬영한 기념물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단하지 않아? 이런 뒤집기 기술은 처음 봤어.”
“어련하시겠어요.”
“특허가 필요한 기술이야.”
“네, 네.”
“어쩐지 배 속에서부터 발차기가 남다르더라니까.”
“그랬었죠.”
장단을 맞춰 주던 해인이 지훈의 허벅지 위로 드러누웠다. 임신했던 그 날부터 우리 아이는 천재였고 너무나 대단한 존재였었다. 아마도 지훈의 저 환상은 앞으로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할 것이다.
굳이 지금부터 그 환상을 깰 필요는 없겠지. 해인은 기꺼이 지훈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피곤해?”
“약간?”
“오늘은 푹 자. 기저귀는 내가 확인할게.”
“지훈 씨도 피곤할 텐데…….”
“그 정도야 거뜬하지.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푹 자. 그나저나 설렌다.”
“뭐가요?”
“우리 지호가 벌써 뒤집었잖아. 이제 축구도 할 날이 머지않았어.”
축구를 하려면 일단 걷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달릴 수 있는 만큼은 다리에 힘이 생겨야 하고.
손잡고 걷기라도 하면 그건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싶어 해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근데 지훈 씨 축구는 할 줄 알아요? 축구 했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은 것 같은데.”
“축구 그게 뭐 어렵다고. 공만 있으면 되는 게 축구야!”
“아! 그렇구나.”
해인은 알 수 있었다. 지훈이 축구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운동을 좋아하고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축구에 소질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아이와 축구를 하는데 뭐,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런대로 이해를 하기로 했다.
그날 밤, 지훈은 인터넷 쇼핑으로 축구공을 골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축구공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과 리그와 대회마다 공인구가 있다는 사실을.
며칠 후, 주문한 축구공이 배달되었다.
지훈은 선물이라며 그 축구공을 지호에게 주었다. 공을 바라보던 아기는 시큰둥하게 두어 번 때리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다.
“지호가 축구를 싫어하나 봐.”
“그게 뭔지도 모르는 아이한테 뭘 원하는 거예요.”
그 사이 축구공이 떼굴떼굴 구르더니 소파에서 한참 멀어졌다. 그걸 본 지호가 배밀이를 시도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와!”
지훈이 또 함성을 질렀다. 저런 배밀이는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었다.
뒤집으면 기어 다니고 기다가 걷고 뛴다고 들었는데 배밀이도 있었구나.
지훈이 감격한 반면 해인은 그저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저렇게 배밀이를 시작해서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어느새 축구공이 있는 곳까지 다다른 지호가 손으로 축구공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축구공은 이내 멀어졌다. 아이가 멀어지는 축구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다시 따라가려니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지훈이 재빨리 일어나 축구공을 집어 아이의 앞에 놓아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축구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지호가 뭘 좀 아는 것 같아.”
저 정도면 어디 가서 팔불출이라는 소리는 넉넉히 들을 것 같았다.
* * *
봄날의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운 오후였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지훈과 해인이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
한가로운 오후,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나부끼는 벚꽃잎을 바라보는 해인은 문득 감회에 젖었다.
“2년 전 우리가 이혼을 했었는데, 인연이란 게 뭔지 결국 이렇게 같이 있네요.”
“그건 좀 잊어 주면 안 될까?”
“아뇨. 내가 미안해서 그래요. 내가 조금만 살갑게 지훈 씨에게 다가갔으면 지훈 씨도 지금처럼 나를 사랑해 줬을 텐데.”
“내가 미안해. 그렇다고 덥석 이혼을 해 준 내가 어리석었지.”
“그것마저도 나에 대한 배려였다는 거, 다 알아요. 지훈 씨는 그런 사람이었잖아요. 내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 않고. 그리고 그것이 날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랬는데, 사실 후회했어.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먼 길을 돌아와서 지금 더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그래. 그러자. 사실 지금 너무 행복하긴 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해.”
지훈이 힘주어 해인의 어깨를 감싸 안은 그때였다. 유모차가 싫증이 난 아이가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 왜 울어?”
“응애. 응애.”
“안아 달라는 것 같은데요?”
“그래. 내가 안을게.”
지훈이 아기를 안아 올렸다.
이제 5개월 남짓.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포동포동한 아기가 지훈의 품에 안기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더니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향해 손을 펼쳐 들었다. 그렇게 한들 잡을 수 있는 꽃잎이 아님에도 아이는 끊임없이 바람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해인과 지훈의 얼굴에 벅찬 미소가 흘렀다.
잔잔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가족의 평화로운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