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2장. 바이올렛의 황태녀(2)
* * *
화르르르륵!
날아오는 화구들.
두르고 있던 누더기같은 망토를 집어 던진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썼던 망토지만 슬슬 찬 바람조차 막아주지 못 하기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용사는 재빠르게 가까운 건물 등지로 피했다.
‘인터벌은 10초 남짓.’
용사가 알고 있는 알고리즘에 따르면 경보 시작부터 다음 페이즈까지 걸리는 10초.
‘강철창이 나타나는데 걸린 시간 약 10초. 화구로 방식이 바뀌기까지 12초.’
차이가 생긴 2초는 경보 술식이 자체적으로 수단을 강구하는데 소요된 시간이다.
‘아마도 5분.’
발동 직후부터 황궁의 경비병력이 집합하는 데 걸리는 시간. 대략 4분 30초 즈음 남았을 것이다.
만약 지금도 대전 중이었다면 1분 내로 전병력이 몰려 들겠지만 마왕은 죽었다. 용사에게 살해당했다.
그때와 같은 삼엄한 경비 태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 5분 정도면 황궁의 경비병력과 마주친다고 봐야된다. 혹은 더 짧을 수도 있고.
삐이이이익─!
그 사이 13초가 지났다.
이전과 1초가 늦어졌지만 대응은 더 확실해졌다.
문득 물냄새가 났다.
그리고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사위를 물들이는 빛이 용사를 후려쳤다.
강철창과 화구는 그렇다 치고 번개를 맨몸으로 버틸 순 없다.
별수 없이 마나를 사용하고야 말았다.
‘예상보다 페이즈가 넘어가는 속도가 빨랐어. 아직 생각도 다 정리 못했는데!’
용사는 낭패어린 기색이었다.
경보 술식은 침입자가 마나 사용자로 판단된다면 위협도를 극상승시킨다.
인류의 지휘부를 노린 마족들의 내습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일형은 방식이 굉장히 극단적이다.
그 즉시 자체적으로 오버클럭하여 최대한으로 성능을 끌어 올린다.
침입자가 사멸당하든 술식이 무너지든 어느 한쪽이 먼저 죽을지 데스 레이스인 것이다.
‘최종 페이스로 바로 직행하게 될 경우 소요 시간은 약 30초! 그 안에 숨어야 한다!’
*
화려한 외관의 건물 내부로 들어온 용사는 별다른 변화없이 마력을 외부로 발출한다. 그리고선 긴 복도를 내달렸다.
뽑아낸 마력 덩어리를 복도에 있는 모든 문에 부딪쳤다. 와그작. 부러지는 경첩과 넘어가는 문들. 그 앞을 지나가면서 재빠르게 내부를 훑어본다.
“서재. 청소 도구 창고. 창고, 창고….”
“ 아! 저거! …아니네. 그냥 침구를 모아둔 거잖아.”
이 세계에는 마법을 위시한 여러 초자연적인 힘이 있지만.
문화, 경제, 산업 등등.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지구보다 높지 않았다.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3강으로 꼽혔던 3개의 제국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용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국의 대도시는 낙후된 지방 도시 정도였다.
그래도 제국은 제국이다.
여타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너른 영토와 인재들을 품에 안아 국가를 운영한다.
그 중심이 되는 황궁은 관리·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인력을 필요로 했다.
백 채에 가까운 황궁의 건물들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검사할 방법도, 인력도 없었던 알슈타르.
현자, 마도사, 그리고 용사.
방범용이었던 경보 마법을 세 단계로 차별을 두고 효과를 달리하게 개량한 개발자들.
침입자와 기존의 사람들을 구분할 수단이 있는가.
인공지능도 아니고 그냥 정해진 효과대로 자동으로 발동하는 마법이 사람이라는 개체를 어떤 판단 기준으로 구분하는가.
“찾았다.”
그건 바로 옷이다.
정확히는 가슴팍 부근에 IC칩처럼 내피와 외피 사이에 숨겨진 1x1 cm 사각형 정도 되는 자그마한 플레이트였다. 잘게 간 최하급 마정석의 가루를 압착시켜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용사가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복장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물건이다.
착용자의 신체 정보가 담겨 있어,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인물이 옷을 걸치면 바로 전기 충격을 가해버린다. 전기 충격을 발생시키는 것에 동력이 된 플레이트는 그 안의 신체정보와 같이 파기.
마족에게 포섭당한 고위 암살자들조차 이 체계를 알지 못하고 잠입했다가 걸린 전적이 있었다.
촤르르르륵!
용사는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옷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 가득이 진열되어 있는 옷가지들을 훑어본다. 경보 술식이 최종 페이스에 들어가기까지 앞으로 10초.
“기사 정복은 너무 눈에 띄고 시녀복은 아무리 그래도 아니고 역시 시종복이 낫겠지.”
같은 시종 내에서도 급이 있다.
낡은 상의와 구멍 뚫린 바지를 그냥 찢어버리고 선별한 수십 벌의 시종용 의복에서 가장 하급의 옷을 꺼내어 팔다리를 우겨 넣는다.
남은 시간 7초.
다급한 와중에도 부드러운 천의 질감을 느낀다, 하급임에도 일반 옷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질감. 대충 차려입고 가슴팍에 손을 올리는 용사.
남은 시간 4초.
손끝에 딱딱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플레이트다.
용사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빛이여, 스며들어라.”
대기의 마나가 출렁거린다.
나지막이 발해지는 용사의 언령에 스파크가 튀었다.
남은 시간 1초.
명확한 의지를 갖고 스며든 번개 형상의 마력이 저장되어 있는 신체 정보를 개찬한다. 끝에서 끝까지. 기존의 사용자의 정보를 없애버리고 용사의 것으로 뒤집어 쓰는 것이다.
다른 마도구였다면 이런 기예는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용사가 관여하고 그 구조를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마법 이론만이라도 빠삭하게 알고 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타임 오버.
잠깐 기다렸지만 독가스가 깔린다거나 수해가 일어난다거나 폭풍이 불어닥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됐다.”
용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면에 기대어 앉았다.
사실 용사가 이렇게까지 숨으려 들 필요는 없었다.
유일형 경보 술식이라고 해봤자 자의식도 없는 마법이다.
작정하면 결계의 근원으로 가지 않아도 힘으로 눌러버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올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은 성자에게 떠맡기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궁에 게이트가 열린 건 그놈의 고의다.
아니면 알슈타르 황실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된다.
‘그러면 문제가 되겠지.’
단지 그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용사는 당장 마왕을 토벌한 직후 동료들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사라졌었다.
그 후로 5년간 어디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용사와 인연으로 묶인 여자들이 물 밑에서 움직이긴 했지만 매번 아슬아슬하게 놓칠 뿐이었다. 그 매번 중에서 압도적인 지분율을 차지하는 것이 성녀라는 걸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기존의 세 제국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알슈타르 제국.
그 황궁에 용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도 황궁의 경비 시스템에 공격당하는 모습으로.
물론 무작위로 열린 게이트의 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할 테지만.
세상은 진실만으로 흘러가지 않고, 말해준다고 해도 믿지 않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부정적인 음모론들이 알슈타르 제국을 향하게 되고 그건 어떻게든 정국을 안정시키려던 인류의 지도자들에게 크나큰 부담이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반대로 소문나도 뭣하지.’
음모론의 방향이 제국이 아니라 용사를 향해도 문제다.
5년 전에 사라졌던 용사가 난데없이 인류 유일의 제국의 심장부에 나타나 깽판을 친다?
당장 전 대륙에 ‘용사가 마왕으로 전직했다!’고 소문이 쫘악 퍼지고.
용사가 마왕군과 싸우려고 만들었던 올스타즈가 되려 용사를 때려 잡으려 달려올 게 불 보듯 뻔했다.
그 혼란 와중에 사사로운 이득을 챙기려는 동료도 있으리라.
구체적으로는 성녀라든가 성녀라든가 성녀라든가.
명약관화하게 그려지는 미래를 용사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다른 시종들 틈에 섞여서 몰래 황궁에서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다.’
용사는 생각을 마치고 방 밖으로 나섰다.
시종으로 위장하려면 다소 외관을 바꿀 필요가 있으리라 보인다.
대륙에 존재하는 지성체들 중에서 용사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은 극히 드무니까. 그러러면 먼저 이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와 수염을 정리해야겠지.
“……?”
그런데 복도로 나온 용사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경고음.
처음부터 울려 퍼지던 새된 경고음이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경고음은 침입자를 퇴치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용사가 쓴 방식은 기존의 사용자들 중에서 한 명이 되는 것이라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경고음이 멈출 이유는 없었다는 거다.
“꺼졌다… 아니. ‘꺼트렸다’.”
용사가 서 있는 복도 저 건너편에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아직도 복도에 남아 뭘 하는 거냐.”
중후한 말투. 그러나 구사하는 말투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청년의 것이었다.
그럼 저건 누구일까, 짐작이 가는 듯 용사는 혀를 내밀어 어느새 말랐던 입술을 핥았다.
“경보가 울리면 의심받고 싶지 않거든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는 원칙도 배우지 못했나.”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 청소중이었던 탓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이로군.”
치밀어 오르는 위기감. 용사는 재빠르게 몸을 낮췄다.
서걱.
검은 머리카락이 잘려 하늘하늘 눈앞으로 내려오더니 살며시 바닥에 가라앉았다.
“멍청한 것. 그딴 개같은 원칙 따위는 없다. 불법 침입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각 궁에 지정된 장소로 대피하라는 것이 원칙이지.”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국 칠병.
알슈타르 제국이 자랑하던 일곱 무인들 중 하나.
“아르벨트 대공 각하.”
대전을 거치며 다섯이 망가지고 남은 두 자루의 인간 병기 중 하나이자, 명실상부 제국의 최강인 기사.
황실직속기사단장도.
황실근위대장도.
모두 발 아래에 두고 있는 황실 경호의 총책임자이자.
“오랜만이로구나, 망할 제자 놈아.”
그리고 용사의 스승이기도 한 자.
“일단 좀 맞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꾸나.”
“그 지랄 맞은 성미는 여전하신가 보군요, 망할 노친네.”
용사 왈, 뭐라고 하면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무식한 깡패노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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