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2장. 바이올렛의 황태녀(3)
* * *
세상에는 수많은 병기들이 있다.
검, 창, 도, 도끼, 활, 철퇴 등등.
시대가 변화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은 병기들이 발전하고 때론 퇴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중에 검이 제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창세기에 신들의 왕이 처음으로 그 손에 거머쥔 것이 검이었으며 그것으로 세상을 조형했다는 일화에.
신들을 받드는 교단은 그들의 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검을 들었고.
국가를 통치하는 왕들은 왕권은 신으로부터 나오기에 신성하다 주장하며 검을 들었으며.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은 그 왕권을 대리한다고 하여 검을 들었으니.
권위의 상징이자 무력이 상징이었던 이 검의 축복을 받은 이가 훗날, ‘제국검’의 칭호를 수여받고 ‘제국 칠병’의 수좌를 차지하게 될 이슈람 아발트 아르벨트 대공이었다.
계기는 아이들 사이의 칼싸움이었다. 고즈넉한 시골 영지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처음으로 검을 잡아보게 되었다.
물론 진검이 아니라 검처럼 보이게 잔가지를 쳐낸 나무 막대기에 불과했으나, 어린 이슈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명검으로 보였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하자!
상대는 영주의 차남.
영주의 호쾌한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의 자식들은 평민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다. 놀 때도 신분을 내세우지 않는 호탕한 행동거지에 많은 애들이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흔한 동네 아이들 사이의 칼싸움.
이슈람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게 된 결투는 그런 놀이였다.
쥐고 있는 볼품없는 막대기를 놓치면 끝인 그런 놀이.
─간다!
그런 놀이에서.
─어?
웬지 모를 고동을 느끼며 막대기를 엉거주춤하게 쥐었던 이슈람은.
─어어어?
영주의 차남을 단 1수로 제압했다.
─자, 잠깐 다시 하자. 다시!
제 손을 떠나 공중에서 빙빙 돌고 있는 막대기를 본 영주의 차남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가 이슈람을 이기는 이는 없었다.
몇번을 달려들고.
어린 나이 때부터 수행하던 기사 수업에서 배웠던 기술을 써봐도.
재능이 한번 용틀임치기 시작한 이슈람은 손쉽게 그를 제압했다.
오히려 막대기를 휘두를 때마다 점점 경로가 정교해지고 나중에 가선 그가 그리는 검의 궤적을 쫓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차남의 패배 소식을 들은 영주는 이슈람을 불렀다.
귀족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처벌을 받을 것이다. 주변의 어른들은 불려가는 이슈람을 보면서 말했다. 이슈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본 영주의 반응은 놀라웠다.
─덤벼보거라.
영주성의 경비가 내성으로 소식을 전하자 대뜸 연무장으로 오라하여 목검을 쥐어주더니 한번 덤벼보라고 하지 않겠는가.
이슈람은 당황하면서도 명령에 따랐고.
백여 합을 겨룬 끝에 영주의 목울대에 목검을 가져다대며 승리를 쟁취해냈다.
─크하하핫! 이거 대단한 녀석이로구만!
무념무상으로 싸우다가 무심코 목검이라도 영주의 목에 검을 들이댄 까닭에 새하얗게 탈색된 이슈람 낯빛을 보며 영주는 껄껄 웃었다.
─너. 그냥 땅이나 갈기에는 재능이 너무나도 아깝다! 어떠냐, 내 양자가 되지 않겠냐?
그렇게 제국검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7살, 아발트 가문에 양자로 입적되다.
7살 3개월, 스승으로 모실 황실기사단 출신의 기사를 구하다.
7살 11개월, 종자로서의 관습을 모두 깨우치고 스승을 이기다.
8살, 스승의 추천을 받아 황도의 실베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하다.
9살, 실베론 아카데미를 월반으로 졸업하다.
9살 1개월, 오크 전사장을 1대 1로 이기다.
9살 6개월, 웨어울프 군락지 5곳의 우두머리를 베다. 우두머리를 잃은 군락지는 해체.
10살, 베체른 토너먼트 주니어급 최연소 우승.
11살, 베체른 토너먼트 시니어급 최연소 우승.
11살 5개월, 흔히 근위가사단으로 불리는 황실 제1 기사단에 정식으로 스카우트되다.
그리고 13살의 여름날.
5황자의 직속으로 배정받고.
15살.
황위 계승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
16살.
5황자가 새로운 알슈타르 제국의 황제가 됨에 따라 근위기사단장으로 취임. 황제와 어머니가 같은 여동생과 혼인하여 황실과 연을 맺고 대공위에 오른다.
그가 보여주는 빛나는 무훈의 연속을 질투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그런 이들은 하나의 흠이라도 잡아내기 위하여 이슈람을 하나하나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은 이슈람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재능은 확실히 뛰어난 것이었다. 불세출의 천재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질시조차 감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의 노력.
검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눈을 봤을 때,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매력.
이슈람 아발트 아르벨트 대공.
따라서 그는 제국의 모든 무인들로부터 숭상받았다.
따라서 그의 적들로부터는 공포의 화신으로 숭앙받았다.
검을 다루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것이 꿈일 정도로.
그렇지 않은 자들조차 한 번이라도 그와 겨뤄보기를 바랄 정도로.
그런 실패따윈 없는 인생.
오로지 재능과 노력으로 80 평생 살아온 아르벨트 대공에게 있어서.
“어디서 못 된 버릇을 배워 왔구나, 얼간이 같은 놈.”
고작 성검을 쥘 자격이 있기에 용사라 불리며.
어떻게든 아득아득 기어오르는 17살은 눈에 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쥐새끼처럼 황궁에 몰래 숨어들다니!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오지 못할까!”
아르벨트 대공이 호통치며 거세게 손을 떨쳤다. 미약하게 일어나는 바람. 그 미풍은 곧 풍랑이 되어 복도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무형의 참격앞에 무덤덤히 서 있는 용사.
“본의가 아니었다고 말해도 듣는 시늉도 안하겠죠?”
용사는 장유유서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답게 대꾸도 일단은 존대로 대꾸한다. 그리고 쇄도하는 칼바람을 대공과 똑같이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흩어버린다.
“당연하다!”
대공은 웃는다. 살기어린 미소 사이로 맹수의 이빨이 드러났다.
“맹수가! 제 영역을 발을 들이민 멍청한 사냥감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잖느냐!”
대공은 한 발을 앞으로 디뎠다.
신체 내부로부터 끌어올린 힘이 거침없이 앞발로 향한다.
어떤 무술의 자세가 아니다.
평범하게 산보하는 노인의 걸음처럼.
그냥 발을 디뎠을 뿐.
타앙!
앞발이 복도 바닥을 찍자 돌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엄습하는 위기감.
단 한 발자국에서 시작된 금이 조금의 꺾임도 없이 정확하게 퍼지는 9갈래로 퍼지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뒤로 뛰는 용사.
수십년간 해왔던 것처럼 허릿춤을 매만지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쯧.”
성검은 봉인했지.
있다가 없으니까 아쉽다는 게 이런 감정인가?
……아니다. 더 갖고 있었으면 진짜로 뚫렸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어쩐다. 저 망할 영감탱이는 맨손으로 상대하긴 좀 그런데.’
세계의 최강자 라인에 들어선 용사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검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검이 되는, 행하는 동작 하나에 검의가 깃드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오른 무인에게 적수공권으로 덤벼드는 미친 짓을 자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쉽게 말해 무기가 필요하다.
경보 술식에서 만들어낸 걸 잡아채서 썼던 강철창은 옷을 갈아 입었던 곳에 버려뒀다.
당연히 시종이 무기를 들고다니면 이상하니까 그랬는데.
괜히 생각나니까 아쉽다.
그나마 성자가 건네준 돈주머니와 다른 소지품들을 잊지 않고 챙긴게 다행이다.
하필이면 둘이 있던 곳이 건물 1층이었기에 단 두수의 공격에 그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잔해들 사이를 바람처럼 누비며 밖으로 나오는 용사.
잔해들에 의해 파묻히는 듯이 보였던 아르벨트 대공은 마력을 방출하는 것으로 일거에 날려버린다.
“진짜 쥐새끼가 된 것이냐?! 쫄랑쫄랑 도망이나 치고 앉았구나! 그토록 가르쳤거늘! 용사란 결코 물러섬이 없이 당당하게 곧게 나아가는 자여야 한다고!”
“하! 그랬으면 난 진즉에 뒤져서 나빠졌을걸!”
“약해빠진 네놈이라면 그랬겠지! 나는 가능했다!”
용사는 순간 울컥한 감정을 느꼈다.
그가 괴로워하고 미친듯이 굴렀던 지난 세월을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그 모습에.
원래 저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런 썩을, 내가 이래서 할배가 싫어!”
“하. 동감이다, 제자 놈아.”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던 아르벨트 대공.
순간 그의 눈살이 찌뿌려지는 것을 보았다.
“……잠깐만. 그것보다 네놈. 성검은 어디에 둔 거냐.”
“봉인했어.”
“……뭐라?”
“성자에게 부탁해서 봉인지에 원래대로 돌려놨지.”
“…….”
“이제 계시가 내려올 때까지는 누구도 못 꺼내.”
용사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언제나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이 기본이었던 용사지만 아르벨트 대공에게 가진 감정은 전혀 좋지 못했다.
소환 초기, 처음부터 성검과 함께 나타난 자신을 고깝게 봤던 것, 형편없는 검솜씨를 질타하며 매번 올리던 성검이 아깝다는 말. 그럴 때마다 눈가에 스쳐지나가는 일종의 열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검(??).
신들의 왕이 최초로 휘둘러 세상을 조형했다는 창세의 신검(??).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존재하는 모든 검술을 알고 있다는 검의 정령.
이제껏 존재해왔던 모든 성검들 중에서 용사의 성검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갈망할 만한 것.
그렇기에 용사가 용사라는 사실에 배려받고 개인 교습을 받을 때도, 대공의 시선은 항상 용사의 허릿춤에 매달린 성검을 향해 있었다.
성검은 오로지 용사만 쓸 수 있다는 제약이 없었더라면, 진즉에 용사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성검을 취했을 정도의 욕망.
당연하겠지만 눈치가 빨랐던 용사가 그 시선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 용사는 지금 통쾌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열이라고 봐도 좋았다.
수백 년이 주기인 계시의 특성 상, 아르벨트 대공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성검이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은 없기에
“아둔한 것이… 제 명을 재촉하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아드드득. 용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아르벨트 대공은 이빨을 갈았다.
“…좋다, 아주 좋아. 성검은 용사의 증명. 그런데 지금 네놈 손에 없다는 건, 네놈은 더이상 용사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지…!”
“짜맞추기도 그쯤이면 병이요, 할배.”
성검이 없다곤 하나 용사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용사를 기억한다.
즉, 아르벨트 대공의 말은 헛소리라고 볼 수 있었다.
차라리…
그래.
은퇴 용사라고 하는 편이 옳겠지.
점점 기세를 끌어올리는 아르벨트 대공. 그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용사가 대뜸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졌어.”
“…….”
“그냥 서로 못 본 걸로 하고 제 갈길 갑시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건가.”
“내가 그래도 예의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지라 노인공경이 자동 패시브거든. 물론 나도 당신한테 쌓인 게 많지만. 여기서 당신이 죽어버리면 제국칠병 중에 남는 건 그 기분 나쁜 놈 밖에 없으니까.”
“……하하. 봐주겠다?”
“노인공경을 노인공격이라는 액티브 스킬로 바꾸고 싶진 않은데.”
그러나 아르벨트 대공이 순순히 고개를 네, 하고 끄덕일 일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늘상 탐탁지 않게 여겼다곤 하나 용사는 그의 제자였다.
그런데 제자에게 동정을 빙자한 도발을 받고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는 뼛속까지 무인이자 맹수였다.
“도발이라면 아주 훌륭했다. 칭찬해주마, 그러니 죽어라!”
*
쿵! 쿵! 쿵!
상대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티테이블.
홀로 차를 마시던 바이올렛의 여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르벨트 대공이 고전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뇨.”
황태녀 플로렌스는 황급히 움직이려던 시종을 제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직접 가봐야겠어요. 아르벨트 대공과 맞설 정도의 실력자… 그런 자가 있다면 역시 끌여두는 편이 좋겠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