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2장. 바이올렛의 황태녀(5)
* * *
황궁을 부순 대가가 대체 무엇일까.
뒤이어 들린 플로렌스의 말에 용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부탁 말입니까?”
플로렌스가 황궁 파괴를 묵인한 댓가로 요구한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탁을 한가지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예.”
“거절하겠습니다.”
아직 자세한 내용도 듣지 못했지만 용사는 딱 잘라 거부했다.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일미아 꽃잎을 달인 차의 첫맛은 부드러우면서도 끝은 쌉싸름한 느낌이 강했다.
“제가 개인적인 청부를 받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아시고 계신걸로 압니다만.”
플로렌스의 부탁을 청부라 낮잡아 부르는 용사.
맞은편에 있던 아르벨트 대공이 발끈하려했지만 플로렌스가 내민 손에 제지된다.
“개인적인 부탁이 아닙니다.”
“예예, 그러시겠죠.”
살짝 돌려 말함에도 용사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아니, 얼핏 보면 짜증과 약간의 혐오라는 감정이 서려있는 듯 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용사의 경험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다.
용사는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부터 타인의 욕망에 시달려왔다.
권력에 취해 세상을 앞뒤에서 지배하는 지배자들.
그들에게 있어서 용사란 존재는 전가의 보도 그 자체였다.
소환하는 매개가 되어준 교단도 믿을 수 없었다.
성직자들도 사람이다.
인간의 3대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
교리에 따라서 온전히 3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가장 권력, 명예욕구를 가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용사가 머물렀던 교단은 용사를 이용해 제 입지를 넓히려 들었다.
다른 교단들은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교단’으로 뭉뚱그려 부르지. 원래는 다 각기 다른 신들을 모시는 종교의 집합체였기에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용사를 앞세워서 자행하는 모든 만행들을 신의 뜻이라고 포장할 수 있게 된다.
용사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적들의 무수한 군대와 하염없이 밀리는 전선을 보면서도 그들은 용사라는 말을 어떻게 활용할까, 몰래 수상한 수작을 꾸며댔다.
대부분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원래부터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은 지배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누리는 권력은 어디까지나 기반에서 온다는 걸 알고 있는 일부 깨어있는 자들.
그들은 노도와도 같은 흐름에 최대한 대비했으나.
세상이 늘 그렇듯이 그들은 소수였고.
시간이 지나며 현 세태에 눈을 돌리고 있던 이들은.
밀물이 차오르듯이 밀려드는 적들 앞에서 강제로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것처럼 각성하게 되었다.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러니 늦었다.
그 사이 많은 나라가 멸망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은 후였다.
용사는 권력이라는 오물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그리고 부순 건물에 대한 보상은 옆에 있는 노망난 노친네에게 청구하시길. 전 막은 죄밖에 없으니까요.”
“이놈?!”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보겠습니다.”
온전히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과 달리 용사의 목소리는 평소대로 침착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셔야 할 겁니다. 황녀께서 제가 이럴 걸 모르시지도 않았을테니.”
옆에서 대공이 “예의를 갖춰라, 황녀(Imperial Princess) 전하가 아니라 황태녀(Crown Princess) 전하시다.” 라고 핀잔을 주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플로렌스 황태녀는 아이올라이트 같은 눈을 살며시 닫았다.
고민에 잠겼던 그녀는 이내 눈을 뜨며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걸 보신다면 충분히 납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선 품속에서 목재 상자를 꺼내는 플로렌스.
마치 반지함같이 작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그 상자는 달칵 하고서 열렸다.
탐탁치 않은 눈으로 플로렌스를 바라보던 용사,
부드러운 붉은 천 위에 올려져 있는 ‘각진 검보랏빛 보석’을 본 용사는.
“?!”
용사는 마치 통나무처럼 딱딱히 굳었다.
내용물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얼마 전.
대륙에 척박하기로 유명한 북부의 왕국에서 진귀한 금속이 발견되었다.
광물임에도 경도가 낮고 끈기가 있다.
진짜 찰흙처럼 늘리거나 뭉칠 수 있었고 떼었다가 붙이는 것도 가능했다.
듣도보도 못한 특성.
평생 동안 광부일을 해온 장인들도 금속에 난색을 표했다.
은은한 검보라빛 광채를 뿌리는데.
이게 사람을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광부들은 마석이라 불리며 멀리했다.
암석인지 보석인지 모를 이것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마법사에게 비싼 값에 팔렸다.
마법사는 이 수수께기의 광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효능이 밝혀졌다.
검보랏빛 광석은 촉매로 쓰이는 다른 보석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 증폭량이 월등히 뛰어났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3+3=6이 아니라 3x3=9이라는 결과값이 도출된다는 뜻이었다.
이 기적의 보석을 발표하자 온 세상이 떠들석해졌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마법사는 학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지팡이 끝에 매다는 보옥으로 써도 좋다.
갈거나 조각 째로 촉매로 써도 좋다.
마도구에 인챈트하는 술식 회로에 소량으로 첨가하면.
해당 마도구는 설계와는 다르게 등급이 한 단계는 격상하기까지했다.
그렇기에 [증감석]이라고 불렸고.
지금와서는 이렇게 불린다.
[마왕의 파편].
“이게….”
용사는 조심스럽게 솓을 뻗어 상자 안의 [마왕의 파편]을 집어들었다.
바로 코앞으로 가져와 기억과 대조해본다.
대전이 끝나기 얼마 전에 보았던 뒷산 하나만큼 컸던 결정덩어리와는 다르게 크기는 작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은 동일했다.
사람을 홀리고 내면의 욕망을 끄집어내는 그 마력은 진짜였다.
“왜 있습니까?”
그렇기에 용사는 믿을 수 없었다.
[마왕의 파편]은 단어의 뜻 그대로 ‘마왕’을 이루는 구성 요소였기 때문이다.
[마왕의 파편]은 사람의 욕망, 사람의 의지, 의지가 깃든 마력을 잡아먹고 그 총량을 부풀린다.
늘어난 만큼 그 본체인 마왕은 더욱 강해지고 그 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 들키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감각이 매우 민감한 마법사들은 늘상 들고다니던 보옥이 달라진다면 금세 눈치채버리고 만다.
그러나 [마왕의 파편]은 통상적인 물질이 아니었다.
마의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물질답게 아주 교활했다.
지반으로 파고들어가 광물의 형태로 출토되는 것으로 의심을 피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마도사가 진실을 밝혀내주지 않았더라면.
마왕은 자신의 권속들에게서 공급받는 ‘마(?)’로도 모자라 인간의 ‘마’까지 섭취했을 것이고.
용사는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벌레마냥 짓눌러 죽었을 수도 있다.
“그 망할… 빌어… 씹… 마, …하아. 하아아아. 아,아아.”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을 차마 잇지 못하는 용사.
한없이 무거운 넋두리에 플로렌스는 물론이거니와 아르벨트 대공마저도 말을 아꼈다.
“……좋습니다, 예. 과연 납득할 수 있을 만하군요. 마왕이 부활한다니.”
한참을 말을 아끼던 용사는 한껏 줄어든 음량으로 그렇게 말했다.
[마왕의 파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용사는 생각에 잠겼다.
마왕이 부활한다고 가정하자.
너무 비약적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그 미친 것들을 적으로 둔다면 언제나 최악을 가정해야한다.
마왕의 권속들과 그들이 이끄는 군단을 상대하기 위해선 다시 한번 범세계적인 연합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이전과 같이 종족간의 우열도 두지 않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연합을 말이다.
그런 후에야 어느정도 이야기가 된다.
다만, 그걸 플로렌스 황태녀가 몰랐을 리가 없다.
용사의 시선이 플로렌스를 향했다.
말없이 찻잔을 비운 플로렌스는 고백하듯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부가 좋지 않습니다.”
비관.
“신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은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저희 제국도 이럴진데 다른 왕국들은 어떨까요.”
부정.
“그래도 나아지고는 있습니다. 네, 희망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어요.”
결단.
“지금, 이 정국에 혼란 거리를 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날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은 죽어간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모욕일테지요.”
플로렌스 황태녀는 진정 위에 서는 자답게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용사를 이 테이블에 앉힌 모양이었다.
정치에 신물이 났다곤 하나 원체 눈치가 좋았던 용사.
그는 대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로군요.”
“예. [마왕의 파편]이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여기 저를 포함해 세 명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저에게 가져온 이는 기억제거술을 받아 보안을 유지했지요.”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나마 마나가 존재하고 영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방향성이 조금 다를 뿐.
마법이어도 아무런 부작용없이 기억을 지울 순 없었다.
아마도 그는….
남아 있던 찻물을 쭈욱 마저 들이키는 용사.
탁 하고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결국 수락의 뜻이었다.
“단 한가지만 약속해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좋은데요.”
정말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녀, 플로렌스라면.
“‘부탁’을 받는 건 이게 끝입니다.”
그러나 이어진 뒷말에는 살짝 난색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