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3장. 현자를 찾아서(2)
* * *
용사는 가출했던 정신이 빠르게 돌아오는 걸 느꼈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자 반짝이는 게 보였다.
서걱!
번쩍, 섬광이 지나가고 묶여 있던 대도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쿵!
“어억!”
방바닥에 코를 찍은 대도.
빨갛게 부어오른 코를 매만지며 일어나는 그는 깔끔하게 끊어진 구속끈을 아쉽다는 듯이 바라봤다.
“조금 조심히 다뤄줬으면 좋겠구만. 늙은이의 허리는 아무리 쓸 데도 없다지만. 너무 난폭해.”
“이상한 소리만 안했어도 제대로 내려줬어.”
그땐 아마도 아래에서 받쳐주긴 했겠지.
헛소리 말라 핀잔놓으며 페이퍼 나이프를 내려놓는 용사.
밧줄을 자를 만한 것을 찾다가 방 한켠에 있던 책상 위에서 발견한 것이다.
“내 잘못이란 말이지. ─음. 인정하겠네.”
연륜으로 용사가 받았을 충격을 십분 이해한 대도는 선선히 인정하더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희고 노란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기고 옷의 구김새를 펴자 익숙한 노신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몸에 배인 품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용사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난 사실 묶이는 게 좋았어요.’라 커밍아웃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참는다.
선을 넘지 않는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솔직히 살짝 넘을락 말락 하긴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용사는 주머니에서 외알 안경을 꺼내어 쓰는 대도를 보며 생각했다.
대도가 왜 여기 있을까.
플로렌스에게 동료가 있는 장소라고 안내받아 온 곳에는 상상외의 인물이 있었다.
비싸고 귀한 물건들이 가득한 제국의 궁궐에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모두 들어맞는 희대의 도둑이.
왜 그가 여기 있을까. 죄가 없어졌다곤 하나 피차 꺼림직할텐데.
탁 까놓고 말해 딱 한 가지밖에 상상되지 않았다.
“설마 또 제 버릇 못버리고 도둑질 하러 왔다가 잡힌 건 아니겠지.”
그러자 대도는 상처받은 얼굴이 되었다.
“날 뭘로 보고 그러나.”
“도둑.”
“맞… 긴 하네만. 난 이미 손 씻었네.”
정말이라는 듯이 양손을 들어올리는 대도.
용사는 그 말을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도는 분명히 보았다.
자신과 눈을 마주지치 못하는 것을.
땀을 삐질 흘린 대도는 억울하다는 사람처럼 항변했다.
“진짜라니까. 애초에 황궁에 들른 것도 물건의 반환 때문이라네. 아무리 사면받았다곤 해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물건들도 있으니까.”
“문제가 될 물건?”
“예를 들자면 한 가문의 인장 반지라던가 하는 것들 말일세. 세간에는 유실품이라던가 장물로 잘 알려져 있지.”
그말은 즉, 문제가 될 물건들 외에는 반환하지 않겠다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뻔뻔스럽게 히죽 웃는 대도.
과연 도둑은 철면피여야 한다는 소리로군.
“아무튼 무슨 일인가? 여기에 내가 있다는 걸 플로렌스 전하만이 아시니 그분께서 보낸 건 알겠다만.”
그 말을 들은 용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성자와 비밀스러운 만남, 성녀의 추격, 그로 인해 알슈타르 제국의 황궁으로 무작위로 떨어진 자신, 그러면서 벌어진 일과, 플로렌스에게 받은 부탁까지. 전부.
대도는 때때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윽고 용사의 이야기가 끝나자 대도는 주름진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과연, [마왕의 파편]인가….”
용사의 동료였던 그로서도 지긋지긋하게 본 물건의 명칭.
마왕이 죽으며 다신 볼 일이 없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물건이 다시금 모습을 나타내다니 이게 무슨 징조일까.
대도는 흰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용사 군, 지금 그걸 갖고 있겠지. 어서 줘보게.”
용사가 대도에게 [마왕의 파편]을 건넸다. 그러자 대도는 건네받은 ‘파편’을 높게 쳐들어 창문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반사시켰다. 유심히 지켜보더니 뭔가 잘 안풀리는 듯 인상을 구겼다.
“흠.”
미간을 문지르던 대도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옆에 달린 서랍을 힘껏 열어젖히고 내부를 뒤적거린다.
그러더니 무언가는 쑥하고 잡아들었다.
대도가 꺼낸 무언가는 어딘가 현대의 느낌이 났다.
빛이 일직선으로 뿜어지는 기구. 팔각형으로 배치된 거울들, 현미경과 비슷한 기구들.
그것들을 여럿 꺼내더니 파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샌가 흰 장갑도 벗어 버리고 ‘파편’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댔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대도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용사는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그러다가 큰일 난다.”
그걸 씹어먹으려 드는 건 좀 아니지.
그러나 대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괜찮네, 먹거나 침이 닿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소지는 없으니까. 타액이나 혈액 등 체액에 극렬히 반응하는 건 옛날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네.”
대도가 ‘파편’을 손에 쥐고 용사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러자 용사의 안색이 딱딱히 굳었다.
“…실험했구나.”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난 어디까지나 내게 주어진 것으로만 모험을 감수한다네.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이건 내 신념이야! 백색탑의 미친 것들과는 다르단 말일세.”
대도는 완고한 말투로 용사의 말을 부정했다.
그의 신념에 위배되는 일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노라고.
오죽 억울했으면 마법사들 중에서도 미친 놈들로 분류되는 마탑을 반대 예시로 들면서까지 말할까.
“흠흠.”
어색해진 분위기.
문득 이성을 되찾은 대도가 헛기침을 했다.
다소 자신의 반응이 격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용사 군, 일단 내 소견을 말해주겠네.”
“어. 어어어. 말해줘.”
자연스럽게 원래 주제로 복귀하면서 말을 돌리는 대도.
용사도 얼른 동조했다.
숨이 턱턱막히는 공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들린 말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유물들과 보물들, 수많은 종족이 만들어낸 온갖 물건들을 감별해온 식견으로 확언하건데. 이건 가짜일세.”
용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커졌다.
가짜?
저렇게 사이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데 가짜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대도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 방금 전 내가 한 말은 다소 부정확했군. 그러니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반응에 대도는 그런 용사의 속내를 금세 눈치챘다.
“기존의 [마왕의 파편]과는 달라. 이건, 그래. 비유하자면 누군가 어설픈 솜씨로 배껴 만든 ‘모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
“모작? 결국 가짜란 소리잖아.”
“이걸 봐주게.”
대도는 책상으로 다시 돌아가 자그마한 기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레이저 포인트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실제로 쓰임새도 그랬다.
“빛이 고르게 퍼지지? 기존의 [마왕의 파편]은 이렇지 않았네. 실제로 빛을 쏘아보면 굴절이 심해 난반사를 일으킬 정도거든.”
대도가 ‘이제와서 증명해볼 순 없지만 말일세’ 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것도 봐주게. 내포된 입자의 분포가 규칙적이고 균일하지 않나. 이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야.”
“…그야 파편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겠네.”
대도는 손바닥 위에서 ‘파편’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마왕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려고 했지?”
“…어.”
“기억해두게나. [마왕의 파편]은 발견되고 증폭 용도로 쓰이던 촉매라는 것을. 위화감 하나 없이. 마치 자연 그대로의 암석처럼 존재하고 있었네. 그 때문에 처음으로 ‘파편’이 발견했을 때 누구도 이걸 광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야.”
대도는 갑자기 인상을 찌뿌리더니 목이 마른 듯 목어름을 매만지면서 물 주전자를 들었다.
꿀꺽. 꿀꺽.
“큼. 늙으면 몸 여기저기가 잘 망가진다니까.”
주전자를 다시 내려놓은 대도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런 점들로 미루어봤을 때 이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파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게야.”
그 순간 용사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플로렌스 황태녀가 이 일을 맡긴 이유가 짐작되었다.
[마왕의 파편]이 재출몰했다는 것의 공언.
그녀가 우려한 것은 마땅한 증거도, 대책도 없이 그저 유언비어 식으로 떠돌면서 발생할 혼란이었다.
즉, 플로렌스 황태녀가 용사에게 바란 것은 다음과 같았다.
바로 ‘파편’의 재출현에 대한 해명과 대책의 수립.
그리고 공표.
이걸 왜 자신에게 맡기나 싶었던 용사지만 하나하나 따져볼수록 자신 말고는 적임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사의 입지는 대전을 걸치면서 쌓아왔고 종국에 마왕을 무찌르며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굳어졌다.
바로 내일 척박한 황야에 산이 솟아나고 바다가 생길 것이라는 등의 허무맹랑한 말을 해도 ‘용사님이 말씀하셨다.’라고 한다면 진실로 둔갑될 정도로 신뢰가 쌓인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 나면 알슈타르 제국의 귀족들이 제국의 후계자인 플로렌스의 말보다 용사의 말을 더 신뢰할 정도였다.
즉, 플로렌스가 ‘파편’의 재출몰에 대한 사실을 공표하면 혼란이 발생할 테지만, 용사가 나선다면 세계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의 신빙성이라도 갖춘 증거를 모아야 하는데….
“증거가 안돼.”
도둑의 말에 신빙성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좋은 지적이로군. 이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겪어 본 경험으로 추리와 추론의 결과로 나온 결과물에 불과하니까. 증거로선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 설득력이 없다고 봐도 좋네.”
그걸 순순히 인정하는 대도.
그도 머리가 좋기론 손에 꼽힐 만큼의 사내인지라, 용사가 그를 찾아왔을 때부터 플로렌스의 진의를 얼추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현자(?者)]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군.”
“윽.”
“…너무 싫어하는 티를 내는 것 아닌가.”
와락 일그러지는 용사의 얼굴.
대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지만 이내 훗하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보기 좋아.”
주름진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용사.
대도는 말없이 어디선가 꺼낸 실크 해드를 꾹 눌러썼다.
“책무에 얽매여 있을 때보단 훨씬 사람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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