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3장. 현자를 찾아서(3)
* * *
“아니라니까!”
늙은 주교가 외쳤다.
그는 성난 기색으로 원탁을 탕탕 두들겨댔다.
“지배자란 무엇인가! 위에서 아랫것들을 굽어보는 것이 바로 지배자 아닌가. 그렇기에 주신(??)은 천공의 신께서 분명하심이네!”
“뭘 모르는 소리!”
늙은 주교가 그리 주장하자 다른 주교가 헛소리 말라며 일갈했다.
자신의 주장이 헛소리 취급당한 주교가 눈을 부릅뜨자, 다른 주교는 헹하며 코웃음쳤다.
“당신의 논리는 이거요, 다른 것들을 포괄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라는 것 아니오.”
“그래서?”
늙은 주교는 그 순간, 다른 주교가 모시는 신의 신명을 기억해냈다. 그는 상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되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돌아가고? 바로 흙이오. 그렇다면 세상 만물을 포용하시는 대지의 신께서 주신의 좌에 앉아 계심이 지당하지 않겠소이까.”
“이런…!”
늙은 주교는 가슴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상대와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주교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대에게 질세라 주변인들은 목청껏 제 의견을 피력해댔다. 그러니 금세 방안은 여러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시장통이 되어버렸다. 의미없는 낱말들이 공간을 가득채운다.
개판이었다.
그 와중에 원탁의 한 자리.
그러나 다른 자리와는 다르게 화려한 장식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
‘하아.’
성녀 그라시아는 열띤 논쟁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긋지긋하네요.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어요.’
통합교단.
일명 교단.
대륙에 존재하던 수많은 종교들이 [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위협에 맞서 결집한 단체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지금 적들 앞에서 등을 맞대고 싸웠던 어제의 동지들은 내일의 적이 될 판이었다.
바로 단 하나의 문제 때문이었다.
「현(?) 주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
척봐도 논란거리가 끊이지 않을 주제였다.
신자들이 감히 신들을 두고서 왈가왈부하는 불경이지만 지금은 신화시대가 아니다.
‘같은 신군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주교들은 각자 모시는 신이 다르다.
천공의 신… 대지의 신… 구름의 신… 늪지대의 신….
대륙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기에, 참석 자격을 어느 정도 교세가 있는 종교들로만 한정 지었는데도 벌써 이 넓은 회의장이 꽉 차 보였다.
주신은 누구인가.
이것을 증명할 기록따윈 없었다.
각 종교가 그들이 모시는 신의 신위를 기록하고 널리 알린 성경.
그것들 중에서 공통된 구절은 창세기 이후, 검으로 세상을 조형한 신들의 왕이 치세를 끝내고 물러났다는 기록까지뿐이었다.
그 후로 각자 전해지는 성경의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많은 교리가 대립했다.
말 할 것도 없이, 각 종교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주신으로 기록해댔다.
그게 지금 와서 이 난리통을 만든 주범이었다.
‘돌아가면서 주신이 되는 건… 당연히 안되겠죠.’
학급 반장도 아니고 그럴 순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양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신을 향한 믿음은 굽힐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이 이상한 세계였기에 완벽한 제 3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해 관계에 얽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건 답이 없다.
‘후우.’
저렇게 줄창 싸워댈 거면 통합교단이고뭐고 서로 찢어지고 남남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그건 또 싫단다.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이 든다고.
미증유의 위기를 이겨내자 권력욕이 고개를 쳐든것이다.
사교를 제외하고 거의 전 종교가 모인 통합교단.
그 안에서 한자리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권력을 움켜쥘 수 있을까.
그러나 성녀는 구태여 나무라지 않는다.
‘역시 용사님…. 나의 구세주.’
지난날, 용사는 이미 대전 막바지에 이러한 균열의 낌새를 느꼈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대비하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억눌려왔던 만큼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무슨 일이든 끝맺음이 중요하다고 뒷수습을 부탁했다.
‘그때부터 도망치실 계획을 가지신 걸 알았으면 부탁은 거절했을 텐데요.’
아니나 다를까.
요 몇년간 용사의 말대로 두더지마냥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교단의 본부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정작 부탁한 당사자가 사라졌어도 성녀는 뒷수습에 충실했다.
불과 얼마전 몰래 빠져나가는 성자를 발견하고 미행한 결과, 사라졌던 용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하루라도 빨리 용사님을 붙잡아 대성당에서…… 후후. 후후후후.’
성녀는 슬쩍 흐르는 군침을 닦았다.
슬슬 옷에 배인 용사의 냄새만으로 참기 힘들어졌다.
아무리 잔향을 쫓아도 용사 본인만큼 느낌이 확 오는 건 없었다.
한번 고삐를 놓친 욕망은 쉼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
날뛰는 욕망이 어딜 건드린 것인지.
성녀는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렸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그런 생각이.
“여러분.”
성녀가 그녀 특유의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성녀는 지난 수많은 논쟁 중에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을 순 없었으니까.
그래도 주교들은 논쟁을 벌이며 아닌척해도 성녀를 신경 쓰고 있던 것이다.
‘성녀가 자신들 중 하나의 주장을 지지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성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신 유일한 해답을 제시해줄 순 있었다.
“너무 어렵게들 돌아가고 계십니다. 「주신은 어떤 신인가.」 알고 있는 분에게 여쭤보신다면 쉬이 알 수 있을 텐데요.”
“저어… 성녀님. 그게 어떤 말씀이신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주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주교는 성녀를 직시하지 못하고 돌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사].”
“………!”
성녀의 말을 경청하던 주교들이 놀라워하며 각양각생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용사님께서는 다른 세계에서 저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세계에 오실 수 있으셨던 걸까요. 참고로 용사님께서는 세계를 넘은 것은 자신이 행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듣자하니 용사가 원래 있던 세계는 이곳과는 다르게 발전한 곳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그쪽이 더 높다던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다른 세계와 접촉해본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령계나 신계에 국한될 뿐. 정령계와 신계 등등이 부속 세계나 상위 세계라고 친다면, 용사의 세계는 아예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떠한 분이 개입하신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가장 위대하신 분이라던가.”
그렇다면 용사는 주신의 신명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 그렇담. 그분을 찾으면….”
“명답이로군요, 명답이야….”
찾으면 된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찾아서 주신이 어떤 신인가 알아내야한다.
성녀의 말을 들은 주교들의 뇌리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잠시만.”
문득 어떤 주교가 말했다.
바로 전에 천공신이 주신이라고 주장했던 늙은 주교였다.
“하지만 용사님께선 지금 행방불명이시지요. 이 상황에 대체 어디 계신 줄 알고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또 누가 찾고요?”
늙은 주교의 말에 성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예?”
“주신이 어떤 분이신가. 이건 저희 교단에 있어서 더없이 막중한 사안입니다. 앞으로 교단이 나아갈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지요. 존망마저도 결정되겠지요. 그러니 당연히 제가 나서야하지 않겠습니까.”
“하, 하지만!”
사소한 반발.
방해된다.
방해된다.
용사님(목표물)을 만나러가는데 방해된다.
“제가. 가, 겠, 습, 니, 다.”
성녀는 더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이들은 그 자애로움에 무릎을 꿇었다.
*
한 마녀가 있다.
사람의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존재해온 마녀가 있다.
너무나도 오래되어 그 이름이 겨울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가 되어버린 오래된 마녀가 있다.
흘러나오는 약간의 마력만으로 산맥은 겨울의 옷으로 강제적으로 갈아 입혀진다.
계절에 맞지 않게 눈이 내리면 ‘아이르가 잠시 왔다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겨울의 마녀, 아이르.
“……찾았다.”
그녀는 겨울이었다.
온기를 알아버린 겨울.
“이젠 놓치지 않아. 영원히 함께야….”
겨울은 그 온기를 알려준 봄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침내 현자를 발견했다.
“당장 나가라! 이 역귀야!”
그런데 얜 또 왜 이 지랄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