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6장. 엑소더스
* * *
과거를 반추한다.
내 입 안의 혀가 구불거리고 입술이 달싹거린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내 몸은 마치 빙의라도 한 것처럼 다른 의지에 따라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내가 말했다.
“베르트 기사단장님.”
“경이면 충분하다.”
베르트 경이라 불린 사내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사내는 눈 밑에 거무죽죽한 기미가 잔뜩 끼어있어, 피곤하고 지친다는 범주를 넘어 달관했다 느낌을 받았다. 그와 과거의 나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널따른 항무지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평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불티와 코끝을 스치는 재의 냄새가 생생하다. 감각은 살아 있으나 움직일 수 없다니 식물인간도 아니고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과거의 몸은 털 한끝도 움직이지 않았다. 즉 이 꿈의 끝을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베르트 경이 말했다.
“등을 곧게 피고 머리는 정면을 향해라. 무게중심을 그렇게 너무 밑으로 내리지마. 말은 예민한 동물이다. 기수가 불안해하면 덩달아 불안해하지.”
“후우.”
“배우는 건 빨라서 그나마 다행이군. 그나저나 이해가 되지 않아. 아무리 다른 세계의 출신이라지만 용사로서 소환된 이가 말을 모는 방법도 모를 줄이야.”
“저희 쪽에서 말을 이동 수단으로 써먹은 건 옛날 일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다른 대체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니까요. 이젠 전쟁에도 쓰이지 않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교통수단과 병기들을 떠올린 듯한 과거의 내가 그리 말하자, 베르트 경은 자조하듯이 뇌까렸다.
“…그렇다면 필경 기사들도 사라졌겠군. 그럴 만도 하다.”
단순히 말을 베르트 경은 뒤를 돌아보았다.
“제 역할도 제대로 완수해내지 못하는 집단에게 쓸모란 없을테니 몰락은 당연하겠지.”
과거의 나도 그를 따라 뒤를 돌아보자 뒤따르고 있는 수많은 인파가 시야 내로 들어왔다.
지평선 너머까지 들어차있는 사람의 파도가 둘을 삼키려는 듯 넘실대고, 그 와중에 서로 부딪치며 머잖아 꺼져버릴 포말을 굳이 일으켜댄다.
무언가로 잔뜩 부푼 가죽 자루를 들쳐메고 가는 노인. 혼란 중에 얻어낸 패물을 품속으로 넣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남자. 어미의 젖을 울며 보채는 아기. 그런 아기를 달랠 힘도 없이 걸음을 옮기는 어미.
모이고 모여 물경 수만에 이른 온갖 인간 군상이 혼란 속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피난길에 오른 망국의 난민들이었다. 망국의 백성들은 무언의 부르짖음을 내질러댔다.
살려달라고.
생의 말미에 강제로 배달되어 버린 그들이 내뿜는 공포, 두려움 등 격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용사라는 직함을 떠맡았을 뿐인 고작 이십대 초반의 개인에게는 막대한 부담감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나는 그것에 짓눌려 그저 입술을 파르르 떨 뿐.
그러나 현재의 나는 알고 있다.
저 피난민들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일부밖에 되지 않는다고. 사지 중 하나도 잃지 않고 어떠한 결락도 없이 온전한 몸 상태인 이들은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악몽이다.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이들이 사실 이미 죽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악몽.
그들은 과거의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이었으며, 지금와서는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악몽의 등장인물이 되어 있었다.
과거의 내 목소리가 자책으로 떨려나왔다.
“제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랬더라면….”
“하. 날 비꼬는 건가. 한 나라의 총사령관이었던 주제에 패배하고 꼬랑지를 만 개처럼 도망친다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눈을 감고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담화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깎아가면서도 정신을 챙겨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에 무심코 한탄이 나왔다. 과거의 난 저렇게나 눈치가 없었나?
흠.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심정이 이런 건가.
비유하자면 지금 내 상태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이렇게 보니 잊혀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제야 알겠다.
과거의 나는 꽤나 배려심이 넘치는 성격이었나보다.
하기야 저때라면 한창 20대니까 그렇겠지. 소환되고나서 자신을 이용하려던 교단의 일을 겪었던 걸 감안해도 땟국물이 덜 묻었을 때다. 방금 고개를 돌릴 때도 피난민들이 자신들을 외면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천천히 자연스럽게 돌리지 않았던가.
‘참나.’
정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설마 저들을 배려한답시고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가? 그렇다면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저들은 제 목숨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 아니, 그 목숨조차 언제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될 지 모르는 자들이다.
정 피난민들에게 배려를 보여주고 싶다면 말머리를 돌리면 된다.
그대로 저 끝의 후미로 나아가 지금 그들을 추격해오는 적들에게 돌격해 그 한 목숨을 불태우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더없는 위안이 될 테니까.
단지 그 잠깐의 위안을 얻어낸 대가로 죽을 뿐이다.
과거의 나도 그들도.
“하.”
베르트 경은 그저 말을 살짝 보챘다. 오랜세월 주인을 지탱해온 말은 귀신같이 주인의 뜻을 알아채고 속도를 높여 선두를 차지했다.
“더이상 뒤를 돌아보지 마라. 제 어미의 탯줄을 자른지 이십년 밖에 안된 애송이 따위가 짊어질 것이 아니다.”
마치 여기야말로 내 자리라고 주장하는 듯한 사내의 등.
그것에 모종의 안도감을 받은 과거의 내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느껴졌다.
베르트 경이 말했다.
“그보다 일전의 일을 기억하나? 요새의 지휘실에서 나눴던 대화를. 그때 너는 내게 군대는 국가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의 기둥은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라 대다수의 평민들이라 말했었지.”
과거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는 기억을 더듬거렸다. 예전에 그딴 말을 내가 한 적이 있다고…? ……잘 생각해보니 그런 논지의 말을 하긴 했던 것 같다. 그것도 한 나라의 필두 기사단장, 백작의 작위를 차지하고 있는 베르트 경에게 말이다. 대체 뭔 자신감이었지?
“조심성이 없었다. 내가 상대가 아니었더라면, 네가 용사가 아니었더라면 즉각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었테니 멍청한 짓이었지.”
베르트 경의 말이 현재의 내 심정을 대변했다.
왕과 귀족이 실권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버젓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딴 말을 했다니. 지금와서 보면 사실상 너넨 필요없다는 말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20대의 젊은 내가 이렇게나 병신이었을 줄이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이지만 헛웃음만 나왔다.
까악. 까악.
어디선가 불길한 까마귀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반박과 반론이 내 머릿속을 잠식했지. 그런데 현실이 내게 사유의 답을 알려주는군.”
그 소리를 들은 몇몇 피난민들이 일으키는 소동에 행렬 전체가 부산스러워진다.
…까마귀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행렬의 후미, 지평선에 걸친 하늘에서 서서히 검은 띠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명백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피난민들도 그 검은 띠를 발견했다.
“──!”
그 순간 피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힘이 난 것인지 지쳤던 몸은 달리라고 그 주인에게 강요했다. 살아남고 싶다는 그들의 의지는 지금, 공포로 잠식되었다.
“적들의 군세는 강대했고 우리들의 군세는 미약했다. 우리는 건국왕 때부터 발을 붙이고 살아왔던 토지를 상실했으며 수도조차 버리고 그저 서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지금 남은 건 무엇인가.”
베르트 경은 검을 뽑아 들었다.
과거의 나는 몰랐으나, 이미 한번 겪어본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돌려보는 느낌.
이미 옛적에 끝나버린 일을 다시 재반복해서 보는 기분을 느낀다. 과거의 나는 말머리를 돌려가는 베르트 경을 급히 따라갔다.
“평민들이다. 영민들이다. 노예들이다. 백성들이지. 그들이 내게 위안이 되어준다. 네 말이 옳다면 기둥이 뽑혀나가지 않았으니, 우리 레베르트 왕국은 아직 멸망하지 않은 셈이 아니냐. 그렇다면 불과 한 줌 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건가요?”
“시체 먹는 까마귀들의 왕이 오고 있으니 먹이를 주러가야지. 약간이지만 시간을 벌 수 있읋 거다.”
「시체 먹는 까마귀들의 왕」
이형의 군세와 더불어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드러낸 권속 셋 중 하나. 창공의 하이에나로 불렸으며 대륙 동부를 그야말로 갈아 엎은 다가오고 있었다.
말머리를 돌린 베르트 경이 역주행을 하며 말을 설설 몰았다.
그러자 행렬에서도 몇몇 인원들이 빠져나왔다.
그들은 한낱 백성들이 아니었다. 국가를 지킬 의무를 부여받은 병사들이었다. 창과 활, 검 등을 꼬나쥐고 있는 백여명의 병사들. 정작 그들을 인솔할 기사들은 이미 다 죽었거나 도망쳤다. 그들이야말로 멸망한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최후의 전력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의 나는 말했다.
“미쳤어요?! 이대로 가면 분명 죽을 거라고요!”
베르트 경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태어난 이상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죽음만은 택하고 싶다. 다만 남겨질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했을 뿐. 지금이 적기다.”
“그래봤자 5분이나 벌겠어요? 개죽음입니다. 개죽음이라고!”
동감이었다.
볼품은 없지만 차림새로 보아 지금 나온 이들은 상비군이다. 국가가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훈련시키는 병력. 비록 패배했지만 그들은 전투를 겪은 고참병이었다. 가치가 다르다는 의미다.
시간을 벌겠다? 내가 보기엔 그의 행동은 새로이 징집된 신병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전수해줄 저 귀중한 자원들을 땅바닥에 내버리는 사치스러운 행위였다.
뭐, 과거의 나는 과거답게 구는 듯 했지만, 역시나 많이 달라졌구나. 나는.
“절대로 못 보냅니다. 갈 거면 나도 같이 가죠.”
과거의 나는 얼굴을 구기며 말에서 내렸다.
자신이라도 따라간다면 한 명이라도 살려 보낼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물론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냐 마냐는 상대방의 의지에 달려있었고, 상대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베르트 경에 다가가던 과거의 나는 뻑! 소리와 함께 시야가 일그러졌다. 뒷목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아릿한 충격은 의식에 불과할 뿐인 내게도 가감없이 전해졌다.
“나는 네가 깨닫게 해준 진정한 의무를 다하는 거다. 그 뒤에 어떻게되든 상관없다. 누구나 제게 주어진 의무를 다한다면 그 한 목숨은 그 가치를 더한거다.”
그 순간 눈이 멀고 코가 막히며 귀가 먹먹해졌다.
삐이이이.
찢는 듯한 이명과 함께 베르트 경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여긴 내 장소다. 네가 나설 곳이 아니야. 너는 좀 더… 좀 더 살 필요가 있다. 네가 용사라면 네 의무를 다해라. 그 후에는 누구도 너에게 간섭치 않을거다. …나라면.”
*
나는 마치 물 밑에서 떠오르는 부유감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