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7장. 산중마을의 실종 사건
* * *
그는 오솔길을 냅다 달려올라갔다.
팍팍팍팍!!
지면을 박찰 때마다 자갈이 튀어올랐다.
그럴 때마다 둔탁한 충격이 발목을 때려댔다.
“헉헉! 허어억!”
귓가에 거친 숨소리와 자갈이 이리저리 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바람처럼 내달리고 있는 그의 안색은 서서히 하얗게 질려갔다.
그에게는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갈이 튀기는 소리와 내쉬는 숨결 중간중간 드문드문 들려오는 이명.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는 죽더라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필사적인 도주는 필연적인 끝을 맞이했다.
"어, 어어어! 어엇!"
바가가가가각!
발치에 튀어오른 자갈을 잘못 밞은 그는 긴 고랑을 만들며 땅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피가 엉거붙은 무릎을 부여잡으면서까지 다시 일어났다.
이명이 그쳤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때였다.
"흐이이익… 흐이이익… 흐아아아아아아…."
달빛 한점 비치지 않는 어두운 숲 속에서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울부짖었다.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울음소리가 끊긴다면 죽는다는 듯이.
이윽고 카나리아의 울음이 멈췄다.
*
울프팡 무리,
시니컬하게 표현하자면….
'약해 빠진 주제에 몰려다니는 개새끼들.'
에게서 보부상 폴을 구하고 며칠이 지났다.
현자는 앞서 가는 용사를 노려봤다.
용사의 뒷모습은 눈에 익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 검은색이었던 머리가 지급은 갈색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륙에서 용사가 흑발흑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현자의 도움을 받아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하고 있었다.
환영 마법으로 만들어낸 용병 특유의 차림새까지 완벽했다.
용사는 그렇게 보부상과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제법 기꺼워 보였다.
제 정체를 감추고 일반 용병으로서 나누는 대화가 마음에 편했던 모양이다.
'이런 젠장. 힘들어 죽겠군.'
반면에 현자는 마음이 전혀 편치 못했다.
지난 며칠 사이 함부로 날 팔아치운 대가를 치루라며 용사가 온갖 잡일을 시켰던 탓이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아 다리 아프다."
"……."
용사는 이야기를 하다말고 다가와 말했다.
"아! 다리 존나 아프다!"
"……!"
"아~! 누구씨 때문에 다리 존나 아프다아아아!"
"알겠다! 알겠다고! 귀에 대고 소리치지마라!"
버럭 소리를 지른 현자가 풀썩 주저앉았다.
"…업혀라."
"고마워."
용사가 냉큼 등에 업혔다.
모르는 척하면서 업히면서 한번 무게를 실어 한번 내리누르자, 현자가 일어나다말고 휘청거렸다.
"엉? 힘들어? 힘들면 내가 내려갈게. 괜찮아. 괜찮아. 아직 걸을 순 있으니까."
용사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가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아댔다.
저리 말하지만 막상 못하겠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화를 내진 않을 것이다. 웃기만 하겠지. 그대로 웃기만 할것이다. 얼굴은.
'망할 자식.'
현자는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허리를 숙인 상태로 당장이라도 업어치려는 듯, 허리를 숙인 상태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대로 업어쳐버리면 어떻게 될까.
‘예상하고 있겠지.’
현자의 도움을 받아 겉모습을 숨겼지만, 용사의 팔다리에는 지금도 아이르가 만든 혼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문제는 족쇄와 족쇄를 연결하고 있는 쇠사슬.
용사는 지금 그 쇠사슬을 현자의 목에 슬쩍 걸치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색을 보이는 순간, 가차없이 졸라버리겠다는 뜻이리라.
‘끄으으응. 망할. 내가 저지른 게 있어서 참는다. 참아.’
현자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났다.
듣자니 보부상 폴은 베푸는 것이 신앙의 방식이라 하였다.
그의 여신은 어려운 이들일 수록 내미는 손길이 값지다고 여길 것이라나 뭐라나.
그러다보니 자연히 오지의 마을을 찾아다녔고, 그러다가 울프팡에게 습격당한 것이었다.
그말은 즉, 현자는 산세가 험한 길을 올라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용사를 업은 상태로.
다분히 피해망상적인 가정이지만, 보부상을 따라간다는 용사의 결정이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보부상 폴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물어왔다.
“그… 발장이라고 했나? 그러고도 괜찮겠소? 사람을 업고 가기엔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지 말이오.”
“난 괜찮으니 선도나 해주쇼.”
현자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자 등에 무게가 가일층되었다.
불만어린 얼굴로 돌아보자 용사는 웃는 얼굴로 복화술을 구사했다.
‘대답은 언제나 친절하게 해야지.’
‘망할 자식!’
‘웃어. 웃어.’
‘개자식아!’
무언의 압박을 받은 현자는 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끌어올린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최대한 편한 길로 부탁드리지…요.”
“……노력해 보겠소.”
폴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해가 지고 난 뒤에 현자는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폴이 땔깜을 더 구하러 간 사이에 용사는 모닥불을 부지깽이로 들쑤셨다.
곁에는 녹초가 된 현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현자가 끙끙거리며 투덜댔다.
“망할 육체파 주제에 칠십 먹은 노인네에게 업어달라고 하다니….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자업자득이지.”
그러자 용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니니까 어떤 변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현자를 보며 피식 웃던 용사는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이 총총 박혀 있는 밤하늘. 이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같이 갈 셈이냐.”
“그래도 마을까지는 따라가봐야지 않을까 싶은데. 그 다음에는 갈 길 가야지.”
“제법 느긋하군. 그러다 아이르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괜찮아.”
아니, 오히려 이 편이 더 안전하다.
자신의 행동 패턴이 읽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르가 내 생각을 바로 읽고 쫓아오는 것보다는 약간 헤매는 편이 낫지.”
지금까지 살아 있는 동료들 중에서 아이르는 합류 순서가 조금 늦은 편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상당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사람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오래되서 상식이 다소 부족할 뿐, 그녀는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고 방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호오에서 나오는 행동은 예측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개인의 개성을 파악한다면 어림짐작으로나마 때려맞출 수 있을테니까.
“흥. 결국 도박이라는 소리를 참 어렵게도 하는군.”
현자가 코웃음을 치던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음? 폴?”
“…쯧.”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땔깜을 주우러 간 폴의 것이었다.
용사와 현자가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서로를 바라봤다.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시선을 교환한 둘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사사사삭!
비명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날랜 걸음으로 다가가는 둘.
얼추 진원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용사와 현자는 정확히 반대편으로 갈라졌다.
스으으으으.
숨을 가득 들이마셔 폐 끝까지 채웠다.
그대로 기척을 감추고 서서히 발소리를 줄이며 서서히 다가갔다.
여차하면 바로 달려들 요령이었다.
“장! 발장! 자네들 이리좀 와보게!”
그때, 폴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다행히도 별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한 건가.
아니. 주의는 아무리 기울여도 모자란 법이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용사는 반대편에 현자를 바라봤다.
‘내가 나간다.’
‘뒤는 봐주지.’
용사가 기척을 드러내며 막 뛰어온 사람처럼 뛰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폴 씨.”
“장! 빨리도 왔소이다. 그래, 여기. 여기 좀 보시오.”
폴의 발치에는 그가 가지고 오던 것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왠지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
“사람이, 사람이 쓰려져 있소! 아무래도 조난 당한 것 같은데….”
“네?!”
자세히 보니 폴의 말대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아니, 이 산중에 사람이 조난당해있다고? 말이 안된다.
…잠깐만. 어째서인지 쓰러져 있는 사람의 옷이 눈에 익었다.
어쩐지 용사는 불안한 감이 들었다.
“이보오! 괜찮소? 뭔가 말이라도 해보시오!”
“………으으.”
폴은 큰소리로 쓰러진 사람을 깨우려고 했지만, 몇분을 그러고 있어도 조난자가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폴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안되겠군. 이럴 땐 비전의 치료법을…!”
“커헉!”
비전의 치료법이라면서 품 속에서 조막만한 망치를 꺼내더니 심호흡을 하는 폴.
수수께끼의 조난자(?)는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꼈는지 벌떡 일어났다.
“여, 여기가 어디오?”
“아! 나는 폴이라고 하오. 안심하시오. 어… 조난 당해있던 기간이 길었던 모양인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소이다.”
“아래쪽에… 감각이 전혀 없는데….”
“음? 내가 부축해주겠소. 어디 일어나보시오.”
폴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는 이는, 멋드러진 콧수염을 기른 초로의 노인이었다.
풀잎이 잔뜩 묻은 눈썹 아래로 장난기 어린 눈이 반짝거렸다.
“…….”
그를 알아본 용사의 시선이 짜게 식었다.
동시에 현자가 몸을 숨기고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대충 칠십 먹은 노인이 울분에 빡쳐 나무에 머리를 박고 있는 소리같았다.
“아… 여기, 여기 돌이 있었소이다. 당신이 쓰러지면서 돌이 영 좋지 못한 곳에 끼였던 모양이오.”
“뭐요? 으으으으… 어쩐지 다리가 안 움직이더라니….”
“안정을 취하──”
빛바랜 정장을 입고 있는 노인은 폴에게 몸을 기댄 채로 용사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환장하겠네, 진짜로….’
아이르에게 쫓기고 있는 와중.
항구 도시 리유스에서 반강제적으로 헤어져야만 했던 대도.
그가 쫓아와 있었다.
‘용사여, 내가 돌아왔다네! 날 버려두고 둘이 내빼다니. 자네들을 파멸 시키고야 말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