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7장. 산중마을의 실종 사건(3)
* * *
차가운 아침 안개가 사위를 덮어 기이한 공기가 흐르는 산중마을.
인기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야생동물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지었을 목책은 제 구실을 못하는 듯 출입문이 활짝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제 3자가 보아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
길안내를 하던 폴은 선뜻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현자가 움직인 건 그때였다.
“쓸데없이 을씨년스럽군.”
그러더니 목책을 넘더니 경비소로 보이는 건물로 다가간다.
안개가 피부에 닿으며 소름끼치기까지하는 꺼림직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가야하나, 나오길 기다려야 하나.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현자가 건물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성큼성큼 일행들에게 돌아온 현자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군.”
“없다고?”
“그래. 너도 이리 와라. 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보단 직접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겠지.”
현자가 내쪽을 향해 오라며 검지를 까닥였다.
발에 채인 족쇄가 걸리적거렸던 나는 다른 사람을 데려가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현자가 별일없이 나왔으니 신상에 즉각적인 위협이 부류는 아닐 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을 잃은 주민을 업고 있는 대도는 제외해야한다.
일반인인 폴은 더더욱 안된다.
그러니 나밖에 남는 사람이 없다.
“갈게.”
경비소로 짐작되는 건물 외벽에는 담쟁이 덩쿨이 자라나고 있었다.
마을의 목책처럼 경비소의 문도 활짝 열려있었다.
안을 들여다 보자 마을을 처음 봤을 때의 서늘하고도 기묘한 감각이 더욱 증폭되는 느낌을 받았다.
“너도 알겠지?”
“이건….”
“꼭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만 쏙 빼내간 느낌이다.”
곁에선 현자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 한 귀퉁이에 정리되어 있는 침구.
마치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놓여진 의자.
기름이 다 떨어진 듯 차갑게 식은 램프에 한치의 틀어짐 없이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종이들.
그 종이들 중에서 나는 가장 윗장을 집어들었다.
경비 책임자가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인지 종이에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글귀들이 보였다.
아마 마을의 출입지 기록 명부인 듯 하다.
음. 그런데…….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현자.”
“왜.”
유일한 창문턱을 손가락으로 훑어보던 현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증거 수집에 여념이 없는 듯 하다.
저럴 때는 방해하면 안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현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거 못 읽겠는데?”
“뭐?”
“공용어가 아니야.”
그제서야 관심을 가진 현자가 내게 다가왔다.
“줘봐.”
현자가 내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들었다.
아마 현자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예상이 맞는 듯, 현자는 유심히 살피더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바리 어로군.”
“이바리…?”
“대륙 동부 지역의 방언이다. 네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내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딱 하나 대륙 공용어다.
그것도 윗 계급이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어휘나 고어(古?)는 입에 잘 안 붙는 탓에 몇몇 귀족들은 뒤에서 낄낄거렸지. 뭐, 그런 놈들은 진즉에 다 죽어 나갔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마을은 난민들이 흘러들어 정착촌인 듯 하군.”
“그건 조금 이상한데.”
나는 현자의 말에 의문을 제기했다.
“피난민들은 대부분 대륙 중앙의 알슈타르 제국과 베헤른 제국. 대륙 남부의 타사 왕국에 수용됐어. 그런데 여긴 오히려.”
“북부 지역에 가깝지.”
말을 뚝 자른 현자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어찌보면 안타까운 듯, 혹은 짜증난다는 듯. 현자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혀를 찼다.
“결국 도망자들의 마을이라는 거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마왕의 군세를 맞아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시절.
궂은 일들을 겪고, 손에 잡았던 것들을 잃으며 지쳐갔던. 우수수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애써 외면했던 그 시절의 기억….
의무를 저버렸다며 변변치 않은 병장기들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로 죽음에 내몰린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강제징용과 징발을 피해 외지로, 산으로. 이런 오지의 마을로 도망쳤던 사람들이었다.
연합의 지휘부조차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이들.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그러나 전쟁은 끝났다.
“그건 그렇지.”
현자는 어렵잖게 수긍하더니 말했다.
“일단 이건 알아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말했을 뿐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지. 문제는 이거다.”
현자는 손을 내밀었다.
아까 전에 창문턱을 훑던 손가락에는 하얀 먼지가 묻어 있었다.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거의 사라져 있다. 추정컨데 대략 일주일 전후. 그동안 이 안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증거다. 외지인들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감안해보자면, 마을이 큰 변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는 거네.”
“아마도 말이지만.”
그때까지 들고 있던 종이를 품에 넣는 현자.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때 현자의 짜증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것들은 또 어디갔어?”
“무슨 일이야?”
“대도와 그 상인이 사라졌다.”
바그락.
멀리서 자갈을 밞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여온 방향을 돌아보자 마을 내부로 통하는 자갈길이 보였다.
“망할. 위기감이라는 게 없는 건가, 그 도둑놈은? 짐짝을 두 개나 끌어 앉고 멋대로 움직이다니.”
어차피 들어갈거긴 했는데 신경질내기는.
저번에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봤다고 놀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뭔가 불온한 상상을 하는 거 같은데.”
“이럴 때만 눈치가 빨라요.”
“뭐야?!”
“아니야, 아무것도.”
*
안개가 하염없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선가 다시 채워지는 듯 완전히 사위가 걷히진 않는다.
바그락.
나는 마을 안으로 향하는 자갈길을 따라 걸었다.
곁에 선 현자는 주위를 살펴보며 한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좀 불편한데.
“조금 떨어져서 걸어.”
“태평하긴. 너도 도둑놈 닮아가냐.”
한심하다는 말투로, 부지런히도 고개짓을 하면서 현자가 대답했다.
“그럼 정령이라도 소환하든가. 이 거슬리는 안개도 좀 치워보고.”
“아하. 거참 좋은 의견이로군. 슬슬 우리가 사라진 걸 아이르가 발견했을텐데. 마녀가 쫓아올 마당에 거기서 내 마력을 아예 전방위로 퍼트려라? 겸사겸사 네놈도 태워버리면 좋겠어.”
이 자식 신경질 부리기는.
어느정도 걸어가자 마을의 중심 쯤에 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회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서 있었다. 인기척은 그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문을 열자 안에 사라졌던 그들이 있었다.
“왔나?”
대도가 손을 흔들었다.
어디선가 이부자리를 찾았는지, 그가 업고 왔던 다나라는 이름의 마을 주민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아직도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걸로 보였다.
그 옆에는 폴이 앉아 있었다.
그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폴 씨.”
나는 다시 용병 장으로서 말을 걸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폴은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현자가 말없이 구석에 가더니 쪼그려 앉았다.
“일단 그쪽, 장이라고 했던가. 자네도 좀 쉬게나. 촌장 집이라는데 있을 건 다 있더군.”
역시나 조난자를 연기하고 있는 대도가 능숙하게 짝짜꿍을 맞춰주었다.
그나저나 역시 분위기가 요상하다. 기분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뭔가 전체적으로 축 처지는 느낌이다.
착각인가.
어디선가 주전자를 들고 온 대도가 내 앞에 따뜻한 잔을 내려두었다.
“아쉽게도 맹물이지만 속을 보해주는 느낌은 들걸세.”
따뜻한 잔을 받아들면서 슬쩍 대도와 눈을 마주쳤다.
……역시나라고 할까.
그도 눈치를 챈 게 분명했다.
뜨뜻한 물을 홀짝이며 한쪽 벽에 등을 붙였다.
현자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벽이었다.
속에서 뜨뜻한 기운을 후욱 내뱉던 그 순간이었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발목이 꽈악 조여드는 기분.
보이진 않았지만, 발에 묶여 있는 족쇄가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
며칠만에 돌아온 지하실은 텅 비어있었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바구니에서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은은하고 속이 탁 트이는 내음이 퍼져나가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인식하기를 거부했다.
“…….”
어째서지?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는 내 마음을 몰라줄까.
마음속 깊은 곳부터 아련히 퍼지는 감정에 휩쓸려 아이르는 재차 되뇌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는 강하다. 강한 만큼 보통 인간보다는 오래 살 것이다.
이백년 정도는 될까. 그 내부에 가득찬 마력에 늙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 모습 그대로겠지
“짧아.”
짧다. 너무나도 짧다.
그는 왜 알아주지 못하는 건가.
‘고작 이백 년’이다.
강산이 기껏해야 스무 번밖에 바뀌지 않고 수목이 옹골차게 성장하는 데 그치는 시간.
문명이 바뀌지도 않고 고작 몇 개국이 흥하고 쇠하는 것에 불과한 시간.
하염없이 흘려보내어 아이르의 관념으로는 아주 잠깐, 찰나나 다름없어진 시간.
「너를 몰랐을 땐 그랬는데 이젠 영원처럼 느껴져. 네가 사라졌을 땐 영원히 없어진 줄 알았어. 나를 두고 떠난 것만 같았어. 기억 속의 너는 언제나 웃어주고 있는데 내 곁에 너는 없었어.」
“아이르의 말이… 우스웠어?”
분노와 함께 치밀어오르는 배신감.
그와 동시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애정이 뒤덮었다.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가 애정으로. 오로지 애정으로 뱅글뱅글 돌았다.
차라라락.
바닥에서부터 솟구친 냉기가 형상을 갖춘다.
자그마한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던 회오리바람이 그치고 난 뒤 나타난 것은 얼음 조각상이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용사의 전신상이다.
정작 본인이 봤더라면 이게 누구냐 싶을 정도로 미화된 것이지만 아이르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저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가 없었을 때 버티기 위한 가짜.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콰장창!
한때는 만족했던 가짜인데, 이미 한번 진실을 맛보고나자 그저 쓰레기로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덧없는 생명이기에, 그녀의 얼음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그저 일그러져 모순된 가짜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이걸로는 안돼. 이걸로는 안돼! 가짜잖아. 이건 그냥 가짜잖아. 용사는 아이르의 곁에 없잖아. 아이르는… 나는 원해. 용사, 너를 영원히 원한단 말이야!”
그러나 영원은 불가능하다.
재차 말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아무리 떼를 써봐도 지금 아이르가 때려부순 얼음 조각상과는 다르다.
그때였다.
목이 졸린 목소리를 내던 아이르의 눈길이, 지하실의 돌바닥에 부딪치며 조각조각 부숴져 형체를 잃어버린 조각상으로 향했다.
“……그거야.”
깨달아 기쁨으로 떨리는 목소리.
하염없이 흔들리던 눈빛이 환희의 빛을 띈다.
반쯤 부숴진 얼음 조각상의 머리를 집어들었다.
“진짜는 완전해. 가짜는 불완전해.”
“진짜는 언젠간 죽어. 가짜는 영원해.”
“진짜는 좋아. 가짜는 싫어.”
“그럼 해답은 간단해.”
덧없이 부숴지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가짜 용사의 눈을 보며, 아이르는 이전에 없던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합치는 거야──!!!”
용사는 얼어줘야겠다.
그녀가 만들었던 얼음 조각상처럼.
그러나 이전의 조각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건 엄연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말을 하지 못해도.
움직이지 못해도.
자신을 보아주지 않아도.
그가 그녀의 곁에 있다는 진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되도 죽진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때때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얼린다.
때때론 그와 풍경이 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얼린다.
때때론 그와 식사를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얼린다.
때때론 그와 입을 맞추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얼린다.
때때론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얼린다. 푼다. 다시 얼린다───
“미안해. 용사. 아이르가 틀렸어. 사랑은 아픔이 아니었어.”
아이르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선 조소를 보낸다.
목을 조른다? 아픔이 바로 사랑이다?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돌고 도는 것이어야 마땅할 것인데.
“마침내 알았어, 사랑은 주고 받는 거였어. 무수한 시간 속에서. 그래야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거야.”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던 그녀만의 사랑의 형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랑의 순환.
순환은 언제까지고 이어져 갈 것이다.
설령 이 세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아이르가 찾아갈 거야. 더는 기다리지 않을 거야. 기다림은 사랑이 아니니까. 전부줄게. 그러니까 용사도 돌려줘야 해?”
영원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