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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용사는 히로인들에게서 도망친다-33화 (33/45)

〈 33화 〉 7장. 산중마을의 실종 사건(5)

* * *

사교(?).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를 의미한다.

그들이 모시는 신성은 바로 악덕(??).

나태. 색욕. 분노. 교만. 탐식. 질투……. 배덕의 테마.

“자제하라. 인내하라. 노력하라. 신실하라. 정직하라. 판에 박힌 당연한 이야기들. 모두가 진심으로 따를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되는 말들과 정반대되는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교다.”

자제. 인내. 노력. 신실. 정직. 진실……. 도덕의 테마.

그와 배격되는 개념을 강림술로 지상에 현신시킬 수 있기에, 용사의 동료인 성자는 진정으로 성자라 불린다.

악덕.

원래는 단순히 개념에 불과한 이것들은 이곳에선 실재한다.

이런 악덕은 불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향력은 어떤 면에서 신보다 우월하다.

실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에 대한 신앙.

그것을 갖추고 있는 사교는, 종교로서 기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이비와는 남다른 힘을 가진 집단이다.

악덕을 따르며 그 의미를 인생으로 되새김질하는 자들.

“말 그대로 그들은 악(?)하지.”

그건 뭇 지성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욕망을 그릇된 방식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건 그야말로 욕정.

“그렇기에 더욱 매혹적이야.”

사회 규범을 무시한다.

일견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의 무한한 긍정.

“역사적으로도 어떠한 법, 도덕,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서 ‘마음껏’ 욕망을 휘두르는 일은 사람을 홀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있어.

그릇된 매혹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알면서도 그 마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야. 뒤늦게 빠져나오고 싶어도 손은 이미 더럽혀져, 결국에는 무관계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버리지.

‘내 선택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나마 나 정도나 됐으니 이 정도에서 그친 거다.’

이렇게 끌어들여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하게 돼.

……결국 악순환이다. 이런 악순환을 그들의 세를 불리는 것에 이용하지.”

그것이 바로 사교.

과거 마왕의 강림 전에 은밀히 사회를 갉아먹던 해악이었다.

*

‘……흠. 말을 들어보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단 말이지.’

사교라. 나는 그런 수상쩍은 집단의 명칭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가물가물한 지구에서의 기억에서 건져내는 단 한 단어.

사이비.

그러자 마치 기폭제라도 된 듯이 여러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를 믿으십니까?’

‘좋은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학생이세요?’

‘선한 인상이시네요.’

……등등.

번화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이비들에게 시달려본 과거.

인상이 선해보인다는 레퍼토리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아, 과연 과거는 선했구나 라는 감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이세계판 사이비라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다른 둘의 반응이 고요하게 격렬했다.

사교에 대해 말해주던 현자는, 딱 봐도 누구 하나 죽일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또한 곁에 있던 대도 역시 안색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이비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야.’

내가 말했다.

“얼추 뭔 말인지는 알아듣겠어. 그런데 그거랑 지금이 무슨 상관이지?”

“무슨 뜻이냐.”

듣고 있던 현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자하니 사교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입교하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포교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맞아?”

“맞고 자시고 그건 거의 모든 집단들이 존속하는 근본적인 방법이잖나. 다만 사교의 경우 그 정도의 차이가 심하다. 여러 분파가 있어서 행동 방식도 전부 다르다. 기본적으로 포교하는 것들은 의태 솜씨가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런 번거로운 방법이 없어도 ‘현혹’이라는 저항력없는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인 강제적 수단마저 갖고 있다. 근절될래야 근절될 리가 없지.”

“그래도 다르지는 않다는 거지.”

“……그래.”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마을이 텅 비어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결국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소린데.”

산중마을.

이곳까지 다다르는데 험한 봉우리를 둘러둘러 와야했다.

완벽한 오지. 보부상인 폴이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보아, 상단의 마차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고립된 지역인 건 확실했다.

주변에는 산, 산, 산, 산, 산……. 오로지 산 밖에 없다.

흉악한 몬스터의 생태계가 활성화 되기에는 최적의 조건일 것이다.

그런 탓인지 산중마을은 외부의 침입에 굉장히 민감한 듯이 보였다.

목책도 그렇고, 심지어 마을의 집들을 수색하면서, 들어올 때는 안개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감시탑마저 발견되었다.

“사실상 이 근방에서 유일한 근거지인데 인적 하나 없이 비었다는 건 말이 안돼.”

“그래, 보통은 그렇겠지.”

보통은?

너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는 듯, 불퉁한 어조로 보아 어째 뭔가가 더 있을 듯한 느낌이다.

“아마 네 말이 맞을 거다. 그런데 그러지 않을 경우가 존재한다.”

고개를 끄덕이고선 검지 손가락을 하나 치켜든다.

“이미 녀석들의 볼일이 끝났다는 거다. 이 경우 마을이 가치를 상실해버리지. 포교할 신도가 없으니까.”

무지식한 사람을 일깨우는 것은 배운 자의 의무라는 듯.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상식선의 이야기다.”

어디선가 꺼낸 철테 안경을 쓰더니 스윽, 추켜올렸다.

어째 점점 설명충에서 설명왕으로 진화되어 가는 느낌인데.

“여기서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 녀석들은 합리적 사고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지.”

광신.

…아니, 광악(??)

“지혜와 합리와 이성으로 재단하려 들었다가 고배를 마신 인물들이 역사서에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는 줄 아냐. 그 미치광이 놈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려 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미친 놈들 중에서도 가장 미친 놈들이다. 이것들은.”

종종 세상에는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이렇게 해야한다는 정해져 있는 가정.

이 가정은 사람마다 판이하게 다르진 않다.

정확히는 비슷한 사회에서 자랐다면 말이다.

주변에서 보고 듣고,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경험들로 만들어진 가치관.

그런 사고 방식으로 내린 ‘당연한’ 판단은 광신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것 같다.

그 점을 생각지 못하다가 엿먹은 위인들의 숫자가 무려 세자리를 넘어 네자릿수에 육박한다고 한다.

역사서까지 나올 정도면 어지간히도 연력이 오래됐다는 건데.

이쯤 되면 그냥 답이 없는 수준 아닌가?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주지. 지금이야 교단이라는 이름 아래에 있다지만, 예전에는 오죽하면 서로 이단이다 뭐다하며 피 튀기게 싸우던 것들이 합심해서 대륙 공적으로 지정해 다구리 칠 정도라면 이해가 되냐?”

답 없는 게 세계적인 수준이었나보다.

“아무튼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놈들 입장에서는 우린 뒤늦게 들어온 불청객이야. 머잖아 수작을 부려오겠지. 그런 놈들의 속셈을 미연에 처부수라면 다소 과격한 방법을 써야된다.”

“과격한 방법?”

어째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현자는 뒤통수를 쌔게 후려치기 직전의 묘한 감상을 느끼는지 입술이 비뚜름해졌다.

어째 저 꿍꿍이 속 가득한 미소를 보니 불안한 느낌은 가일층되었다.

……이 자식 설마.

“이러니저러니 하는 도중에 미리 실행해뒀지만 말이다.”

“역시 이미 저질렀구나! 이 자식은 나한테 그런 꼴을 당하고서도 반성할 줄도 모르냐!?”

“흠. 미안하네, 용사.”

의외의 복병이 출현했다.

면목없다는 듯이 대도가 옆에서 끼어든 것이다.

설마 둘이서 짜고 칠 시간이 있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다 말해줬잖아. 녀석들에게는 ‘현혹’이라는 수단이 있다고. 그리고 이 마을에는 이미 볼일이 끝났을 거라고. 그런데 아직 남아있는 주민이 있잖냐.”

현자의 시선이 촌장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모습을 감추고 도사리고 있는 적을 상상해보며, 잘 걸렸다는 듯이 낄낄거리는 느낌이었다.

“한번 사람 고기 맛을 알아버린 짐승 놈은 아무리 웅크릴라 해도 때가 되면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지.”

그때였다.

현자의 말에 화답한 것일까.

끼익.

촌장집 방향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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