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 용사는 히로인들에게서 도망친다-35화 (35/45)

〈 35화 〉 8. 사교

* * *

정신을 차린(한바퀴 훼까닥 한 것 같은)촌장은 그의 ‘수호목’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폴을 포함한 일행은 최대한 이성적인 설득을 해보려 노력해으나 그는.

‘용사님이 가장 먼저 이곳으로 오실텐데 들어가 있자고?! 그런 경망한 짓을 해서 용사님께서 마음이라도 상하시면 폴! 자네가 책임이라도 질 건가?!’

이러는 바람에 그냥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럴거면 오히려 실성한 채로 있던 편이 더 편했다, 일행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우리까지 여기에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을테니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현자의 제안에 촌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수긍했다.

그렇게 우리는 나무에게 살려달라며 매달려있는 주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자가 사라졌다.”

“뭐요?! 다나가 없어?”

막 문턱을 넘던 폴이 황급히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집안을 살피던 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군. 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자네들 혹시 아는 거 있나? 있으면 제발 좀 알려주게. 아니, 나 좀 살려주게나. 이러고 있다간 나도 레반처럼 미쳐버리겠어.”

골이 지끈거린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세게 문지르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말을 해줄 순 없었다.

정확히는 조금이라도 힌트를 주려던 순간 대도가 옷깃을 잡아챘던 것이다.

‘사교의 사 자도 꺼내지 말게. 그땐 미칠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미쳐버릴 테니 말이네.’

‘……알겠어.’

사교의 악명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사이에 폴은 별 기대도 안했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벽면을 보고 누웠다.

그동안 현자는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부자리를 살피고 있었다.

다나라는 이름의 여인을 눕혀두었던 곳이다.

무언가 발견했는지 그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잠시 나가자. 도둑놈, 너도 따라나와라.’

‘지금 폴을 혼자두자고?’

‘잠시면 된다. 얼마 걸리지도 않아.’

일반인에 불과한 폴. 정신력도 거기서 거기라 아슬아슬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혼자 남겨두기엔 상당히 껄끄러웠다. 하지만 연이은 현자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등이 떠밀리듯이 나가게 되었다.

끼익, 탕.

셋다 나오고 문을 닫자마자 현자가 입을 열었다.

“이거 엇나가도 한참은 엇나간 것 같군. 의외라고 해야되나.”

“무슨 말이야?”

“원래 사교 놈들의 행동 원리는 바퀴벌레와 같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사교의 건이었다.

아마도 고요한 산중마을을 아예 황량한 정경으로 바꿔버린 장본인… 본 세력.

그것들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상당히 골치아픈 놈들인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세력을 보전하려는 벌레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선 말이야.”

“확실히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은 살벌하니까 말이지. 걸리면 도망친다는 거네.”

“걸려? 그건 아니다. 그렇게 쉽다면 좋겠지. 발견되기 전에 녀석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자가 주먹을 꽉 쥔 손을 들어올렸다.

주먹을 펼치자 거뭇거뭇한 머리칼이 쥐어져 있었다.

“이번만큼은 다르군.”

그 머리칼은 여자, 즉 다나의 머리칼이었다.

“설마 현혹한 인간을 미끼 겸 경보 수단으로 써먹을 줄이야. 산중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인간은 몇 없지. 설령 미끼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미리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겠고. 제법 머리를 굴릴 좀 아는 놈이 있어.”

“……잠깐만. 그 말은 설마.”

“그래. 사교 놈들이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 …재수도 없게 말이야.”

기감마저 제한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 근방에 적이 있을 줄이야.

…아니다. 사교라는 집단을 알게 된건 불과 몇십분도 지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눈치채도 무시했을 확률이 높았다.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표정의 현자에게 대도가 걱정하듯이 말했다.

“그거 큰일이로군. 자네들은 지금 싸우면 안되는 몸 아니던가.”

“여차하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상황에 처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다.”

현자는 진심으로 하는 말인 듯 했다.

하기야 사교를 피하자고 마녀를 불러들일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의 이야기겠지만.

“일단 내가 수단을 강구해보도록하지. 용사, 너는 폴 옆에 붙어 있어라.”

“대도는?”

“하는 수 없이 이놈을 움직여봐야지. 쯧. 말이 하나 뿐이라니.”

“그 말 하나도 아쉬운 판국 아닌가? 조심히 쓰게.”

너스레를 떠는 대도를 현자는 한번 노려보고 날 향해 고개짓을 했다.

그 뜻대로 나는 폴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움찔 떨더니 나인 걸 눈치채고는 다시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수호목이라….’

*

너, 통신기 갖고 있지.”

“그건 자네도 소지하고 있지 않나?”

“마녀 앞에 아티팩트를 가지고 가는 취미는 없어. 그게 아무리 한때 일행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지라며 중얼거린 현자는 재차 통신기를 요구했다.

다름 아니라 그의 요구사항은 바로 플로렌스 황태녀에게 직통 연결되는 통신기였다.

딱히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와 연결되는 통신기라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그쪽이 전문가일터.

그러나 대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렇지, 라는 듯한 표정이 된 대도가 말을 바꿨다.

“그럼 당장 연락을 해서 그 망할 것들이 수십년만에 다시 튀어나왔다고 전해.”

“잘못 이해했나보군. 미안하지만 무릴세.”

“뭐?”

“아까부터 계속 시도해보고야 있었지만 먹통이야. 그 악명에 걸맞는 일처리로군. 빈틈은 없다는 거겠지.”

품안에서 꺼낸 금메달을 흔들어보이는 대도.

“쯧.”

그것을 빼앗아든 현자가 몇번 툭툭 건드려보더니 신경질을 내며 휙 던졌다.

대도는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의 메달을 붙잡았다.

“예전에 그놈들과 엮인 일들이 다 그랬지만, 이번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현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도가 불만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든가 말든가, 제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말인가.”

“정신을 놓아버린 촌장을 제외하면 어찌됐건 주민들은 다 저들의 손에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컨데 볼일을 다 봤단 말이지.”

아직까지도 이곳에 마수를 뻗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대도는 곰곰히 생각해보다 말했다.

“지휘자 격, 적어도 주교급이 있는 건 확실해보이네.”

“그래, 그놈이 문제야. 이딴 잔꾀를 부릴만큼 계산이 빠르다면, 머무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었을텐데. 통행이 드문 곳이라 안심하기라도 한 건가? ……그도 아니라면.”

그 순간 현자의 뇌리에 무언가가 번뜩 스쳐지나갔다.

입술을 만지작만지적거리더니 이내 제 추측을 자체적으로 검증하듯이 말해본다.

“여길 떠날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이라도 생긴 건가? 어느 쪽일까. 아무래도 외부적인 요인인 쪽이 가능성 있겠지. 이 근방에 마왕군의 잔당이 흘러들어왔다던가, 아니면 교단의 성기사단이 출몰했다던가. 같은 것이.”

“흠.”

대도는 그닥 모르겠다는 듯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현자는 그것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을 느낀 듯하다.

“뭐냐, 방금 침묵은. 어이 도둑놈. 뭔가 알고 있지. 얼른 불어!”

“싫다네.”

“뭐야?!”

“모른다, 라곤 할 수 없겠지. 그렇다고 설령 내가 뭘 알고 있다더라도 그걸 자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이유가 뭔가?”

빠득, 현자는 이를 갈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개소리냐고 쏘아붙이려던 찰나, 그 입은 꾹 다물 수 밖에 없게되었다.

“용사가 없으니 하는 말인데. 자네의 돌발 행동 덕분에 계획이 꼬여버렸다고 ‘그’가 날 얼마나 쪼아댔는줄 아는가? 자넬 똥물에 튀겨 죽이느니. 목 위에 달린 건 머리통이 맞느니 어쩌니.”

“끄으으응!”

“그렇지만 난 솔직히 자네의 잘못만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자네도 나름대로 잘해보자고 한 것 아니겠는가. …결과가 좀 좋지 않은 듯 하네만.”

“아무튼 이번은 그냥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게나. 사교가 재출현한 건 사실이고. 그게 재발호로 이어지기 전에 막아야한다는 점에선 의견이 일치할 것도 같은데 말이지.”

“……좋아. 이번만은 눈감아주지. 대신에.”

현자는 손을 내밀었다.

“통신기 내놔. 내가 갖고 있을테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면야 얼마든지.”

*

한편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기찻길이 뚫리며 발전하기 시작한 어느 도시 강변.

“저 빌어먹을 사교도 놈들을 물속으로 처박아라!”

“가라. 진리를 따르는 이들아. 너희들의 목숨으로 그 신성을 증명하라.”

성기사단과 사교가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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