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1화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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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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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 시절, 따뜻한 온돌바닥에 몸을 지지기 위해 선택한 법당에선 세상 만물이 윤회를 거치며, 사람이 생전에 살아온 삶에 따라 미물로 환생하거나 또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세계 생체 병기로 환생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도 드문드문 존재하지만, 전생에서 제대로 하루하루의 연속성이 생겨난 순간은 6살 때의 기억이었다.

그 때 나는 이미 우리 부모님의 아들이었고, 내가 다니는 유치원까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다니고 있으며, 한글을 알고 있었고 유치원에서 내 준 숙제(몇 가지 단어를 따라쓰는 것이었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억은 회사 주변에 잡아놓은 월셋방에서 야근의 피로를 이기지 못 하고 선풍기를 끄지 않은 채 잠에 빠진 기억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상식'을 어긴 대가로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뒤에 다시 하루하루의 연속성이 생겨난 순간은 전장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생체병기였고, 사념파의 명령에 따라 드래곤을 사냥하고 있었으며, 토벌을 마치면 마석 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

마석 가루는 달다.

내가 생명 활동을 지속하기에 필요한 '동력'은 대기중에 떠다니는 마나로 충분하지만, 마석 가루에 담긴 마나는 내게 짜릿한 고양감을 선사해주었고, 그것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쾌락이었다.

세 번째 전장에서 나는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이해했고,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동족들은 지성이랄 게 없다.

마법적으로 개량된 슬라임이기 때문이다.

그저 사념파에 명령에 따르면 마석 가루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만을 훈련받은 채 쾌락을 위해 전장에 뛰어드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였다.

물론 진짜 하루살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끔찍하게 질겼으니까.

생체병기의 전투방식은 본래의 슬라임과는 전혀 다르다.

점액질의 본체를 이용해 주변의 암석을 끌어와 팔이 달린 이족보행 고인돌같은 형태를 취해 상대와 육탄전을 벌이는 방식.

드래곤은 강하고, 그의 부하 몬스터들도 온갖 해괴한 모습과 강력함을 자랑하지만 수 톤, 수십 톤의 바위에 두들겨 맞으면 다진 고기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드래곤은 펀치 한 방을 맞은 정도의 반응만 보이더라.

그래도 괜찮다.

생체 병기는 한 번에 수백 기가 투입되니까.

생물은 기본적으로 죽을 때까지 맞으면 죽게 돼있다.

거기에 우리의 본체는 유연하면서 질기고,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마법 방어력도 뛰어나다.

전생에 읽은 판타지 소설에선 슬라임에 핵이 있고, 그걸 찌르면 한방에 죽는다는 식의 묘사가 많았는데 이 몸뚱이는 핵도 보이지 않는다.

본체를 처리할 수도 없고, 본체가 쥐고 휘두르는 바위를 부수거나 떼어내도 주변의 통나무나 바닥에 떨어진 무기, 갑옷, 시체 등, 뭐라도 쥐고 싸운다.

어떠한 몬스터라도 먹지도, 자지도 않는 생체병기와 드잡이질을 하다보면 지쳐서라도 쓰러지고 만다.

바위도 붙잡는 힘으로 어째서 적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몸체를 따로 구성해서 싸우는 방식을 선호하도록 만들어졌나.

이런 개조생물을 만들어낼 기술력이면 다른 병기도 능히 만들어낼 수 있을텐데, 왜 하필 슬라임을 개량시켜서 싸우게 만드는가.

무슨 연유로 온 세상의 드래곤과 몬스터를 박멸시킬 것 처럼 온 대륙을 전쟁터로 만들어놓는 것인가.

가끔씩 의문이 떠오르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는다.

개량돼도 원판은 슬라임인 것이다.

그냥 하염없이 꿈틀대면 기분이 좋다.

마석 가루는 달다.

사념파가 명령하면 싸운다.

드래곤은 방법을 찾았다.

어느샌가 활동을 정지하는 개체나, 영구적인 피해를 입는 개체가 생겨나고 있다.

더욱 강한 검. 더욱 강한 마법.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비효율적이지만 어떤 의미론 정답이다.

나는 아직 죽고싶지 않았기에 나 또한 방법을 찾는다.

전장에서 활약한 몬스터가 쓰던 검을 노획해 바위에 꽂아 휘두른다.

특수한 방어막을 펼치던 방패를 몸체에 박아넣어 보호받는다.

번쩍번쩍한 갑옷을 바위로 수십번 찍어 평평하게 만든 뒤 본체를 가린다.

몬스터들이 엉성하게 몸에 두르고있던 장신구를 더욱 엉성하게 몸에 두르거나 바위에 박아넣는다.

어설픈 건 나도 안다.

실전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할 뿐이다.

적들이 찾아낸 정답은 그만큼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엉성한 대책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동체를 아주 조금씩,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위 겉부분에 자동차의 범퍼를 흉내낸 것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단단하다는 육각형 벌집구조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때그때 대충 아무 바위나 줏어서 썼지만 점점 내 전용 동체라는 게 생겨났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은 바위같은 모양이 혐오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인간들에게 내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념파로는 공격/정지 수준의 명령밖에 내릴 수 없었기에, 손짓 발짓을 하며 나에게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 하고, 따라할 수도 없다.

눈치밥으로 언어를 배우기엔 이세계의 언어는 너무나도 생소했고, 발성기관이 없기에 내가 소리를 낼 수도 없다.

거기에 이세계 제인 구달 같은 사람이 와서 나에게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교감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전쟁중이다.

그들은 나의 전투 성능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만한 병장기를 찾는다.

내 본체를 더 단단하게 보호할 만한 구조를 찾는다.

내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개량­전투­피드백.

토벌 대상이 드래곤에서 이상한 악마로 바뀌었을 땐, 내 동체는 수상할 정도로 장식이 많은 갑옷형태로 고정되었다.

이 동체는 내 의지를 더욱 잘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좋다.

마법적인 처리가 된 것이 분명한 갑옷에 악마의 피가 씌워지자 나도 어설프게나마 사념파를 발할 수 있게 됐다.

비록 긍정/부정 뿐이지만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좋다.

위의 요소로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내 전투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갖은 실험을 함과 동시에, 그것을 다른 생체병기에도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그저 개량된 슬라임의 지능이 나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냈을 뿐이다.

물론 크게 틀린 건 아니지만, 나는 더욱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

가슴이 뛰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제공하는 마석 가루는 뛰어난 쾌락을 제공한다.

때문에 개량형 슬라임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념파에 명령에 따라 싸운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그렇게 싸우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아남으면 마석 가루를 먹는 거고.

인간들이 원하는 것처럼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선 전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가슴이 뛰는 무언가를 느껴야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래도 전생에 기억에 힘입어 지성을 갖추고 스스로 생존법을 고민했지만, 그것도 거기까지다.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어, 인간들이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가기위해 필요한 것.

나의 가슴을 뛰게 할 것.

유인 인형 병기.

나는 내 갑옷 내부를 변경해 사람의 사지를 받칠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탑승자의 움직임을 내가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본체를 뻗어 구조물을 감싼다.

이세계 마법공학 콕피트의 완성이다.

좋다.

하지만 타려는 사람이 없다.

좋지 않다.

이유는 인간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콕피트의 구조가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받침대가 수백개씩 뻗어나와 사람의 몸을 받칠 수 있게 해놓은 구조물은 조종석이 아니라 인간의 피를 빨아먹기 위한 촉수로 보인다.

거기에 그 구조물을 생체 병기(지성 있음)이 감싸고 있다.

심지어 저 슬라임이 조종하는 갑옷은 이상한 악마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후부터 인간들의 정신에 간섭하여 사념파를 발하게됐고,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운도 풍기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콕피트에 탑승하는 건 담력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목숨을 내다버린 인간이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콕피트의 구조는 내가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짜내서 만든 최선의 결과다.

전생의 만화영화에서 본 것 같은 멀쩡한 의자에 조종간과 버튼이 달린 콕피트로는 파일럿의 조종을 내가 인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버튼 수십개를 달아놓으면 그 버튼이 전진인지, 미사일 발사인지는 나도 헷갈릴 거고 파일럿도 헷갈릴 거다.

계산기가 아닌 생체병기의 한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콕피트를 열어보인 채 사념파를 보낸다.

힘을 얻고 싶은가?

콕피트에 타라.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긍정.

인간들이 질색하며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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