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1.1
* * *
마석 가루는 달다.
더 이상 인간의 미각으로 맛을 느끼지 않는 내가 느끼는 단맛은 전생의 단맛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단맛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당분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활력이 되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감을 덜어주고 집중력을 높혀주고, 하여간 온갖 좋은 점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석은 마나의 결정체고, 내 활력이자 동력이다.
물론 공기 중에 퍼져있는 마나에서도 비슷한 맛이 느껴지지만, 뭔가 다르다.
농도가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밥알을 오래 씹었을 때 느껴지는 단맛과 누텔라를 한 숟가락 퍼먹었을 때 느껴지는 단맛 정도로, 결이라는 게 다르다.
그리고 또 다른 결이 다른 '단맛'이 느껴졌을 때, 나는 정신을 차렸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본체를 꾸물대며 단맛의 근원을 찾는다.
달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 한 단맛이다.
정지했던 정신이 점점 각성되며 의식이 돌아온다.
이건…….
가죽.
아니, 살결.
인간의 살결이다.
인간의 맛이다.
단맛을 찾아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인간의 몸을 타고 오르며, 더욱 많은 부분을 감싼다.
내가 처음 접촉한 곳은 발목이었다.
왼쪽 발목을 타고 올라가 오른쪽 발과 상체까지.
허벅지. 배. 종아리. 가슴. 발가락. 어깨. 팔. 목. 머리. 손가락.
너무나도 달다.
세상에 이런 단맛이 있었다니.
가슴이 뛴다.
영원히 이 단맛을 맛보고 싶다.
이 인간을 내 본체에 넣어놓고 조금씩 녹여먹으며 평생토록 단맛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
인간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내게 심장은 없지만, 그래도 가슴이 덜컥 하는 기분이 들며 이제 진짜로 정신이 든다.
아직 앳된 목소리.
아이인가?
본체를 통해 느껴지는 신장은 내가 시각으로 가늠해왔던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
여성이군.
얼굴을 타고 올라가 입과 코까지 삼키려고 했던 본체를 물린다.
아무래도 내게 아직 슬라임의 본능이 남아있었나 보다.
먹잇감을 온 몸으로 뒤덮은 후, 자신의 점액질 안에 가두려하는 포식자의 본능.
내가 만약 진짜 슬라임이었다면 내 영역에 들어온 사냥감을 백골이 될 때까지 녹여먹은 후 뼈를 뱉어냈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사냥하지 않는다.
단지 조종하게 할 뿐.
천천히 내 상태를 관조한다.
인간 여성이 들어온 곳은 내 콕피트, 였던 부분이다.
내 동체였던 갑옷은 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부식된 수준이 아니라 분해됐다고?
고철덩어리가 자연적으로 풍화되고 분해되는 게 가능한 건가?
그래도 군데군데 가늘게나마 남아있는 부분이 지지대가 되어 콕피트였던 부분을, 마치 작은 굴처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흙먼지가 쌓인 게 운 좋게 굳어졌든가.
내 본체는 거의 땅 속에 묻혀있는 형국이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인간 여성은 적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있었다.
근육이 생각보다 튼실하다.
좋다.
의복을 보면, 대충 '중세 판타지의 시골 아낙이 입었을 법한 옷'이라는 느낌이다.
내 본체로 인간 여성의 액체가 흘러들어온다.
눈물. 실금.
느껴지는 슬픔.
어떤 경위로 콕피트에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갑자기 슬라임한테 습격당해 죽을 뻔 하면 그럴 만도 하다.
지금까지 이어진 전투가 진짜 슬라임 정도의 전력이 활약할 만한 스케일은 아니라 진지하게 대치해보거나 자세히 관찰해본 적은 없지만, 딱히 전투력이 없는 일반인에겐 저항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다.
하지만 놓칠 생각도 없다.
앞으로 언제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이 인간 여성은 앞으로 내 파일럿이 되어줘야한다.
아직까지 인간 여성의 몸을 뒤덮고 있는 본체를 통해 액체를 처리한다.
처음에 콕피트를 만들었을 땐 인간의 사지를 받치는 지지대에만 본체를 두르려고 했지만, 인간과 닿아보니 이 달콤함을 포기할 수가 없다.
물론 세밀하게 수백개씩 만들어놓은 지지대는 대부분이 사라져있다.
괜찮다.
사지에 하나씩만 달려있으면 된다.
나머지 부분은 나의 본체로 받친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콕피트에 마나를 흘린다.
지금까지 인간들에게, 그 어떤 존재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 나의 숨겨진 기능.
이 세계에서 유인 인형 병기를 보고싶어하던 자가 마침내 스스로 유인 인형 병기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마법.
스스로 몇 번이고 확인하며 결과값을 조정한 피와 땀의 결정체.
투영 on.
콕피트 벽면이 환해지며 주변의 풍경이 드러난다.
빠르게 저물어가는 해와 시야를 가득 채운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멀지 않은 산봉우리.
산지인가.
화질이 생각보다 좋진 않다.
하지만 제대로 발동이 된 게 어디인가.
인간들이 만들어준, 갖은 마법적 처리가 된 거대 갑옷으로 연습했던 마법이기에 이런 흙더미에도 발동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됐다.
되면 된 거다.
좋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았다.
"──?"
여전히 인간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 한다.
그래도 예전에 들었던 언어와는 다른 언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역시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이겠지.
악마와 천사는 어떻게 됐을까?
"──."
인간 여성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눈을 가늘게 뜬다.
시급하게 투영되는 시야를 비슷한 방향으로 돌리고 화면을 줌 인 한다.
동체가 땅 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인간의 눈치를 보고 띄워주는 화면을 조절할 수밖에 없지만, 원래는 진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아니, 진짜라니까.
벌써 얼마 남지 않은 노을빛에 보이는 것은 단신의 녹색 인형 몬스터 무리였다.
아, 저 놈들은 아직도 살아남아있구나.
드래곤과 싸울 때 정말 질리도록 죽인 녀석들이다.
인간들이 그것들을 뭐라고 부르는진 모르겠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고블린이다.
그리고 녹색 피부에 둘러싸인 대조적인 색채.
고블린이 낄낄대며 조잡한 창과 단검으로 찌를 때마다 시뻘건 액체를 사방으로 뿌려대는 고깃덩이가 있다.
"─."
고기에 달린 털이 인간 여성과 머리색과 비슷하다.
입고 있는 복장 역시 비슷한 재질과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알 것 같다.
"─."
인간 여자의 몸이 갑자기 꿀렁이더니, 입에서 토사물을 내뿜는다.
더럽지만 초진에서 토를 하는 것 역시 어떠한 의례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보니 콕피트 내부가 완전 개판 오분전인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좀 치워놔야겠다.
이래서야 콕피트가 아니라 조금 큰 여우굴이다.
"─."
파일럿의 토사물을 꿋꿋히 치워준다.
신나게 토를 하던 여성은 내가 아직도 자신을 잡아먹지 않았고, 생각보다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무 늦는 거 아닌가.
곧이어 느껴지는 '분노'.
인간 여성은 몸을 감싸고 있는 나를 훑어보다가, 콕피트 내부를 둘러본다.
무엇을 찾는가.
땅굴이 다 된 콕피트 내부엔 벽에 짱돌도 박혀있었다.
인간 여성은 그거라도 무기로 쓰려는 건지, 짱돌을 뽑기 위해 왼손을 내뻗는다.
'손을 내뻗는다.'
좋다.
드디어 움직인다.
기쁨. 긍정.
우르르르르르르릉!!
인간 여성은 갑자기 들려오는 땅울림에 움직임을 멈춘다.
여성의 움직임에 맞출 좌완부라고 할만 한 것이 내게 없었기에 콕피트 왼편의 땅을 째로 들어내면서 생긴 진동과 소음이었다.
빽빽히 박혀있던 나무가 쓰러진다.
인간 여성은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만 콕피트 내부에 투영되는 영상은 내 좌완부에 고정돼있다.
제발 눈치 채라.
인간 여성이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을 멈추고 다시 손을 내뻗는다.
그 움직임에 맞춰 좌완부를 뻗는다.
제발 눈치 채라.
콕피트 벽면에 박혀있던 짱돌을 움켜쥔다.
지금의 내게 손가락은 없지만 비슷한 동작을 취하기 위해 팔을 조금 굽힌다.
제발 눈치 채라.
인간 여성은 조금 힘을 주더니 짱돌을 팍 뽑아낸다.
힘이 생각보다 많이 센데?
아직도 짱돌에 정신이 팔려있는 파일럿이 괘씸해, 일부러 과장된 움직임을 취하며 주먹에 해당하는 부분을 콕피트 앞까지 들이댄다.
"─────!!"
급격히 다가오는 흙과 돌, 나무 뿌리의 혼합체에 온몸을 움츠린다.
그 동작에 맞춰 우완부를 만들어내고, 땅에서 뽑아내며 몸을 흔든다.
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또 다시 나무가 몇 그루 쓰러지고 땅이 진동한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어두워진 시야.
서서히 찾아오는 정적.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간 여성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눈 앞의 거대한 흙덩이와 자신의 팔의 움직임이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확인하듯 팔과 어깨를 움직인다.
점액질 본체로 감싸고 있는 그녀의 상반신과 내 동체를 연동시켜 움직이는 일에도 점점 익숙해진다.
인간 여성은 주먹을 꽉 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거라면…….
분노.
분노에 가득찬 시선을 고블린 무리에게 돌린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남은 것은 인간이었던 사체 뿐.
갑작스러운 산울림과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광경에 고블린들은 진작에 도망치고 난 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