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1.2
* * *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 고블린은 보이지 않는다.
아예 주변의 들짐승, 날짐승을 가리지 않고 산의 주민들이 호들갑을 떨며 도망치고 있다.
인간 여성이 지지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길래 본체로 지긋이 붙잡으며, 대신 내 동체를 일으킨다.
다시 거대한 산울림.
문제점을 발견했다.
안락의자에 반쯤 누워있는 자세의 파일럿과 내 움직임을 동화시킨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이제 내 동체는 완전히 두 발로 서려고 하는데, 지금 내 파일럿은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한다.
애초에 내 동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방법이 없다.
지금 당장 즉석으로 만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형 병기를 직접 탑승해 조종한다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니, 내가 파일럿에 적당히 맞춰주며 호응하다보면 방향성이 잡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내게 탑승하고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지면에 고꾸라질 기세다.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참는다.
이 세계는 만화영화가 아니다.
타자마자 고꾸라지는 미지의 위험물체에 붙어있으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급한대로 하체의 길이를 줄이고, 팔로 땅을 짚는다.
참고하는 것은 전생의 고릴라.
상체를 치켜든 4족보행이라면 콕피트도 그럭저럭 보호할 수 있으면서 이제 막 개업한 파일럿도 쉽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일럿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내 몸을 기우뚱 기우뚱 움직이며 시체로 다가간다.
반쯤 기어간다고 해도 무방하다.
역시 4족보행이 정답이었던 것 같다.
파일럿의 시선은 시체로 고정되어있다.
커다란 슬픔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체모의 색이 같은 걸 보면 가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자가 미끼가 되고, 여자를 좁은 굴 속에 숨긴다.
멀지 않은 곳에 날이 무딘 도끼가 떨어져있다.
민간인의 거주지를 고블린이 습격했고, 이들은 여기까지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작은 계곡물을 건너 시체의 곁에 도착한 파일럿은 주먹을 꽉 쥐고 하늘 높이 들었다가,
쾅!!
시체를 힘껏 내려쳤다.
쾅쾅쾅!!!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시체가 제대로 짓이겨질 때까지 연거푸 내려친다.
잠깐 놀랐지만 기억을 떠올려보니 악마와의 전쟁 중에 인간들이 보였던 행동이다.
전사자가 언데드화 되는 것을 막는 절차였을 것이다.
저렇게 시체를 훼손시키면 스켈레톤이 되든, 좀비나 구울이 되든 아무것도 하지 못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무언가 '동력'이 떨어지면 원래 시체로 돌아가곤 했다.
인간은 아직 악마와 전쟁중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살아남은 드래곤과도.
파일럿이 손을 흙바닥에 열심히 비빈다.
아무래도 땅을 파려는 것 같다.
하지만 약간의 돌과 나무뿌리가 섞였을 뿐, 대부분이 고운 흙으로 구성된 내 동체로 산지에서 땅을 파내는 데엔 무리가 있다.
심지어 방금 막 만들어냈기 때문에 손가락도 없다.
고블린과의 전투를 상정해 둔기로 휘두를 만한 팔을 만들어낸 내 패착이다.
약간의 분노.
파일럿이 제대로 좀 해보라는 것 처럼 손가락에 힘을 준다.
동시에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달콤한 마나.
상쾌하고 청량하다.
지금 건 의식적으로 하는 건가?
그녀의 신체에 밀착해 마나가 타고 흐르는 길을 맛보고 있자니, 손가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근섬유 하나하나, 관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인간들은 대부분 마나를 다룰 수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군인이거나 군무원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었다.
뿜어내는 오러의 양이나 마법의 위력이 모두 달랐던 것을 보면 이 세계의 일반인까지 모두 마나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시골 처녀가 몸속의 마나를 이리 쉽게 조절하다니.
어쩌면 나는 당첨을 뽑았는지도 모른다.
급하게 만들어진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갈퀴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다.
내게 시간과 예산을 조금 더 준다면 번듯한 것을 만들어보이겠지만, 파일럿은 지금 당장 저 시체를 묻고싶어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은 흙을 얇은 원기둥 형태로 빚어 삐죽 튀어나오게 한 뒤 단단하게 굳힌 갈퀴 형태가 고작이다.
양 손에 4개씩 생긴 갈퀴로 어찌어찌 땅을 파낸 파일럿은 시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구덩이에 던져넣고, 주변에 흙과 돌덩이를 덮는다.
나름의 묘비까지 만든 그녀는 아까부터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튼다.
산 속이기에 해는 진작에 졌고, 어둠이 깔린 상태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빛이 일렁이고 있다.
산불일 가능성은 적겠지.
몬스터는 불에 약하고, 불을 두려워하지만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고블린의 습격에 따른 방화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파일럿은 천천히 동체를 움직인다.
한 걸음, 두 걸음.
계곡물을 건너기 전보다 확연히 나아진 모습이다.
조금 익숙해졌는지, 가볍게 뛰기까지 한다.
기쁨의 사념파를 발하지 않기 위해 꾹 참는다.
이 파일럿은 최고다.
동체의 움직임이 이미 내가 직접 움직이는 수준을 따라잡았다.
역시 슬라임의 감각으론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파일럿의 운동신경이 내 전생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일까.
흙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동물적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심지어 이 파일럿의 정신은 굳건하고 단단하다.
남자의 시체를 농락하는 고블린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더욱 숨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를 쥐고 뛰쳐나가려고 했다.
거기에 순식간에 장례까지 치르고 망연자실해 절망하는 것이 아닌, 아직 전투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주거지를 향해 달려나간다.
오랫동안 개량 슬라임의 몸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덕에 내 감수성은 전생과는 이미 크게 달라져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때문에 인간 남자가 죽든 말든, 고블린에게 유린당하든 말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적성 생물체에 습격당해 누군가가 죽는 일은 이세계 평균이고, 일상이다.
하지만 파일럿은 어떤가?
과연 시골 처녀가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일까?
고작 이세계라는 이유로?
지금 파일럿이 보는 시야는 내가 감각으로 파악한 지형과 원근에 마법을 통해 약간의 색을 입힌 환상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생색낼 고민을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기로 했다.
파일럿이 당연한 것 처럼 내 동체를 조종하듯, 나 역시 당연한 것 처럼 편의성을 제공하고 전투력을 드러내야 한다.
이 파일럿에게 따라가려면 오히려 내가 한참을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기쁜 오산이다.
딱히 길이랄 것도 없는 산등성이를 돌아 목격한 것은 불타고 있는 마을이었다.
누군가에겐 지옥도라고 할 수 있는 풍경.
하지만 내겐 더 없이 실망스러운 풍경.
여기가 정말 파일럿이 살고있던 곳인가?
마을의 가구가 10채도 채 안 된다.
이건 제대로 된 마을이 아니라 그냥 텐트촌이다.
최소한 통나무 집이 세워져있는 곳을 상상했지만 번듯한 건축물이랄 것도 없이 그냥 움막이 몇 개 늘어서있을 뿐이다.
그 움막도 악마와의 전쟁중 보았던 인간들의 개인막사보다 한참 딸린다.
대부분 불타고 있지만, 천과 가죽을 누더기처럼 기워놓은 것으로 세웠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의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낮아진 건가?
그것도 아니면 문명의 퇴화?
너무 당황해서 사실 인간들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고, 이곳은 선사시대 체험을 할 수 있는 컨셉 캠프장이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들었다.
"───────!!"
파일럿이 마을 바깥으로 인간을 끌고 가는 고블린들을 찾아냈다.
끌려가는 인간은 아무런 반항이 없다.
피칠갑이 되어있는 걸 보면 이미 죽은 거겠지.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둔탁한 흙더미에 하체가 짧은 고릴라 형태라지만 이쪽은 전고 6m의 거인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대지가 흔들리며 고블린과의 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
격렬한 분노.
파일럿은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팔을 휘두른다.
주먹을 어깨 뒤까지 끌어당겼다가 내뻗는 텔레폰 펀치.
하지만 이세계에서도 싸움은 체급이라는 불변의 법칙은 성립한다.
고블린 세 마리가 바닥을 쓸며 다가오는 자신의 키만한 팔뚝에 휩쓸려 날아간다.
신체의 반 이상이 찌그러지거나 꺾였다.
명백한 전투 불능.
내버려두면 죽는다.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왼팔을 포크처럼 뻗어서 도망가는 녀석을 찍어누른다.
방금 만들어놓은 갈퀴에 아직 놈의 시체가 매달려있다.
팔을 휘둘러 도망가는 녀석 둘에게 시체를 던진다.
스트라이크.
고꾸라진 놈들을 주먹으로 내려 찍는다.
쿵! 쿵!
급격한 감정 기복과 격렬한 움직임에 숨이 가빠진 파일럿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음 목표를 찾는다.
그녀의 상체와 목의 움직임에 맞춰 콕피트에 투영되는 시야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도망가는 녀석이 하나 있다.
가느다란 화살표로 표시해준다.
지구와 기호가 같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저곳에 뭔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될 것이다.
"……."
하지만 파일럿은 쫓지 않는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불타고 있는 부락.
누워있는 시체들.
황폐화된 그녀의 인생과 그 뒷처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