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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6화 (6/65)

〈 6화 〉 1.4

* * *

많이 피곤했는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부스스 일어난 파일럿이었지만 정신이 든 후의 반응은 상당히 격렬했다.

"……?"

잠결에 자신의 입 속에 무언가 들어와있다는 것을 인식한 파일럿은 그것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쎄 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입과 코를 덮고 있는 슬라임을 발견.

"──────!!"

이어지는 발악.

하지만 나는 놓지 않는다.

"───!! ───!!"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의 본체를 파일럿 슈트로 사용하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절차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나를 떼내려는 파일럿의 몸을 지긋이 누르며 사념파를 발한다.

긍정.

괜찮다.

긍정.

안 잡아먹는다.

긍정.

긍정.

결국 숨도 쉬지 않고 발버둥을 치던 파일럿이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호흡을 시작한다.

맥박수가 끝을 모르고 상승한다.

억지로 숨을 쉬려고 할 수록 더욱 숨이 가빠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며 더욱 크게 숨을 들이쉰다.

마치 내가 목을 조르기라도 하는듯, 목과 가슴 주변의 내 본체를 뜯어내려 한다.

그리고 기절.

…….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어느정도의 반발은 예상했다.

파일럿의 상태를 살핀다.

과호흡이나 질식같은 현상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어느 정도의 산소를 공급해야 인간이 원활하게 호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은 내게 없다.

일단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파일럿의 하관을 덮은 본체를 물린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다, 다시 파일럿이 깨어나는 기색을 보였을 때 재시도.

"───!!"

다시 긍정의 사념파를 발하며, 문득 전생에 봤던 TV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시내를 쏘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 유기견, 유기묘를 포획하여 보호하는 영상.

먹이에 마취약품을 섞어 쓰러진 놈들을 보호하는 방식도 있었지만, 시내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그물로 포획한 후 반항하지 못 하게 짓누르는 방식도 있었다.

역할이 바뀌었지만 지금 내가 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메카 파일럿이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이세계인을 보호하여 적응시키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필요한 일이다.

파일럿은 실컷 몸부림을 치다가, 탈진 직전까지 몰리고서야 반항을 멈췄다.

어느새 자신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은 듯 하다.

어떠한 감정의 사념파를 느끼지만, 내가 아직 분류할 수 없는 감정이다.

아마도 의혹, 불안 등의 감정이겠지.

끈기있게 긍정의 사념파를 발한다.

괜찮다.

잡아먹지 않는다.

잠시 후 진정된 건지, 발악할 힘도 없는 건지 알 순 없어도 파일럿이 얌전해졌기 때문에 그녀를 짓누르던 힘을 푼다.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 파일럿이 주위를 둘러보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 내가 밤새 재구축해놓은 팔을 발견한다.

흙더미와 다름 없던 모습에서 제대로 매끈해진 표면을 보고, 짤막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미약한 기쁨.

확인을 마친 파일럿은 내 동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그녀가 살던 집락은 주거지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 했을 게 뻔했지만, 황폐화된 후엔 사람에게 허탈감을 안겨주는 역할만은 문제 없이 수행했다.

슬픔.

다시 파일럿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아 울지 않고 어디론가 내 동체를 옮긴다.

집락에서 멀지 않은 곳.

계곡물이 흐르고, 켜켜히 쌓여진 돌이 물길을 어느정도 막아서 큰 웅덩이가 생긴 장소다.

"──."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며 몸을 비튼다.

크루카? 크흐룩?

아마도 '내려줘'나 '놔줘'일 것이다.

내가 인간의 언어를 따라할 순 없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의사 소통을 위해선 내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시작은 짧고 당장 필요한 단어부터.

그녀가 말한 단어의 발음을 되새기며 동체를 뒤로 눕힌 후 콕피트를 개방한다.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는 투영 마법을 취소한다.

파일럿은 어제와 다르게 매끈해지고 깨끗해진 콕피트 내벽을 보고 한 번 놀라고, 깔끔하게 좌우로 갈라지는 움직임에 두 번 놀라며 자신의 두 다리로 선 이후에도 콕피트를 구경하다 동체에서 나간다.

파일럿은 개울가에서 목을 축인다.

물을 손으로 떠서 몇 모금 마시더니, 모자랐는지 아예 물에 고개를 쳐박고 꿀꺽꿀꺽 마신다.

물 속에 사는 피라미까지 삼킬 기세다.

기생충이나 독충같은 걱정은 없는 걸까.

물을 마신 파일럿은 어푸푸 세수를 하고, 옷을 벗으려다 무언가 깨닫는다.

내가 파일럿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어제 내내, 그녀의 마나를 미세하게 담고있는 노폐물은 모두 이쪽에서 '처리'했다.

내가 진짜 슬라임처럼 점액을 질질 흘리고 다니지도 않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비누로 씻은 것 처럼 깨끗한 상태다.

그 때문에 느껴지는 위화감이겠지.

그래도 파일럿은 옷을 벗고 멱을 감는다.

좋다.

개인 위생은 항상 신경써야 한다.

선크림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인지, 비교적 햇빛을 받지 않은 파일럿의 몸은 얼굴보다 새하얬다.

얼굴에 점점이 찍혀있는 주근깨도 거의 보이지 않는 깨끗한 피부다.

콕피트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그녀의 몸이 그리는 곡선은 성인 여성의 그것과 흡사했다.

적어도 2차 성징은 겪은 나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몸을 씻은 그녀는 조금 넓적한 바위에 누워 잠깐 해바라기를 했고, 입고 있던 속옷과 옷의 냄새를 킁킁 맡은 후 그대로 다시 입었다.

내가 '처리' 했기 때문에 노폐물의 냄새는 나지 않겠지만, 햇볕에 말린 향기가 나지도 않을 것이다.

아주 잠깐 고민해봤지만, 전투 병기에 세탁과 건조 기능이 있는 건 모양이 많이 빠지는 것 같아 기각했다.

나는 캠핑카가 될 순 없다.

옷을 입은 그녀가 내 동체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경한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다.

마음이 내키면 다시 콕피트에 탑승할 수도 있고, 정체 모를 위험 물체에 탑승한다는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동체를 이곳저곳 쓰다듬어보고,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전체적인 형상을 구경한 그녀는 다행히도 내게 다시 탑승했다.

느껴지는 부드러운 느낌의 미약한 기쁨.

뭔진 모르겠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안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타기 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심장을 졸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해당 감정의 사념파를 발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6미터 짜리 거인이 그런 감정을 발한다면 대부분의 지성체는 난색을 표할 것이다.

발하는 사념파는 내가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종종 내 멋대로 사념파가 나가는 것은 전쟁 중에 확인했다.

긍정. 기쁨.

"────. ────?"

내 느낌이지만 지금 파일럿이 하는 말은 혼잣말이 아니다.

사념파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그녀가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진짜 지성체에게 말을 건다기보다는 아끼는 인형이나 속 썩이는 기계에 푸념하는 정도지만 그녀가 어느정도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쓰다듬는 격이어도, 이런 식으로 점점 서로에게 다가가다 보면 내게 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글이나 언어를 가르치려 할지도 모른다.

의사 소통의 가능성이 더욱 열린 것이다.

"──."

놔줘. 혹은 내려줘.

이번엔 조금 더 명확한 발음을 들은 것 같다.

거주지로 돌아온 그녀는 어딘가에서 길다란 나뭇가지를 들고와 집터와 잿더미를 쑤시며 건질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대부분이 타버려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천조각이었지만, 깨지지 않은 그릇과 작은 금속 조각을 몇 개 챙길 수 있었다.

파일럿은 내 손을 슥 쳐다보더니, 찾아낸 것들을 내 콕피트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서 다시 개울가로 향했다.

저런 것들을 내 손으로 고이 잡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그녀는 개울가에서 그릇과 금속 조각을 씻었다.

그릇은 돌 그릇과 금속 그릇이 있었고, 금속 조각은 비교적 일정한 모양이었으며, 빛깔에 따라 몇 종류로 나눠졌다.

돈인 것 같다.

설거지를 마친 그녀는 주변에서 열매가 열린 나무에 손을 뻗으려다 내게 탑승해 나무를 몇 차례 흔들었다.

열매는 떨어지지 않는다.

여름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버티는 놈들이 있을 정도로, 과일은 생각보다 훨씬 질기다.

특히 익지 않은 과일일수록 더욱.

파일럿은 나무를 몇차례 더 흔들다 잡고 있던 가지가 부러지자, 아예 나무 기둥을 양 손으로 붙잡고 힘을 줬다.

파일럿의 허리보다 약간 가는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뜯겨나온다.

반쯤 꺾이다 만 나무가 나무 뿌리를 드러내며 최후의 저항을 하지만, 내 출력 앞에선 의미가 없다.

힘을 주는 방향을 이리저리 바꾼 파일럿은 마침내 나무를 뿌리채 뽑아냈고, 주거지로 돌아와 바닥에 내려놓은 나무에서 열매를 하나 따먹었다.

표정이 찡그려진다.

역시 익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눈치로 보아선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없어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런 거대한 동체로는 사냥도 할 수 없다.

처음 기동할 때 흙 속에 묻힌 동체를 꺼내기만 해도 온갖 짐승들이 도망쳤을 정도다.

어떻게든 끼니를 때운 파일럿은 주거지 터를 돌며 고블린과 인간의 시체를 찾아 정성스럽게 뭉갠 후 땅에 파묻는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시체 처리를 머릿속에 넣어놨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꿋꿋하게 식사를 마친 것이다.

마음 속으로 작게 박수를 친다.

파일럿은 작업을 마친 후 시간을 때운다.

과일을 몇 개 더 집어먹기도 하고, 다시 계곡물을 마시러도 가고, 괜히 내 동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험을 하면서도 주거지 터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파일럿의 의식이 주거지 터 한 구석에 난, 샛길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틈새에 쏠리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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