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7화 (7/65)

〈 7화 〉 1.5

* * *

파일럿이 살고 있던 집락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조세를 피해 도망나온 화전민들의 거처?

수렵꾼들의 전진 캠프?

그냥 산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자연인들의 모임?

빈약한 배경지식과 한정된 정보로 판단하는 마구잡이식 추측은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 한다.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

자그마한 텃밭에서 뽑아낸 뿌리 식물과 나무 열매, 집 터를 들쑤셔 찾아낸 감자 등으로 연명하던 파일럿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내 동체로 물구나무를 시도하기 시작하던 삼 일 째.

파일럿이 신경쓰던 샛길에서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다행이다.

물구나무는 무섭다.

파일럿의 운동신경과 균형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점점 체감하고 있지만 물구나무는 다른 이야기다.

실패했을 때는 물론이고, 성공한다고 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6미터의 거구는 콕피트에 있는 파일럿에게 어떤 충격을 가하게 될지 모른다.

내 점액질 본체가 충격을 흡수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제자리에서 점프를 할 때에도 착지했을 때 파일럿이 으극, 소리를 내는 걸 보면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자신의 몸집만한 주머니, 혹은 가방을 멘 세 명의 남녀는 불타버린 집락촌과 그 한가운데 있는 거대 물체를 경계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표시한 화살표에 반응한 파일럿이 콕피트를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 경계를 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피. 소피.

파일럿의 이름은 소피였다.

한 동안의 해후, 신파극, 애도, 뒷정리 등을 행한 그들은 다음 날 아침부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 명의 남녀가 들고 온 가방의 정체는 옷가지와 식량 등의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배불리 먹고 옷을 갈아입은 파일럿은 그들을 기다릴 때보다는 약간 더 생기가 돌았다.

가방은 콕피트 안에 차곡차곡 쑤셔넣어졌다.

파일럿의 시야를 상당 부분 가리게 되었지만 그들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며칠 동안 집락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바로는 내게 덤벼들 몬스터나 산짐승은 존재하지 않는 듯 했지만, 불만을 감출 순 없었다.

약간의 분노.

"──."

파일럿이 부드러운 어조로 내게 말을 건다.

현재 내 동체의 체형 상 산길을 내려가려면 양 손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안정적인데, 결국 누군가 가방은 옮겨야 한다.

내 등 부분에 가방 걸이를 새로 만들 순 있지만, 등에 가방을 주렁주렁 메달고 있는 흙의 거인은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산을 탄 인간들이 순순히 다시 그대로 산을 내려가려고 하지도 않을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파일럿의 도움을 받아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들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대단하다, 좋다 정도의 감탄사.

기억해둔다.

동체 안에 숨겨진 본체를 슬쩍 꺼내어 인간들의 맨살과 접촉해보았는데, 파일럿과 같은 마력의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인간들이 파일럿처럼 마나를 흘리진 않는다.

주변 지형이 변할 정도로 기나긴 세월동안 여우굴처럼 변한 내 콕피트에 들어온 것이 파일럿밖에 없을 리가 없었다.

산짐승, 몬스터, 아주 가끔씩 인간들이 분명히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에서야 눈을 뜬 것은 파일럿이 마나를 흘리는 독특한 체질이기 때문일 것으로 보였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 더 확신을 가진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파일럿이 될 소양이 있는 인간들은 한정되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맛대가리가 없는 것이고.

전생의 마더 구스가 떠오른다.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근사한 모든 것들로 만들어진 특별한 인간만이 파일럿이 될 수 있다.

내 안에서 파일럿, 소피의 우선 순위를 조금 더 높게 조정한다.

동시에, 내가 만들어낸 머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만져보고, 때려보고, 손바닥으로 탁탁 쳐대는 저 인간들의 우선순위는 처음보다 낮춘다.

기능적으로 아무런 필요가 없는 파츠를, 적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만들어놨다지만 이런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다.

내가 인간일 때의 감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됐다.

3일 가량 야영을 하며 산을 내려온 후 다시 2일 정도 평지를 걸어 도착한 곳은 실망스러운 규모의 성벽이었다.

전쟁 중 보았던 인간들의 성벽보다 확연히 조잡하다.

물론 이 성벽도 온갖 크기의 바위가 잘 맞물려 제대로 인공적인 지형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예전에 보았던 성벽이라고 해봤자 겉면에 시멘트를 발라 매끈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차이가 난다.

예전에 봤던 성벽은 인공적인 가공이 들어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돌로 쌓은 성벽이었고, 무엇보다 높이가 낮다.

10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팔이 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이다.

"──!! ─────!!"

그 때문인지 성문을 통해 일단의 병사들이 나타나 우리를 포위하고 창대를 들이댄다.

딱히 마나나 오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제식복장은 통일돼있긴 하지만 상태가 썩 좋지 못 했다.

이 세계는 장비에 마법을 걸 수 있기 때문에 병사들의 갑옷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구조만으로 장비의 질을 판단할 순 없겠지만 손때와 연식을 잔뜩 타서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장비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보급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중 수많은 전장에 투입된 나는 말할 수 있다.

예전엔 저렇지 않았다.

5일간의 이동으로 판단한다.

드래곤과 악마, 그리고 천사와의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다.

그리고 인간들의 문명은 분명히 퇴화했다.

내 어깨 위에 올라와있던 인간들이 요령 좋게 팔을 타고 내려오고, 파일럿이 콕피트를 개방해 동체에서 내려와도 우리를 포위한 병사들의 태도는 썩 나아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성문은 내가 흙더미로 만들어낸 지금 동체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다.

허가되지 않은 인원이 공성병기를 성문 앞까지 끌고온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다.

파일럿을 제외한 세 명의 인간이 콕피트에 있던 가방을 한참 뒤져 찾아낸 나무패를 보이며 실랑이를 벌인다.

나무패의 갯수는 4개.

어떠한 글자가 적혀있는 걸 보면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느껴지는 분노와 미약한 슬픔.

억울함의 조합이다.

그것이 병사와 집락촌민들 양쪽에게서 느껴지고 있다.

군사행동을 하던 입장에선 아무래도 병사의 입장에 이입이 된다.

내 동체를 아무런 고민도 없이 성문까지 끌고 가길래 '이래도 괜찮은 거 맞나?' 싶었지만 역시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한동안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실랑이를 벌인 후에 어떠한 결론이 나온 것 같다.

파일럿과 세 명의 인간이 협력하며 내 콕피트에서 짐을 내린다.

뻔한 결론이다.

내 동체를 성벽 밖에 세우고 들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거동수상자 짓을 했으니 병사들에게 구속당해 조사를 받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생각보다 원만하게 해결이 됐다.

병사들이 무른 건지, 민간인들의 발언권이 강한 건지.

짐을 다 내린 파일럿이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언가 말을 건넨다.

'금방 다시 올게' 같은 건가?

이들은 내 동체를 성벽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파일럿에겐 아직 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세 명의 집락촌민들, 그리고 다수의 병사들을 본 후 내 안에서 파일럿의 우선순위는 더욱 높아져있었다.

내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만한 위험 요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보이는 지금 상황에선, 내가 고려하는 것들 중에선 파일럿이 가장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격변한 인간들의 사회를 조사할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이들의 언어도 계속해서 접해야 하는 상황.

반면에 내 동체는 하룻밤만에 만들어낸 임시 동체다.

콕피트에서 내 본체를 쓰다듬고 떠나가려는 파일럿의 손목을 따라 쭉 늘어난다.

파일럿의 걸음이 잠깐 멈춘다.

이럴 때엔 발할 수 있는 사념파의 종류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 긍정의 사념파를 발한다.

괜찮아.

쿵! 쿵! 쿵!

내가 제어를 포기하자 동체의 사지와 콕피트가 각각 분해되어 땅에 나뒹군다.

계란 형태의 콕피트가 좌우로 조금씩 구르며 흔들린다.

급하게 중심을 잡는 파일럿의 몸을 본체로 감싼다.

"─! ───?"

파일럿이 놀라 말을 건다.

긍정. 괜찮아.

아무튼 괜찮아.

콕피트에서 나온 파일럿의 몸엔 마치 코트처럼 내 본체가 걸쳐져있다.

점액질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은 꼴은 아닐 것이다.

비전투상황에 맞춰 파일럿의 목까지만 덮었으니 나름의 타협은 된 거 아닐까?

괜찮다.

아무튼 괜찮다.

파일럿이 집락촌민들과 눈을 마주치며 떨떠름하게 웃는다.

"───!! ────?!"

집락촌민 중 한 명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병사들 중 실랑이를 벌이던 쪽이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짓을 한다.

통과.

파일럿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성문을 통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