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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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은 나를 기동시킨 후, 사람들에게서 더욱 거리를 벌리고 가볍게 뜀뛰기를 하거나, 전력질주, 제자리 점프, 허공에 팔을 휘두르고 땅을 내려찍는 등의 모습을 시연했다.
공중에 뛰어올라 양 팔로 땅을 찍었을 때의 반응이 특히 좋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태반이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고, 혀를 깨문 사람이나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 귀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 등이 나타났다.
조금 걱정도 됐지만 전생의 그루피(Groupie)를 위시한, 음악가의 팬들은 공연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들은 나의 포로다.
이제 나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 일어났다.
누군가 해보라고 시켰는지, 사람들에게 눈길을 힐끗 준 파일럿이 굳건한 성벽을 향해 전력으로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내가 그녀의 목표를 인지했을 땐 이미 내 주먹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장악하며 아무리 경도를 높히고 다졌다지만, 내 동체는 어디까지나 흙더미 외 이물질로 구성되었고 기본적으론 무른 동체다.
그런 동체로 마나의 추진을 받아, 두껍고 단단한 바위 성벽을 전력으로 치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덮쳐올 게 눈에 선했다.
신이 나서 그냥 해본 건지, 나를 믿는 건지.
거기에 성벽 격파는 실패했을 때의 충격량도 문제지만, 성공해도 문제다.
사전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무너진 성벽이 도시에 어떤 피해를 끼칠지 알 수가 없다.
성벽 뒤쪽과 도시가 떨어진 공간은 충분해보이지만, 근무하는 병사들이 깔리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성벽이 무너진 사이에 외세의 침략을 받는 건 아닐까?
아무런 피해가 없더라도, 무너진 성벽 보수를 누가 하겠는가.
저 병사들이?
설령 뒷처리를 나와 일행이 하지 않게 되더라도 인간 사회에서 성문이 아닌, 성벽을 부수는 공성 병기에 대한 취급이 어떨지 예측할 수 없는 것 역시 크나큰 문제였다.
커다란 힘에는 더욱 커다란 책임이 따르고, 그보다 더욱 큰 욕망에 휩쓸린다.
지금까지의 내 예상에 따르면 그냥 시골 처녀라는, 높지 않은 신분의 파일럿의 인생이 걷잡을 수 없는 탁류에 휘말리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른팔에 핏줄처럼 퍼져있던 본체를 물린다.
첫 번째 관절 아래, 인간으로 치면 팔꿈치 아래에 대한 장악을 포기한다.
아직 팔뚝 부분에 매달려 있고 내가 고정시켜놓은 형태가 있기 때문에 갑자기 형태가 무너지진 않지만, 저 부분은 이제부턴 그냥 흙더미나 다름없다.
그렇게 그 흙더미 주먹이 성벽에 부딪치고,
퍼석.
내 예상대로 동체와 성벽 양쪽에 별다른 충격을 가하지 못 한 채 터지듯 바스라지고,
"───?"
파일럿이 의문을 표하다가,
얼굴이 찌푸려지며,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다.
사념파의 격류가 쏟아져나온다.
어째서?
부서진 건 내 동체인데 왜?
나는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고, 아무런 사념파도 보내지 않았는데 대체 왜?
자신의 오른팔을 뽑아내려는 건지, 끼워넣으려는 건지, 어쩔줄 모르고 착란 증세를 일으키는 파일럿의 온몸을 붙잡아 짓누른다.
그녀의 온몸에서 마력이 폭주한다.
파일럿의 사념파에 나까지 정신이 혼미해지고 집중이 흐트러진다.
급박하게 긍정의 사념파를 내보낸다.
괜찮아.
파일럿의 사념파에 삼켜진다.
괜찮아.
과호흡을 하려 하는 파일럿에게 공급되는 공기 양을 줄인다.
괜찮아.
갈곳을 잃고 방황하는 동공을 무시하고 파일럿의 오른팔을 그녀의 얼굴 앞에 들이댄다.
괜찮아.
아직 달려있어.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
네 팔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내려줘."
잠시 후 진정한 파일럿이 아직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엔 성벽에 기대앉은 모습으로 콕피트를 개방한다.
개방된 콕피트와 하체파츠를 짚으며 내려가는 파일럿의 오른팔이 아직 부들부들 떨린다.
파일럿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본 집락촌민들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내 동체엔 외부 스피커가 없기 때문에 바깥에선 방금 전의 소동을 알지 못 한다.
그저 성벽을 부수는 데 실패한 것이나, 내 오른팔을 부숴먹은 것에 낙심한 정도로 착각하는 듯 하다.
스피커를 만들지 않아서, 만들지 못 해서 다행이다.
마법이 있는 세계니,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법 쯤은 어디엔가 있을 법 하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오로지 나의 열정과 근성으로 완성시킨 투영 마법 뿐이다.
다른 마법사가 따라할 수도, 내가 다른 마법을 배우기도 힘들어보인다.
스피커의 원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결과만을 흉내낸 유사 스피커는 대충 만들어낼 수 있다.
파일럿의 말을 분석한 후 내가 스피커를 진동시켜 직접 재전달하는 것이다.
전쟁 중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파일럿을 태우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변조된 기계목소리라도 스피커 행세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선행돼야할 조건은 내가 인간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이 옹알이를 하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집락촌민 중 한 명이 자신의 오른팔과 내 동체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근육이 다시 움직이는 제스쳐를 취하고, 무언가 말을 건다.
대충 회복시킬 수 있겠냐는 질문일 것이다.
긍정의 사념파를 발한 후 파일럿의 몸체를 타고 올라가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
오른팔을 떠는 증상은 많이 나아진 듯 하다.
그녀가 느낀 것은 일종의 환상통이었을까.
아니, 그녀가 느낀것이 고통이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
파일럿 역시 방금 그녀가 경험한 것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눈치였다.
예상가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파일럿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느끼고 그것으로 파일럿의 의사를 헤아리며 동체를 움직이듯, 파일럿 역시 내 본체를 통해 흘러나가는 마나를 어느정도 느끼고 있으며 동체 전체적으로 흐르는 마나를 헤아리며 몸을 움직인다는 가설.
나만이 그녀의 명령(input)을 받아들여 행동(output)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 역시 나의 반응(feedback)을 느끼고 그에 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가설.
우리가 상호작용한다는 가설.
딱히 근거랄 것은 없다.
심증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고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녀가 내 동체를 조종하고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처음의 그녀는 내 동체의 전체적인 모습조차 알지 못 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고릴라 형태의 동체를 이용해 금새 뜀박질을 시작하고, 처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리치를 재가며 고블린과 전투를 치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뿐이다.
이세계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며 무시했을 뿐이다.
이제야 기회가 왔다고 좋아했을 뿐이다.
파일럿이 나에 대해 아무것도 헤아리지 못 했듯, 나 역시 그녀에 대해 알고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뿐이다.
파일럿이 문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어깨, 그 위에 올려진 나를 쓰다듬는다.
내가 어제 끔찍한 경험을 한 후로 적대감의 사념파를 각성했듯, 이번엔 걱정과 후회의 사념파를 각성한 걸까.
아니면 내가 희로애락의 감정이 조합된 형태를 보고 인간의 감정을 추측하듯 그녀 역시 내 감정 조합을 보고 추측한 것일까.
"──. ────."
파일럿이 작위적인 긍정의 사념파를 발하며 무언가 말을 건넸다.
오른팔의 근육을 강조하는 제스쳐.
나 역시 작위적인 긍정과 기쁨의 사념파를 발하며 호응한다.
파일럿은 아직 의욕이 있다.
두려운 경험을 했음에도 나를 탓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지나간 일에 너무 얽매여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전투중 혹시라도 내 동체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체급을 가진 상대와 맞서게 되거나 함정에 빠져, 혹은 실수로 동체가 파괴됐을 때 이런 일을 처음 당했다면 그날로 파일럿을 잃게 됐을 것이다.
인생은 무엇이든지 경험이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드래곤과의 전투에 투입엔 초창기에 내가 실험과 검증, 개선을 거듭했듯이 파일럿과 함께 하는 기동에도 같은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실패 자체를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나도 그녀도 신은 아니다.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돌아온 파일럿에게 사무실의 직원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집락촌민과 파일럿, 직원들의 대화.
옆에서 듣고 있던 책임자 위치의 병사도 무언가 말을 보탠다.
그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을 땐 무언가 문구가 몇 줄 추가된 나무패가 파일럿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집락촌민들이 감탄사를 보내며 파일럿을 축하해준다.
파일럿은 웃는다.
나 역시 기쁨의 사념파를 발한다.
판타지스러운 세상이다.
궤도를 철저하게 벗어나는 나라는 존재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내가 전생에 읽던 판타지 세상을 그대로 판에 박은 듯한 곳이다.
이 정도면 슬슬 확정지어도 될 것 같다.
파일럿은 모험가 길드의 모험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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