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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12화 (12/65)

〈 12화 〉 1.10

* * *

숲으로 오는 동안에 소피와 한 훈련이 있다.

손가락 뽑기 훈련.

그 역시 소피를 향한 케어의 방향성을 늘리기 위해 무작정 시도해보는 대책 중의 하나였다.

소피는 모험가 길드 직원들에게 나의 성능을 시연하던 중 내 동체의 오른팔이 부서지자 자신의 팔도 부서진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되긴 했지만, 그날은 하루종일 환각통을 느낀 오른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환각통을 느낀 당시의 급작스러운 마나의 폭주와 발작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었다.

내 동체가 파괴될 확률이 가장 높은 상황은 전투 상황이었기에, 파일럿의 무력화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내가 스스로 동체를 움직이며 전투를 지속하거나 퇴각할 순 있다고 하지만, 전쟁중의 동체보다 한참 어설픈 간이 동체로 소피의 조종 실력을 찍어누르고 내 동체에 피해를 입힌 상대에게 내가 승리하거나 무사히 퇴각할 자신은 없다.

소피는 죽을 것이고, 나 역시 정신적으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바로 다음날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야영 준비를 하는 일행에 맞춰 콕피트에서 내려가려는 소피의 몸을 붙잡고, 그녀의 눈 앞에 그녀의 왼손을 갖다댄다.

"─? ────?"

동시에 나의 동체를 움직여 오른손으로 왼손 엄지를 붙잡는다.

"─?"

소피를 마사지하며 생각해본 결과 내 본체가 살아있는 동물에게 가할 수 있는 힘은 전생의 인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는 아이의 근력에 가까운 것 같았다.

때문에 내가 강제로 소피의 몸을 움직인듯 보여도, 실상은 내가 하려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한 그녀가 일단 나에게 맞춰주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면 됐다.

게임 안에 사람이 있어도 게임과 현실 생활을 제대로 분리시킬 줄 알아야 하듯, 그녀는 나와 접촉하여 내 동체를 기동하는 동안에도 자신과 내 동체를 분리시킬 줄 알아야 한다.

설령 그 방법을 찾지 못 하더라도 최소한 환상통에 익숙해지기라도 해야한다.

정신론에 입각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에겐 소중한 파일럿을 지킬 방법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오른손을 움직여, 왼손 엄지를 잡아뽑는다.

아니, 뽑아낸다는 단어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장악을 포기해 평범한 흙더미로 돌아간 엄지 손가락은 마치 내 동체 위에 쌓여있던 낙엽이나 흙먼지를 털어내듯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

그리고 소피는,

"……!!"

한 박자 늦게 몸을 움찔 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긍정.

괜찮아.

긍정.

네 손가락이 아니야.

인간은 과도한 고통을 느꼈을 때엔 아드레날린을 급격히 분비하며 고통을 죽인다.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하거나 갑작스럽게 상처를 입었을 때 곧바로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지금 소피의 반응은 그것과는 달라보였다.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감정의 변화를 곱씹어보면, 그녀는 내가 내 동체의 손가락을 뺀 것을 인식한 후에야 '그럼 내 손가락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의문을 떠올리고 존재할 리 없는 통각을 만들어낸 뒤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있던 자리를 번갈아보며 혼란해하고 있다.

내 동체의 움직임과 그녀의 움직임을 동기화시키지 않은 것이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동체가 파괴되었을 때보다 반응이 확연히 약하다.

하체를 통해 땅에서 흙을 끌어와 방금 떼어낸 왼손 엄지 손가락을 다시 만들어낸다.

어차피 다시 뽑아버릴 생각이기에 관절을 만들지 않고, 속도를 중시한다.

방금 전의 자세 그대로 고정되어있는 소피는 내 왼손에서 엄지손가락이 자라나자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라고, 전생에 전원이 꺼진 냉동차 안에서 얼어죽은 사람의 일화는 몇 번씩 들어봤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상상에 영향을 받아 없던 손가락이 자라나서 엄지 손가락이 2개가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없길 바란다.

내가 지금 하려는 훈련은 소피 자신의 몸과 나의 동체를 분리시켜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이다.

인형 병기 조종의 꽃이라고 한다면, 인간과는 다른 구조를 이용해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머리가 날아간 채로 전투를 지속한다거나.

퍼지가 가능한 장갑을 내주고 상대의 콕피트에 주먹을 꽂거나.

상반신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바닥을 기어다니며 근접전으로 상대를 거꾸러트리거나.

적어도 전생에 내가 본 매체에선 그랬다.

현실과 만화 영화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고집에 소피를 휘말리게 하는 것은 미안하긴 해도 내 동체를 제대로 다루려면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기능적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머리 파츠가 날아갔을 때 소피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상상하기도 싫은 정도다.

마음같아선 어차피 필요도 없는 파츠이니 당장에 없애버리고 싶지만 소피가 혹여나 위화감을 느끼고, 그에 또 영향을 받을까봐 본래 높이의 1/4 정도로 낮추는 데에서 합의를 봤다.

덕분에 지금 내 모습은 소재에 기인한 흙빛과 약간 구부정한 자세, 늘어난 팔, 낮은 머리의 하모니로 손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륙양용 기체처럼 변하고 말았다.

좋지 않다.

수륙양용은 역설적으로 바다에서만 나타나야하고, 가급적 육지로 올라오는 장면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 동체는 방수 기능따윈 밥 말아먹은 순수 육전 프레임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사기꾼이라며 뺨을 때려도 반대쪽 뺨을 내밀어야 할 만큼 면목없는 모습이고, 가능한 빨리 머리 파츠를 원래 크기로 되돌리거나 아예 없애버리고싶다.

손가락을 다시 뽑고, 재생시킨다.

그 사실을 소피에게 인지시키고,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다 다시 반복.

그녀는 첫 날에는 3회만에 항복을 선언했지만 그 다음날에는 오른손가락을 뽑아낼 때까지 버텨내었고, 3일째엔 심박수는 올라갔지만 아무리 손가락을 뽑아도 고통을 호소하거나 몸을 움찔거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직 손가락보다 더 크고 치명적인 파츠를 떼어낼 상황은 아니긴 해도 당장 원하는 수준까진 순조롭게 올라온 것 같다.

덕분에 내가 생각하던 것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블린 토벌 작전에서 먼저 채용된 것은 집락촌민들이 생각해낸 전술이었다.

당연히 내가 어떠한 발언을 목소리 키워 말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주도권을 쥐는 데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초보 모험가인 소피는 동료들과 연계를 취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진형이라든가, 자신을 중심으로 아군과 유지해야할 거리, 적들과 유지해야할 거리라든가, 피아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전장의 경계선과 그 안에서 넘거나 돌파당해선 안되는 마지노선 등의 개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엊그제까지 산 속에서 텃밭을 가꾸고 가사를 돕던 말괄량이 처녀에게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염치가 없는 일일 것이다.

숲까지 오는 동안 부락촌민이 열심히 무언가를 교육한 것 같지만 소피는 얼마 듣지 못 하고 주의가 흐트러지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녀에겐 뛰어난 파일럿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한 게 사실이고, 부락촌민들도 그 부분에 대해선 어느정도 타협을 본 것 같았다.

또한, 나 역시 어느정도 전세를 읽을 줄은 알지만 인간과 함께하는 전술에 익숙하진 못 하다.

이 역시 당연한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초월적인 내구도와 전투지속력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전투에 대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개량 슬라임의 전투법은 지독하게 무식했다.

그냥 동네 패싸움을 큰 규모로 잔인하게 행했을 뿐이다.

악마와의 전투가 지속되면서 인간들이 전장에 투입됐지만, 그들 역시 개량 슬라임과 딱히 연계를 취하진 않았다.

개량 슬라임을 전장에 던져놓고 별도의 진형을 갖춰 화력지원과 자기방어에 중점을 맞추는 전술이 주를 이뤘다.

어느정도 지성이 있어보이는 나를 이용해 전술 비슷한거라도 활용해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콕피트에 타지도 않는 그들에게 맞춰줄 의욕이 나지 않아 무산됐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전투는 고블린 몇 무리가 소피의 주의를 끌면 소피가 일직선으로 돌격한 후 양동대가 부락촌민들과 교전, 소피가 돌아오면 후퇴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유격전의 양상을 타파하기 위해 인간들이 택한 전술은 뻔하다면 뻔하고,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내 6미터의 동체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성채이자, 지형이 될 수 있다.

고블린의 사출병기는 수직으로 발사해도 내 머리 높이 쯤 되면 유효사거리를 걱정해야하는 조악한 바람총, 새총이거나 명중률이 처참한 슬링(투석구) 뿐인 상황.

반면에 이쪽엔 실력이 검증된 사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취해야하는 전술은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소피의 도움으로 내 동체 어깨 위로 올라온 부락촌민 남성이 비교적 노출된 고블린을 저격.

높은 시야에서 소피가 전장을 살피며 사수를 노리는 고블린을 쫓아내거나 손에 닿는 것을 던지며 견제.

남성진의 옷과 가죽방어구를 겹겹이 껴입은 부락촌민 여성이 낮은 시야에서 사주경계 및 근접한 고블린을 상대한다.

나머지 부락촌민 남성 한 명은 무엇을 하냐면,

"────. ──────. ──────────!!"

"──……."

콕피트에서 소피의 전투를 보며 훈장질을 하고 있었다.

밀착 코칭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조종석에 앉은 소피에게 따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훈장질에 가까워 보였다.

그날은 고블린 마흔마리에 가까운 성과를 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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