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16
* * *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일정한 박자로 발포되는 탄환.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일어나는 흙먼지.
"그게 아니야. ────────."
"──────."
알고 있어.
혹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고.
고블린과의 전투는 이젠 일방적인 소탕 작전에 가까워졌다.
단숨에 숲의 안쪽으로 이동한 후에 소피의 마나가 일정량 소진될 때까지 눈에 보이는 고블린의 무리와 집락을 격멸.
조금 늦은 오후엔 지금까지 진행한 방향을 거슬러가며 고블린의 귀를 회수.
사체가 심하게 훼손되어 귀를 회수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에도 귀가 모이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
보름이 안 되는 기간동안 새끼를 까고, 이미 낳아놨던 새끼들이 성체가 되어 전투원으로 활동하는 게 틀림 없다.
끔찍한 놈들.
전투는 순조로웠지만, 지지부지한 면도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사수의 조언에 따라 탄환을 한 발씩 발사하며 각 손가락의 각도와 위치에 따라 원하는 곳에 탄착군을 형성하는 연습을 했던 소피의 사격술은 눈에 띄게 나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피는 활이든 석궁이든 슬링이든, 사출 무기라곤 다뤄본 적이 없는 초심자였다.
반면에 내 핸드 발칸엔 가늠자도, 표적 지시기도 달려있지 않다.
거기에 현대의 소총처럼 교범도, 숙련된 교관과 조교도 없는 상황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감각을 익혀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단계로는 탄착군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일정하게 형성하려 노력한다는 점과, 무작정 연사를 당기는 게 아니라 점사를 하며 사격 거리에 따른 탄착 시간을 고려해 상대의 움직임을 반영한 사격을 시도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아, 맞았다!"
"아니. ───."
솔직히 소피의 사격 솜씨는, 그런 요소를 감안해도 절대 좋은 편은 아니다.
군대였다면 남들 막사로 돌아가서 총기를 닦고 있을 때 몇 번씩 재사격을 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 탄소비까지 하고 올 법한 실력이었다.
이동하는 기간과 토벌 이틀째인 오늘까지 매일같이 사격을 했는데도 유효탄이 적었다.
고블린이 파편에 무력화되는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고, 쓰러지는 나무를 재빨리 피할 만큼 민첩하지 않기 때문에 일행이 귀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표적이 작다고 해도 이렇게나 마음껐 쐈는데 이 정도라면…….
다행인 점은 소피가 젊은 편이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백날이고 천날이고 쏘다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오르겠지.
마음을 느긋하게 먹은 슬라임은 부처에 견줄만큼 관대해질 수 있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투영 마법으로 FPS게임처럼 각 손가락의 시야와 십자 표시를 적용시킨 작은 화면을 10개 띄워줬는데, 사수와 소피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이 세계에선 그런 식으로 한정된 공간에 정보를 욱여넣어 표시하는 방식은 되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듯 했다.
물론 현대의 기억이 있는 나도 화면 11개를 동시에 보는 건 무리지만, 소피가 조종적인 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빠르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여줬는데 역시나였다.
"소피. ───────?"
"당연하지!"
"───────."
늦은 점심 겸 휴식시간.
콕피트 위층의 적재 공간에 솜씨 좋게 설치한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던 베테랑이 내려오며 묻는 말에 소피가 밝게 대답했다가 사수에게 꿀밤을 먹었다.
사수는 소피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자비가 없었다.
열정적으로 이론과 전투의 피드백을 할 때 내 핸드 발칸을 가리키며 '대단하다, 엄청나다' 같은 단어를 말하는 것을 봤을 땐, 이런 엄청난 병기를 썩히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소피를 더욱 가혹하게 가르치는 듯 했다.
그런 그의 열정에 비해, 입을 삐죽 내밀고 마는 소피는 태도가 좋지 않은 교육생이었지만 그녀에게도 적성이라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을 수 있다.
토벌 3일 째.
이전보다 눈에 보이는 고블린들이 많이 줄었다.
저번 토벌과 이번 토벌 초반까진 압도적인 체급차에도 전투 의지를 불태우며 어떻게든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도망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산짐승이든 몬스터든 각자 암묵적인 영역이 있어서 자신의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싸워서 쫓아내려고 한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던가.
영역을 차지할 때 애초부터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지형을 선택하기도 하고, 전장에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느냐는 전투에 있어서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으로 상대에게 밀린다면 영역을 포기하고 도망친다.
소피와 집락촌민 일행이 고블린 토벌 의뢰를 받아 당연하다는 듯이 이 숲을 향해 이동해서 토벌을 진행한 것을 보면, 이 숲의 초입은 꽤 오랫동안 고블린의 영토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고블린들이 영토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이상 철저하게 토벌을 진행한다면 숲 안의 생태계에도, 모험가들의 생태계에도 변화가 찾아올 수 있었다.
일행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토벌은 늦은 오전 쯤에 종료되었다.
이미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아무리 환기창을 냈다고는 해도 냄새는 괜찮은 건지, 집락촌민들은 이동할 때 내 어깨 위에 몸을 묶기 보다는 적재 공간 안의 해먹을 이용하게 되었다.
고블린 귀가 살살 썩어가는 냄새보다 수미터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묶고 있는 경험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후각이 없기 때문에 지레짐작 했을 뿐, 어쩌면 정말로 고블린의 귀가 썩는 냄새와 피 냄새가 별로 고약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어깨 위에 올라타있는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사라진 덕분에 도시에서 고블린이 사는 숲까지 왕복 10일 정도 걸리던 거리를 가볍게 뛰며 6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할 상황은 없겠지만, 나 혼자 쉬지 않고 전력질주하면 편도 하루까지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엔 조금 더 간단한 방법의 사격 보조 표시를 이용해봤다.
투영되는 좌우의 화면에 무식하게 십자 보조선을 그은 후, 적당한 간격의 눈금을 일정하게 배치했다.
전생에 실제로 조준경을 들여다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측량법에 대한 지식도 없기 때문에 때문에 사실상 게임 속에서 봐왔던 것들을, 그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원리도 이해하지 못 한 채 흉내낸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했던 시도들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다.
무엇보다 조준의 기준을 잡기 쉽게 된 것이 좋았다.
사람의 신체는 굉장히 적당적당하게 움직이고, 때로는 감각을 속이기도 한다.
'팔을 곧게 편다'는 동작조차 철저한 훈련을 거치지 않는다면 팔을 접었다 펼 때마다 결과물이 달라지는 게 인간이다.
때문에 소피의 움직임에 맞춰 동작하는 내 동체 역시 정밀도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눈금자를 적용시키니 소피가 내 동체를 곧게 펴고 '정자세'의 기준을 만드는 게 훨씬 쉬워졌다.
팔을 곧게 펼수만 있다면 그 이후로는 식은 죽 먹기다.
내 손가락은 인간과 다르게 완벽에 가까운 일직선으로, 일정하게 조형할 수 있다.
똑바로 조준하면 똑바로 날아간다.
총열이 없으니 당연히 강선도 없기에 발사 거리가 길어지면 바람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크게 바뀌었지만 핸드 발칸으로 장거리 저격이나 곡사를 할 예정은 아직 없었기에 무시한다.
동체의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발사할 땐 거의 문제가 없어도, 조준점이 정면을 향할수록 2차원으로 표시되는 십자눈금에 한계가 온다는 점을 알아채고 표시 방법을 보완한다.
각 손가락의 보조화면을 띄웠던 것을 응용해서, 표시되는 좌우 화면을 아예 조금씩 떼어내고 내 양 어깨를 중심으로 한 시야를 띄운다.
이렇게 하면 콕피트에 표시되는 시야각이 줄어들지만 어차피 지금도 인간의 시야각보다 넓은 범위를 표시하고 있다.
핸드 발칸을 발사하며 내 동체와 자신의 실제 몸을 점점 분리시키는 데 익숙해진 소피는 내 동체의 목을 돌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을 돌리는 데 이윽고 성공한다.
좋다.
역시 하늘이 내린 파일럿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문제가 있다.
전투중에 목을 돌려 좌우를 보면서 사격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정면에 있는 상대에게 사격을 할 때에도 좌우를 봐야 한다.
이런 방식은 불합리하다.
방법을 다시 바꾼다.
떠올리는 것은 전생의 LM(Linearmotion) 가이드를 타고 이동하는 디스플레이.
잠깐만 검토해봐도 무리다.
흙을 토대로 한 지금의 동체로 수십개의 볼과 금속 레일의 매끄러움을 구현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
윤활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재도 없다.
흉내내서 만들어봤자 블록 안의 볼과 레일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마찰하고, 금방 상할 게 눈에 선했다.
그렇다면 레일 롤러.
이쪽은 가능성이 있다.
LM 가이드와의 차이점은 구조가 간단해 유지보수가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핸드 발칸을 발사하며 성장한 것은 소피 뿐만이 아니다.
흙 동체를 주무르는데 도가 트게 된 나는 레일 롤러의 작은 바퀴가 전투중 격렬한 움직임에 부서져도 수 초만에 새로운 바퀴로 교체할 수 있다.
생각이 난 김에 바로 시도한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소피가 자신의 눈 앞에서 새로운 구조물이 생겨나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고보니 동체를 바꾸는 작업은 항상 그녀가 보지 못 할 때 마쳤다.
옆의 사수도 그렇지만, 그녀 역시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다.
자세를 낮추고 손으로 바닥을 쓸며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수납하고, 깎아낸다.
콕피트 안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세로로 긴 추가 디스플레이용 구조물을 새로 만들고, 그 위아래로 레일이 될 홈을 파낸다.
그리고 가공한 돌멩이 롤러를 부착.
작업을 마치고 다시 기동을 시작하며, 새로 만든 추가 디스플레이를 현재 각 팔이 조준하고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다.
드르릉, 드르릉.
"오, 오오."
소피가 팔의 조준과 함께 움직이는 디스플레이가 신기한지, 새로운 기능을 즐겁게 시험한다.
롤러가 구르며 드르릉 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든 것 같다.
만든 입장에선 솔직히 창피한 소리다.
아귀가 조금 틀어지고 충분히 매끄럽지 못 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드르르르르르르릉.
핸드 발칸의 사격 준비를 해제하고 손을 통상 상태로 전환하면 추가 디스플레이가 콕피트 양 옆으로 밀려나고,
드르르르르릉. 착.
사격 준비를 다시 시작하면 각 손의 위치를 찾아 위치한다.
드르르르르르르릉.
해제하면 밀려나고,
드르르릉. 착.
사격 준비 시 이동하는 디스플레이.
드르르르르르르르릉.
해제하면 다시 밀.
"소피, ───────."
참지 못 한 사수가 소피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격을 종용한다.
소피는 다시 입을 비죽이기에, 긍정의 사념파를 보내며 나도 어깨를 두드려줬다.
괜찮다.
장난은 언제든지 칠 수 있다.
드르릉 소리는 내가 창피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놓겠지만.
사격 보조 시스템 개선을 통한 시범 사격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내가 짚어주는 목표물과 떨어진 거리 표시를 소피와 사수가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에 미터법을 사용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표시되는 정보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은 충격이었다.
'글자인가…….'
글자책을 사야할 필요성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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