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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20화 (20/65)

〈 20화 〉 1.18

* * *

"────────."

일행과 고블린의 귀를 들고 찾아간 길드 사무소에선 베테랑이 '고블린 귀 만들어왔냐'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가 들뜬 얼굴로 소식을 전하려고 하지만 사수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막는다.

그걸 본 집락촌민 여성도 웃음을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고블린 귀가 든 가방을 끌러낸다.

세기 편하게 다섯개씩 뭉쳐서 정렬해놓은 고블린 귀는 대충 봐도 저번의 2배가 넘었다.

사무소 직원이 혼잣말 조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행이 초보 모험가인 소피를 데리고 간 것을 보면 고블린은 토벌 난이도가 낮은 축에 속하니, 소규모 모험가 집단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수행하는 의뢰로 예상된다.

이 정도 규모의 고블린 귀를 한 번에 들고 오는 집단은 지금까지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사무소 직원은 보상으로 저번과 비슷한 크기의 주머니를 내밀었다.

아마 은화의 비율이 크게 늘었으리라.

주머니를 건네준 뒤 명단에 이것저것 기록하던 직원은 소피의 신분증을 받아서 길드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신분증을 돌려줬다.

하단부에 줄이 2개 그어져있던 신분증에 줄이 하나 더 추가돼있다.

"오오."

"대단한데."

"───, 소피."

일행이 한 마디씩 던진다.

마지막 말은 아마 '축하해'겠지.

기억해둔다.

일행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섞여있는 걸 보면 예상보다도 꽤나 빠른 승급인 듯 했다.

그럴 만하다.

가장 쉽다고는 하지만, 익숙치 않은 숲 속에서 유격전의 대가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좋은 장비를 착용시킨 소피와, 비슷한 전투력의 모험가 3명이 토벌을 간다면 일 년 내내 투자해야 지금과 비슷한 실적을 쌓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오고 가는 시간과 생필품을 많이 챙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살아돌아오지 못 할지도.

소피가 보채서 일행의 신분패도 볼 수 있었는데, 사수는 4줄이었고 베테랑과 집락촌민 여성은 기존 4줄에 기다란 줄을 관통시켜 그은 5줄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베테랑은 그렇다 쳐도, 집락촌민 여성이 5줄인 건 의외로 놀라웠다.

그걸 알고 나서 돌이켜보니, 내가 핸드 발칸을 선보이지 않았을 때 집락촌민 여성 혼자만 나의 보호를 받지 않고 개별행동을 취한 것도 다르게 보였다..

일행의 방어구를 겹쳐서 껴입을 수 있는 체구라는 게 그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의외로 베테랑보다 실력이 좋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경의를 담아 이제부터 그녀를 창잡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1층 테이블에 앉으려는 베테랑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어지는 설명.

"──, ────?"

"────."

돌아오는 반문과, 들뜬 창잡이의 썰.

소피도 상황을 돌아보자 기분이 좋은지 옷을 만지작거리듯 나를 쓰다듬었다.

성문에서 고개를 끄덕인 영업직 남성은 난쟁이들과 이야기를 한 뒤 일행과 몇 마디를 나누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더 큰 돈을 준비하고, 내부에서 계약 조건을 정비한 뒤 다시 올 것이다.

저녁을 먹지 않는 걸 보면 조만간 오는 걸까?.

설마 오늘이 될 줄은 몰랐는데.

이세계인들은 생각보다 성격이 급한 것 같았다.

아니면 난쟁이만 성격이 급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일행이 자세를 고쳐앉는다.

"네. ─────."

대답하는 소피의 목소리가 약간 뒤집혔다.

조심스레 들어오는 영업직 남성과 거품을 물고 기절했던 난쟁이.

이런 자리에 오는 걸 보면 저 난쟁이는 부장급, 혹은 책임 엔지니어 쯤 될지도 모른다.

딱히 테이블도 없는 방이었기에 일행은 한 쪽 침대에 몰아서 앉았고, 난쟁이와 영업직은 건너편 침대에 마주 앉았다.

"──. ─────?"

"────, ──────."

"───……."

영업직 남성은 가볍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계통의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베테랑이 일축하자 바로 각진 가방을 풀며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이야기가 빠른 것은 좋다.

팔짱을 낀 난쟁이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라라라락.

이번엔 금화를 주머니에 담아서 주지 않고, 침대 위에 하나하나 쌓아올린다.

가지런히 쌓인 금화는 총 15개.

이번에도 5개 단위로 묶여있다.

높이 쌓기엔 침대가 불안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는 5진수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둔다.

"───────."

영업직 남성은 금화를 넘겨주지 않고 설명을 시작한다.

동시에 가방에서 종이를 몇 장 꺼내어 일행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

거꾸로된 계란 모양에 달린 사지와 머리.

그리고 그 주위에 연장을 들고 내려치려 하는 난쟁이들.

저건 누가 봐도 내 동체와 인부의 그림이다.

나를 위해 일부러 준비한 건가.

동화책처럼 상징과 생략을 이용해 묘사한 그림이지만 내 동체의 비율이 꽤나 정확하고 군데군데 디테일이 들어가있다.

저 난쟁이들은 대체 언제부터 내 동체를 뜯어본 거지.

손가락까지 이용하며 어린이에게 말하듯 천천히 설명을 진행하던 영업직 사원이 소피를 쳐다본다.

일행의 시선도 따라간다.

그리고 소피는 고개를 내려 나를 바라본다.

아까 천천히 금화를 쌓는 행동도 그렇고, 그림을 준비한 것도 그렇고.

이들은 준비가 돼있고 생각보다 상대에게 성의를 보일 줄 안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긍정.

"호오. ──────."

난쟁이가 수염을 쓰다듬고, 영업직 사원은 다음 그림을 꺼내들어 설명을 이어나간다.

두 번째 그림.

이번에도 그려진 내 동체와 인부.

아까와 다른 점은 내 역계란형 동체가 좌우로 갈려져 열려있고, 그 안이 어둠으로 칠해져있다는 것.

인부들은 그 주위에 중점적으로 그려져있다는 것.

이들은 콕피트 내부가 중요하고, 그 중요도가 동체 외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제법이군.

물론 이것도 상관없다.

긍정의 사념파를 보낸다.

"─────,"

세 번째 그림.

내 동체는 남아있지만 인부는 모두 사라져있다.

대신에 내 동체 안에 그려진 난쟁이와 체구가 가는 여성.

한 번 태워달라는 소리다.

당연히 상정한 범위.

난쟁이와 소피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남성의 말을 끊고 사념파를 발한다.

긍정.

"파하하. ──────."

난쟁이가 웃고, 영업직 남성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네 번째 그림을 꺼낸다.

부정.

"뭐? 왜? 왜 ─────?"

팔짱을 풀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난쟁이와 잠깐 굳었다가 다시 설명을 시작하려는 영업직 남성에게 다시 한 번 부정의 사념파를 발한다.

네 번째 그림.

세 번째 그림에서 소피를 뺀, 드워프만이 내게 탑승한 그림.

이건 볼 것도 없이 NG다.

소피만큼 달콤한 마나를 흘리지 않는 인간에게 나와 협력해 내 동체를 조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래도 저들이 성의를 보였기에 본체를 촉수처럼 가늘게 뻗어 난쟁이의 맨살을 만져봤지만, 역시 향기로운 마나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인간들의 박자를 흉내내 본체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의 사념파로 쐐기를 박는다.

"베르제스──소피───. 소피───마사지───나───."

지켜보던 창잡이가 거드는 말을 한다.

마사지를 안 해주는 게 아직도 응어리가 맺혀있나보다.

매일밤 하응하응 울다싶이 하는 소피와 같은 공간에 있다보니 어쩔 수 없긴 하다.

"너 베르제스───마사지───?"

"최고야."

영업직 사원이 조금 고민을 하는 동안 지방 방송이 오간다.

베테랑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길래 부정의 사념파를 쏴줬다.

이 아저씨가 어딜.

"───────."

생각을 마친 영업직 남성이 새로운 그림을 꺼내든다.

아마 마지막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그림.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 중심으로 그려진 마법진과 점액질 물체.

나인가?

하고 있는 것은……, 의식?

"───?"

"──────. ────────────."

영업직 남자가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을 하는데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마법적인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그 '무언가'가 뭔데?

지금까지 꽤나 길었던 설명에 비해 짧게 끝나는 걸 보면 영업직 남자도 마법 쪽으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전달받은 바가 없거나.

기억을 떠올려보면 성벽에서 소동이 일어났을 때 마법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베르제스. 어떻게 하고 싶어?"

소피가 내게 묻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이들의 요구조건에 긍정긍정 예스맨이 된 것은 전쟁중에 나를 위해 마법 갑옷을 만들어준 인간들의 기억에 기인한다.

내가 아무리 전생에 메카물을 좋아했고,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걸 일생의 취미로 삼았다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애초에 메카물이란 건 뭐든지 적당적당하기 마련이었다.

가장 등급이 높고 퀄리티가 좋다는 프라모델을 구매하고, 각종 설정집을 뒤져봐도 기체의 내부 구조나 제작 도면 등은 결국 적당히 있어보이고 그럴싸하게 만든 망상에 불과했다.

내가 이세계로 넘어오면서 신비의 에너지원과 거대한 동체를 가눌 수 있는 마법같은 힘을 얻었어도 내 기억에 있는 메카를 현실화시켰을 때 그것이 원작의 설정대로 움직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공학적 지식과 소양이 뛰어나서 자체 메카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과거엔 인간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금은 난쟁이들의 조력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움직이는 강철의 거인을 현실화해줄 전문가들.

나의 손을 잡고 언젠가는 우주로 나가 은하를 박살내고 블랙홀을 쏘며 파일럿의 투지로 빛 그 자체가 되게 해줄 연구원들.

솔직히 거기까진 이세계 전생을 거친 지금도 꿈의 영역이지만, 비슷한 거라도 하려면 지금 이 난쟁이들의 조력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마법사의 도움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마법사 하면 그 마법도구점에서 만난 마녀의 기억이 떠올라 주저되는 게 사실이다.

마법사와 나의 관계는 전생의 미국과 외계인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외계인들은 잡혀서 감금당했고 나는 아직 그들에게 잡히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영업직 남성이 내민 그림과 짧은 설명이 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대체 저 의식은 정체가 뭐지?

네놈들은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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