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21화 (21/65)

〈 21화 〉 1.19

* * *

난쟁이와 영업직 남성은 가져온 금화 15개 중에 12개를 두고 갔다.

각 각의 계약에 따라 금화의 배분이 어떻게 되는지는 지금까지 보여준 그림 위에 금화를 올려놓는 방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이해하고 있다.

동체 분석에 2개.

콕피트 분석에 6개.

소피와 함께 난쟁이가 탑승하는 데 4개.

난쟁이 홀로 탑승하는 데 8개.

내가 숫자를 잘못 센 게 아니다.

난쟁이는 못내 아쉬웠는지 영업직 남성을 독촉하고 자신의 수염과 신발 밑창, 속옷에서 주섬주섬 금화를 꺼내며 네 번째 그림에 대한 보수를 계속해서 올렸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금화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창잡이가 눈치를 주거나, 사수가 헛기침을 하거나, 베테랑이 소피의 어깨(부분의 내 본체)를 툭툭 치며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한 번 태워줘라' 같은 말을 했지만 그래도 안 된다.

나는 이미 인간의 마나가 주는 극상의 쾌락을 맛보고 말았고, 그것이 없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소피를 만난 순간 내가 내가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그녀는 내 몸도 마음도 빼앗아버렸고, 난쟁이는 그녀가 내 콕피트에 올라타 나의 동체를 난폭하게 다루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다.

마법 의식에 협력하는 데에는 의외로 보수가 없었다.

난쟁이와 영업직 남성의 단체 내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의뢰가 아닌 듯 했다.

난쟁이 단체와 마법사 단체 사이에 무언가 커넥션이 있어서 한 번 찔러라도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영업직 남성은 생각이라도 해보라는 듯 금화와 함께 마지막 그림을 남겨두고 갔다.

이제 보니 한쪽에 그려진 문양이 마법적인 무언가를 표현해둔 게 아니라 마법사 단체의 상징인 듯 했다.

명함 같은 건가보다.

"파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창잡이가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쓰러진다.

방음이 좋지는 않은 여관이니 그 소리를 분명히 밖에서 들었겠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눈 앞에서 무게 잡고 번듯한 척 해도 난쟁이와 영업직 남성은 일행이 모험가인 것을 알고 있고, 일행도 자신들이 어떻게 보일지 뻔히 알고 있다.

그래도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땐 나름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점점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막판에 난쟁이가 곳곳에서 금화를 꺼내는 마술쇼를 보인 후 부터는 평소의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이거─────."

소피는 영업직 남성이 두고 간 마지막 그림을 챙기고 금화를 그 자리에서 분배했다.

각자 4개씩.

공평하게.

일행의 분위기가 다시 굳는다.

예상을 전혀 못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같은 집락촌민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친인척을 모두 잃은 소피를 돌봐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벌어먹고 사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기까지 한다.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토벌에 나갈 때까지, 일행은 항상 소피에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물론 부려먹는 모습도 심심치않게 보였지만, 결국 그 지식들은 소피에겐 피와 살이 되는 생존법이고 일행에겐 지금까지 벌어먹고 살게 해준 기술이었다.

소피를 만난지는 한달이 조금 넘은 정도지만 그녀가 집락촌에서 그들을 기다릴 때와 지금의 모습은 꽤나 많은 곳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있는 자세와 걸음걸이.

그리고 어떠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라든지.

아직 일행에겐 못 미치는 수준이어도 일단 일반인에서 전사로 반 발짝 정도는 걸치게 되었다는 게 느껴진다.

거기에, 아무리 이세계라도 가구 수가 열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집단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공산주의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전생에서 도시의 삶처럼 '니 건 니 거, 내 건 내 거' 하게 되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싫어도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하나하나 알게 되는 판엔 무엇 하나 숨길 수 없고, 독점할 수 없다.

나의 좋은 것을 나눠야 나의 나쁜 짐 역시 나눠서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집단에서 살고 있던 소피가 자신의 수확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려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물론, 소피의 씀씀이가 은화 수준에 머물러 있기에 생각지도 못 한 거금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선뜻 나눠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소피, ────────."

그래도 일행은 염치는 있는지 소피가 나눠준 금화를 반납한다.

모조리 돌려주는 게 아니라 한두개만 내미는 것은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구질구질하다고 해야할지…….

어쩌면 받은 선물을 완전히 거절하지 않는 게 그들 사이의 룰일지도 모른다.

소피와 일행은 몇 번 오가며 실랑이를 했다.

그들의 감정의 조합을 통해 이런 상황을 낯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한다.

전생의 나라도 내 친척 쯤 되는 꼬맹이가 코인이 많이 올랐다며 수억을 덥썩 나눠주려고 하면 기분이 이상할 것이다.

기쁨. 미안함. 당혹스러움. 욕심. 질투심. 죄책감. 기특함. 답답함.

그런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싱숭생숭한 마음이 드는 게 지금 그들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하지."

결국 칼을 빼든 것은 일행의 제일 연장자인 베테랑이었다.

모두 누군가 이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이상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 까지도.

그 와중에 베테랑도 사람인지라 거금의 분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싶지 않아 지금까지 머뭇거렸지만,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선 듯 했다.

집단에 위기가 닥쳤을 때 지혜보따리를 짜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책임이다.

베테랑은 금화를 모아 다시 분배했다.

모두에게 두 개씩.

소피에게는 여섯 개.

정확히는 세 개씩 두 뭉텅이.

"그건 너와 베르제스────. ────베르제스───────. ───────."

오.

오오.

나를 챙겨주는 것인가.

베테랑이 마지막에 한 말 때문인지, 일행은 '베르제스, 고마워~' 하는 분위기가 되어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지기까지 헀다.

어떻게 보면 나를 판 셈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나도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해준 것이고 내가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생긴 것이니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역시 연장자의 지혜.

사실 성벽에서 영업직 남성에게 페이를 더 줄 것을 종용한 것은 이들과 보수를 분배하고 나서 소피가 나를 위해 남겨줄 돈으로 책을 사야 했기 때문에, 받아둘 수 있는 만큼 받으려고 헸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고블린 토벌 보상금에서 떼어낸 용돈을 나에게 준 소피를 믿었고, 동시에 금화를 받더라도 책을 살 만큼 떼어줄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소피를 의심한 결과다.

조금은 반성한다.

별다른 욕심이 없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욕심을 부려 마음에 마귀가 낀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일행은 금화를 분배한 후 고블린 토벌 포상금이 든 주머니를 채로 들고 1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저번보다 더 성대하게 만찬을 즐기려는 생각 같았다.

소피의 눈이 빛났고, 베테랑이 여관 주인에게 무언가를 기세좋게 외쳤다.

메뉴에 있는 거 다 가져와! 혹은 오늘 샤따 내려!

호들갑을 떠는 여관 주인에게 두둑한 주머니를 열어보이며 자랑한다.

이쪽에선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많은 은화가 들어있을 것이다.

여관 주인이 손뼉을 치며 기쁨의 감정을 발산하지만 일행의 눈빛은 어딘가 차갑다.

좋은 일이 있었으니 즐기긴 즐겨야겠고.

그렇다고 거금을 벌었다고 동네방네 떠벌릴 순 없고.

고블린의 포상금은 그들 나름의 눈가림 대책이겠지.

일행은 웃고 떠들고 마셨다.

특히 소피가 이번 기회에 원없이 먹어보겠다는 듯이 끊임없이 음식을 주문했고, 쉴 새 없이 포크와 스푼을 움직였다.

자신의 손바닥보다 큰 조류의 다리를 먹음직스럽게 뜯어가더니 '호로록' 먹었다.

어떻게 고기를 호로록 먹을 수가 있는 거지.

기분이 들 뜬 일행은 나에게도 음식을 억지로 먹이려 했고, 나 역시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만큼 분위기 정도는 맞춰줘야 했기에 별 의미는 없더라도 음식을 주는 족족 본체 안에서 '처리' 했다.

소피가 창잡이의 거듭된 권유에 술을 마실 때에는 생각해둔 바가 있어 잠시 그녀에게서 떨어져 소피가 술을 마시는 것을 구경했다.

소피는 저번엔 꽤 강한 술을 빠른 템포로 세 잔을 마셔도 멀쩡했지만, 이번엔 베테랑이 물처럼 마시는 술을 두 잔을 채 못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에 열을 띠게 됐다.

반면에 나는 똑같은 술 한 잔을 본체에 직접 부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개량 슬라임의 '처리'는 일반적인 동물의 소화와는 궤도를 달리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소피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마나를 취한다.

소피의 혈색이 돌아오면서 반대로 나의 사고가 둔해진다.

역시 이런 것이었군.

파일럿의 신체를 항상 만전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실험하고 적용시킨 부작용인 듯 했다.

아마 소피는 저번에 술을 마실 때 내가 정신을 잃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뻗었겠지.

역시 술은 금지다.

소피의 흉부와 생사를 걸고 레슬링을 벌이는 추태는 한 번이면 족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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