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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22화 (22/65)

〈 22화 〉 1.20

* * *

한동안 놀고 먹고 장비를 보충한 일행은 성문을 나서 고블린이 서식하는 숲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괜찮은지 모르겠어."

"괜찮다니까. ───────."

베테랑이 식사 자리에서 무언가 말을 한 후, 수 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고 평소와는 종류가 다른 물자를 챙긴 여정이다.

난쟁이 집단과의 일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으니, 거점으로 삼는 도시를 뜨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일단 고블린을 토벌하러 가는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고블린 다음엔 오크인가?

하지만 오크 역시 고블린보다 가죽이 아주 약간 더 질기고 성격이 터프할 뿐, 내 핸드 발칸을 통해 힘으로 빌어붙이며 섬멸하는 전술에 당해내지 못하는 건 같았다.

오히려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고블린보다 더 취약하다고 할 수 있었다.

놈들도 은엄폐를 통한 기습정도는 하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유격전이라든가, 차륜전이라든가 하는 전략적 후퇴 및 전장 이탈 등의 행동이 포함된 전술은 쓸 줄을 몰랐다.

핸드 발칸으로 주의를 끌고, 몰려든 놈들을 근접전으로 처리하면 그만이니 고블린보다 쉬운 상대에 속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놈들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면, 의 이야기지만.

"베르제스. ────?"

무의식중에 사념파가 흘러나간 것인지, 소피가 나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

걱정? 기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조차 확신이 없다.

지금 내 동체는 난쟁이의 소개로 알게 된 채석장에서 구매한 암석이 많이 섞인 동체로 변경됐다.

아마도 도시의 성벽과 동일한 재질의 암석일 것이다.

덕분에 난쟁이에게서 벌어들인 내 돈과 소피의 돈을 홀라당 까먹었고, 흙보다 만지기 어려운 암석을 깎아 동체를 구성하느라 시간도 많이 소비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전에 없던 고양감을 느끼고 있다.

일종의 전능감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소피와 함께라면 드래곤도 단기로 토벌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물론 지금 내 동체는 드래곤의 마법과 숨결로부터 파일럿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쌔끈한 새 옷, 혹은 새 장비를 들고 출진을 나가는데 어떻게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소피가 내 걱정을 느꼈다면 그런 장비로 처음 치르는 전투가 소위 '양민 학살'이라 할 수 있는 시시한 전투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류의 걱정을 캐치했을 것이다.

이동중에 계속 동체를 점검한다.

석재 동체는 역시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흙이 주 재료였던 예전 동체는 몸집에서 오는 하중을 버티기 위해 내가 계속 마나를 흘리며 붙잡고 있어야 했고 형태가 무너진 부분은 없는지 수시로 신경써줘야 했지만, 암석으로 바꾼 후 그런 수고가 많이 줄었다.

흙이 굳어 뭉쳐진 덩어리를 바위에 긁으면 그대로 바스라지던 기억을 떠올린다.

개량 슬라임의 특성으로 인해 바위보다야 조금 더 단단하게 굳힐 수는 있었어도 진짜 바위를 동체로 쓰는 것 보다 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줄어들어서인지, 예전 동체보다 움직임이 매끄러워진 듯한 느낌을 나도 소피도 받고 있다.

아마 소피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효율도 올라갔을 것이다.

마침 안 그래도 사출 마법에 익숙해진 이후로 소피의 전투시 마나 분배를 고민하게 된 참에 걱정을 한 시름 덜게 됐다.

나와 소피가 사출 마법을 통한 핸드 발칸 사격에 숙달되면 숙달될수록 개선되는 것은 사격의 정밀도만이 아니었다.

연사속도도 올라가게 됐고, 보다 커다란 마나를 사출 마법에 들이부어 출력 증대든 장전 시간 단축이든 해서 더욱 큰 화력을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와 함께 대두된 문제가 사출 마법의 마나 소모.

모처럼 강력한 공격 방법이 정착됐는데 연비를 신경쓰며 쏠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고, 동체 재질의 변경이 어느정도 그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우선 내 동체보다 단단한 적을 만났을 때 충격을 흘릴 수단이 사라졌다.

소피가 성벽을 주먹으로 때리려고 했을 때처럼, 동체 일부의 장악을 포기해서 무르디 무른 흙더미나 자갈조각으로 되돌린 채 파괴시키며 충격을 분산하는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생물체 중에 그런 놈들이 얼마나 있겠냐 싶을 수도 있지만, 내가 드래곤과의 전쟁 중에 만났던 몬스터들 중에는 그런 놈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비늘가죽이 어찌나 단단한지, 비늘이 아니라 광석을 두른 것 아닌가 싶었던 놈들.

실제로 광석이나 갑각을 두른 놈들.

공격적인 뿔을 돌출시킨 놈들.

그런 놈들이 난동을 부리면 개량 슬라임의 고인돌 같은 동체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서 장악력을 잃고 주위에 산산에 부서진 바위를 뿌리곤 했다.

물론 튼튼하고 끈질긴 개량 슬라임은 그 잔해를 다시 재조립해 전투에 돌입했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했지만 파일럿이 있는 이상 그런 전법은 봉인이다.

살아본 결과 예전보단 평화로운 세상이니, 대비책이 생길 때까지 그런 놈들은 만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둘 째로는 긴급 동체 구성을 석재로 할 수가 점.

2분만 시간을 준다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에서 예전 동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아직 해당 파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핸드 발칸을 위한 추가 디스플레이는 기동 후 30초.

그 과정을 지켜본 난쟁이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채석장을 소개해준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지만, 어쨌든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흙 동체는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구성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갈 수 있다.

화살같은 사출 병기를 감지해서 해당 방향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 뿐이라면 정말 찰나의 시간이면 된다.

하지만 석재로는 그게 불가능하다.

애초에 적당한 크기의 쓸만한 석재라는 건 그렇게 아무데나 널부러져있지 않다.

채석장이라는 장소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주변 지형에서 소재를 끌어와 동체를 구성하는 개량 슬라임의 특성상 그때그때 긴급 구성을 하게 되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설령 채석장에서 동체 구성을 하게 돼도 적당한 크기의 돌을 떼어내고 가공해서 각 파츠를 만들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고 만다.

자갈이 많이 깔린 강가라면 흙을 적당히 섞어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예전 동체보다는 나은 동체를 구성할 수 있겠지만 워낙 몸집이 있다 보니 강가의 자갈을 모조리 끌어다 써도 소재가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예전부터 생각해본 결과, 개량 슬라임에게 적절한 전장은 온갖 쓰레기와 고철이 구분없이 버려진 쓰레기 처리장이 가장 베스트다.

하지만 그런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지금 인간들의 문명수준으로는 얼마나 걸릴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도착한 곳은 산지였다.

오는 길에, 산의 초입에서 소피가 살았던 집락촌과 비슷한 느낌의 캠프를 지나쳤다.

내 거대한 동체를 보고 미어캣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소피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가구 수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움막의 수준이 훨씬 번듯하고 주민들의 옷도 꽤나 충실하며 단단하게 입고 있었다.

번쩍번쩍한 날이 달린 커다란 창을 거치대에 늘어놓은 모습도 보인다.

아니, 창이라기엔 비율이 조금 이상한데.

저건 노포(??)의 살인가?

기쁨.

노포의 파괴력과 살상력은 대인전에서도 활약하지만, 저렇게 거대한 살은 대인 병기라기엔 코스트 대비 살상력의 수지가 안 맞았다.

저 노포살 하나로 일반 화살을 두자릿 수는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들이 참호와 은엄폐물을 사이에 두고 전쟁중이라면 코스트가 높더라도 저런 무식한 노포살을 발사하는 게 이득일 수 있겠지만, 그런 전장에 모험가 나부랭이인 일행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저 집락촌도 군사적 거점이라기보단 등산인들의 전진 캠프에 더 가까워 보였다.

등산의 목적이 조금 전투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목적은 뭘까?

저들이 노리는 사냥감은 뭘까?

처음 기동했을 때도 그렇고, 고블린의 숲에 갔을 때도 그렇고, 도시에 갔을 때도 그랬다.

이런 거대한 동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곳의 주민들이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피우고, 도망치고, 관찰하고, 경계한다.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고등 지성체만큼은 아니지만, 온갖 짐승들과 몬스터들도 감정이란 게 존재해서 그 감정들이 나에게 전달되곤 한다.

단지 노이즈를 탄다고 해야 할까, 알아볼 수 있을만큼 선명하지 못 해서 그저 '격렬하다, 잔잔하다' 정도가 기본이고 심할 경우엔 '감정이 있다, 없다.' 까지밖에 판단하지 못 하긴 해도 무언가 느낄 수는 있다.

이 산에 사는 주민들의 감정은 나를 봐도 그다지 격렬해지지 않았다.

물론 내 진행 방향의 짐승과 몬스터들은 자리를 피하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숨을 죽이며 나를 경계했지만, 지금까지 느껴온 감정과는 무언가 달랐다.

미물들의 감정과 전장이 아닌 지형까지 일일이 파악하기엔 내 천성이 게을렀고 소피의 마나가 너무 달콤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산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런저런 단서가 있었다.

이 산에는 있다.

무언가.

거대한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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